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이제 얘기해
봉부아 지음 / 자상한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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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년 이맘때다. 인스타 친구의 피드로 봉부아(봉천동 부자 아줌마...) 작가를 알게 됐고 그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글의 유쾌한 유머에 빠졌다 (응?). 망설이지 않고 봉부아 작가의 첫 책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고 1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다정한 편의점 에피소드에 행복했었다.

지난해 말 그의 두 번째 책 출간 소식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 해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새해가 돼야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희망찬 새해가 밝자마자 신청했다. 신청도서가 밀려 3월이 돼서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해>를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책 출간에 얽힌 에피소드와 친구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자전적 소설이었다. 계속 작가의 블로그를 읽어온 터라 일상 에세이를 읽는 듯했지만, 소설이라고 하니 픽션이 더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가 봉부아는 따분하고 지루할법한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마법사다. 그의 일상에 우리의 일상이 겹친다. 자신의 능력에 인색하고, 어떤 연유로 질투하게 돼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때론 절망하고, 분해서 소심하게 복수하고... 세상 모두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하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유머를 발견해 작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탈모 방지와 발모 기술에 관한 생각이다. 머리카락이 안 빠지거나 새로 나게 하는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지되어야 한다(치료용만 허용하자). (p. 195)'

왜??? 발모제가 분명 비쌀 테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그걸 못 살 테고, 그럼 가난한 사람만 대머리가 될 테고... 불공평하다. 누구나 대머리 일수 있어야 공평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즉 돈이 세상을 맘대로 조정하면 안 된다는 건데, 그 생각이 유아적이긴 하지만 어느새 '맞아 맞아~ 그건 안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돈 잘 번다는 저 집 남편은 성격이 괴팍할 거야, 공부 잘하는 그 집 아이는 인성이 안 좋을 거야. 시댁이 많이 도와준다며? 그만큼 간섭이 심할 거야. 우리 나이에 저런 몸매? 빵을 안 먹어서 히스테리 부릴 거야. (p. 197)'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한강 뷰 아파트를 자연스레 본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흐흐흐... 가끔 아내가 하는 말을 여기서 읽게 되네... 어떤 표정을 보여줘야 할지... 작가의 표현처럼 '신 포도들...' 그 신 포도가 단물나는 꿀 포도란 걸 내가 알듯이 아내도 알겠지? 봉부아 작가도 우리 부부도 모르고 싶을 뿐이다. 흥~~~

'조금 전 한 여자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우수에 젖은 채 걸었던 길을, 또 한 여자가 남편의 지사제를 사기 위해 허둥대며 뛰어가고 있다. 그 두 여자가 모두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p. 273)'

믿기지는 않지만 때론 센티멘털한 나, 때론 허둥대는 나가 내 모습이기에 모순 덩어리인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을 접고 빙긋 웃게 만든다. 작가의 진솔함에 유쾌함이 더해진 결과다. 가끔 마음이 상할 때 봉부아 작가의 블로그를 열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거기서 나온다. 작가가 바꿔놓은 살아갈만한 일상에 힘을 얻어 내 일상도 그렇게 바꿔놓곤 한다.

'인생은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는 사탕 뽑기라고 한다. 내가 여태 뽑은 사탕은 쓴맛이거나 신맛뿐이어서, 지지리 운이 없는 나는 내 사탕 통마저 불운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언젠가부터 달콤한 맛이 하나씩 나오더니 지금은 무얼 뽑아 입에 넣어도 단맛이 난다. 내가 쓴맛을 먼저 뽑았을 뿐, 나의 사탕 통도 행복과 불행이, 기쁨과 슬픔이 골고루 들어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내게 남은 사탕이 단맛뿐이라고 자신할 수 없고, 언젠가 강력한 쓴맛에 또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저하지 않고 사탕 통에 손을 넣는 것. 무슨 맛이 나올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그날의 맛에 따라 기뻐하고 안도하며 때로는 눈물짓는 일이다. (p. 277)'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사탕 통이든 초콜릿 상자든 버릴 수는 없다. 사탕 하나씩, 초콜릿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삶이다. 어떤 맛의 사탕이 됐든지 어떤 맛의 초콜릿이 됐든지 내가 먹어야 할 것들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맛의 사탕이나 초콜릿이 남아있기를 바랄 뿐. 그게 희망이다.

