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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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카페 앞에 베이커리라는 글자가 붙은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카페가 많던 시절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곤 했다면, 이제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요리조리 살피며 고른 빵과 음료를 놓고 책을 읽거나 책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작은 책에 실린 글들과 소개된 책들이 한 덩이의 갓 구운 빵처럼 당신의 마음속 허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기를 (p. 7,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다정한 매일매일>은 빵을 핑계 삼아 책을 소개하는 백수린 작가의 서평집이다. 빵에 대한 백수린 작가의 TMI를 더하자면,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찾아다닐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빵 만드는 건 좋아하고 나름 철학이 있다.

'손으로 반죽하고,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을, 실패해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그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 바쁘고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p. 6,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 비단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고 짬이 나면 뭔가 꼭 채워 넣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 우리 모두에게 반죽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빵 냄새가 나는 글, 그리고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백수린 작가, 각양각색의 빵 냄새만큼이나 다양한 작가의 묘사는 모두 필사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른 이들의 아우성에 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의 파도에 쉽게 휩쓸려버리는 시기가 이십 대이기도 하니까. (p. 54)'

우리 집의 이십 대 두 아이는 부모의 아우성을 어떻게 처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지 궁금하다. 이십 대였던 적이 있었던 나와 아내는 분명 그때 그 아우성을 소음이라 여겨 귀를 틀어막았을 텐데. 누구나 누려 할 행복과 불행의 몫이 있듯이 이십 대도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몫이 있다. 주변의 아우성에 휩쓸리면 누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11월은 이상한 달이다. 마음이 온통 스산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 헐벗은 나무, 매섭게 추워지는 공기,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의 뒷장. (p. 81)'

11월이 왜 유독 공허한지 그 이유를 알겠다. 열두 달 가운데 빨간 날이 없는 달. 마지막 달 12월보다 11월은 남은 한 달이 있어 더 초조했던 것이다.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에도 어정쩡한 11월, '얼마 남지 않는 달력의 뒷장' 느낌이 딱 맞다.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어딘가 처박아 놓았던 기억을 백수린 작가의 글로 인해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단어가 있다. 별다른 추억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들. 내게는 '다방'이 그렇다. 똑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커피숍'이나 '카페'와 달리 '다방'이라고 발음할 때만 환기되는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있다. (p. 172)'

커피숍, 카페, 다방 모두를 겪어본 나는 안다.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취업한 후 첫 맞선 장소였던 인천의 다방. 담배 냄새와 커피, 쌍화차 등이 섞인 쾌쾌한 공기가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나 보고 그 냄새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1호선을 타고 멀리멀리 가기 때문에 알게 된 기쁨도 있다. (...) 책을 읽다 보면 공기가 바뀐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은 비 냄새야. 고개를 들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열린 지하철 문 너머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p. 204, 205)'

1호선을 타고 대학교를 다녔던 터라 이 글을 읽으며 대학 생활 4년을 통째로 살려낼 수 있었다. 공기가 다른 느낌, 난 안다. 심지어 역마다 냄새가 달랐다. 1호선 소나기 냄새는 온갖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캠핑 중에 만난 소나기, 바닷가를 거닐다 만난 소나기까지도. 그 냄새도 서로 달랐다.


백수린 작가와 달리 나는 빵을 무척 좋아하고 빵 만드는 건 자신 없다. 고등학생 시절엔 돈이 없어 양껏 먹고 싶었지만 구색으로 빵 몇 개만 앞에 놓고 여학생을 만났다. 지금은 여기저기에 근사한 베이커리 카페가 많다.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빵 냄새와 함께 각양각색의 빵들이 즐비하다. 이젠 당연히 고등학생 시절보다 여유가 있으니 빵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빵 고르듯 읽는 책 <다정한 매일매일>이다. 백수린 작가 써서 보내는 편지글에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가 난다.

'소설가가 된 이후, 이따금씩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겐 찻집도 없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없지만, 나는 어쩌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p. 262,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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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 24개 나라를 여행하며 관찰한 책과 사람들
모모 파밀리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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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가난한 작가 헬레인(앤 밴크로프트)은 우연히 영국 런던 '채링크로스 84번가'에 있는 헌책방을 알게 되고, 동네 서점에서 구하지 못한 책 목록을 적어 구해달라는 편지를 그 책방으로 보낸다. 헌책방 직원 프랭크(안소니 홉킨스)는 목록의 책들을 열심히 찾아 헬레인에게 보내준다. 20여 년간 책을 보내며 프랭크, 서점 직원들 그리고 프랭크의 가족까지 헬레인과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며 선물도 주고받는 각별한 사이가 된다.

