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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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과 생존자들. 무엇이 그들을 1년 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나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행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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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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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소중한 청춘과 생명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희생자 159명 부상자 196명. 이 대형참사 앞에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야 해던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이다.

책 제목에 지금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생각한다.

아...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태원에 머물러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태원에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에 주목하며 책을 읽게 된다.

 

 

예전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봐야 해요.

일상적인 대화 소재를 끄집어내려고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

그게 굉장히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진우씨 이야기

 

이태원에서 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진우씨는 이제 일상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동생을 잃고 난 상황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주변의 조언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다.

예식장까지 잡아놓으며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던 동생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살아질 수 있겠는가. 30년 넘게 살아온 일상이 깊은 슬픔 앞에 압도되어 몽땅 사라져버렸다. 그냥 찾아지던 일상이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하는 노력이 되었다.

 

 

'평범한 삶'이 어려운 숙제가 된 건 이진우씨 뿐만이 아니다. 동생 송영주씨를 잃은 송지은씨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제대로 되지 않음을 호소한다. 생존자 김솔 씨의 꿈은 이태원 참사 이후 꿈이 단 한 가지로 바뀌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상을 빼앗고 유가족들의 소망을 '평범한 삶'으로 바꾸어버린다.

 

159번째 희생자. 16살 고등학생 이재현 군의 자살 소식 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이 필요에 따른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지원센터에 어려움을 충분히 제기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상도 버텨가기 힘든 상황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자신의 힘듬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되는가?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찾아가는 치료를 해야만했다. 얼마나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그에 응당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 허기지고 목이 말라 걸어갈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100미터 앞에 밥상을 차려져 있는데 먹으라고 하면 그걸로 역할이 끝인 것일까?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정치적인 프레임이다.

 

외국의 풍습 '할로윈데이'를 따라하려고 놀려가서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뭐하러 사람 많은 데 가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빨리 애도를 표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며 재빨리 선긋기를 하는 대통령과 정부.

그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묻는다.

 


 

 

무엇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1년이 지나도록 이태원에 머물게 했나.

14명의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깨달은 건 한 가지였다.

 

"그들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애도를 충분히 치뤄지지 못하게 너무 빨리 잊혀짐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다.

 

참사 이후 너무 뿔뿔이 흩어진 희생자들. 어떤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누군가는 동국대병원으로 사방으로 이송된 희생자들의 시신들로 유가족들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호소한 끝에 겨우 찾아 희생을 치루고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가족들은 같이 애도하고 슬픔을 나눌 언덕이 필요하다. 같은 사고로 같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함께 나눠도 힘든 애도의 순간을 홀로 감당하라며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만남을 차단한다. 그 정부의 차단 속에 유가족들은 더없이 외로워지고 힘들어한다. 민주사회를 찾는 변호사 모임 (민변)의 중재로 유가족들이 겨우 모여 그제서야 서로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갈 힘을 찾는다.

 

애도의 순간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가고 또 다른 누구는 평생 애도를 하며 생을 보내기도 한다. 그 순간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4.16 세월호 참사 때도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애도 기간 끝난 후 잊혀진 참사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함께 슬퍼해지더니 요술방망이가 나타나 뿅 마술을 부리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렸다.

그 잊혀짐 속에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태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이태원에 있는 유가족의 마음이 이태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희생자 이지현씨의 동생 이아현씨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언니를 잃어버린 동생 이아현씨의 가족 앞에 이지현씨의 친구들은 그저 함께 해 준다.

힘들면 힘든대로 그 순간을 지켜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시간을 정해 만나며 고인이 된 이지현씨의 이야기를 나눈다. 잊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며 같이 있어줄 뿐이다.

 

10월 29일 멈춘 이태원에서의 159명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태원을 떠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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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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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의 미스테리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에서는 총 다섯 편의 추리 소설이 소개된다.


