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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아이들은 어디서나 자라납니다. “제국의 어린이들”/도서제공 을유문화사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재조 일본인들은 나이 많은 조선인 가정부를 오모니라고 하고, 나이 어린 조선인 가정부는 조선이‘계집애’를 써서 키치베라고 불렀다.”
남동생이 병이 나자 글자를 쓸 수 없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썼던 조선인 소년, 동생이 아프면 의사를 부를 수 있었던 재조 일본인 소년. 대비되는 환경은 그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적고 있는 어린이들의 수필에서도 드러납니다. 단순히 예쁜 글을 모아둔 수필집이 아니라 제대로 주석과 자료가 실린 일제강점기의 아카이빙에 가깝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조선 반도에 바람이 쌩쌩 불지 않고 퓨퓨 불던 시대, 기관총을 빵야빵야 쏘지 않고 파치파치 쏘던 시대, 비행기가 윙윙 날지 않고 부부 날던 시대를 살아가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있다.”
어린이들의 글을 주제별로 나누어 수록하고 일제강점기의 아동문화에 대한 인사이트도 담았습니다. 방정환의 “어린이”가 11년간 발간되었고 조선, 일본, 만주 등지에 10만 독자를 보유한 인기잡지로 성장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도 남겨두었습니다.
“방 선생님, 참말로 눈물이 흐릅니다. 인쇄하는 것도 못 보시고 잡혀가신 방 선생님, 그래도 인쇄는 되어서 저희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언제쯤 우리도 자유롭게 될는지요.”
그러므로 이 책에서 주로 담고 있는 것은 저항정신이나 민족주의, 전쟁을 제외한, 일제강점기에 식민당국이 필요로 탈정치화의 필터로 걸러내어 출간을 허락한, 어린이들이 보는 삶과 세상을 담은 글입니다.
“일본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전쟁이라는 국가의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고, 검열을 마친 조선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민족해방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다.”
어린이수필이라는 특성 때문에 주제별로 나누어 실려있는 수필의 분량은 전체적으로 짧은 편이고 주제별로 앞에 붙은 해설과 연구내용이 어린이들의 글보다 깁니다. 왜 살던 곳에서 사는 조선인들이 농사지을 땅을 잃게 되었는가, 싼 가격에 쌀을 강탈해가던 내용까지 읽게 되면 천진하게 삶을 이야기하는 일본 아이들의 글을 읽기가 힘들어집니다. 가축을 길러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힘쓰는 조선인 아이들과 반려동물인 고양이 이야기를 쓰는 일본인 아이들의 차이 같은 것들이죠.
전쟁을 두려워하는 조선인 아이들과 전쟁놀이에서도 간부를 연기하는 일본인 아이들이 난징대학살을 놀이로 삼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조선총독부의 교육 때문에 ‘부디 천황 폐하를 위해 열심히 싸워 주세요.’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는 조선인 소녀의 글에 참혹함을 느끼게 됩니다. 조선인 어린이들의 글에서 조선인이 사라지고 황국신민이 되고자 하는 의지만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온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가슴 어딘가 꽉 막힌 듯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물론 이제 우리는 그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실체가 무엇인지 잘 안다. 바로 ‘경계’다.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그어졌던 경계.”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책의 존재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록으로서의 책으로서 훌륭한 책이었다고 적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