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막걸리에 사이다 살짝
장경자 지음 / 책마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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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십이월 아버님이 소천하신지 1년 만에 두 누님과 고향을 찾았다. 밥을 먹으며 나이 든 누님들 모습을 보며 얼떨결에 제안했다. 세 사람 생일날 모이자고. 생일 축하금을 보내면 생일인 사람이 만날 곳을 정해 밥을 사고 커피도 사고 수다 떨기로.

며칠 전 작은 누님의 생일이었다. 그때 수다 떤 이야기들을 <인생은 막걸리에 사이다 살짝>에서 다시 만났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누나도?'
'그래 맞아 (이심전심? 동상이몽!)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네~'
'그거 오지랖이야~'


'투박한 내 글이_ 마음을 쓰다듬는 반푼어치의_ 위로라도 되기를... (프롤로그)'

깔깔대며 웃다가 눈물을 글썽이고...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위로하고... 큰 누님 생일, 내 생일에 만나 나눴던 이야기는 엊그제도 이어졌다.


'사춘기를 겪어본 부모는_ 자식의 질풍노도가 이해되지만_ 갱년기를 겪어보지 못한 자식에겐_ 이해하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_ 조증과 울증을 넘나들며 (p. 32, 33, 어찌 알겠누...)'

아내가 요즘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 때문에 갱년기를 더 심하게 겪고 있다는 내 말을 시작으로 두 누님의 갱년기 극복 배틀이 펼쳐진다.
"아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누나들도 갱년기를 심하게 겪었구나? 난 아내의 갱년기에 겨를이 없어 내 갱년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거든~"
"ㅎㅎ 너도 갱년기가 있니? 남자도 있는 줄은 몰랐다~ 얘~"


'그동안 살아온 삶을 부정한_ 피검사의 살벌한 결과에 형은_ (...) 한 달 동안의 금주와 아침, 저녁 스쿼드 100개를 선언했다. (p. 83, 빨간불이 떴다!!)

스콧 니어링이 백 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했다는 말과 함께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여든다섯?"
"언니 그건 너무 이르지"
"근데 그 사람은 왜 곡기를 끊었대?"
"이렇게 사는 건 삶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일 거야.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건강하지 않다면, 그래서 자식들에게 누를 끼칠 정도라면 그때는 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우리 셋의 이심전심이었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려고 매일 아침, 스트레칭에 홈트를 1시간 30분 동안 한지 몇 년 됐어"
"그래 그래야지. 너 대단하다~ 야~"


'엄마!!!!_ 냄비를 맨손으로 집어 식탁에 올리는 나에게_ 딸이 눈을 하얗게 흘긴다_ (...) 내가 그렇게 이해 못 했던 친정엄마의 모습을_ 닮아간다_ 이젠 목소리도 행동도 닮아있다_ .......내 딸이 걱정이네_ 참나 (p. 184, 185, 그렇게 닮아 간다)'

"시집간 딸이 나은 손녀를 처음 안아본 친정아버지가 딸아이가 다시 얘기가 돼서 온 것 같다고 말했데."
"아버지들은 그렇게 느끼는가 보네?"
손주 볼 기회를 포기하더라고 나는 딸아이가 시집가서 고생할 걸 생각하면 차라리 결혼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근데 왜 아들은 결혼했으면 하지?) 딸만 둘인 두 누님의 생각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둘씩 있는 딸들에게로 옮겨갔다.
"그래~ 결혼해서 고생하는 모습 보면 안쓰럽긴 해."
결혼한 딸아이 걱정이 여전한 누님들이다. 장경자 작가처럼 그 딸아이들이 자기를 닮는 건 아닌지... 그런 같은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앞모습이 화려해 눈이 부셔도_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다_ 누구에게나 고단한 흉터가 있기 마련이다_ 그게 인생이니까 (p. 218, 거기서 거기)'

어느덧 우리 세 남매는 각자의 삶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던 서로의 인생을 들여다 본다. 이제서야 참견하는 오지랖을 떤다. '그런 거 부러워할 거 없어', '그게 왜 니 잘못이니?', '이제부터라도 이왕이면 맛있는 거 먹어', '너 언제 그렇게 머리카락이 빠졌어? 서리태가 좋다는데'...


