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위로 - 잘하고 있는 내가 자라고 있는 나에게 쓰는 존재 5
시골쥐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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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위로, 쓰기 세 가지 제시어로 새나 님이 이행시 백일장 열었다. 세 단어를 써 놓고 노려보지만 쓸 글이 영 떠오르질 않는다.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우며' 고민 중이다.

'고_ 고민할 만한 것이 아님에도
민_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가 많음 (p. 32)'

지금 백일장 피드에 들어가 보니 이행시 댓글이 수두룩하다. 이들에겐 이행시 짓는 일이 고민할 거리도 아니고 애를 태우며 민감하게 굴 일도 아닌가 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일흔일곱 개의 단어를 꼽았다. 저자는 그 단어에 약간 다른 색깔을 덧입혀 마음을 위로하는 단어로 바꾸어 <단어의 위로>에 펼쳐놓았다. 같은 단어지만 각자 조금씩 다른 의미를 담아서 갖고 있듯, 저자도 저자만의 생각을 단어에 담아놓았는데... 그 단어를 마음으로 읽다 보면 저자의 바람대로 위로가 된다.

'아_ 아직
픔_ 픔(품)어주지 못한 내 마음의 상처 (p. 16)'


아내가 속한 교회 중창단 멤버인 한 분의 친정어머니는 매일 요양원에 있는 남편 식사를 챙겼다. 입이 짧은 남편이 요양원 밥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덕분인지 십오 년 세월이 흐른 다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추_ 추억이란
억_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인생의 하이라이트 (p. 68)'

'그 어머니에게 어떤 남편이었길래 그렇게 힘든 일을 해냈을까?' 아내는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어머님의 인생을 비추는 '추억'이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막 읽은 터여서 이렇게 대답했다.


직장을 얻어 자취 생활을 하는 아들아이 걱정을 아내는 매일 한다. 오늘은 뭘 먹었는지, 출근은 늦지 않았는지, 청소는 잘 하는지. 웹 쇼핑을 하더라도 아들아이에게 필요한 것들만 본다. 이거 사서 보내줄까?

'엄_ 엄마는 평생
마_ 마음속에 자식을 어린아이로 품고 산다 (p. 220)'

'인디언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역할을 버리고 한 인간으로 돌아가라." 내가 바라는 건 어머니가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이다. (p. 222)'

이젠 자신의 삶으로 돌아올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아내는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가끔 오더니 발길을 뚝 끊은지 오래된 아들이 섭섭한 듯 혼잣말을 한다. '에이 다 컸는데 알아서 하겠지' 그러고는 '자기야, 언제 날 잡아서 한번 가볼까? 어떻게 해놓고 있는지 봐야겠어...'


위로를 말로 건넨다면 자칫 잔소리나 충고가 되어버려 유퀴즈에 나왔던 어느 초등학생이 했던 말처럼 기분 나쁠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오랜 생각이 담긴 글이라면 더더욱.

저자는 한 단어에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나처럼 단어를 써놓고 하루 이틀 노려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오래 머물렀던 만큼 그 단어의 의미를 깊숙한 곳에 넣어 놓고 혼자 간직하고 싶었을 텐데...
'이런 글을 써주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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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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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서울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반대하며 주민 투표를 제안했고, 그는 이 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 구분 없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를 묻는, 즉 '선별적 복지'냐 아니면 '보편적 복지'냐를 묻은 투표였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이 설계하고 집행한 복지 정책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조선은 구황,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구황과 취약 계층 복지를 조선시대 기록을 살펴보며 다룬다.

1장에서는 구황 정책인 환곡과 진휼 그리고 취약 계층인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노비에 대한 복지 정책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다시 여는 글'에서는 조선의 복지정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재해석한다.


조선의 복지는 '가장 어려운 자'는 돕는, 아니 왕의 시혜(施惠)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자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돕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일 때 왕이 베푸는 식의 복지정책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어려운 자를 돕는다는 점에서 조선의 복지 정책은 '선별적 복지'였다.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선별하는 자의 힘이 작용하는 부패도 생겨난다. 흔히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든다. 이를테면 실업급여를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주면 아예 일할 생각을 안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눠주는 자인 관료들의 부패가 복지 정책을 망쳐버렸음을 조선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횡령, 탈법을 동원해 부를 챙겼다.

'그래서 '복지를 확대하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국민이 나태하면 부패가 만연해진다'는 말은 무책임합니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수단이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p. 219)'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따질 때마다 화가 난다. 언뜻 보면 한정된 지원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지원하자는 주장이 효율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복지만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발상은 불평등을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1년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아이들에게 '너는 못 사는 아이야'라는 낙인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찍으려는 의도가 너무 괘씸했다.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급식카드인 '꿈나무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키오스크가 있는 매장을 찾아간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꿈나무카드' 내미는 걸 수치스럽게 여긴다. 왜? 멸시하고 불편한 눈으로 보며 수치심과 절망감을 그 아이들에게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니가 어떻게 이런 비싼 음식을 급식카드로 사 먹을 수 있냐'라며 아이를 쫓아내고 복지센터에 신고까지 한 어른도 있었다.