'남편이 무서운 얘기를 한다. 내가 밤중에 빈 벽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어느 날은 어둠 속에서 콩콩 뛴다는 것이다. (p. 191)'

어떤 상황일지 궁금한가? 책을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아님 내 블로그의 발췌 글에서 확인해도 되고 ㅎㅎㅎ)

덧)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대성공이다. 역시 맛집은 줄 서기로 알아보고, 재미있는 책은 손때로 알아본다. (p. 163)'

바람을 덧붙인다면, 내가 신청한 봉부아 작가의 이번 책이 도서관에서 내가 다시 꺼냈을 때 손 때가 잔뜩 묻어 있기를... 그래서 그가 세 번째 책 도전에 자신감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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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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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부터 예술가라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들어선 예술가의 길에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곳곳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가난을 견뎌야 했다.
고아나 다름없던 빌리 홀리데이는 이 집 저 집 떠돌며 허드렛일을 하면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매릴린 먼로는 보육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했고 성폭행을 당할 정도로 그의 유년 시절은 진흙탕 속이었다. 재벌기업의 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에게 가난은 갑자기 찾아왔고, 에디트 피아프, 아~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또 있을까? 피아프는 10대 시절부터 매춘을 했다.

예술은 자기 자신을 넘어설 것도 주문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결벽증에 가까운 자신의 완벽주의를 조율해야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예술을 위해 유산을 외면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재성과 평범한 삶을 바꾸는 아픔을 견뎠다.

꼬박 하루에 15시간 이상 그림만 그린 미우라 겐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 모두를 만화에 쏟아부었다. 히스 레저는 자신의 커리어와 싸우며 변신을 거듭했고, 희극인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과 싸우며 웃어야 했다.

차별과 혐오, 반대와 맞닥뜨렸을 때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번스타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피아노 재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했을 때 흑인은 거의 없었다. 돌턴 트럼보는 미 상원 의원 메카시 쳐놓은 블랙리스트라는 덫을 피해야 했다. 이쾌대를 막아선 장애물은 이데올로기였고, 김기영은 엄혹한 유신시대를 지나야 했다.

프리드리히 굴다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보수적인 클래식계 넘어서야 했다. 어린 주디 갈런드에게 마법이 찾아왔지만 그 마법은 저주로 변했다. 이용하려 달려드는 사람만 주변에 가득할 뿐, 어머니를 포함한 그 누구도 갈런드를 지켜주지 않았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88세가 되기까지 이탈리아인으로서 아카데미의 홀대를 참아냈다.

그리고 존 케이지는 낡은 생각을 극복했다.
'케이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 (p. 112)'

하지만 이들 예술가들의 삶이 마치 잘 짜인 각본이라도 된 듯이, 좌절했을 때 손을 내미는 결정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중업은 베니스 국제예술가 대회에서 르코르뷔지에를 만났다. 허약했고 따돌림당했던 데즈카 오사무는 디즈니와 찰리 채플린 만나 만화가라는 꿈을 키웠다. 곤 사토시가 만화가로 잘 풀리지 않았을 때 토모 가쓰히로를 만나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르코르뷔지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만난 후 건축의 이상을 봤다. 발상은 코코 샤넬을 상류층 세계와 패션의 세계로 안내했고, 카펠은 비즈니스를 알려줬다.


이 책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에서 조성준은 스물다섯 명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세상과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엔 가난을, 차별과 혐오, 질투 그리고 반대를, 때론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예술가의 삶을 완성했다.

'누구나 영화를 본다. 영웅이 나오는 영화, 권투선수가 나오는 영화, 요리사가 나오는 영화, 조폭이 나오는 영화, 노인이 나오는 영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관객들은 다른 세계에 산다.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아마도 에드워드 양의 영화처럼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는 작품일 테다.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타인을 헤아려보게 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들, 인간에게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p. 221)'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이 1920년대의 파리에서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를 만나듯, 예술가들을 만났다. 화가를 만났고, 건축가, 만화가, 가수, 배우, 작곡가, 지휘자, 영화감독 등을 만났다.

