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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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서울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반대하며 주민 투표를 제안했고, 그는 이 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 구분 없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를 묻는, 즉 '선별적 복지'냐 아니면 '보편적 복지'냐를 묻은 투표였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이 설계하고 집행한 복지 정책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조선은 구황,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구황과 취약 계층 복지를 조선시대 기록을 살펴보며 다룬다.

1장에서는 구황 정책인 환곡과 진휼 그리고 취약 계층인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노비에 대한 복지 정책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다시 여는 글'에서는 조선의 복지정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재해석한다.


조선의 복지는 '가장 어려운 자'는 돕는, 아니 왕의 시혜(施惠)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자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돕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일 때 왕이 베푸는 식의 복지정책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어려운 자를 돕는다는 점에서 조선의 복지 정책은 '선별적 복지'였다.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선별하는 자의 힘이 작용하는 부패도 생겨난다. 흔히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든다. 이를테면 실업급여를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주면 아예 일할 생각을 안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눠주는 자인 관료들의 부패가 복지 정책을 망쳐버렸음을 조선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횡령, 탈법을 동원해 부를 챙겼다.

'그래서 '복지를 확대하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국민이 나태하면 부패가 만연해진다'는 말은 무책임합니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수단이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p. 219)'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따질 때마다 화가 난다. 언뜻 보면 한정된 지원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지원하자는 주장이 효율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복지만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발상은 불평등을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1년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아이들에게 '너는 못 사는 아이야'라는 낙인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찍으려는 의도가 너무 괘씸했다.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급식카드인 '꿈나무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키오스크가 있는 매장을 찾아간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꿈나무카드' 내미는 걸 수치스럽게 여긴다. 왜? 멸시하고 불편한 눈으로 보며 수치심과 절망감을 그 아이들에게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니가 어떻게 이런 비싼 음식을 급식카드로 사 먹을 수 있냐'라며 아이를 쫓아내고 복지센터에 신고까지 한 어른도 있었다.

빈부격차는 급속도 벌어지고 있는데, 복지가 불평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펼쳐 온 증세 없는 (선별적) 복지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해야 했다. 언제까지 태어날 때 불평등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고 가난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릴 것인가.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 정책은 어떤 정책의 장단점과 그것의 옳고 그름을 밝히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점을 모두 고려하였을 때 '얼마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p. 286)'

우리 사회의 불공정 요인을 그나마 최대한 없애는 대안은 기본소득 제도밖에 없다는 저자의 생각, 여기에 나의 의견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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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과학 - 빅뱅에서 미래까지, 천문학에서 생명공학까지 한 권으로 끝내기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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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15km쯤 떨어진 곳에 반짝이는 불빛이 있다. 그 불빛에서 138억 년 전 우주가 시작됐다고 가정하자. 10억 년을 약 1km라고 어림잡아 계산하면, 45억 년 전에 생긴 지구는 우리로부터 4.5km 떨어진 곳에 있다. 공룡은 200m, 최초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났으니 겨우 20cm 앞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5,000년 전이니 5mm 앞이다.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우리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긴 역사의 우주만큼이나 우주 공간 또한 어마어마하다.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있습니다. 지구와 태양을 비롯한 수천억 개의 별들이 모인 은하, 그런 은하가 거의 2조 개나 모인 우주가 138억 년 전엔 하나의 점일 뿐이었죠. 우주는 우리의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도 작았습니다. (p. 25)'


인천 백석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준호 선생님의 <세상의 모든 과학>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과학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대답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책을 읽고 부모에게 달려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p. 9, 들어가며)' 책을 썼다고 한다. 또한 저자가 직접 그린 150여 점의 그림은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상상하는 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우주와 지구, 인류 그리고 인류가 만든 문명의 역사는 어떻게 비롯됐을까.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서로 길들이며 바꿔놓았을까. 자연에서 어떤 힌트도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상력만으로 활과 화살이라는 무기를 만든 똑똑한 인류에게 폭력은 영원한 디폴트 값인가.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죠. "저는 3차 세계대전 때 무엇으로 싸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4차 세계대전 때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싸울 것이란 점은 분명히 알 것 같네요." (p. 204)'
수천 년을 거치며 이룩한 문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인류는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AI는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공포를 가져다줄까. 이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까?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명의 설계도를 손에 쥐게 될까? 그렇다면 그 힘을 얻은 인류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건가?

