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떡볶이 -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무튼 시리즈 25
요조 (Yozoh) 지음 / 위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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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떡볶이를 좋아하는 편인가?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엄마와 자신이 만든 음식 다음으로 떡볶이를 많이 먹었고 그래서 떡볶이를 너무 과잉 섭취한 것 같다는 떡볶이 사랑 탑 티어 급의 요조 작가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가족 가운데 나를 뺀 나머지 셋은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요조 작가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언제라도 나만의 비법으로 만들 수 있는, 소위 먹거리 레퍼토리 가운데 떡볶이 사촌쯤 되는 라볶이가 자리 잡은 것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가족에 대한 나의 끝없는 사랑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ㅋ 내 라볶이의 특징은 단, 짠, 맵 모두 잡았다는 것이다. 먹을 때마다 '오우 맛있어~'를 과도하게 남발하는 아내와 두 아이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 이를 때 없다. (그러는 속내가 따로 있지만 서로를 위해 모른 척한다.)


'아무튼'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를 고른 까닭이 있다. 3년 전 가을, 강원도 영월을 홍보하는 요조 작가의 <가끔은 영원을 묻고>라는 생활 에세이를 읽었다. 영월에서 가을 살기 하며 벌어진 에피소드를 담았는데 그때 요조의 글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름다운 표현에 적당히 유머가 곁들여진 힐링이 저절로 되는 글이었다.

'떡볶이가 등장했다. 떡의 모양새와 빛깔, 떡 위에 점점이 보이는 고춧가루 알갱이들, 서걱서걱 소리의 주인공인 파와 양파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p. 51)'

이번엔 떡볶이를 가지고도 그런 글을 쓰는 요조 작가를 만났다. 착하고, 슬프고, 웃음 짓게 만드는 떡볶이 이야기.

'제주에 처음 홀로 와서 먹은 음식은 물론 떡볶이였다. 모닥치기가 시작이었다. '모닥치기'는 '여러 개를 한 접시에 모아서 준다'는 뜻을 가진 제주어라고 하는데 얼핏 들으면 무슨 운동 기술처럼 들리고 이 기술에 제대로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뭔가 결정적 한 방 같은 느낌이 든다. (p. 75)'


며칠 전 MBC <놀면 뭐하니>에서 너무 어려운 지경에 처한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프로젝트로 이대 앞 즉석 불고기 떡볶이 맛집 '산타비'를 찾아가 돈쭐 내기 작전을 했다. 그날 15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데, 3개월간 밀린 전기 요금 등을 낼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 적시는 사장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마침 이대 나온 딸아이가 들어와 산타비를 아냐고 물었더니 잘 알고 여러 번 갔고 항상 붐비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하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번 비건 음식점을 힘들게 검색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도, 그곳의 메뉴판에 고기가 들어간 메뉴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사이좋게 많았으면 좋겠다. 고기가 아니어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더 쉽게 가능해졌으면 한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지구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p. 100)'

요조 작가는 이대 앞 전골떡볶이 맛집 '덕미가'에서 비건 메뉴를 먹으며 베지테리언이 된 소회를 풀어놓았다. 글을 쓸 당시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딸아이에게 이곳도 아는지 물어보았다. 잘 아는 곳이라며 이곳 역시 붐비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잘 되나?' 걱정 섞인 말을 이었다.

'떡볶이라는 주제를 벗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것을 좋아하며 '기준'이 생긴 사람들은 그것에 반하는 영역을 거리낌 없이 거부했다. 멋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보여주는 딱 부러진 호와 불호의 오만함, 그 자체가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 나도 그렇게 떡볶이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오만이 없었다. (pp. 143, 144)'

떡볶이에도 갈라치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꼬집으며 요조 작가는 그것을 오만으로 해석했다. 요조의 해석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만큼 오만으로 가득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여자와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우리는 항상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행은 편가르기의 결과다.