그 중 표제작이기도 한 『선녀를 위한 변론』은 위의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를 현대 법률적인 시각으로 비틀어 사건을 그려낸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것이다는 식의 전래동화.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 어찌되었든 행복하게 살면 되는 <선녀와 나무꾼>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법정. 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선한 동기를 부정한다.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법정, 오직 증거로만 가지고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곳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모든 전래동화에 숨겨진 그들의 동기를 속속들이 밝혀낸다.


"옛날 옛날에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꾼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사모한 나머지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선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후 나무꾼과 선녀는 재회를 하였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전래동화의 눈으로 바라본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모든 동기가 선하다.

선녀옷을 훔친 나무꾼 이쇠돌의 행위는 잘못되었으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행위가 미화된다.

그리고 선녀에게 옷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그는 순박한 사람이다. 그 과정이 어떻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전래동화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집인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선녀의 옷을 훔치고 자신의 아내로 삼은 나무꾼의 행동은 절도이자 인신매매 행위이다.

선녀 또한 자신을 납치한 나무꾼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간혹 납치범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지만 그건 사연 있고 잘 생긴 납치범과의 이야기지 가난하고 늙으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쇠돌이 이뻐 보이겠는가? 자신을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전리품처럼 여기는 나무꾼에게 콩깎지가 씌울 수 있을까?


옛날에는 용서될 수 있었던 행위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며 그 행위들은 범죄로 변한다.범죄로 변한 이야기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욕심과 질투 미움이 팽배한다.

선녀에게는 나무꾼을 향한 증오가, 나무꾼에게는 선녀를 향한 기만이, 이웃집 김삼둥은 이웃집 아낙네인 선녀를 향한 호감과 이쇠돌에 대한 질투심이 활활 타오른다. 해피엔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 숨은 동기를 철저히 파헤쳐내어 아름다운 전래 동화에서 살인 법정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인어공주>를 변주한 소설 「인어의 소송」 또한 마찬가지다.

인어가 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 조건이 주는 사랑의 이점을 설명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옛 광고의 카피처럼 영원한 사랑이 아닌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이 일으킨 살인사건. 전래동화는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을 띠지만 현대에서는 꼭 선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새롭게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는 임기숙과 반려견 타미의 이야기이다.

뜬금없는 말을 잘 하지만 임기응변이 강하고 사건 판단력이 빠른 임기숙의 재치가 빛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래동화를 비튼 앞의 두 단편 「인어의 소송」 과 「선녀를 위한 변론」보다 주는 흥미는 다소 덜하다. 전래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두 편의 이야기가 주는 강렬함이 너무 커서인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뜬금없는 말을 하는 임기숙의 성격도, 그리고 <모서리의 메리>에서 나오는 임기숙이 사건의 개요를 알게 되는 과정이 친절하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은 앞의 두 편의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


가상의 세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에서도 저지르는 살인사건.

텔레그램, 트위터 등 SNS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역할극. 그들만의 게임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계정만 삭제하면 모든 범죄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외국회사의 SNS 세계. 평범한 경찰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가상세계에 다가가기까지 끊임없는 반전이 펼쳐지는 게 이 마지막 소설의 백미이다. 그 반전앞에 소름이 돋고 소설 속의 이야기라기엔 현실 가능한 이야기라서 소름 돋게 한다.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에서 범인은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거 알아요 형사님?

아무리 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정말 별짓을 다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 돼요.

 

이 다섯 편의 소설 이야기 속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를 나는 이 한 마디에 모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너도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불행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살인을 저지른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 나만 불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결국 살인을 일으킨다.


이 소설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래동화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얼마나 많은 죄명이 생길까?

<춘향전>의 이몽룡은 혼인빙자죄이고 <홍길동전> 또한 일급 도둑일 뿐이다.

다음에 송시우 작가가 차기작에 이런 이야기들을 연이어 써 준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래동화부터 SNS까지 종횡무진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소설이다.

