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 전2권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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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이 탐나서 전편을 구입했음에도 세트로 다시 샀어요. 저보다는 엄마가 더 기다렸던 책인데 이제 받고 딘숨에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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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65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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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가지는 신념 중 하나가 '원조'는 무엇이든 그 이름값은 한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부차적인 창작물을 통해 변용되어 오고 있는 흡혈귀를 지금의 모습으로 처음 탄생시킨 것은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다. 지금은 흡혈귀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해진 '드라큘라'라는 고유명사의 위상만 보더라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받아야 할 찬사의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찬사는 이 모든 것이 이 소설에서 처음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예우같은 것이 아니다. <드라큘라>는 공포 소설의 필수요건인 섬뜩한 긴장감을 작품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공포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크게 기대할 수 없는 품격마저 갖췄으니 명쾌한 헐리우드식 액션 활극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은 물론 문체의 가벼움 때문에 장르소설을 멀리해오던 사람들의 눈높이까지 충족시킨다. 

 

드라큘라는 소설 속에서 자연의 힘을 이용하며, 동물을 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습을 바꿀 수도 있는 불사귀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의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그가 희생자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드라큘라가 희생자를 지배하는 모습은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다. 단순히 희생자의 피를 빨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끈질기고 집요한 방식으로 희생자의 영혼을 옭아매어 마음대로 조종할 뿐 아니라, 죽어서까지 안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 소설 속 최초의 희생자인 루시가 드라큘라의 힘에 굴복해가는 과정은 숨쉴 틈없이 긴박하면서 섬뜩하다. 반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찬 이 불사귀는 엄숙주의가 만연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대면 명확하게 '악'의 극단에 놓이는 존재다. 코폴라의 영화와는 달리 브램 스토커의 원작에서 드라큘라는 일말의 자비도 인간미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원색적인 욕망만 남은 존재다. 따라서 신의와 의리, 선의 실천에 대한 당위로 똘똘 뭉친 반 헬싱 박사 일행과는 선악의 경계를 두고 명백히 대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악의 도식적인 이분법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행보는 결말을 쉬이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작가가 드라큘라의 속성을 어찌나 디테일하게 창조했으며, 그 속성들에 맞서 싸우는 반 헬싱의 비책은 또 어찌나 치밀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의 긴장감은 드라큘라가 좀처럼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데서 온다. 소설 <드라큘라>는 일기, 편지, 전보, 신문기사 등 인물과 인물을 넘나드는 기록의 연쇄로만 이루어져있다. 드라큘라의 존재는 이러한 기록 속에서 언급되고 있을 뿐이므로 객관적이지 않음을 전제한다. 게다가 기록의 속성 탓에 소설의 서술 방식은 대체로 회고적이다. 모든 중대한 사건은 발생한 뒤 다소의 시간이 지나 인물의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쳐 기록된다. 기록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서술방식으로 인해 독자는 결코 드라큘라의 참모습과 대면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런 감추어짐의 효과는 상상력을 부추겨 드라큘라를 더 강력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오늘날 뱀파이어 장르물은 아류라 불리거나 브램 스토커 소설의 스핀오프로 여겨질만한 영역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 자체로 엄청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질적 깊이에 있어서 이 원작의 품격을 위협할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드라큘라>는 공포소설이자 환상문학의 범주에 놓여있음에도 그 문학성으로 인해 품위있는 고전으로 분류된다. 영상의 도움이 없이도 고딕 소설의 전형다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깊이 있게 묘사해내고 있으며,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훌륭하게 재현한다. 또 수기체 형식의 서술은 인물들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특히 섹슈얼리티와 성스러움의 양극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대비효과는 이 소설이 이룬 가장 큰 성취다. 이 작품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여 텍스트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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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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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의 '선셋 파크'라는 곳은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쇠락한 지역으로 사람들이 떠나가는 곳이다. 선셋 파크의 묘지 앞 버려진 집 안에 무단침입 해 살아가는 네 명의 젊은이들이 있다. 극심한 불황기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 젊은이들은 사랑과 일, 과거와 미래 앞에 좌절해 저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다. '선셋 파크'는 그 이름과 달리 갈 곳 없는 이들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준다. 과거 사건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만 찍으며 살아가는 마일스, 파괴적인 기질로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는 빙, 극심한 생활고와 의지가 되어주지 않은 남자친구로 인해 힘겨워하는 앨리스, 실패한 연애의 기억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엘런이 그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각자의 돌파구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며 젊음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건강성을 꾸준히 내비친다.
 