요조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요조의 글을 닮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의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어떤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음~ 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곳, 테마파크에 관한 에세이? ㅋ <아무튼, 테마파크>...

p.s.
상대방 기분을 최고로 더럽게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끝낸 에피소드를 <아무튼, 연애>를 쓰게 된다면 공개한다고 했는데... 아직인가요? 요조 작가님? ㅎ <아무튼, 테마파크> 나오기 전에 <아무튼, 연애> 읽을 수 있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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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주차장 찾기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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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 여행을 앞두고 고민거리가 생겼다. 인천공항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차로 이동할 것인지. 차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지만 늘 주차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설 주차대행에 비해 공항 주차장 주차비가 덜 들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여객터미널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주차비보다 공항버스 값이 더 든다는 딸아이 주장이 비교하고 고민하는 나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차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5일간 주차비로 생돈 나가는 것 같아 찜찜했다. 무료주차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끝까지 미련이 남아 투덜거렸다.


발문을 쓴 소설가 김화진이 소설에 '고전미'가 있다고 평하는 작가 오한기의 <무료 주차장 찾기>는 연작 소설집으로 세 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세 소설의 주인공 모두 소설가인 오한기 자신인듯싶다. 읽다 보면 에세이인가 싶지만 (실제로 육아 에세이를 써 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이 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오한기 작가가 만든 캐릭터('작가의 말'에서 밝힘) 임을 감안하면 소설이 맞다.

표제작 <무료 주차장 찾기>에서 주인공인 '나'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일곱 살짜리 딸 주동의 육아를 담당하는 작가다. 어느 날 주동의 유치원 홈페이지에 기사가 버스를 몰고 사라져 등하원을 보호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공지가 떴다.

'무료 주차장을 찾으러 갑니다.
보도기사로 접한 사실인데, 기사는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p. 31)'

이 사건으로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시간이 생겨나 주인공 '나'의 워라밸이 깨져버렸다. 유치원 버스 기사가 사라진 이유는 원장의 갑질이었다. 주택가에 유치원이 있어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은데, 정직원을 시켜준다는 구실로 주차비용을 기사에게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숲 체험> 주인공의 직업은 소설가를 포함해 여섯 개나 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쏟는 건 딸 육아다. 딸 주동은 울다가도 울음을 그칠 만큼 올림픽 공원 '숲 체험'을 좋아한다. 비극은 올림픽 공원 주차장이 늘 꽉 찼다는 데서 시작된다. 딸아이 '숲 체험'만큼은 포기 못한다. 올림픽 공원에 갈 때마다 주인공의 머릿속에 늘 '무료 주차'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반품 알바>의 주인공 소설가 '나'는 아내가 정리해고당해 경제적으로 위험으로 처한다. 이때 도마뱀 구매대행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선배가 제법 돈벌이가 되는 알바를 제안한다. 반품된 도마뱀을 회수하는 일인데 회수한 도마뱀을 되팔던지 보관하던지 알아서 처리해 주는 조건이 붙었다. 금방 되팔 수 있을 줄 알았던 도마뱀은 정식 사업자가 아니라 불가능했고, 가뜩이나 수명이 긴 도마뱀은 점점 늘어나 처치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도 어딘가 갈 일이 생기면 무료 주차가 가능한지부터 알아본다. 주차비는 왜 이리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주차장이 없거나 있어도 주차비를 물어야 한다면, 차도 막히고 길에다 시간을 버릴 수 없다는 핑계를 억지로 갖다 대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맘먹는다. 그럴 때마다 쥐뿔 돈도 많이 못 버는 딸아이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마디 한다.
"아빠~ 그럼 차는 언제 쓸 거야."

세 편의 연작 소설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이 어쩌면 '깔끔하게 구획된 하얀 선 내부의 보장된 공간을 갈망 (p. 61, <무료 주차장 찾기>)'하는 건 아닐까? 그 공간을 마련하려고 대여섯 개의 알바도 마다하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인 소설가 '나'처럼 말이다.

전세나 사글세 집에 살면 마치 누군가 내가 전화해 내 구역에 왜 차를 대 놨냐는 투로 '차 빼주세요'라고 말할 것 같아 불안하다.