저자는 어두운 미래와 밝은 미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다. 화석연료 사용을 막지 못한 결과 기후변화로 큰 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 폭염과 가뭄이 찾아오고 폭풍이 강력해진다. 2090년 식량부족으로 각국의 정부가 붕괴된다.

다행스럽게도 에너지 혁명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가뭄과 폭풍 같은 기상재해가 서서히 줄어들고 기후도 천천히 변해 적응할 수가 있다. 2080년 세계 인구도 감소하고 농업기술 발전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해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진다.

5,000여 년간 만든 우리의 문명이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선택에 따라 100년 안에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이어지게 될지가 결정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과연 꿈같은 세상을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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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 왜 개혁은 항상 실패할까?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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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기들에 푹 빠진 박영서 작가의 '시시콜콜 시리즈' 네 권 가운데 '조선부동산실록'은 땅과 집을 사이좋게 나눠가지기를 원했던 조선 사람들이 어떤 시도를 했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연 성공했을까? 실패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조선의 땅과 집의 역사를 1부, 2부로 나눠 살펴본다. 조선은 농사가 근본인 나라여서 조선인들의 생계비부터 나라의 운영 예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돈은 땅에서 나왔다. 그래서 땅이 갖는 의미는 막대했다.

조선에서 집은 땅을 가진 사람의 권리에 속했다. 그래서 땅에 비해 집 문제는 덜 예민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처럼 서울로 사람들이 몰림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은 무척이나 비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여는 글'에서 조선의 부동산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점검해 본다.


고려 말, 적은 사람이 토지 대부분을 독점했다. 농사짓는 땅 하나에 주인이 여럿이라 농사꾼은 중복으로 수취를 당했다. 국가 재정도 고갈되어 제대로 군대를 운영할 수도 없었다. 고려는 국가로서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돼버렸다. 이렇게 된 원인은 정치에 몸담은 사람 대부분이 나라의 모든 것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부패의 중심에 땅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의 등장은 당연했다. 토지 국유화에 입각한 토지 재분배를 통해 고려를 좀먹은 불평등한 토지 구조를 해체하고자 하는 혁명은 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의 토지 분배 원칙이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이가 땅을 가진다'였다면, 집터 분배의 원칙은 거자유대(居者有垈), 즉 '실거주자가 집 지을 땅을 받는다'였습니다. (p. 194)'

조선에서 그 이상이 실현됐을까? 아니, 조금씩 그 이상은 잿빛으로 물 들어갔다.

'그것은 한 가지 사이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자가 부동산을 독점하고, 부동산 독점이 사회적 문제가 되며, 독점을 해체하기 위한 정치적 작업이 시도되었다가 다시 좌절되는 사이클입니다. 이러한 도돌이표는 대한민국에서는 정권마다. 조선 왕조에서는 오백 년 내내 벌어졌던 일입니다. (p. 20)'


부동산 불평등은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왜? 고려가 망국에 들어선 원인과 조선 왕조 오백 년 내내 벌어졌던 사이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은 부동산을 사는[buy] 사람만을 위한 정책을 펼 경우 그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결국 조선의 주택은 '사는[live] 곳'으로 시작해서, '사는[buy] 것'으로 끝났습니다. 정부가 적절할 때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고, 주거난 해소를 위한 장기적인 해법을 고안하지 않았으며,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진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임차인을 보호하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백성을 자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켰죠, 살 권리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불법건축물에서 간신히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정부가 시민의 살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시장 논리에 대응하지 않으면, 집을 얻는 과정이 아비규환에 이르고 맙니다. 이것이 조선의 주택사가 남긴 귀중한 경험적 자산입니다.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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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 여자의 죽음으로 사랑을 다시 읽는다 허사이트 시선 총서 3
윤단우 지음 / 허사이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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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에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p. 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윤단우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는 작업이다. 고전의 서사 구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왜 꼭 '죽음'으로 완성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여성과 죽음 사이에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햄릿>의 오필리어, <지젤>의 지젤, <마농 레스코>의 마농, <춘희>의 마르그리트, 그리고 <제인 에어>의 버사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는 정신이 나가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한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카르멘>의 카르멘,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아내는 남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남성 집단이 한 여성을 죽인 사례도 다루는데 실존 인물인 마타하리다. 반면 남자를 죽이는 여자도 있다.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 <살로메>의 살로메, <메데이아>와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의 메데이아가 그 경우다.


