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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아내와 다툰 다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후회하곤 한다. 속마음과 다른 말이나 행동이 나왔음을 뜻하는 속말이다. 흔히 일본 문화에 속마음을 이르는 혼네(本音), 드러내는 마음인 다테마에(建前),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들 한다. 일본 사람뿐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싶다. 갈등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주인공인 '나'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의 친구 'K'를 비롯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 변화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20대 초반으로 도쿄에서 공부하는 학생인 '나'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도쿄에서 가까운 가마쿠라 해수욕장에서였다. 선생님은 서양인과 함께 있었다. 선생님에게 끌린 나는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의 집을 자주 방문하며 선생님의 아내와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도쿄에서의 선생님은 해수욕장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과 뭔가 다르다. 일도 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아갔다. 아내의 따르면 대학 졸업하기 전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는데 그때부터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왜 선생님의 친구가 왜 자살했는지 아내는 모르는 눈치다.
'"미움을 받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이는 세상을 싫어해요. 세상이라기보다 인간을 싫어하죠. 그러니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도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p. 55)'
선생님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듯하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을 찾은 나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보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두툼한 편지를 받는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눈앞에 있지만 형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열차 안에서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 틀에 찍어낸 듯한 악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평소엔 다 선한 사람들이에요.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 방심하면 안 돼요." (p. 86)'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편지를 읽어나가며 선생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같은 말을 했고 자신을 포함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됐는지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이 병들어 죽고 난 후 작은아버지를 의지하면 살았다. 하지만 믿었던 작은아버지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선생님을 속인다. 이 일을 계기로 선생님은 절대 남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나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숙집 아주머니와 장차 아내가 될 아주머니의 딸, 아가씨까지도 불순한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친한 친구 'K'가 선생님이 사랑하는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털어놓자 불안해진 선생님은 아주머니에게 따님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실을 안 K는 자살한다. 선생님은 K의 죽음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진다. K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이 작은아버지와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는다. 마침내 선생님은 K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속죄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알 수 없는 마음에 휘둘리는 삶을 산다. 아내와 다툼도 속마음과 다른 어떤 마음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는 내 마음을 믿을 수 없다.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타난, 마음이 품고 있는 감정들, 망설임, 질투, 열등감, 고독, 동정, 연민, 후회, 죄책감 같은... 이 모든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돌변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야기했듯이 세상엔 틀에 찍어낸 악인도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란 동요가 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겨울에 마음은 하얗게 변할 것이다. 왜? 산도 들도 모두 하얀 눈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주변에 의해 변한다. 그러니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나 자신의 마음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 속마음과 드러내는 마음,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마음은 심하게 갈등할 것이고. 안타까운 건 그 마음조차 다른 사람에겐 알려도 숨겨야 할 딱 한사람 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외부 어디서 비롯됐는지, 속마음인지 드러내는 마음인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
'나는 나의 과거를, 선악을 불문하고 타인에게 참고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내만은 예외로 해주십시오.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싶습니다.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간직한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보존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은 후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만 털어놓은 나의 비밀을, 가슴 깊이 묻어두기 바랍니다. (p.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