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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 이성적인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믿게 되는 이유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1969년 최초로 인간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한때 이 사실이 조작이라는 음모론에 빠졌었다. 별이 안 보인다든지, 닐 암스트롱 발자국이 너무 선명하다든지, 그림자, 펄럭이는 성조기 등 거짓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과학적 증거들이 차고 넘쳐 더더욱 음모론을 확신했다.
"설마, 이따위 소문을 믿는다고?"라고 생각할 만한 음모론, 앞서 이야기했던 달 착륙 조작을 비롯해 '지구는 평평하다', '코로나19가 생물무기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극', '로마 황제 네로 생존설', '엘리자베스가 남자라는 소문' 등 가짜 뉴스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돌아다닌다.
왜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것일까?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교수는 이 질문의 답을 자신의 경험담을 시작으로 찾아 나선다.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댄 애리얼리는 빌 게이츠와 공모해 인구를 줄이려는 사악한 계획을 꾸미는 인물이 돼버린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여성을 불임으로 만든다는 음모론이다. 해명하고 설득했지만 그 노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잘못된 믿음(오신념)misbelief'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잘못된 믿음은 왜곡된 렌즈이다. 잘못된 믿음에 빠진 사람들은 이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하고 또 그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잘못된 믿음은 일종의 과정이기도 한데 사람들을 점점 더 깊이 끌어당기는 깔때기와 같다. (p. 29)'
그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저 사람들 진짜 미친 거 아냐?"라고 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성향은 인간 모두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내가 달 착륙 조작설을 믿었듯이 나도 '미스빌리프'라는 왜곡된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한번 가진 잘못된 믿음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 믿음들끼리 만나서 동맹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그(박근혜 탄핵) 때 나 욕 많이 먹었어. 그런데 1년 후에는... 무소속 가도 다 찍어주더라. 너 봐라 내가 계속 무소속 가도 살아온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에 참석하지 않아 지역주민으로부터 욕먹는 한 국회의원의 걱정에 선배 국회의원이 해준 말이다. 이런 망발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선택한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알더라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12월 3일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진입했다. 왜 그랬을까. 친위 쿠데타와 논리적 맥락을 전혀 찾을 수 없어 궁금증이 더했다.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따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극우 유튜버의 '미스빌리프'에 대통령 부부가 빠졌다는 소문이다. 사실이라면 '잘못된 믿음'이 비상계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이 책 <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는 음모론자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댄 애리얼리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에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는 여정에서 심리적 구성 요소를 조명한다. 잘못된 믿음에 빠지게 되는 다양한 과정과 이유도 소개한다. 그리고 잘못된 방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여러 사례에 대한 팁도 제시한다.
나이가 들수록 상대방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갖게 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이다. 이번에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이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본인이 모든 걸 다 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쉽게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런 사람에게 지적 겸손을 실천하라고 댄 애리얼리가 팁을 준다.
'예를 들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고 싶다", "내가 아는 한에는" 등과 같은 표현을 구사하라. (p. 311, 유용한 팁)'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확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나를 상대로 논쟁해 보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고 '미친놈이네'라고 경멸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댄 애리얼리도 결국 자신을 음모론을 계획한 주요 인물로 만들어 악마화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공감할 수 있었다. 이해와 공감만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유용하고 희망을 주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