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지털기기의 침범으로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논제가 아니다.

디지털 디톡스를 외치고 타이머를 설정하며 여러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출간된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이 방법들에 의문을 표한다.

좋다.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일까?

과연 이건 개인의 의지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 점에 의문을 품은 저자는 집중력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심층 취재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나 역시 궁금했었다. 최근 우리는 한 가지 이슈가 생기면 냄비가 부글부글 끓듯 토론을 하지만 금새 식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행동하거나 또는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행동하곤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빨리 잊어질까?

왜 세월호에 비해서 이태원 사건과 같은 건 더 빨리 잊혀졌는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그 원인에 대해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저 시스템에 정보를 더욱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

 

정치권이 불리한 이슈가 나올 때 그 이슈들을 숨겨왔던 다른 이슈들을 덮는다는 논리를 기억하는가?

이슈를 또 다른 이슈로 집중을 돌리듯 현대 사회는 새로운 정보로 가득 채우며 중요한 쟁점에 깊게 토론하지 못한다. 인터넷 뉴스와 소셜미디어는 연일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할 여러 영상들과 소식들을 들이붓는다. 매 초마다 들이붓는 홍수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빠른 속도의 정보는 깊이를 주지 못한다.

속도에 쫓겨 왜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정보의 홍수는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산만하게 만든다.

 

이 문제를 자신들이 아닌 여러분과 내가 자제력을 더 발휘해서 해결해야 하는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슬며시 떠밀고 있는 것이다.

 

산만함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저자 요한 하리는 이 점에 단연코 No라고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집중력의 문제는 바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기기 위해 개발되는 알고리즘,

우리를 스크린에 체류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온갖 추천 사이트들,

연속 재생과 무한 스크롤..

실리콘벨리에서 만들어내는 온갖 기술들은 우리가 뭔가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책임을 떠넘기기에 이 집중력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김으로 책임 회피를 하는 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아무리 애쓴들 실리콘벨리의 천재들의 기술을 이길 수 없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백전백패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싸워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들에게 요구하고 바꿔야만 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집중력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으로 깊게 관찰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왜 우리는 집중력을 회복해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집중해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 난제해 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기후 위기들이 온갖 정보의 홍수에 밀려 집중력을 잃는다면 우리의 골든타임이 늦춰질 수 있다. 우리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몰입해서 해결해야만 한다.

이 이슈는 산만함과 멀티태스킹 사회에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이고 집중력이 모여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집중력은 개인의 능력을 구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세계를 구하는 일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개인의 문제라고 여겨지던 집중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재조명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밝히며 일반인들이 이 집중력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한 해결책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개인의 책임을 전가하기 전 사회에게 똑바로 물어야 한다.

사회가 과연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는가 먼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사회에도 변화를 요구할 것을 분명히 물을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소한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게 해 줌을 알게 하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빈주먹만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15p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펄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비록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주인 미시즈 윌슨 부인의 친절로 모자는 생계에 대한 큰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미시즈 윌슨 밑에서 함께 일하는 농장 일꾼 네드 또한 펄롱의 엄마와 펄롱에게 친절했다. 물론 순탄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없고 남의 집에 거하는 식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석탄 야적장을 운영하며 살림꾼 아일린과 어여쁜 다섯 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엿한 가장인 펄롱.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딸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그 터닝포인트는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펄롱에게도 그렇다. 그날은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단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을 뿐이었다.

배달 예정 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그는 거래명세서를 전달할 수녀님을 찾기 위해 예배당 문을 열다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다. 더럽고 초라한 행색을 한 소녀들이 예배당 바닥을 죽어라고 문지르고 있다.

뜻밖의 불청객처럼 나타난 펄롱을 보고 구세주마냥 다가온 아이는 말한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안 된다고 거절하는 그에게 때마침 수녀가 나타나고 일은 마무리되며 허겁지겁 수녀원을 나오는 펄롱. 충격어 너무 커서일까. 그는 익숙한 길이였지만 길을 잃어 길가에 있는 노인에게 길을 묻는다.

 


 

길을 잃은 펄롱에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노인의 대답은 펄롱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펄롱은 과연 자신이 본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

 

다른 동네 사람들처럼 이 수녀원의 정체를 애써 무시하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위험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진실과 싸우느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의 일상이 평온하고 행복할수록 그 고민은 더욱 깊어져간다.

 

펄롱은 혼자가 아니다.

펄롱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딸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이 도시의 유일한 명문 여학교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졸업시켜야 할 딸들이 있다.

 

그의 평범한 소원.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무사히 이 난간을 통과해야 하는 그는 과연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가?

 

펄롱의 터닝포인트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이 불편한 진실 앞에 답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 작가는 펄롱의 성장 과정을 내내 강조한다. 미혼모의 아들, 미시즈 윌슨 자택에서의 추억, 엄마의 죽음 등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운이 좋을 수 있었는가?