'고단한 삶에 별사탕 같은 당신의 순간들을_ 응원합니다. (...)
은근 기분 좋은 날들이 있기를_ 응원합니다. (...)
지금의 선택 또한 장하다고 말해주는 누군가 당신 옆에 있기를_ 응원합니다. (...)
당신의 마음이 누룩 같은 시간들로 잘 발효되기를_ 응원합니다. (에필로그)

이렇게 우리는 일 년에 세 번이라도 만나 서로 응원해 주기로 마음먹은 걸 잘한 일이라고 자화자찬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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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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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함께 읽는 '소설, 잇다' 시리즈 여섯 번째는 60년 동안 활동한 2세대 작가 박화성과 역사, 판타지, SF, 청소년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박서련 작가를 잇는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다. 박화성의 소설 세 편과 박서련의 소설과 에세이가 각각 한 편씩 실려있다.

박화성은 사회적, 역사적 약자의 편에서 목소리를 높였으며 박력 있고 의기가 넘치는 글을 쓰며 자신을 여성작가로 분류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박서련 역시 소수자와 약자, 역사나 사회에서 배제된 여성의 목소리에 항상 주목하며 글을 쓰는 작가다.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에서 서동권은 하수도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책임자를 상대로 석 달이나 밀린 임금을 받아내려고 투쟁한다. 또한 동권은 부하린의 유물사관 책을 읽으며 동료들에게 계급적 초등 지식을 넣어 주려고 노력한다. 한편 동권은 이복 여동생의 친구인 용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동권 자신처럼 가난한 노동자가 부잣집 딸인 용희를 사랑하는 것과 사회주의자의 길로 나서는 자신의 동지로서 용희는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로 사랑하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그러나 용희는 어쩐지 누가 아오?" (p. 54)'

(중략)

박서련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를 다시 쓴 작품이다. 독서 동아리 회장 진은 총여학생회를 재건하기 위해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림은 진과 비밀스러운 동성애 관계로 그의 선거를 적극 돕는다. 독서토론 책으로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를 정하면서 림은 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로 사랑하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다. 우리의 사랑은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다.
정세에 합당한 연애란 무엇일까?
이러한 주제에 골몰하는 이상은 소모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p. 192)'

둘의 관계를 독서모임에 알리자는 림의 말에 진은 '여자 총학생회장을 본 적 없는 학교가 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은 괜찮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어. (p. 195)'라고 말한다.

박서련은 <하수도 공사>에서 계급과 이데올로기가 달라 '정세에 합당하지 않은' 동권과 용희의 관계를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에서 총여학생회의 재건을 꿈꾸는 진과 레즈비언 관계인 림으로 바꿔 놓았다. 림은 진에게서 '정세에 합당하지 않은 연애'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동권을 본다.

'그런 걸까? 언니는 동권이고 나는 용희인 걸까?
그러니까 언니는 나를 애인보다도 한 동지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동권이 정말로 용희를 동지라고 여겼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느꼈다면 어째서 용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을까? (p. 201)'

100년 전 여성의 온전한 삶을 가로막는 '정세에 합당하지 않은' 상황은 그 조건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여전하다.

'가부장적 위계 구조와 사회주의자로서의 분투가 긴밀히 공모하는 가운데 (p. 233, 해설)' 박화성은 남편 옥바라지를 하며 여성 가장으로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글을 썼다.

박서련은 박화성과 다른 여성작가의 삶을 살고 있을까?
'학력에 대해 말할 때는 '나왔다'라는 말의 모호함을 즐겨 악용한다. 나왔다고 말하면 졸업을 한 건지 자퇴를 한 건지 헷갈리니까.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퇴 사실을 숨기지는 않는다. 누가 묻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을 뿐이다. (p. 206, 박서련 에세이 <총화>)'

여성 작가 박서련 역시 누구의 애인, 누구의 아내, 학내 중앙 자치기구 단체장의 여자 친구, 노조 상근자의 아내로 살았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소설이 기반한 사실에 대해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박서련은 고백한다.

여성 또는 여성 작가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사회를 향해, 박서련처럼 대학교 자퇴 사실, 이혼한 남편 이야기를 할 용기가 없어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는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 편견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누가? 가부장 제도가. 여성과 이데올로기를 논하는 것을 한가하다 여기며 자신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남자로 규정하는 자들이.