'이보세요, 오한기 씨! 답답하게 도덕책 같은 소리 늘어놓고 있네. 무료 주차는 우리 권리라고요!
조나가 말을 끊었다. 나도 물론 조나가 제시한 명제 자체에는 동의하는 바지만... (p. 57, <무료 주차장 찾기>)

무료 주차가 권리라고 외쳐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주차 공간이 모자란다. 돈을 더 내고 주차공간을 서너 칸씩 차지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에 더 모자란다. 그래서 주차공간을 차지하려고 저녁이 되기 전에 귀가를 서두른다.

그렇다고 언제나 주차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인생으로 다시 살 수 있을까? 주차 공간도 없는 인생을 택배로 받았으니, '이건 아니지'라는 변심을 이유로 반품이 되는가 말이다. 또 반품한다면 어디에 반품해야 하나. 더 비극은 반품된다손 치더라고 반품된 도마뱀처럼 처치 곤란한 인생이 돼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동을 미술학원에 들여보내고 나면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강일동 스타벅스에서 한 시간 작업하고 차를 몰아 고덕역 이마트로 향한다. 이게 전부 다 주차비 때문이다. 공연히 드넓은 이마트를 떠돌다 보면 몇 푼 아끼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타도 오고. 그러고 보니 나에게 육아란 곧 '무료 주차장 찾기'일 수도 있겠구나. 무료 주차장이 무얼 상징하는지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듯. (p. 154, 작가의 말)'

딸이 한 말이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몰고 백화점으로 가 주차한다. 엥? 내가 쓴 돈만큼만 주차시간이 무료다. 이만큼 샀으면 한 시간을 주차할 수 있으려나? 아니 두 시간? 두근두근...
'에라이~ 무료주차 공간이나 찾아다니는 내 인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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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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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리에이터 댄 존스와 채색 전문가이자 디지털 컬러리스트 마리나 아마랄의 <선명한 세계사 1, 2>는 '빛바랜 세계에 제 빛을 찾아주려는 시도이자 컬러로 보는 역사다. (p. 10 서문)' 1850년부터 1960년까지 촬영된 1만 장의 흑백사진 가운데 200장을 골라 디지털 작업으로 색을 복원해 이 책에 실었다. 2년에 걸친 협업이 필요했다고 한다. 흑백사진에 색이 더해져 세계가 더 생생하고 선명하고 리얼해졌다.


전쟁과 혁명의 1910년대 대표사진은 1916년 11월 프랑스 북부 솜강 근처 참호에서 부패해 뼈가 드러난 독일 병사의 시신을 담은 사진이다. 900만 명 이상의 병사가 죽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다. 서부전선 솜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 최대 살육이 일어난 전투였다. 사진 속 독일 병사는 그 전투에서 죽은 100만 명 가운데 한 명이다.

'서양에서 1920년대는 혁명적이고 상징적인 시대였다. 그 시대는 광란의 20년대, 황금의 20년대, 열광의 20년대 등 다양하게 알려졌다. (p. 63)'
1920년대를 대표하는 사진 속 인물,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겪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재즈의 퇴폐적인 불협화음은 복잡한 1920년대 사회 그 자체를 반영한다.

'플로렌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공허한 시선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딸 캐서린과 노마의 뚜렷한 절망과 짝을 이루어 1930년대에 미국과 전 세계에서 보통 사람들이 직면한 최악의 공포를 포착한 듯했다. (p. 110)'
플로렌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이며 네 남자에게서 낳은 열 명의 자식을 키웠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려며 일을 찾아 떠도는 삶을 살아야 했다. 플로렌스 오언스는 전쟁으로 가는 길목의 시대인 1930년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파괴와 구원의 시대, 1940년대를 대표하는 사진은 기관단총을 든 처칠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5000만 명 넘게 죽었고, 전쟁으로 형성된 정치와 문화적 태도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50년대는 변화의 시대다. 전쟁으로 왕족이 통치하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은 당연히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일 수밖에 없다. 제국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세계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소비주의의 호황이 나타났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이 번창하면서 매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이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세계에 색을 되찾아주었다. (P. 195)'


흑백의 과거를 지금 우리가 세상을 보듯 컬러풀하게 볼 수 있는 역사책이다. 사진에 색을 입히려면 모든 자료를 동원한 세세한 검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댄 존스와 마리나 아마랄의 수고 덕분에 컬러풀한 역사책이 내 손에 들려져 있다.