헬레인은 런던의 중고서점을 몇 번이나 방문하려 했지만 사정이 생겨 계획이 무산된다. 결국 세월이 흘어 프랭크가 죽고 '채링크로스 84번가' 책방이 문을 닫은 다음에야 헬레인은 그곳을 방문한다. 요정 윤미 작가의 가족 모모 파밀리아(남편과 두 아들)의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을 읽다가 영국 책방 사진을 보는 순간, 영화 <84번가의 연인>에서 헬레인이 프랭크를 생각하면서 문 닫은 서점을 쓸쓸히 둘러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책으로 맺어진 가난한 작가와 프랭크를 비롯한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 가족들 사이에 우정을 감동으로 그려낸 영화다. 윤미 작가와 나의 우정도 책으로 맺어졌다. 윤미 작가의 가족들도 24개국 113개 도서관과 책방을 여행하며 책을 매개로 잊지 못할 우정을 맺었다.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최고의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p. 294)'

노벨 박물관에서 "미래에 노벨 수상자가 될 아이로구나!"라는 덕담과 함께 초콜릿 메달을 쥐여주는 박물관 직원. 이 우정으로 준모와 모건은 노벨상을 꿈꿀지도.

포르투갈의 국민 동화 작가 아델리아 카르발류가 운영하는 파파 리브로즈에서 그녀의 품에 안긴 두 아이는 친필 그림 사인 동화책을 언제까지 간직하며 카르발류를 생각할까? 두 아이도 동화 작가 되는 건 아닌지.

스카티스파르시 서점에서 1유로짜리 중고책을 사고 나서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연필 두 자루를 선물로 주는 주인 할아버지. 따뜻한 웃음과 차별화된 눈인사를 가슴에 품은 채 준모와 모건은 엄마의 바람대로 텅 빈 캐리어 끌고 우정을 찾아 이곳에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책을 한가득 싣고 뒤뚱뒤뚱한 걸음을 할아버지에게 보여줄 테고.


이 책을 먼저 읽은 아내는 윤미 작가의 가족이 너무 부럽단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린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을 테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그 장애물을 넘을 자신은 없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책 끄트머리에 두 아이가 써 내려간 글, '생각거리'를 읽고 부러움과 아쉬움이 더 짙어지는 모양이다.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연필을 꺼내 들어 여행에 대해 글을 쓴다. 여행은 많은 소통으로 제작된 놀이이다. 집중력을 가지고 사람과 시간과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과정이 여행이다. - 준모
여행은 한 번 즐기면 계속 계속 즐길 수 있게 된다. - 모건 (p. 452 여행)'

'사랑은 부모님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 등 주변의 모든 사람과 만들 수 있는 감정이다. - 준모
사랑은 쉽게 생길 수 있다. 사랑을 가질 준비를 하고 사랑을 받으면 바로 사랑이 생겨난다. - 건모 (p. 453 사랑)

하지만 모모 파밀리아의 130일 유럽 책장 여행기를 읽은 사람 가운데 많은 이들은 우리처럼 아쉬움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용기 내어 10년 후를 계획하며 또 다른 책장 여행과 더불어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이 헬레인과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 가족들 사이에 우정을 만들어준 헬레인의 고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공간보움, 우리의 목적지가 유럽 책장 곁이 되도록 영감을 주신 노원구 공릉동 공간보움 '내곁에 서재'에 하릴없는 감사를 전합니다. (p. 455 Thanks to.)'

윤미 작가가 여행을 떠나기 전 이곳 공유 서재 '공간보움'을 들렀던 인스타그램 피드가 기억난다. 또 '공간보움' 지기 내곁에서재 님이 이 책을 읽고 울컥했던 최근 피드도 기억나고. 서로 갖게 된 의미 있는 우정도 책과 이 공간 덕분일 것이다. 공유 책방 '공간보움'도 많은 책 친구들의 우정을 쌓아주고 있으니 채링크로스 84번가 헌책방과 다름없다.