박화성과 박서련, 그리고 역사와 사회에서 배제된 채 살아온 여성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p. 202)'

그리고 비겁하게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핑계를 더 이상 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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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8 - 바로크 문명과 미술 : 시선의 대축제, 막이 오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8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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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기만 한 미술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 저자 양정무 교수는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뺏겨 미술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술에 담긴 원초적 힘을 살려내는 것, 미술에서 감동뿐 아니라 교훈을 읽어내고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소명입니다. (p. 5, 시리즈를 시작하며)'

양정무 교수는 미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고 말한다. 미술에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미술 감상은 그 작품이 탄생한 시대를 똑바로 보는 셈이다.


'유럽 미술이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당 부분 이 책이 다루는 바로크 미술 때문일 겁니다. 시기적으로 17세기, 정확하게는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유럽의 미술은 전례 없이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인간의 시선을 압도합니다. (p. 6, 8권에 부쳐 - 바로크 시선의 대축제)'

'바로크 baroco'는 포르투갈어로 '불규칙한 진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술사에서 이 단어는 '과장된'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눈부신 미술, 너무나 화려하고 환상적이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바로크, '난.처.한 시리즈' 7권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출간 이후 2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양정무 교수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바로 '시선의 대축제, 바로크 문명과 미술' 이야기다.

종교개혁 시대(1517년 이후)에 교회의 예술작품들을 이교도적인 우상숭배로 여겨 대량으로 파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반종교개혁(약 1550년 이후)이 시작되었고, 구교 지역에서 바로크 양식이 발전했다. 처음에 바로크 예술은 가톨릭 교황청의 선전 예술로 활용됐다. 교황청이 발주한 교회 건축물에 장중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살리도록 절대군주 측에서 요구했는데, 이것이 바로크의 형식언어의 근간이 됨과 동시에 군주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양식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가 있었다면 이 책 8권에는 바로크 '작가의 시대'를 대표하는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벨라스케스 등이 등장한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인생의 모든 다양성, 모든 매력, 모든 아름다움은 빛과 그림자로 구성된다.'라고 했던가.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으로 현실을 겨눈다.

이탈리아가 르네상스 화가들의 고향이라면 바로크 시대의 그 역할은 네덜란드가 떠맡았다.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황제와 귀족층을 위해서, 또 다른 한편의 화가들은 상업 부르주아를 위해 작업했다. 루벤스는 궁정에서 활동하며 군주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 명성을 얻은 '화가들의 왕'이었고 '왕들의 화가'였다. 반면 렘브란트는 부를 축적한 신교 세력의 시민계급 편에 선 화가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소라면 바로크를 대표하는 미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신비한 분위기가 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잡아끈 명작 (p. 467)'을 그린 화가가 바로 페르메이르다.

스페인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단연 디에고 벨라스케스다. 그의 작품 <시녀들>의 다채로운 해석은 백과사전 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고야, 피카소가 작품으로 <시녀들>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양정무 교수의 '난.처.한 시리즈'는 미술에 대한 깊이보다는 폭을 넓힐 수 있는 미술 교양서에 더 가깝다. 주요 작품이 책 속에 가득하다. 각 챕터 말미에는 작품과 사건이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시회나 박물관에서 안내서를 읽고도 몰라서 난처한 경험이 있었던 우리 모두를 위해 안성맞춤인 미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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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법 - 생존을 위한 두 가지 요건에 관한 이야기
장혜영 지음 / 궁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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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법, 모양새로 보면 이 둘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니 양극단에 가깝다. 하지만 17년 7개월가량 검사로 일했던 장혜영 변호사는 이 책 <사랑과 법>에서 이 둘을 묶었다. '검사로 일하는 동안 '남의 일'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 '나의 일'이 되는 과정 (p. 8)'을 일곱 개의 주제로 풀어낸다.

자살이나 고독사로 인한 죽음의 원인이 사랑의 부재가 아닐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책임이 없고, 책임이 없으면 형벌을 받지 않는다. 사랑에서도 그럴까? 사랑에 필요한 책임능력을 저버리고 사랑하는 대상과 스스로를 책임지지 않는 경우, 사랑으로부터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가 말이다.

사기꾼을 진심으로 믿어 사기를 당했다면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 자신을 자책할 필요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착오가 있었더라도 나의 사랑을 비난할 수 없다.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아이를 사교육 현장에 밀어 넣는다. 학대 범죄를 저지르면서 이를 사랑이라고 치장하고 있지 않는가. 가정의 경제 형편, 아이의 재능, 건강 등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여긴다.