예술이 우리를 위로하기에 예술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술가의 삶도 위로를 준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남짓 다른 세계에 살며 수명을 늘리듯이, 예술가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의 세계에 살아보면서 우리의 삶이 늘어난다. 그리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처럼 스물다섯 명 예술가와 우리가 나눈 대화는 우리의 삶에 위로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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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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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어느 날 마르세유 작은 만에서 캠핑을 하던 생물학 교수 안느 퉁글레와 육아 전문가 아라셀라 카스텔라노는 세 남자에게 몇 시간 동안 강간당했다. 두 여자는 고소했고 세 남자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그 당시엔 강간 당하고 고소할 만한 용기를 가진 여성이 드물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수치심을 짊어져야 하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협박을 받을 때 우리는 결코 죽음과 삶 사이에서 "선택" 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응책을 찾고, 전략을 펼치고, 속임수를 쓰고, 결심하고, 체념하지만, 그것이 동의는 아니다. (p. 120)'

남성우월주의적 장치는 두 여성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그 시간에 거기서 뭘 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저항하긴 했는지, 조금은 동의한 건 아닌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거부하고 저항했더라도 그건 그저 '지연되고 가장된 동의'라고. 여성도 원해 쾌락을 즐겼을 것이라고. 그래서 죽음으로 대항하지 않은 강간 당한 여성 대부분은 침묵을 선택한다.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에서 수치심을 치밀하게 탐색한다. 장자크 루소, 발자크, 조지프 콘래드, 디디에 에리봉, 카뮈, 에밀 졸라, 장 주네, 존 M.구체, 장 라신, 코르네이유, 로스탕 등의 작품과 플라톤, 칸트, 미셀 푸코, 질 들뢰즈 등 철학자의 글을 동원한다.

그로는 우리가 살면서 죄의식보다 수치심을 훨씬 많이 경험하고, 수치심의 강요에 굴복해서 내린 결정이 죄의식에 의한 것보다 훨씬 많음을 알아차린다. 수치심으로 겪게 될 두려움은 영원한 죄의식과 죽음도 삼켜버린다. 수치심은 처벌보다, 범죄보다, 죽음보다도 두렵다.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몰염치에 그치지 않고 수치심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기까지 한다. 여성의 성적 순결을 집단의 명예와 결부시켜 금지된 사랑을 한 여성에게 수치심을 전가한다. 디지털 증오를 가해 죽은 후까지도 수치심을 안겨준다.

가난한 사람에게 악하다는, 못생겼다는, 냄새난다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수치심을 안긴다. 수준을 정해놓고 그 수준을 지키느라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수치를 준다. 집단으로 소수자를 수치스럽게 만들어 편을 가른다. 앞서 예를 들었듯 강간 그리고 근친상간의 희생자들에게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하게 만든다.


안느 퉁글레와 아라셀라 카스텔라노를 강간한 가해자들에게 구타와 상해라는 죄목으로 판결하려는 법정에 지젤 알리미는 맞서 싸웠다. 그 결과 1980년 12월 강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해 광범위하게 범죄 회부를 허용하는 새로운 법률이 가결된다.

'안느 퉁글레는 이 사건이 있고 20년이 지나서 이렇게 선언한다. "1978년, 내 강간에 대한 소송이 처음으로 수치심의 진영을 바꿔놓았다." (p. 108)'

수치심은 저항할 능력이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수치심의 반전 명령은 이것이다.

'세 가지 중대한 진술이자 시대적 명령도 있다.
"더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말라!"
이것은 수치심-슬픔에 맞서는 삶의 폭발이자 분노의 폭발이다. (...)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이것은 도덕주의자, 교육학자, 심리교육자들이 내뱉는 분노의 외침이다. (...)
"수치심의 진영이 바뀌어야 한다!"
"수치심을 가져야 할 건 당신들이다!"
이것은 분노의 외침이다. 가학자, 강간범,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자들을 겨냥하고, 파렴치한 정치인, 부패한 고용주, 저속한 백만장자를 겨냥하는 외침이다. (p. 12~14)'

마르크스는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라고 썼다. 수치심이 혁명적이려면 그것이 나를 향한 분노여야 한다. 그래야 그 수치심이 상상력으로 작동한다. 나는 하찮은 여자가 아니다. 가련한 남자가 아니다. 나는 경멸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나는 가치 있다. 수치심에서 비롯된 상상력은 나의 정체성을 다시 그리고 만들어낸다. 연대의식을 창조한다.

'그리고 수치심은 한계를 느끼는 감정이기에 언제나 변화를 향한 부름이다.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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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1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혁명은 나부터 먼저, 남만 물고 뜯는 게 혁명이 아님을.
 