마음먹고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 떠올린 체 고전을 읽지 않는 한 이런 분류를 하기란 쉽진 않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우리의 철학은 남성 중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죽었답니다' 전문을 소개하면서 말하듯, 성별에 드러난 가치는 아름다움을 위한 죽음이 여성이라면, 남성의 죽음은 진리를 위해서다. 그러니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이라면 이를 짊어져하는 건 여성의 몫이다. 사랑은 진리이기보다는 아름다움에 가까우니 말이다.

참아야 하는 경우라면 누가 참아야 하나. 여성? 남성? 물론 인내가 성별에 관계없는 가치이긴 하지만 여성화되기 일쑤다. 양보해야 한다면? 희생해야 한다면? 비폭력은? 전쟁과 상대적인 평화는? 이런 가치를 수행하는 여성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난이 쏟아지거나 처벌받기까지 한다.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이렇게 대입해 보면 확실해진다. 가정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여성과 남성 가운데 누가 인내하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비폭력으로 맞서야 하나 (또는 맞서 왔는가). 평화가 깨진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전가되는가 (또는 전가되어 왔는가).

결국 사랑의 불멸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 양보, 비폭력, 죽기까지 희생해야 하는 존재는 여성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라는 명제가 또렷해진다.


저자가 꼽은 열다섯 편의 문학은 대체로 영화나 연극, 오페라, 발레로 옮겨가며 재창작되는 작품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출가가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레지 테아터(Regie-Theater)' 형식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p. 328)'

물론 전에도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 이 책에서는 두 작품을 한 꼭지씩 다뤄 소개한다.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제인 에어>의 프리퀄 성격의 작품으로 브론테가 지워버린 앙투아네트에게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부여한다. 리스의 앙투아네트는 비폭력이 아닌 공격성을 나타낸다.

크리스타 볼프는 <메데니아, 악녀를 위한 변명>에서 메데이아의 악녀 이미지에 반기를 들며 메데이아 입장에서 새롭게 스토리를 재구성한다. 볼프의 소설에서 메데이아에게 씐 모든 죄악은 조작된 것이다.

저자는 재창작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포커스를 두고 있는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 역시 원작을 핑계 대며 죽은 여자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 더 진보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그 발걸음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을 것이다. (p. 330)'

그리고 이 책의 효용성과 함께 바람도 어필한다. 고전 작품을 '여성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어보기를. 그러면 그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스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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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이제 얘기해
봉부아 지음 / 자상한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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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년 이맘때다. 인스타 친구의 피드로 봉부아(봉천동 부자 아줌마...) 작가를 알게 됐고 그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글의 유쾌한 유머에 빠졌다 (응?). 망설이지 않고 봉부아 작가의 첫 책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고 1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다정한 편의점 에피소드에 행복했었다.

