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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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p. 13, 첫 문장)'

일본 전국시대, 계속되는 전쟁, 전쟁이 없는 곳은 없다. 전쟁으로 기아와 질병이 생겨나고 온 땅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에 이른다. 전진하면 극락이요, 후퇴하면 지옥이다. 이 함성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 패권을 눈앞에 둔 1578년 겨울, 공을 세우며 오다 가문으로부터 셋쓰 지방 일대의 지배를 일임 받은 아리오카성의 성주 아라키 셋쓰노카미 무라시게가 반역을 일으킨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구로다 간베에를 사자로 보내지만, 무라시게는 오다의 뜻을 거부하고 간베에를 성의 지하 감옥인 '흑뢰성'에 가둔다.

그날 이후 아리오카성에는 기이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 가뒀던 인질 지넨이 화살에 맞아 죽고, 승리한 전투에서 베어 온 적장의 머리 중 하나가 흉측한 얼굴로 변했으며, 밀사인 승려 무헨을 살해한 범인이 번개를 맞아 죽는다. 미스터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무라시게는 감옥에 갇힌 지략가 간베에를 찾아가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알려준 후 지혜를 구한다. 간베에는 무라시게가 찾아올 때마다 그를 조롱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할 단초를 알려준다.

무라시게는 왜 오다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사자 간베에를 죽이지 않고 가뒀을까? 간베에는 왜 아리오카성에서 일어난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무라시게에게 알려주었을까?

'노부나가는 죽이고, 무라시게는 죽이지 않는다... 그 평판은 천하에 퍼졌으리라. 소문을 퍼뜨리고 평판을 높여 이름을 알리고 아군을 늘린다. 모든 것이 전략이었다. (p. 443)'
'"간베에, 자네... 감옥 안에서, 나를 죽이려 했나." (p. 489)'

아리오카성에서 오다에게 반기를 들고 농성 중인 아라키 무라시게와 성 아래 감옥에 갇힌 구로다 간베에, 두 사람 각자가 도모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무라시게는 결국 세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누가 벌인 짓인지도 알아낸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기이한 일을 꾸몄을까?

'그것을 본 백성들은 명벌이 내린 거라고 믿겠지요.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죽어가는 백성을 안심시켜 주려 했던 것입니다. (p. 477)'


일본 전국시대나 지금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 근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약자는 백성들이요 국민들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 모두 그들만의 명분을 가지고 싸우지만, 백성들에게는 굶주림이란 고통만 있을 뿐이다. 전진해서 극락에 가고 싶어도 전진할 수 없다. 헛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사가 품은 뜻일뿐, 백성들과는 상관없다.

백성들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죽음? 아니다. 죽음으로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렵다. 백성들은 전진할 수 없어서 극락에 갈 수 없고 후퇴할 수밖에 없어 가는 곳은 지옥뿐이기 때문이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함성은 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자신들의 전쟁에 백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호일 뿐이다. 백성 앞에 놓인 건, 앞으로도 고통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며 맞이하는 잔혹한 죽음뿐이다.


갖은 명분을 끌어다 대며 전쟁을 일으키고, 헛된 구호를 앞세워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자들이여... 명심하기를... 전쟁은 국민들에게 잔혹한 고통만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훗날의 구로다 간베에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남겼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신하와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반드시 나라를 잃는 법, 기도하고 사죄해도 그 벌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신벌,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만민의 벌이 가장 두려우니라.' (p. 523)'

국민들이 당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마음을 돌려 내리는 벌이 가장 두려운 것임을... 그 벌을 두려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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