'유럽의 책장으로 떠나기 전 처음 했던 생각이 있다.
"책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나태함으로부터, 무관심으로부터, 우매함으로부터, 편협함으로부터, 몰상식으로부터, 소매치기로부터...."
인간이 책을 지키고, 책이 인간을 지키는 한 책은 영원할 것이다. (p. 437)'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와 요정 윤미 작가 그리고 많은 책 친구들의 우정을 맺어주고 지켜주는 한 책은 또 영원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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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 - 흔들리고 아파하는 너에게 전하는 가장 다정한 안부
사과이모 지음 / 책과이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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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기 위한 좋은 방법은 그때의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p. 25)'

사과이모는 과거의 자신을 '작은 사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직장인이었던 나를 뭐라 불러볼까?'라는 생각만으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삐 출근하는 내가 보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가족 속에 '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어떤 선택을 할 때 가족을 위한 것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 이사할 때도 출퇴근 거리를 고려했고, 옷도 회사에 입고 가기에 적당한 것을 골랐다. 건강도 회사를 위해 챙겼다. 피곤해서 회사 일이 잘못되면 안 되니까 쉬어야 했고, 내일 아침 출근을 생각해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모임에서 일찍 빠져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퇴직한 다음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판단이나 선택의 기준이 내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는 좀 나를 위해서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은 결과였다.

시간을 내게 써보자는 생각을 먼저 했다. 타인의 기분보다는 내 기분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타인에 의해 나의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태가 줄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약속을 잡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과감하게 거절했다.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가 우뚝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자주 울고 웃고 불안해하고 행복해하는 평범하고 귀한 당신에게 부치는 사과이모의 편지입니다. 소중한 당신께 잘 도착했나요? (p. 243)'

마음담다 컨설팅 대표이자 저자인 사과이모는 진로 상담사로서 독서모임 운영자로서 만났던 사람들과 '마음공부'를 하며 진짜 '나'와 만난 이야기를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에 담았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걸 저자가 찾았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라는 것과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서운하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내 안의 작은 속삭임이 아닐까요. 실망한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 아닐까요. 절망한다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깊은 절규가 아닐까요. 결국 다 사랑이 문제고, 결국 다 사랑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p. 120)'

그렇다면 그간 내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는 건, 대상은 약간 어긋났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그날그날 몰입했으니 하나는 만족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셈이 된다. 서운했고, 실망했고, 절망했던 나, 모두 다 사랑이 문제였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이 문제였다.


'결국 삶이란 '지금 여기'에 펼쳐진 내 삶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여정(p. 244)'이라는 사과이모의 결론. 퇴직한 다음 마음먹은 '이제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나를 써보자, 그리고 내 기분을 소중히 여겨보자'라는 결심에서 '자기 사랑'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나의 행동이 아내를 가족을 친척을 친구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 생길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을 나의 모든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어떻게 괜찮겠어?" "일어설 수 있겠어?" "참을만해?"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해볼까?" "혼자 있으려고? 자리 피해줄까?"... 내게 안부를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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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업의 발견 - 당신의 명함을 대신할 일곱 가지 인생 솔루션
성은숙 지음 / 화담,하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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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가 된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선다. 그만큼 노후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 많아졌다. 노후 준비를 어디서 해야 할까? 돌봄 서비스도 좋고 또래의 노인들이 모여있는 실버타운이 좋을까?

그런 계획보다는 생각보다 오래 살 수 있으니 더 멀리 보며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광수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즉 소비만 하는 삶으로 죽음을 기다린다면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콘텐츠 기반 퇴직 플랫홈 화담,하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대표이자 이 책 저자인 성은숙 대표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다듬어 퇴직 이후를 이끌어갈 역할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p. 137)'고 조언한다. 이것이 바로 '일과 여가의 균형을 스스로 결정하는 퇴직 이후의 새로운 역할'을 의미하는 '뉴업'이다. <뉴업의 발견>에서 뉴업으로 실현 가능한 솔루션 일곱 가지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나는 한 곳에서 3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다음 정년퇴직했다. 입사할 때 직장에서 성공하겠다는 부푼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30대에 퇴직이란 상황은 언감생심 내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기회가 있어 직장을 옮길까 고민했지만 그러기엔 현재 직장에 너무 익숙했다.

40대 후반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다른 일도 생각해 봤지만 그때는 월급이란 소득에 너무 길들여져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버티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희망퇴직이 아닌 정년퇴직을 했다. 관성에 젖은 것들이 많아 나 혼자 힘으로는 다른 일을 할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희망퇴직 당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요즘에 들곤 한다.