 

미혼모인 엄마를 내치지 않고 한 가족처럼 대해준 미시즈 윌슨의 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신발끈을 묶는 걸 가르쳐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네드의 친절이 있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까지 오는데 당연한 건 없었다는 걸 펄롱은 알고 있었다.

그 사소한 친절이 쌓여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이 진실을 용기내지 못하는가?

 

현실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 진실에 눈감은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당연한 과정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같이 타인의 불행을 타인의 이야기로만 결론짓는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

지금의 일상이 이어질 수 있고 때로는 혹독한 시련이 이어질 수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용기를 내어 좁은 길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결코 큰 것들이 아니다.

작은 순간을 아는 사람들이 타인의 작은 순간들을 중요시하게 여길 수 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각각의 계절 (리커버 에디션)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보문고에서 매년 진행되는 50인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소설은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다.

보통 단편소설집의 경우 여러 편의 단편소설 중 대표적인 이야기 제목, 표제작을 골라 책 제목으로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설집 『각각의 계절』은 다르다.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중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마지막 문장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문장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한 문장에 사로잡혔다.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기 위해서는 각 계절마다 각자의 힘이 든다는 문장에서 고단함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왜 그럴까? 왜 각자의 힘을 필요로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책을 읽어나갔다.


첫 번째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준희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정원의 2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다. 대학 신입생 하숙 시절, 같은 하숙집에서 함께 어울렀던 준희, 경애, 부영, 정원. 이 네 명 중 정원은 이미 세상에 없고 그들과 함께 했던 경애와 부영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한 때 서로 의지하며 술친구가 되어주었던 친구들. 파릇파릇한 신입생 시절 만나 절친했던 4인방이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던 중 준희는 그들 사이가 금이 가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올린다.

경애의 생일 축하 겸 떠난 여행. 그 곳에서 정원은 방 청소를 하다가 사슴벌레를 발견한다.

어떻게 들어왔지 생각하며 집주인에게 묻는다.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어디로든 들어와."


집주인의 대답을 생각하며 이들은 사슴벌레식 문답이라 생각하며 다른 문답을 만들어간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사상의 암흑기에 우애는 친구의 배신에 한 친구의 가정이 무너지고 자연스레 무너져버린 이 관게 속에 주인공이 떠올린 '사슴벌레식 문답'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으며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음으로 관계의 진실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워낙 티를 내지 않았던 파독 간호사 출신 마리아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부고 앞에 성당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삶을 회고한다. 남의 가정 집안일을 해주며 사모님이라고 존대하며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나갔던 마리아. 아이도 낳았지만 입양 보내야 했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다시 쫓겨 들어와야 했으며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마리아를 안타깝게 여긴다. 태극기를 팔러 나가며 끝까지 쉽지 않은 생을 살았던 마리아. 그녀를 위해 뭐라도 하자고 사람들은 다짐하지만 결국 소설은 말한다. 이들의 결심은 곧 잊힐 거라고. 마리아의 죽음이 기억 속에 희미해지면 이 순간 서로 말했던 도움의 순간은 서로 잊힐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살아가면서 각각의 계절을 나기 위해서 각각 다른 힘을 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든 끝나게 되어 있는 관계, 각자가 스스로 각각의 힘을 낼 수 밖에 없는 관계만을 말할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씁쓸한 맛으로 끝날 것이다.


모녀 반희와 채운의 여행을 그린 <실버들 천만사> 에서는 딸에게 노년에 생기는 요실금 현상을 쑥스럽게 고백하는 반희의 모습이 나온다. 이혼 후 비정규직 청소 용역으로 일하며 홀로 살고 있는 반희는 딸이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여행지에서 TV를 보던 중 살기 위해 머리를 젤리화하며 변형하는 물고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딸의 두려웠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희는 생각한다.



 


《각각의 계절》에서 가장 우울한 내용을 꼽으라면 첫 번쨰로 수록된 <사슴벌레식 문답>을 꼽을 수 있다. 어떻게든 꺠어질 수 밖에 없었던 관계, 어떻게든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관계.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씁쓸함을 안긴다.


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기억의 왈츠」는 사슴벌레식 문답 같은 현실 속에서 희망을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었던 대학원 1학년 시절, 자신의 힘든 상황에 매몰되어 친구 경서의 추억을 잊고 살았던 그 때를 기억해낸다. 힘들었던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고 자신을 알아주길 바랬던 경서의 바램을 전혀 알지 못해서 친구를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그 때를 기억하면 미안함으로 친구를 기억하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까지 희망을 다짐한다. 자신이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듯, 친구와의 끊어졌던 관계도 다시 아물고 회복할 날이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나는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1월 23일의 음력 날짜를 꼬박 꼬박 확인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한번 더 진정한 왈츠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각각의 계절> 기억의 왈츠 - 241p

 

사슴벌레식 문답 같은 세상에서는 각각의 계절을 나기 위해서 각각의 힘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각각의 힘을 내게 하는 건 결국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왈츠의 날을 추게 될 날이 언제일지 몰라도 끝까지 희망해야 한다. 설령 끊어진 관계의 끈이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해도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으니 그날을 기다리며 견뎌야한다. 자신을 배신하고 간 친구일지언정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처럼,우리가 살기 위해 뇌를 젤리화하는 기형의 모습을 띠더라도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각각의 계절》은 인생의 떠오르는 슬픈 기억 속에서 머무르지 않게 한다.

