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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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이 <대불호텔의 유령>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떠오른 것은 전주 C호텔이었다.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에는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팀이 있었다. 레이더스는 홈경기 대부분을 전주에서 치렀는데, 이곳을 방문한 상대팀들은 C호텔에 머물렀다. 그런데 선수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C호텔에서 귀신을 봤다는 거였다. 한두명이 아니었다. 요즘세상에 말이 되냐고 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소문 때문에 숙소를 옮길 수도 없었다. C호텔은 전주 유일의 4성급 시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귀신의 도움 덕분인지 쌍방울은 1996-97 홈경기 17연승을 거두기도 한다. 어떤 팀은 대전에 머물며 전주로 경기를 하러 오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쌍방울그룹이 문을 닫으면서 전주에서는 이상 프로야구를 하지 않는다. 전주역에서 롯데백화점 가는 오른쪽에 있는 전주종합운동장 외벽에는 지금도 현대 걸리버라는 90년대 이동통신 광고판이 쌍방울 레이더스의 되는 유산으로 붙어있다. C호텔도 2011 문을 닫았다. 소문에 따르면 건물에서 자살한 사람들이 귀신이 거라고 하는데 당연히 확인할 방법이 없이 도시전설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작가의 고향이 전주이기 때문이다. 강화길은 <대불호텔의 유령> 프롤로그에서 전작인 <니꼴라 유치원>등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안진시가 전주를 모델로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적었다. 실제로 <호수-다른사람>에서 작가가 사용한 천변이라는 표현은 전주사람들이 시내를 흐르는 전주천을 일컫는 독특한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학교는 봄이면 벚꽃이 유명한 여러가지가 전주에 있는 곳을 연상하게 한다. 강화길은 자신이 다른 곳에도 오래 살았으며 따라서 안진은 전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답을 주었다.  우문현답인가? 아무튼 강화길 유니버스에 한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빠져나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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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크게 3부로 되어있다.  작가인 엄마의 친구(보애) 함께 만난 자리에서 듣게 이야기를 추적해 나가는 1. 보애의 엄마인 박지운의 회고담이 2부다. 3부에서는 이야기를 재구성해 추리하는 과정이 나온다. 작품은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라는 액자안에 대불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작은 액자로 들어가 있다고 정리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야기를 들려준 박지운은 나이가 많아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심지어 내용이 매번 달라지기 일쑤다. 가족들도 믿지 않는다. 게다가 라쇼몽(羅生門)처럼 주변 사람들은 약간씩 다른 증언을 한다. 끝까지 읽다 보면 스스로에게 묻게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진실인가? 어디 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가? 아니 애초에 진실이 있기는 건가?


2부를 기준으로 작품은 한국전쟁직후 인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개화기 조선의 관문 인천에 도착한 손님들을 위해 지은 곳이 다이부츠 (大佛)호텔이었다. 인천과 서울을 철도로 연결하면서 사람들은 굳이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을 필요가 없어졌고, 호텔은 손님이 줄어 해방과 625 지나며 중국음식점 (중화루)으로 변한 뒤였다. 고연주는 미국이민이 지상목표인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다. 이민을 위해서는 미국인의 신원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믿고 있다. 연주는 비어 있던 중화루 3층을 호텔로 만들어 혼자 운영하고 있다. 연주를 노린 남자들이 많았으나 모두 실패하였고 일부는 계단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강간을 모의-시도한 자들 대신 피해자가 귀신들린 , 팔자 드센 등의 저주를 듣고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2부의 중심인물인 연주의 친구 지영현은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당숙모 댁에 얹혀 살다가 독립해 연주가 있는 중화루 3층에서 일을 도우며 함께 산다. 중화루의 직원인 화교 뢰이한은 박지운을 좋아하지만 난봉꾼의 사생아라는 신분에다 역시 평판이 좋지 않았던 터라 교제를 허락받지 못한다. 밖에 역시 화교인 중화루 주인 차오 등이 주요인물이다.