한 장 한 장의 컬러 복원된 사진이 희미한 역사를 선명하게 해준다. 이제 그 선명함이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을 좀 더 제대로 배우게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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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1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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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때 계엄군이 가지고 있던 케이블타이 용도에 대해 말이 많았다. 당시 707특임단장은 문 봉쇄용이라고 증언했지만, <뉴스토마토>기자를 케이블타이로 묶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계엄군이 순식간에 다가와 덮치는 바람에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다가 영상을 보니 다리를 걷어차이고 벽으로 밀쳐지는 등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기억났다고 기자가 말했다.

영상과 마찬가지로 한 장의 사진도 우리의 희미한 기억을 선명하게 그리고 텍스트로 써 놓은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만들어준다.


<선명한 세계사 1, 2>는 '빛바랜 세계에 제 빛을 찾아주려는 시도이자 컬러로 보는 역사다. (p. 10 서문)' 1850년부터 1960년까지 촬영된 1만 장의 흑백사진 가운데 200장을 골라 디지털 작업으로 색을 복원해 이 책에 실었다. 2년에 걸친 협업이 필요했다고 한다. 흑백사진에 색이 더해져 세계가 더 생생하고 선명하고 리얼해졌다.


저자가 고른 1850년대 제국의 시대 대표 사진은 와인 운반용 수레를 개조해 암실과 침실을 갖춘 법률가 출신 사진사 로저 팬턴의 마차 사진이다. 이 시대는 영국을 비롯한 최강국들이 대양을 탐사하고 지배해 나가는 시대였다. 또한 기술력과 발견의 시대이기도 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했고 팬턴은 마차를 타고 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 이런 세계를 포착해 보존했다.

반란의 시대, 1860년대 대표사진은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를 암살하는데 실패한 암살자, 루이스 파월이 해군선 소거스호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남북전쟁, 총격으로 링컨과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 사망,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은 세계 곳곳의 중요한 봉기로 인해 요동쳤던 시대였다.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한 베아트리체 첸치로 분장한 메이 프린셉 사진이 혼란의 시대, 1870년대 대표사진이다. 이 사진이 1870년대와 잘 어울리는 건 근대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중세적 감수성을 지닌 사건들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이의 시대, 1880년대 대표사진은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은 아메리카원주민 헝크파파의 추장 시팅볼을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탐욕, 복수, 문화 말살이 이루어졌다. 반면 뉴욕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에펠탑, 고층 건물인 마천루가 건설되는 경이로운 건축의 시대이기도 했다.

세기의 황혼이라 칭하는 1890년대 대표사진은 <톰소요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한 마크 트웨인이다. 소설 <도금의 시대>에서 트웨인은 '급속한 기술 진보, 인구 증가, 산업적 부, 미국 재건이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실패라 할 만한 지나친 낙관주의와 부패와 만나 서로 충돌하는 시대로 역사적 순간을 규정했다. (P. 158)' 마크 트웨인은 그가 규정한 시대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1890년대를 여행했다.

새벽의 어둠, 1900년대는 관능적인 무용수이며 서커스 공연자이자 코르티잔이었던 마타 하리의 모습이 대표사진이다. 벨에포크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마타 하리의 인기도 스러져갔다. 태평양의 섬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폭력이 난무하고 군대가 충돌하면서 세계대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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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읽는다 - 한 권으로 깊이 읽는 한강 대표 작품
강경희 외 지음 / 애플씨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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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문학 평론가가 한강의 대표작 다섯 권을 해설하는 책 <한강을 읽는다>다. 학술 논문 형태가 아닌 대중적 글쓰기를 지향했다고 '들어가는 글'에서 밝혔지만 이들의 평론 역시 한강 작품만큼이나 내겐 어려웠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된 <채식주의자>를 평론가 김건형은 남편, 형부, 언니, 세 명의 영혜 주변 '정상인'들이 영혜를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어 오히려 그 시선이 이상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장치라고 소개한다.