두 편의 이야기는 다소 아쉽지만 세 편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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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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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그 흔한 오락실 한 번 들어가보지 않았다. 오락에 대한 편견은 없다. 다만 내가 게임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질 게 뻔한 게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즉 나 혼자 게임은 어차피 지는 거야. 져서 기분 상하기 싫어 먼저 포기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게임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깨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 물론 이 책으로 게임이 재미있어 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지는 기분이 싫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게임이지만 져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라는 감정을 알려 준 소설이라는 의미다. 

 

먼저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저자 개브리얼 제빈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아마존 서점에서 작가의 도서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번역본이 출간될까 기대하면서도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바로 '게임'이라는 소재였다. 

 

그녀의 전작 <비바 제인>, <섬에 있는 서점> 매번 다르 주제이지만 게임은 난데없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전작 <섬에 있는 서점> 의 소재가 책인데 이번에는 독서의 방해물이자 대척점이라고 생각되는 '게임'이라니 이건 너무 전혀 다른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더구나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개베르일 제빈은 나의 모든 우려를 뛰어넘었다. 개브리얼 제빈은 또 한 번 내 최애작을 써내려가며 자신의 작품에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자, 그러므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꼭 읽었으면 하는 내 바램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면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1. 소설 한 권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이 휘리릭 뒤바뀔 수 있다는 게, 

샘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샘이 세이디와 함께 만들고자 했던

게임들의 주제가 되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의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게임을 만드는 친구 샘과 세이디의 이야기지만 이 책 한 권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버드생이자 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국계 미국인 샘, 

부유하지만 일본계 미국인으로 끝내 주연 배우가 아닌 엑스트라에 머물렀던 친구 마크스, 

그리고 후배 동료이자 동료인 동성애 커플 사이먼과 앤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등 미국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주류가 아니기에 알 수 있는 아픔, 샘이 어린 시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병실에서 지냈기에 느낄 수 있는 고통 등이 게임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 게임은 타인을 위로해준다. 

아... 이 게임은 나를 잘 알고 있구나 느끼게 한다. 

게임을 설계하면서 각자의 아픔이 노출된다. 그리고 그들이 현실에서 극복하지 못한 주제들이 게임을 통해 완성되며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대리만족시켜 준다. 

 

2. 게임이기에 알 수 있는 인생의 세이브 포인트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세이브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인 샘과 마크스는 하버드 재학생 그리고 세이디는 MIT로 미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다니는 천재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이 야심차게 시작한 게임 만들기 프로젝트. 천재들이 모인 집단이니 승승장구만 계속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던 어린 대학생들이기에 실패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끝에 그들의 합작품 <이치고>로 데뷔 초기부터 히트작을 터뜨렸지만 세이디의 야심작 <세계의 양면>은 대중의 기대를 사그라들게 만든다. 

어린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평생 통증에 시달려야 했던 샘은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고통을 주는 주체였지만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은 쉽지 않다. 

세이디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장해서 만든 <세계의 양면>이 실패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원할 것 같던 파트너 샘과 세이디 그리고 마크스의 관계는 때론 빛나기도 하지만 때론 위험하기도 하고 위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와 같이 게임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실패는 '끝'이라고 생각된느 반면 게이머들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세이브 포인트'가 있으니까 말이다. 

 


 

인생의 매 순간 고비고비마다 그들은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끝내 이길 때까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아... 지면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하면 되는구나."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게임이야기다. 

하지만 이 게임 안에는 게임을 만드는 샘, 세이디, 마크스 모두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게임을 만들게 된 배경, 게임을 만드는 태도, 게임을 해 나가는 과정 모두 각각의 삶이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건 게임 이야기이자 사랑이야기다. 

그리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계속되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다. 

 


 

이 묵직한 책을 끝낸 후 이 소설을 떠나보내기가 매우 아쉽다. 

임볼로 음붸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후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렌다. 진심으로 꼭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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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번씩 그 노인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우연히낯선 골목을 지날 때,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골목 안쪽을주시할 때. 그러면 미로처럼 이어진 이 골목에 내가 알지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평소에는 까맣게잊고 지낸다는 사실도. 어쩌면 그래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도.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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