'이 책은 이미 퇴직했거나, 당장 퇴직이 눈앞에 있거나, 언제 퇴직당할지 모르는 위기에 빠진 직장인 모두를 위한 것이다. (p. 9)'

그 외에 나처럼 퇴직을 실감하지 않는 30대, 현재 직장에서 스스로 잘나가고 있다고 여기는 40대도 읽어보면 좋겠다. 이제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짧고 길고 그 차이는 있겠지만 어차피 직장 생활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없는 시한부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퇴직을 준비할 시간이다.

퇴직 후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저자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내게 어울리는 일거리, 취미와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확장할 수 있는 놀거리, 그리고 직장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서 그동안 놓쳤던 이를테면 가족, 주변 사람 등 새로운 것들에 대한 생각거리다. 퇴직으로 이 세 가지를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아오는 셈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뉴업의 일곱 가지 솔루션 가운데 재취업은 빠져있다. 상대방에 의해 결정되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뉴업의 발견은 '나'로부터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할을 스스로 창조하고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다.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눌 때 나는 건넬 명함이 없다. 그럴 때면 직장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줬던 존경이 내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그냥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고 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퇴직 후 시간이 남으니 책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독서는 여러모로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퇴직 후 독서는 소일과 소명,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콘텐츠를 어떻게 꾸준히 만들어갈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소비와 생산을 균형 있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p. 30)'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취향을 확장하는 놀거리이니 좋긴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한다면 뉴업을 찾아야 한다.

퇴직 후가 돼서야 자기 객관화를 한다면 나처럼 늦은 것이다. 허겁지겁 뉴업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늦기 전에 현재 자기 이름을 지우면서 퇴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불안해하며 자신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뉴업을 발견하는 여정에 들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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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프레임 - 우리는 왜 가짜에 더 끌리는가
샌더 밴 데어 린덴 지음, 문희경 옮김 / 세계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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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퍼센트 미국인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다. 2퍼센트, 적은듯하지만 미국 인구가 3억 2700만 명이니 650만 명에 달하는 숫자다. 우리나라 부산 인구의 2배와 맞먹는다. 요즘 세상에 지구가 평평하다니, 너무 터무니없다.

5.18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이 특수부대를 투입했다는 북한 개입설 역시 내가 보기엔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다. 그런데 2019년 한 정당의 공청회에서 국회의원씩이나 된 분들이 북한 개입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축제에서 압사 사고로 159명이 죽었다. 그때 일부 극우 유튜버는 각시탈을 쓴 사람들이 아보카도 기름을 뿌려 뇌진탕으로 죽었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했다.

'음모론을 믿으면 이처럼 통제력과 편집증적 관념, 정치, 마술적 사고, 미신을 비롯해 갖가지 심리적 동기가 따라오기 때문에 음모론적 세계관은 매혹적인 괴물이 된다. (p. 87)'


내가 보기엔 진실이 아니거나 음모론이 분명한데 어떤 사람에겐 이 얼토당토아니한 주장이 매혹적이다. 이 책 <거짓의 프레임> 1부에서 왜 잘못된 정보에 우리가 혹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본다. 2부에서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있었던 이런 잘못된 정보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3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잘못된 정보에 맞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설명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뇌는 자주 보거나 들으면 친숙하게 느껴 진실로 잘못 판단한다.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내 뇌에 남아있는 잘못된 정보는 거짓임이 밝혀져도 계속 남아 영향을 미친다.

거짓 소문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사람들을 죽여왔다. 다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소셜미디어가 거짓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 역할하면서 더 빠르고 더 깊이 더 멀리 퍼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타인을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라 설득에 저항하는 방법을 다룬 책이라고 소개한다.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로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에 맞서 우리의 정신을 방어하고 저항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된 정보를 바이러스에 빗대어 백신을 맞아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을 들어 그 방법을 안내한다.

'맥과이어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태도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더 많이 제시하기보다 약한 공격에 노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 과정을 우리 몸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p. 275)'

바이러스를 예방하듯 약화된 버전의 가짜 뉴스라는 백신을 맞아 마음의 항체를 만들면 도움이 된다. 변종 바이러스처럼 다양한 거짓 정보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 개인에게 일일이 백신을 접종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집단 면역을 이뤄 아직 백신 접종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거짓 정보도 바이러스처럼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널리 퍼져나가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이외에 어떤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예방이 항상 치료보다 나은 법이다.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게서 잘못된 정보가 멈춘다. 이는 사회의 집단 면역력도 개인의 저항력에 비롯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을 어둠의 조작술을 물리치기 위한 지침서로 삼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의 유능한 손에 달렸다. 현명하게 써주기를 바란다. (p.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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