빈부격차는 급속도 벌어지고 있는데, 복지가 불평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펼쳐 온 증세 없는 (선별적) 복지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해야 했다. 언제까지 태어날 때 불평등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고 가난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릴 것인가.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 정책은 어떤 정책의 장단점과 그것의 옳고 그름을 밝히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점을 모두 고려하였을 때 '얼마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p. 286)'

우리 사회의 불공정 요인을 그나마 최대한 없애는 대안은 기본소득 제도밖에 없다는 저자의 생각, 여기에 나의 의견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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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과학 - 빅뱅에서 미래까지, 천문학에서 생명공학까지 한 권으로 끝내기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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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15km쯤 떨어진 곳에 반짝이는 불빛이 있다. 그 불빛에서 138억 년 전 우주가 시작됐다고 가정하자. 10억 년을 약 1km라고 어림잡아 계산하면, 45억 년 전에 생긴 지구는 우리로부터 4.5km 떨어진 곳에 있다. 공룡은 200m, 최초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났으니 겨우 20cm 앞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5,000년 전이니 5mm 앞이다.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우리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긴 역사의 우주만큼이나 우주 공간 또한 어마어마하다.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있습니다. 지구와 태양을 비롯한 수천억 개의 별들이 모인 은하, 그런 은하가 거의 2조 개나 모인 우주가 138억 년 전엔 하나의 점일 뿐이었죠. 우주는 우리의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도 작았습니다. (p. 25)'


인천 백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준호 선생님의 <세상의 모든 과학>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과학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대답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책을 읽고 부모에게 달려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p. 9, 들어가며)' 책을 썼다고 한다. 또한 저자가 직접 그린 150여 점의 그림은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상상하는 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우주와 지구, 인류 그리고 인류가 만든 문명의 역사는 어떻게 비롯됐을까.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서로 길들이며 바꿔놓았을까. 자연에서 어떤 힌트도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상력만으로 활과 화살이라는 무기를 만든 똑똑한 인류에게 폭력은 영원한 디폴트 값인가.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죠. "저는 3차 세계대전 때 무엇으로 싸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4차 세계대전 때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싸울 것이란 점은 분명히 알 것 같네요." (p. 204)'
수천 년을 거치며 이룩한 문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인류는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AI는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공포를 가져다줄까. 이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까?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명의 설계도를 손에 쥐게 될까? 그렇다면 그 힘을 얻은 인류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건가?

저자는 어두운 미래와 밝은 미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다. 화석연료 사용을 막지 못한 결과 기후변화로 큰 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 폭염과 가뭄이 찾아오고 폭풍이 강력해진다. 2090년 식량부족으로 각국의 정부가 붕괴된다.

다행스럽게도 에너지 혁명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가뭄과 폭풍 같은 기상재해가 서서히 줄어들고 기후도 천천히 변해 적응할 수가 있다. 2080년 세계 인구도 감소하고 농업기술 발전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해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진다.

5,000여 년간 만든 우리의 문명이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선택에 따라 100년 안에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이어지게 될지가 결정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과연 꿈같은 세상을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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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 왜 개혁은 항상 실패할까?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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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기들에 푹 빠진 박영서 작가의 '시시콜콜 시리즈' 네 권 가운데 '조선부동산실록'은 땅과 집을 사이좋게 나눠가지기를 원했던 조선 사람들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연 성공했을까? 실패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조선의 땅과 집의 역사를 1부, 2부로 나눠 살펴본다. 조선은 농사가 근본인 나라여서 조선인들의 생계비부터 나라의 운영 예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돈은 땅에서 나왔다. 그래서 땅이 갖는 의미는 막대했다.

조선에서 집은 땅을 가진 사람의 권리에 속했다. 그래서 땅에 비해 집 문제는 덜 예민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처럼 서울로 사람들이 몰림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은 무척이나 비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여는 글'에서 조선의 부동산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점검해 본다.


고려 말, 적은 사람이 토지 대부분을 독점했다. 농사짓는 땅 하나에 주인이 여럿이라 농사꾼은 중복으로 수취를 당했다. 국가 재정도 고갈되어 제대로 군대를 운영할 수도 없었다. 고려는 국가로서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돼버렸다. 이렇게 된 원인은 정치에 몸담은 사람 대부분이 나라의 모든 것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부패의 중심에 땅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의 등장은 당연했다. 토지 국유화에 입각한 토지 재분배를 통해 고려를 좀먹은 불평등한 토지 구조를 해체하고자 하는 혁명은 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의 토지 분배 원칙이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이가 땅을 가진다'였다면, 집터 분배의 원칙은 거자유대(居者有垈), 즉 '실거주자가 집 지을 땅을 받는다'였습니다. (p. 194)'

조선에서 그 이상이 실현됐을까? 아니, 조금씩 그 이상은 잿빛으로 물 들어갔다.