사랑의 유대가 형성된 친족 간의 성범죄에서 피해자인 미성년자를 대리해 제3자가 처벌불원서와 함께 합의할 경우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고통에 사랑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음을 확인하는 고통이 더해진다.

즐거움을 얻는데 효율을 따지자면 강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중독돼서 투약이 계속될수록 그 효율이 떨어져 즐거움이 줄어든다. 사랑은 어떨까? 들이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효율이 없어 반복하더라고 효율이 떨어지지 않아 즐거움도 감소하지 않는다.

우리 법은 소멸시효 제도로 가해자의 가벌성에 기한을 정한다. 하지만 공소시효로 정해진 시간은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살인죄의 피해자 유족이 살인자를 상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그 고통이 소멸시효 기간을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통의 기한은 사랑의 기한이기도 하다. (p. 204)'

이렇듯 법에 사랑을 가져오면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사랑이란 친밀감은 신뢰를 만들어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랑에 법이라는 정의가 없다면 부패가 파고든다. 우리는 지금 최고 권력자에게서 잘못된 사랑에 법마저 사라진 부패를 지켜보고 있다. 반대로 사랑은 없고 법이라는 정의만이 남았을 때 세상에 공포가 가득해진다. 우리는 지금 국민을 향한 사랑이 없이 차별적 법에 의한 지배(Rule)를 일삼는 독재 정권을 직접 보고 있다.

검사로 일했던 저자 장혜영이 생각한 사랑과 법은...
'사랑과 법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p. 207)'
'법은 사랑이 지속 가능하도록 뒷받침한다. (p. 207)

사랑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법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둘 다, 어쩌면 양극단에나 존재할 법한 사랑과 법, 둘의 조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더 이상 비질란테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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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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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모두 일흔 살이 되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지만 실질적으로 친해진 건 서른 살이었을 때 동창 모임에서 만난 다음부터다. 사십 년 지기인 셈이다. 어느 날 데루코는 도와달라는 루이의 전화를 받는다. 데루코는 루이와 함께할 인생의 새로운 테마 하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데루코는 생각 끝에 최종적으로 이렇게 적었다.
"잘 있어요.
나는 이제부터 살아갈게요."
그렇게 데루코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39년간 살아온 그 집을, 아니 45년에 이르는 도시로와의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왔다. (p. 16)'

도시로는 아내를 섹스 기능이 추가된 가정부 취급하는 데루코의 남편이다. 그런 남자와 45년이나 산 데루코는 남편의 은색 BMW에 몸을 싣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다.

루이는 스물두 살에 열다섯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다. 딸은 하나 낳은 후 루이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고 그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알았을 때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을 뿐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루이는 사랑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겨우 4년 만에 그가 차에 치여 죽을 거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p. 103)'

40여 년 세월이 흘러 복권에 당첨된 루이는 여생을 보낼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데 그 돈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루이가 끔찍이 싫어하는 파벌 무리가 가득했다. 루이는 그곳을 떠나려고 데루코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요즘 아내가 우울해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십여 일 전에도 눈물을 흘리며 신세한탄을 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아내를 지배했다. 어찌 도와줘야 할지 난처하다. 내 나이 때 여자들 대부분 남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이제 스스로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에 아내의 삶 전체가 허물어진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일흔 살에 새로운 테마로 삶을 꾸며놓는 데루코와 루이의 마음가짐이 아내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내어주는 삶을 멈추고 나를 향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까지 내어줬다고 생각하는 삶도 결국 나를 채우는 삶이었다고 생각을 전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데루코와 루이는 다시 시작한 첫 목적지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루이의 손녀를 만난다. 그리고 마치 일흔이란 나이가 청춘이라는 듯이 다음 목적지 또 다음 목적지를 향해 BMW를 타고 달려간다. 데루코와 루이, 이제 이 둘은 '불쌍한 나.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던 나,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야. (p. 201)'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을 위해서 외출해 줄 수 없는지 아내가 물어왔다. 그러겠다고 했다. 일주일마다, 아내와 함께하는 소풍에서 아내도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은 일흔 살에 비로소 시작될 수도 있고, 그 이후의 삶도 여전히 반짝일 수 있으며, 맛있는 걸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삶의 진리를 아는 그녀들을, 당신도 사랑하게 되길! (박은교, 영화 <마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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