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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의 첫번째 작품으로 알려진 <달려라, 토끼>는 일탈에 관한 이야기다. 왕년에 잘 나가는 농구 선수이다가 지금 별볼일 없는 세일즈맨으로 전락해버린 한 20대 남자 '래빗 앵스트롬'의 일탈과 돌아옴의 과정을 유려한 문체로 묘사한다. 래빗의 방황과 일탈 과정은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색을 띄고 있어 그 근원에 대한 탐색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래빗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내면 불안의 근원에 대해 추적하기를 시도한다.
래빗 앵스트롬의 돌연한 일탈은 아내 재니스와의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에서 촉발된다. 상대방에 대한 어떤 성실성도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핀트 어긋난 부부의 대화는 쇠가 긁히는 소리처럼 불안하고 신경증적이다. 만삭의 몸으로 술에 취해 담배를 찾고 티비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가출한다는 이야기는 쌍방의 무책임을 문제삼는 통속적이고 흔한 것으로, 부부의 불화를 이야기할 때 숱하게 반복되어왔던 화제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불성실한 부부관계를 드러내면서도 한 인물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도 한 시대의 풍속과 세태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래빗이라는 인물의 행동반경을 꾸준히 추적할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그의 삶의 궤적에서 잘못 끼워맞춰진 퍼즐 한 조각의 정체를 탐색해가는 데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래빗 앵스트롬이 재니스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국도를 찾아 무작정 '달리게'한 그것에 대해서는 추잡한 법정공방에서나 발견되는 책임소재가 명확한 사건들과 구별되어진다. 그것은 보잘것 없는 현재 지위에 대한 자괴감이거나 경제적인 박탈감이어도 상관없지만 원인의 소재는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래빗의 내부에 있다. 래빗의 돌연한 일탈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즉흥적이지만 그에 비해 냉소적이고 방향성이 없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기 전에 어디에 갈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라는 시골철물점에서 만난 농부의 말은 래빗의 일탈 속 방향성 결여를 시사한다. 경찰이나 재판관이 아닌 영적 영역을 담당하는 목사가 부부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등장함으로써 이 근원모를 방황의 탐색이 용이해질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래빗이 어느날 갑자기 느낀 허무는 고독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시종 래빗은 재니스와의 소통에서 철저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 래빗이 찾는 옷장은 재니스가 몰두해 있는 텔레비전에 의해 막혀있고, 재니스가 찾는 담배는 래빗에게 버려진 직후이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래빗이 방황을 끝내고 일시적으로 제자리를 찾은 후에도 계속된다. 심지어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참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까지 이어진다. 서로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래빗의 자아는 재니스에 대한 충동적인 혐오를 끝내 털어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할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이 뚜렷한 소통의 단절은 결국 래빗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달릴 수밖에 없게한다.
현대인의 불안감은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래빗은 가출을 통해 재니스와의 관계회복 가능성을 철저히 회피한다. 그대신 그는 재니스에게서 받은 공허감을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다. 래빗은 토세로와 루스, 에클스, 스미스 부인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낸다. 그는 섹스에 몰두함으로써, 혹은 골프나 잔디깎기를 빙자한 대화에 열중함으로써 이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니스와의 관계에서 결핍된 것들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맺기는 본질을 회피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음을 소설은 숨김없이 보여준다.
래빗이 느끼는 불안과 강박의 원천은 공허한 관계에 있다. 관계에 대한 정의는 상호간에 공유할 수 있는 사물 혹은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때, 래빗과 재니스의 관계는 부부라는 법적 근거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래빗의 가출이 일탈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로 비춰지는 이유에는 일탈행위에 내재된 무책임보다 무엇인가를 공유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 혈육에 대한 애착이라든지 생활의 안정감 같은 것은 오직 일시적 만족만을 줄 뿐이다. 래빗은 여전히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 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존 업다이크는 래빗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이 가지는 실존 불안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탐색해냈을 뿐 아니라 그 회복 가능성을 주인공의 실패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달려라, 토끼>는 통속적일지언정 심오한 무게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