선셋 파크의 네 젊은이들과 마일스의 가족, 또 이들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은 긴밀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소설적 장치에 의해 절묘하게 연결되어있다. 폴 오스터는 특유의 도회적인 감성으로 지적인 연대감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호의적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마일스와 필라는 <위대한 개츠비>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부터 사랑에 빠진다. 문학도인 마일스의 아버지 모리스는 <리어왕>의 코델리어의 대사를 인상적으로 표현해낸 여배우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아들의 심도 있는 평을 듣고 강한 부성애를 느낀다. 앨리스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지성을 가진 마일스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고, 마일스도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를 줄곧 높게 평가한다. 이밖에 작가인 렌조, 마일스의 양어머니 윌라 등 많은 인물들이 지적인 탐구를 통해 인간관계의 연대에 대해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까닭에 작품 속에서는 숱한 텍스트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시작으로, <앵무새 죽이기>, <리어왕>, <행복한 날들>과 같은 문학적 텍스트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인물과 인물의 연대감을 강화시키고 때로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작품 전체를 아우르며 꾸준히 서술되는 작품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망가진 세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앨리스의 논문 속에서, 혹은 렌조와 메리-리의 기억 속에서 꾸준히 상기된다. 이러한 반복은 마침내 현재 이야기의 장면들과 중첩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얻은 외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상처와 겹쳐진다. 전후 젊은이들의 상처와 맞물리는 불황기 젊은이들의 고뇌는 그 근원은 다르지만 한 시대가 만들어낸 상처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깊은 상실감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폴 오스터가 시도하는 상호텍스트성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소설 <선셋 파크>는 그 서술방식에 있어서도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적절히 기능한다.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만, 각 장마다 초점을 달리하여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서술된다. 앞 장에서 감추어졌던 인물의 내면은 초점이 그 인물로 옮겨오면서 이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감춤과 드러냄의 완급조절은 소설의 묘미를 살려준다. 작가는 필라의 입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에 대해 ‘유일하게 자기 외부를 볼 줄 아는 인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폴 오스터는 작품 속 모든 인물에게 초점화자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각자의 연민과 이해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선셋 파크>는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소설은 상처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일스가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삶에서 상처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인물들은 그 상처를 치유해가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해간다. 소설은 현실의 상황이 개선되는 모습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 얼마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인물의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와 함께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오히려 그것은 삶을 작위적으로 바라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긍정적인 개진은 ‘선셋 파크’의 몰락과 함께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소설 후반 마일스와 경찰의 대치는 초반의 보비와의 사건처럼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마일스와 과거의 마일스는 같지 않기 때문에, 그 상황이 초래하는 결과는 아마도 같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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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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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의 첫번째 작품으로 알려진 <달려라, 토끼>는 일탈에 관한 이야기다. 왕년에 잘 나가는 농구 선수이다가 지금 별볼일 없는 세일즈맨으로 전락해버린 한 20대 남자 '래빗 앵스트롬'의 일탈과 돌아옴의 과정을 유려한 문체로 묘사한다. 래빗의 방황과 일탈 과정은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색을 띄고 있어 그 근원에 대한 탐색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래빗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내면 불안의 근원에 대해 추적하기를 시도한다.

 

래빗 앵스트롬의 돌연한 일탈은 아내 재니스와의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에서 촉발된다. 상대방에 대한 어떤 성실성도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핀트 어긋난 부부의 대화는 쇠가 긁히는 소리처럼 불안하고 신경증적이다. 만삭의 몸으로 술에 취해 담배를 찾고 티비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아내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가출한다는 이야기는 쌍방의 무책임을 문제삼는 통속적이고 흔한 것으로, 부부의 불화를 이야기할 때 숱하게 반복되어왔던 화제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불성실한 부부관계를 드러내면서도 한 인물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도 한 시대의 풍속과 세태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래빗이라는 인물의 행동반경을 꾸준히 추적할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그의 삶의 궤적에서 잘못 끼워맞춰진 퍼즐 한 조각의 정체를 탐색해가는 데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래빗 앵스트롬이 재니스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국도를 찾아 무작정 '달리게'한 그것에 대해서는 추잡한 법정공방에서나 발견되는 책임소재가 명확한 사건들과 구별되어진다. 그것은 보잘것 없는 현재 지위에 대한 자괴감이거나 경제적인 박탈감이어도 상관없지만 원인의 소재는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래빗의 내부에 있다. 래빗의 돌연한 일탈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즉흥적이지만 그에 비해 냉소적이고 방향성이 없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기 전에 어디에 갈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라는 시골철물점에서 만난 농부의 말은 래빗의 일탈 속 방향성 결여를 시사한다. 경찰이나 재판관이 아닌 영적 영역을 담당하는 목사가 부부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등장함으로써 이 근원모를 방황의 탐색이 용이해질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래빗이 어느날 갑자기 느낀 허무는 고독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시종 래빗은 재니스와의 소통에서 철저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 래빗이 찾는 옷장은 재니스가 몰두해 있는 텔레비전에 의해 막혀있고, 재니스가 찾는 담배는 래빗에게 버려진 직후이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래빗이 방황을 끝내고 일시적으로 제자리를 찾은 후에도 계속된다. 심지어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참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까지 이어진다. 서로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래빗의 자아는 재니스에 대한 충동적인 혐오를 끝내 털어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할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이 뚜렷한 소통의 단절은 결국 래빗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달릴 수밖에 없게한다.

 

현대인의 불안감은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래빗은 가출을 통해 재니스와의 관계회복 가능성을 철저히 회피한다. 그대신 그는  재니스에게서 받은 공허감을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다. 래빗은 토세로와 루스, 에클스, 스미스 부인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낸다. 그는 섹스에 몰두함으로써, 혹은 골프나 잔디깎기를 빙자한 대화에 열중함으로써 이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니스와의 관계에서 결핍된 것들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맺기는 본질을 회피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음을 소설은 숨김없이 보여준다.

 

래빗이 느끼는 불안과 강박의 원천은 공허한 관계에 있다. 관계에 대한 정의는 상호간에 공유할 수 있는 사물 혹은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때, 래빗과 재니스의 관계는 부부라는 법적 근거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래빗의 가출이 일탈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로 비춰지는 이유에는 일탈행위에 내재된 무책임보다 무엇인가를 공유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 혈육에 대한 애착이라든지 생활의 안정감 같은 것은 오직 일시적 만족만을 줄 뿐이다. 래빗은 여전히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 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존 업다이크는 래빗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이 가지는 실존 불안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탐색해냈을 뿐 아니라 그 회복 가능성을 주인공의 실패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달려라, 토끼>는 통속적일지언정 심오한 무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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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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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적이고 풍자와 상징으로 가득 찬 가독성 높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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