'그것은 한 가지 사이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자가 부동산을 독점하고, 부동산 독점이 사회적 문제가 되며, 독점을 해체하기 위한 정치적 작업이 시도되었다가 다시 좌절되는 사이클입니다. 이러한 도돌이표는 대한민국에서는 정권마다. 조선 왕조에서는 오백 년 내내 벌어졌던 일입니다. (p. 20)'


부동산 불평등은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왜? 고려가 망국에 들어선 원인과 조선 왕조 오백 년 내내 벌어졌던 사이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은 부동산을 사는[buy] 사람만을 위한 정책을 펼 경우 그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결국 조선의 주택은 '사는[live] 곳'으로 시작해서, '사는[buy] 것'으로 끝났습니다. 정부가 적절할 때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고, 주거난 해소를 위한 장기적인 해법을 고안하지 않았으며,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진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임차인을 보호하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백성을 자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켰죠, 살 권리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불법건축물에서 간신히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정부가 시민의 살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시장 논리에 대응하지 않으면, 집을 얻는 과정이 아비규환에 이르고 맙니다. 이것이 조선의 주택사가 남긴 귀중한 경험적 자산입니다.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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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 여자의 죽음으로 사랑을 다시 읽는다 허사이트 시선 총서 3
윤단우 지음 / 허사이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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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에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p. 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윤단우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는 작업이다. 고전의 서사 구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왜 꼭 '죽음'으로 완성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여성과 죽음 사이에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햄릿>의 오필리어, <지젤>의 지젤, <마농 레스코>의 마농, <춘희>의 마르그리트, 그리고 <제인 에어>의 버사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는 정신이 나가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한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카르멘>의 카르멘,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아내는 남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남성 집단이 한 여성을 죽인 사례도 다루는데 실존 인물인 마타하리다. 반면 남자를 죽이는 여자도 있다.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 <살로메>의 살로메, <메데이아>와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의 메데이아가 그 경우다.


마음먹고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 떠올린 체 고전을 읽지 않는 한 이런 분류를 하기란 쉽진 않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우리의 철학은 남성 중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죽었답니다' 전문을 소개하면서 말하듯, 성별에 드러난 가치는 아름다움을 위한 죽음이 여성이라면, 남성의 죽음은 진리를 위해서다. 그러니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이라면 이를 짊어져하는 건 여성의 몫이다. 사랑은 진리이기보다는 아름다움에 가까우니 말이다.

참아야 하는 경우라면 누가 참아야 하나. 여성? 남성? 물론 인내가 성별에 관계없는 가치이긴 하지만 여성화되기 일쑤다. 양보해야 한다면? 희생해야 한다면? 비폭력은? 전쟁과 상대적인 평화는? 이런 가치를 수행하는 여성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난이 쏟아지거나 처벌받기까지 한다.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이렇게 대입해 보면 확실해진다. 가정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여성과 남성 가운데 누가 인내하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비폭력으로 맞서야 하나 (또는 맞서 왔는가). 평화가 깨진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전가되는가 (또는 전가되어 왔는가).

결국 사랑의 불멸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 양보, 비폭력, 죽기까지 희생해야 하는 존재는 여성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라는 명제가 또렷해진다.


저자가 꼽은 열다섯 편의 문학은 대체로 영화나 연극, 오페라, 발레로 옮겨가며 재창작되는 작품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출가가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레지 테아터(Regie-Theater)' 형식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p. 328)'

물론 전에도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 이 책에서는 두 작품을 한 꼭지씩 다뤄 소개한다.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제인 에어>의 프리퀄 성격의 작품으로 브론테가 지워버린 앙투아네트에게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부여한다. 리스의 앙투아네트는 비폭력이 아닌 공격성을 나타낸다.

크리스타 볼프는 <메데니아, 악녀를 위한 변명>에서 메데이아의 악녀 이미지에 반기를 들며 메데이아 입장에서 새롭게 스토리를 재구성한다. 볼프의 소설에서 메데이아에게 씐 모든 죄악은 조작된 것이다.

저자는 재창작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포커스를 두고 있는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 역시 원작을 핑계 대며 죽은 여자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 더 진보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그 발걸음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을 것이다. (p. 330)'

그리고 이 책의 효용성과 함께 바람도 어필한다. 고전 작품을 '여성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어보기를. 그러면 그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스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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