지난 날들을 기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씁쓸해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 <기억의 왈츠>로 끝나는 건 그래도 이러한 슬픈 기억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꾸며 살아가자는 작가의 다짐이라고 생각이 된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가?

그래도 끝까지 꿈꿔야 한다. 그래도 끝까지 희망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힘이 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 가장 신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내가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임신했을 떄와 엄마의 파킨슨병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매번 신을 원망했다.

 

"왜 제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주셨나요?"

"아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쌍둥이를 주시지 도움 받을 구석도 없는 제게 하나도 아닌 둘을 주셨나요?"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던 엄마의 파킨슨병 소식을 들었을 때의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왜 하필 우리엄마인가?

 

더구나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면서 이 무서운 병을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왜 하필 이 병이 찾아왔단 말인가. 이게 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한 엄마의 믿음에 대한 대가란 말인가?

텔레비젼에서 7,80대 노인 연예인들도 건강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왜 엄마는 이제 50대에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소설 『단 한 사람』 은 내가 힘들 때마다 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 질문하며 이유를 찾는 이야기.

물론 앞서 내가 말했듯 왜 내게 이런 아이들을 주셨느냐보다 더욱 심오하고 깊은 질문들이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미수와 신일복 부부에게서 태어난 다섯 남매가 나온다.

 

일화, 월화, 금화 그리고 남녀쌍둥이 목화와 목수.

 

불행은 예고가 없이 찾아오듯, 이 가정에도 갑작스런 불행이 이들을 방문한다.

셋째 금화가 목화와 목수를 데리고 산에 가던 중 금화가 나무에 깔려 쓰러진 것.

어린 목화는 목수에게 어른들을 데리고 올 테니 언니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한다. 허겁지겁 어른들을 모시고 왔지만 이게 웬일인가. 금화 언니는 사라지고 멀쩡했던 목수가 나무에 깔려 쓰려져있다.

 

금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금화는 사라진 것일까?

금화는 죽은 것일까?

 

현장에 같이 있었던 목수는 이 사건을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목화는 언니를 지키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십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는 금화의 실종. 누군가의 실종은 항상 불완전한 가정에 머물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 또 다른 운명이 찾아온다.

 

쌍둥이 목화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사람들이 죽는 꿈이 펼쳐진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엉겹결에 단 한 사람을 구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 목화는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 할머니 임천자, 엄마 장미수 그리고 자기에게 걸쳐 이루어진 운명임을 알게 된다.

 

이 믿을 수 없는 운명 앞에 목화는 당연히 질문한다.

 

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운명이 자신에게 왔는가?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가?

그 단 한 사람이 악인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신은 있기는 한 것인가?

이 수많은 죽음과 생 속에서 죽음과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번 반복되는 수많은 죽음 속에서 삶은 한없이 작아보이고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자가 답을 찾는다고 했던가.

 

똑같은 운명에 체념한 할머니, 저항했던 엄마와 달리 끝까지 목적을 찾는 목화는 정반대에서 길을 찾는다. 바로 자신이 살린 단 한 사람을 통해서. 자신은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냐 했지만 단 한 사람은 결코 작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세상의 수많은 질문과 분노와 좌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 슬퍼하고 두려운 미래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는 끝내 인정하지 못한 사라진 금화 언니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것과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을 한없이 사랑하고 '오늘' 자신이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구하면서 비로소 삶을 즐긴다.

생의 마지막은 언제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기로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자는 오직 영원한 '오늘' '지금'을 사는 자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소설 『단 한 사람』 을 읽으며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떠올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속이고 슬퍼하고 우울함 속에서 우리가 참아내고 살아가야 하는 건 결국 모두가 사라진다는 것.

우리가 미래만을 바라보니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어둡게 살아가는 것.

결국 푸시킨의 시와 최진영의 소설 소설의 『단 한 사람』 은 서로 닿아있다.

 

똑같은 운명 앞에 분노하고 저항한 삶을 살았던 엄마와 체념하듯 살았덨 할머니와 엄마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을 받아들인 신목화는 '단 한 사람'을 인해서 감사하며 오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슬퍼한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질문을 했던 그 순간들에 대해서 답을 찾았는가?

나는 알고 있다. 답은 없다. 답은 살아지면서 아는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니까.

 

며칠 전 쌍둥이 아이 하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쌍둥이가 아니라 한 명만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힘들었을 때 한참을 했던 질문과 상상들. 하지만 이제는 부질없는 질문인 걸 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쌍둥이므로 그런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엄마의 병 또한 마찬가지다. 신이 왜 엄마에게 큰 병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 질문 또한 의미가 없다.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뿐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