최다영 평론가는 <희랍어 시간>을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세계가 침묵, 죽음으로 충만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하며 한강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은유적이고 시적인 작품으로도 소개한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이리도 참혹한 세계가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되뇌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비평가 성현아는 말한다.

한강 작가 가족사의 아픔을 바탕에 둔 작품 <흰>을, 평론가 허희는 시적 에세이라고 소개하며 얇지만 빽빽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사유의 밀도는 촘촘하기 때문이다. (p. 140)'

<소년이 온다>와 함께 국가 폭력을 다룬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문학 평론가 강경희는 '70여 년, 매일 악몽에 시달려도 결코 작별할 수 없었던, 아니, 작별하지 않겠다는 (p. 171)' 소설 속 화자이자 한강 작가 본인으로 여겨지는 경하, 그의 친구 인선, 인선의 어머니 정심, 이렇게 세 명의 여성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평론집은 좀 더 깊은 작품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한강 작품은 아름답지만 결코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난해함이 있어 한강이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메시지를 알아채는데 애를 먹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강이 직조한 큐브(플롯 plot)가 확연하고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지극히 의식적인 작법인데, 독자가 빠르고 쉽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갈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지연 방식이다.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정지와 복귀, 다시 읽기와 재현을 통해 독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겠다는 전략이다. (p. 182, 문학평론가 강경희)'

평론에 기대면 어느 정도 그 결을 찾아들어갈 수 있다. 작가가 배치한 장치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 그 기쁨이란, 또한 흐릿했던 시야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해지는 느낌도 갖게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이 3분마다 주삿바늘을 찌르는 장면이 나온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이 장면에서 내가 알아차려야 할 메시지는 뭘까? 잠잘 때조차 인선은 주삿바늘이 주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만약 포기한다면? 환지통에 시달릴 것이다. 제주 4.3을 안 이상 외면하려 해도 고통은 계속된다.

어차피 환지통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3분마다 느껴야 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래서 제주 4.3의 피가 내게도 흐르게 해 온몸으로 고통을 껴안을 수는 없느냐. 인선처럼 고통의 작업을 숭고한 예식으로 바꾸어 매년 애도하며 작별하지 않을 수 없겠는지. 한강의 물음이 들린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자격으로 지난해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세 가지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다. 이 물음은 작가로서 한강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으로 그 고민과 응답을 작품에 풀어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p. 156)'

첫 번째 두 번째 물음에 답은 우연치곤 기이하게도 지난해 12월 3일 밤에 벌어져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내란으로 똑똑히 확인해 가는 중이다. 세 번째 물음에 대해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p. 125)'라고 평론가 성현아는 전한다.

진한 아름다움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울수록 눈에 띈다. 전쟁 가운데 핀 아름다움이 더 아름답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역설이 진리가 되어 골고루 퍼져있다. 독재 국가 폭력에 맞서 흘린 피가 선명하고 그래서 그 피로 이룬 민주주의가 더 아름답다.

가정 폭력에 멍든 푸른색도 선명하다. 그 푸른 폭력의 상처는 보편적 정상의 심기를 건드려 혐오, 차별로 치부되던 사람들을 급기야 정상에 가까운 아름다운 곳에 데려다 놓았다. 세 번째 물음에 내가 찾은 답이다.


이 책이 다룬 다섯 작품 가운데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만 읽었다. <채식주의자>는 읽지 않았지만 내용을 어렴풋이 알고 <흰>, <희랍어 시간>은 어렵다는 것만 전해 들었다. 평론집으로 한강 작품을 읽은 것처럼 행세해 볼 요량이었다. 얄팍한 생각이 문제였다.

한강의 다섯 작품을 읽고 <한강을 읽는다>를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때는 한강의 작품에 스며있는 흔적 가운데 더 많은 흔적이 내 눈에 띄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한강 작품만큼은 그 세계에 깊이 빠져보고 싶다. 그만큼 깊으니깐.

'한강은 자신의 문법이 "신체의 사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감각의 세부를 사용하는 몸의 문장, "필명의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전류"가 통하는 소설을 쓴다. 이러한 작가의 고투가 전이될 때 독자는 작가처럼 아프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p. 210, 문학평론가 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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