지난해 말 그의 두 번째 책 출간 소식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 해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새해가 돼야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희망찬 새해가 밝자마자 신청했다. 신청도서가 밀려 3월이 돼서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해>를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책 출간에 얽힌 에피소드와 친구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자전적 소설이었다. 계속 작가의 블로그를 읽어온 터라 일상 에세이를 읽는 듯했지만, 소설이라고 하니 픽션이 더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가 봉부아는 따분하고 지루할법한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마법사다. 그의 일상에 우리의 일상이 겹친다. 자신의 능력에 인색하고, 어떤 연유로 질투하게 돼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때론 절망하고, 분해서 소심하게 복수하고... 세상 모두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하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유머를 발견해 작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탈모 방지와 발모 기술에 관한 생각이다. 머리카락이 안 빠지거나 새로 나게 하는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지되어야 한다(치료용만 허용하자). (p. 195)'

왜??? 발모제가 분명 비쌀 테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그걸 못 살 테고, 그럼 가난한 사람만 대머리가 될 테고... 불공평하다. 누구나 대머리 일수 있어야 공평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즉 돈이 세상을 맘대로 조정하면 안 된다는 건데, 그 생각이 유아적이긴 하지만 어느새 '맞아 맞아~ 그건 안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돈 잘 번다는 저 집 남편은 성격이 괴팍할 거야, 공부 잘하는 그 집 아이는 인성이 안 좋을 거야. 시댁이 많이 도와준다며? 그만큼 간섭이 심할 거야. 우리 나이에 저런 몸매? 빵을 안 먹어서 히스테리 부릴 거야. (p. 197)'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한강 뷰 아파트를 자연스레 본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흐흐흐... 가끔 아내가 하는 말을 여기서 읽게 되네... 어떤 표정을 보여줘야 할지... 작가의 표현처럼 '신 포도들...' 그 신 포도가 단물나는 꿀 포도란 걸 내가 알듯이 아내도 알겠지? 봉부아 작가도 우리 부부도 모르고 싶을 뿐이다. 흥~~~

'조금 전 한 여자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우수에 젖은 채 걸었던 길을, 또 한 여자가 남편의 지사제를 사기 위해 허둥대며 뛰어가고 있다. 그 두 여자가 모두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p. 273)'

믿기지는 않지만 때론 센티멘털한 나, 때론 허둥대는 나가 내 모습이기에 모순 덩어리인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을 접고 빙긋 웃게 만든다. 작가의 진솔함에 유쾌함이 더해진 결과다. 가끔 마음이 상할 때 봉부아 작가의 블로그를 열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거기서 나온다. 작가가 바꿔놓은 살아갈만한 일상에 힘을 얻어 내 일상도 그렇게 바꿔놓곤 한다.

'인생은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는 사탕 뽑기라고 한다. 내가 여태 뽑은 사탕은 쓴맛이거나 신맛뿐이어서, 지지리 운이 없는 나는 내 사탕 통마저 불운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언젠가부터 달콤한 맛이 하나씩 나오더니 지금은 무얼 뽑아 입에 넣어도 단맛이 난다. 내가 쓴맛을 먼저 뽑았을 뿐, 나의 사탕 통도 행복과 불행이, 기쁨과 슬픔이 골고루 들어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내게 남은 사탕이 단맛뿐이라고 자신할 수 없고, 언젠가 강력한 쓴맛에 또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저하지 않고 사탕 통에 손을 넣는 것. 무슨 맛이 나올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그날의 맛에 따라 기뻐하고 안도하며 때로는 눈물짓는 일이다. (p. 277)'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사탕 통이든 초콜릿 상자든 버릴 수는 없다. 사탕 하나씩, 초콜릿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삶이다. 어떤 맛의 사탕이 됐든지 어떤 맛의 초콜릿이 됐든지 내가 먹어야 할 것들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맛의 사탕이나 초콜릿이 남아있기를 바랄 뿐. 그게 희망이다.

'남편이 무서운 얘기를 한다. 내가 밤중에 빈 벽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어느 날은 어둠 속에서 콩콩 뛴다는 것이다. (p. 191)'

어떤 상황일지 궁금한가? 책을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아님 내 블로그의 발췌 글에서 확인해도 되고 ㅎㅎㅎ)

덧)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대성공이다. 역시 맛집은 줄 서기로 알아보고, 재미있는 책은 손때로 알아본다. (p. 163)'

바람을 덧붙인다면, 내가 신청한 봉부아 작가의 이번 책이 도서관에서 내가 다시 꺼냈을 때 손 때가 잔뜩 묻어 있기를... 그래서 그가 세 번째 책 도전에 자신감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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