빅 픽스 -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경제학적 생존 전략 7가지
저스틴 길리스.핼 하비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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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불타고 있다. (p. 9 들어가는 말)'
잘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해야만 한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지구가 불타는 모습을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류를 화염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빅 픽스>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는 칼럼니스트 저스틴 길리스와 에너지와 환경 정책 자문 회사인 에너지 이노베이션을 설립한 핼 하비, 두 사람이 내놓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행동 지침서다.

나름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웬만한 거리는 걷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될 수 있는 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부서져 고쳐 쓰지 못할 때까지 사용하는 따위의 우리의 행동은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면서 의구심이 들곤 한다. "나 하나 이런다고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게다가 분리수거가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둥, 에코백과 텀블러가 모으기 아이템이 돼버려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따위의 초 치는 소리를 들으면 의심은 더욱 굳어진다.

<빅 픽스>는 그런 의심을 뒤로하게 하는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나 한 사람의 힘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차를 덜 몰고, 우리 집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녹색소비자 green consumer'가 되어도 좋다. 하지만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우리 모두 '녹색시민 green citizen'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가 기후 위기로 절망을 경험할 때, 아마 많은 독자도 저와 비슷하시겠지만,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거나 혹은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저 한 명의 개인일 뿐입니다. 나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전능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무력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p.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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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 음악 하나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현영 지음 / 현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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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이렇게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만큼이나 감정을 흩날리게 만든다. (p. 246)'

사람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친구를 만나 폭풍 수다를 떨기도 하고, 기쁨에 겨워 또는 슬퍼서 소리쳐보기도 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생각을 정리하기도 할 테고... 또 하나 음악을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싶다. 다만 감정에 따라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클래식이 갖고 있는 강력한 점이 있다. 바로 사람은 누구나 느낀다는 점, 나는 바로 그 감정이라는 녀석에 천착해 보기로 했다. (...) 그러니 각자의 감정에 맞게 들어보면 그건 또 나름대로 재미난 감상법이 된다. (p. 9)'

울적해서 술 생각이 간절해?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네가 지금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 같아? 불안하고 답답해?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을 알려왔어? 조현영 피아니스트가 곁에서 내 기분은 살피고는 이런 말을 건넨다. "이 음악 한 번 들어볼래? 도움이 될 거야."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리드리히 굴다의 첼로 협주곡 1악장.
낮술과 함께 곁들일만한 클래식으로 추천한 곡이다. 무대에 오를 때 색안경에 모자를 쓰고 나오는 모습에서 짐작하듯이 굴다는 괴짜이고 파격적이다. 또 하나 특이한 건 이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구성에 현악기가 빠져있다. 현악기는 첼로뿐이다. 낮술하고 흥얼거리게 된다면 꼭 들어보기를. 기분이 더 좋아진다.

리스트, <위로> 작품번호 172-3.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치는 손놀림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듯하다. 처음 듣는 클래식인데, 이 곡으로 리스트 팬이 돼버렸다. 아무 말도 필요 없고 '네가 옳아'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 들어보기 바란다.

'특히 오른손 멜로디의 후렴구마다 등장하는 16분음표 멜로디가 꼭 '네 맘 알아' 하고 답하는 것 같다. '위로'라는 제목이 있어서인지 설명이 필요 없이도 이해가 된다.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p. 151)'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작품번호 23
방에서 혼자 볼륨을 한껏 높여놓고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조현영이 제일 먼저 집는 음반이다. 피아니스트들이 콩쿠르나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하고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한다.

저자에게 이 음악엔 한때 부부였던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샤를 뒤트아의 아름아운 이야기가 묻어있다. 둘은 헤어지고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 이혼 후 지휘자와 솔리스트로 만난다. 사랑은 끝났지만 음악적 동반자로 눈빛과 호흡을 주고받는 장면이 이 음악을 들을 때면 오버랩되는 모양이다.

이 음악이 좋아 재즈 밴드 핑크 마티니가 멜로디를 편곡해 곡을 만들었다. <Splendor in the Grass>, 꼭 감상해 보길. 스톰 라지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라 장담한다. 이 곡도 들을 때 반드시 볼륨을 크게 높이고...


조현영의 세 번째 책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은 나의 기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는 권해주는 책이다.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다면, 가끔 듣고 싶은 클래식 몇 곡 정도는 기억하고 싶다면 그리고 저자처럼 친구의 기분에 맞게 슬쩍 음악을 알려주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조현영 피아니스트의 사랑스러운 글 솜씨까지 더해져 책을 자주 펼쳐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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