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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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의미를 포착해 내는 시선이 놀랍다. 같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시선의 깊이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김연수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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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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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다. 이 책은 나를 히말라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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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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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득이는 시선과 명문이 쏟아지는 보석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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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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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사는 대개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과 그 결과의 명쾌함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다. 곳곳에 뿌려진 복선들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일정하게 수렴되는 과정에서 예측이 맞아들어가거나 예측이 뒤바뀌는 지점이 전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미스터리 서사를 읽는 것은 결국 막판의 명쾌함을 위해 초반의 혼동을 견디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최제훈의 미스터리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 공식을 완벽하게 역행한다. 이 소설은 읽을수록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가기는 커녕 혼돈이 가중된다.

 

소설은 '여섯 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인 '여섯번째 꿈'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의문의 연쇄 살인이라는 흔한 미스터리물의 소재를 들고 온 것도,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서스펜스가 가중되는 것도, 범인이 예상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도 특별할 것 없는 미스터리의 공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일견 밀실공포의 클리셰로 여겨지는 이 첫번째 이야기는 그러나 다음 이야기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소설 전체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소설 '복수의 공식'은 첫번째 소설을 보완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소설에서 이야기되었던 인물들의 관계 및 사건의 설정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이 이야기는 복수라는 형태로 행해지는 살인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지를 일련의 인물들이 겪는 우연한 사건들의 연쇄를 통해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이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음 사건의 동기가 되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이야기는 일종의 나비 효과 이론의 소설적 실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첫 번째 소설에서 이야기된 사건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소설 'π'에서는 첫 번째 소설이 통째로 안 이야기로 삽입된다. '여섯 번째 꿈'의 한 인물인 것만 같은 주인공이 번역하고 있는 텍스트와 그의 동거녀에 의해 말해지는 이야기가 내화로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번역되는 이야기는 첫 번째 소설을 그대로 가지고 왔고, 말해지는 이야기는 두 번째 소설의 한 장면을 변주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지만, 그 반복은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의 세계를 일시에 무너뜨린다. 외화와 내화의 경계, 진실과 거짓,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 몽환의 공간 속에서 같은 이야기만 꾸준히 반복될 뿐이다.

 

마지막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도 복합적인 사건이 교차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 같지만 앞에서 이야기되었던 인물이나 모티프들이 또한 반복되며 하나의 이야기 구조에 안착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작품 속에 다시 한번 등장하는 텍스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한 독자의 상상에 의해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소설 속 텍스트이기도 하고 이 소설 자체이기도 한 '완벽한 미스터리'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본질을 밝힌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모여진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한 사건의 무수한 변주는 진실을 탐색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반복되는 인물들의 관계는 조금씩 다르고 중첩되는 사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도입에서 서술된 '이야기가 매번 변하고 있'다는 진술은 마지막에 와서 '거짓말을 하는 건 창조적인 과정'이라는 형사의 말로 수렴되며 네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서가 된다. 즉 하나의 이야기이되 같은 이야기가 아닌 네 편의 소설은 이야기 자체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메타픽션의 성격을 갖게된다.

 

하나의 진실과 그것이 이야기되는 무수한 텍스트들이 난무하는 소설 속에서 팩트(fact)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팩트는 말과 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러 이야기들이 변주되는 동안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무너지고 세계는 객관성을 잃게된다. 이 한 편의 미스터리가 밝혀내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이야기의 속성이다. 다시 말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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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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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한 글을 읽기는 어렵다. 제재에 관한 배경지식을 필자와 공유하지 못하므로 자칫 뜬구름 잡는 독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위 평론이라는 장르는 한 텍스트의 완독에 따르는 이차적 독서물로서의 기능에 안주하는 것이 태생적 한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은 엄연한 문학이다. 비록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일차적 텍스트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몰락의 에티카>에서 그러한 평론의 힘을 증명해 낸 신형철의 두 번째 책 <느낌의 공동체>는 산문집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많은 부분 문학 작품들에서 제재를 취하고 있어 평론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섰다.

 

'느낌'은 공유하기 어렵다는데 그것을 목표를 노를 젓는 저자의 노력은 찬란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이 산문집에는 다양한 매체의 지면에 실렸던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실려있다. 평론 같기도 하고 칼럼같기도 한, 딱히 장르적 문법에 의존하지 않은 자유로운 글들의 모음이다. 그 제재는 시와 시인, 소설과 영화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사회에서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제재들에서 얻는 필자의 '느낌'은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사유'의 틀을 거치며 뚜렷한 육체를 갖게된다. 신변잡기에 관한 글이 아님에도 강력하게 독자와 소통하는 힘은 감각을 사유로 전환하는 저자의 섬세한 필력에 있다 하겠다.

 

문학과 사회에 대한 찰나적인 시선이 명징한 현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일종의 쾌감을 준다. 글 읽는 재미가 가득 느껴지는 책이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품보다는 문학이나 사회의 역할에 주목한다. 저자는 시의 미학적 보수성에 대해 경계하며 번득이는 시심(詩心)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는다. 때로는 외국어에 점령된 빈약한 수사를 개탄하기도 하고 은유의 위험한 사용을 경계하기도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산문들이지만 취향에의 강요가 아닌 논리적 수긍을 바탕으로 하는 명쾌한 설득이다. 그렇다고 골치아픈 문장으로 독자를 향한 지적 도전을 감행하지도 않는다. 

 

소개되는 작품들의 구절도, 소개하는 사람의 절묘한 시선도 하나하나 주옥같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미문을 쏟아진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낸 글이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글이 있다. 신형철의 산문은 둘 다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다루는 제재에 대한 스키마 없이도 소통할 수 있다. 저자는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위트있게 문학과 세상을 이야기한다.

 

문학은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한 예술이기 때문에 오감의 활약만으로 온전하게 감상할 수 없다.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언어상징은 사유를 거쳐 비로소 인식된다. 따라서 문학은 사유의 힘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신형철의 글은 '사유'다. 자신의 사유를 강요하지 않고 독자를 사유로 이끈다. 그는 이 책에서 정흥수의 평론집 <소설의 고독>을 두고 '문학이 된 평론'이라고 했다. <느낌의 공동체>도 가히 문학이 된 평론, 아니 시가 된 산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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