작품은 중반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물살을 타게 된다. 인천항에 외국인 부부가 도착해 대불호텔에 투숙하게 되는 것이다. 1955 대한민국에 이방인이 나타나는 흔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 남편은 작가인 아내의 창작을 독려하기 위해 대불호텔에 한달간 머물며 글을 쓰게 했고, 아내는 다름아닌 셜리 잭슨(Shirley Hardie Jackson, 1916 – 1965) 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 The Lottery만을 유일하게 읽었는데, 베스트 셀러인 <헝거게임> 시리즈가 등장했을 너무 비슷한 아니냐 혼자 분개했던 적이 있다. 잭슨은 20세기 -중반 맹활약한 작가로 대학교수인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창작활동을 해야 했다. (작품의 장르나 스타일은 딴판이지만 여러모로 박완서 선생과 비교할 만하다.) 자녀들의 회고에 따르면 잭슨은 글쓰기에 몰두하면서도 끼니마다 정시에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잭슨은 연주, 영현과 함께 지내며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어디서 듯한 장면이다 싶었는데 강화길이 2012 발표한 단편 <벌레들> 나오는 예연-희진-수지의 관계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떠오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인 <Finger Smith> 사라 워터스에게도 셜리 잭슨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강화길은 작품을 시공을 초월해 위대한 선배 여성작가들에게 바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잭슨 외에 에밀리 브론테와 그의 작품 <폭풍의 언덕>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조금 맥락이 없긴 하지만 2017 장편 <다른 사람>에서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사용했던 것처럼 강화길은 19세기의 브론테 자매와 20세기의 잭슨을 작품에 불러들여 자신의 방식으로 헌사를 적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어려웠던 시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연주는 어린시절 미국이민의 기회를 잡기 위해 영어도 열심히 배우고 선교사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 다른 친구에게 빼앗긴다. 영현이 고아가 되자 당숙모 댁에서 거둬 주긴 했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나가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잭슨은 몸과 마음이 아프다.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남편은 아내를 가둬 놓고 작품을 생산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잭슨이 동양의 자매들 (‘장화, 홍련 뜻함)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 작품에서 다시 확인해보니 그런 내용이 없었다고 나오긴 하지만) 강화길의 상상력이 빛나는 부분이라 하겠다. 나는 어렸을 <전설의 고향> 같은 납량 특집물에 나오는 여자귀신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귀신이 여성의 혼백이 나타나 뭔가를 호소하려고 하면 (주로 남자들이) 기절하거나 죽는 내용은 한국문학에서도 김영하의 초기작 <아랑은 >등에 나타난다. 귀신들은 크레인에 올라가 자기 주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과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책에 나온 여성인물 비중이 크지 않지만 중요한 명에 대해 이야기를 볼까 한다. 영현을 데려다 키운 당숙모는 강화길의 단편 <음복 飮福> 나오는 고모를 연상하게 한다. 겉으로 보면 선량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당숙모와 영현은 서로 약점을 하나씩 잡고 있다. 영현의 학교 친구로 나오는 종숙은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다. 일제강점기 학교 교실에서 영현이 일본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자 선생님은 종숙이 영현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쳐 것을 부탁한다. 당숙모와 종숙의 존재는 영현의 캐릭터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2장까지 읽었던 내용이 3장에서 갑자기 뒤집히는 혼란이 오기는 하지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고향의 의미다. 한국사람 연주의 목표는 오직 하나, 미국 이민이다. 어차피 그에겐 가족도 없다. 하긴 행복지수 1위의 나라라는 부탄의 젊은이들도 나라를 떠나지 못해 안달이니까 (영화 교실안의 야크’). 반면 중화루 주인 차오는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혼자 돌아왔다. 이유는 한국에서 요릿집의 명맥을 잇겠다는 거였지만 그의 속내는 고향 인천이 그리워서다. “. 호떡은 미국에서도 만들 있죠. 하지만 제가 그리워했던 , 인천 부둣가를 걸으며 후후 불어 먹던 바로 호떡이었어요.” (p.278) 내가 뽑은 책의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다. 화교로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한국을 그리워하는 차오를 누가 알아주기는 하나? 당연히 아니다. 책에는 중화루 건물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며 되놈 물러가라 외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영현과 종숙의 학교 선생님도 특이하다. 그녀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람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한국인가 일본인가? 결국 해방 일본으로 돌아가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을 그리워하다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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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간 안진시에 주로 머물고 있던 강화길 유니버스가 인천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화길은 익숙한 홈경기 대신 원정경기에 나선 셈이다. 스포츠에서 어웨이 경기는 여러모로 어렵다. 장거리 이동, 익숙하지 않은 경기장 상황, 불편한 잠자리, 음식 등에 적응해야 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지킬 없다.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어 대고 심판판정도 불리할 있다. 아주 드물게는 숙소에서 귀신을 수도 있다. 1990년대 전주를 방문했던 팀들처럼.


작품에 기대나 광고만큼 등골이 오싹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은 별로 없다. 웹툰이나 괴담류에 익숙한 독자들이 보면 시시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짜임새나 등장 인물 간의 유기적 관계 역시 전작 <다른 사람> 비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무섭기로만 따져도 <다른 사람>에서 목을 조르는 장면이 훨씬 끔찍하다. 작가의 전작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다소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강화길의 <대불호텔의 유령> 여러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우선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그동안 지켜왔던 여성서사 중심의 구조에 고딕, 호러, 스릴러 여러 장르를 종합해 여름시즌에 맞춰 출간한 듯하다. 대불호텔과 중화루 모두 실제 존재했던 건물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버무려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소설의 매력이 아니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신 이야기가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에 공감하는 이유는 어느 시대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이다. 여자라서, 마녀니까, 노예라서, 외국인이어서 등의 이유로 비명횡사한 목숨들이 죽어서라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너무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은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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