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비야·안톤의 실험적 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톤 반 주트펀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비야씨는 월드비전 구호팀장으로 잘 알려진 저자이다. 빈곤과 전쟁의 최전선에서 뛰던 한비야 팀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디서든 당당한 전사와 같던 전 구호 팀장 이제 세계시민학교 교장인 한비야씨의 새 에세이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직업에 관한 일일거라 생각했다. 현 시대와 관련해 세계시민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에세이라고 생각했고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했다. 처음 가제본을 받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이라니!! 결혼 에세이를 읽게 될 줄이야. 결혼생활로 다가온 저자 한비야씨의 모습은 매우 낯설고 충격이었다.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는 한비야씨와 안톤 (안토니우스 반 주트편)부부의 결혼생활 에세이다. 그런데 책 제목 부제에는 "실험적 결혼생활 에세이"라는 부제에 주목하게 된다. 왜 저자는 "실험적"이라는 단어를 썼을까라는 의문점과 이들의 결혼생활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범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한비야씨와 안톤부부는 월드비전의 동료에서 2014년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한비야씨와 터키 남부에서 구호 작전을 하는 안톤씨는 실질적인 부부생활을 하기 힘든 국제 결혼이었다. 우리는 으레 결혼생활을 하면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위해 양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직장으로 오거나 아니면 남편이 아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 부부는 각자의 생활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일이 중요했고 존중해주어야 했다. 상대방에게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부부는 3.3.6 기준을 정한다.

"안톤 은퇴 후엔 한국에서 3개월, 네덜란드에서 3개월 같이 지내고 6개월은 따로 지내며 각자의 일을 한다."

3개월을 상대방의 공간에서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서로 연락하며 각자의 일에 충실하는 부부라니. 사람들은 말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한비야·안톤 부부 또한 고민이 드러난다. 특히 안톤씨의 경우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항하기 전까지 아내 한비야씨의 마음이 변했으면 어떻게 할까라며 마음 졸인다고 말한다. 공항에서 자신을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고 고백한다.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공백이 큰만큼 사랑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 차이로 힘들어한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이지만 결혼 후에는 단점이 보이며 맞춰가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저자 부부 또한 마찬가지다. 느긋한 성격의 안톤씨와 목표 지향적인 한비야씨는 가끔씩 상대방이 답답할 때가 있다. 선 채로 급하게 아침을 먹는 아내를 보며 당황해하는 안톤씨와 남편의 수건 보관을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든 아내 한비야씨의 모습을 보노라면 사람 사는 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게 된다. 저자 부부가 생각해 낸 방법은 거주 공간 주인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따라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내 한비야씨의 생활대로, 네덜란드에서는 남편 안톤씨의 생활대로 따라준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들의 규칙은 서로의 생활을 지켜주는 방어막이 된다.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책 제목을 생각한다. 결혼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라고 저자들은 표현했다.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걸음보폭을 맞추어야 한다. 때로는 빨리 갈 때도 있고 느긋하게 갈 때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라는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결혼 생활은 유지하고 있지만 함께 행복하지 않은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한비야·안톤 부부는 함께 행복한 쪽을 선택한다. 제한된 시간인만큼 함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떨어져 있는 6개월은 자신의 방식대로 연락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즐기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있지 않은 6개월도 행복하고 함께 있는 6개월도 행복하다.

함께 걸어가기 위해선 각자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한쪽만 건강해서는 오래 걸어갈 수 없다. 그래서 한비야·안톤 부부는 먼저 각자가 선택한 생활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사랑하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물론 이 생활이 국제결혼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결혼 생활은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구속하려고 한다. '존중할 만큼의 거리 두기' 상대방의 생활을 존중해주며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게 결혼이 아닐까라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결혼생활은 상대방이 부재할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저자의 결혼생활대로 할 수 없지만 각자의 결혼 생활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리 오브 스토리 - 다 알고 또 모르는 이야기
박상준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관한 에세이를 좋아한다. 특히 내가 아는 작품에서 느낀 점이 비슷할 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듯해 반가웠다. 『스토리 오브 스토리』 또한 책 이야기다. 다만 내가 읽은 책들은 비전문가들이 쓴 사적인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이 책은 포스텍 인문학부 교수로서 전문가인 박상준 님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스토리 오브 스토리』에 수록된 많은 작품들 중 내가 읽은 책은 얼마되지 않는다. 내용을 알지 못하고 읽는 평론이라서 조심스러웠다.

『스토리 오브 스토리』는 1부 소설의 빛깔,서른 다섯의 이야기와 2부는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고 한다.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끌리지 않았다.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리지 않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부러울 뿐이었다.

박상준 교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국적이 없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숲』, 『가시단장 죽이기』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은 어느 지역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평하는 한 문장은 매우 날카롭다.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진실은 하루키의 소설이야말로 세련되게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이라는 점이다.

... 문학이 정신을 다듬는 자리란 고유의 역사 전통과 문화적 특성을 갖춘 구체적인 현실과의 상관 관계 속에서인데,

바로 이러한 현실이 그의 소설에 휘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평을 듣는 순간 나는 앞으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도 읽지 않은 독자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평할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기준과 대치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이란 현실을 날카롭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 『근린생활자』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소설이 좋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왜'가 없는 소설은 내게 허무함을 줄 것 같다.

나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 『레몬』을 좋아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언니를 잃은 김다언이었지만 내가 소설에서 사랑하는 인물은 한 많은 한만우였다. 돈이 없어 끝까지 불행하게 살아갔지만 삶을 끝까지 생생하게 살아간 한만우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각의 나와 인문학 교수인 저자의 이야기가 달라서 다소 당황했다. 내가 한만우에 초점을 맞췄다면 박상준 교수는 끝까지 주인공 김다언의 내면을 이야기해주며 권여선 작가의 전략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이건 내가 저자의 설명에 따라 『레몬』을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인문학부 교수답게 인문학적으로 문학 작품 안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그동안 읽고 있었던 독자로서 쓴 책 에세이들과는 다른 지식과 깊이를 갖춘 평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서평을 쓴다고 하면서 얇고 편협한 내 글들이 부끄럽기도 했다.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이상문학상 파문'과 각종 문학상의 실체에 대한 견해, 지방의 문학상 공모전 등의 문화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가 작품을 평가할 때 작가의 행적이 작품에 고려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빼놓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가지고 대화하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책을 더 깊게 느리게 읽어야 할 것이다. 한 편의 선생님을 만난 느낌이다. 글을 쓰고 서평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저자처럼 책을 깊게 이해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
정인근.홍승희 지음 / 봄름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엄마는 건강하실 때 부녀회 활동을 오래 하셨다. 부녀회 활동을 하시며 국내 곳곳을 다니셨다. 외국은 비록 많이 못 가셨지만 국내는 우리 가족 중 제일 많이 하셨다. 물론 여행이 아닌 부녀회 활동의 하나였지만... 엄마가 병 진단을 받으신 후, 엄마는 해외여행을 꿈꾸셨다. 몸이 더 불편하시기 전에 많은 나라를 여행가고 싶어하셨다. 그런 엄마를 위해 우리는 일본, 베트남을 여행했다. 올해 아빠 칠순 겸 태국으로 가려던 여행이 코로나로 잠정 연기되었다. 이 돌발상황 속에 우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 상황과 엄마의 건강을 보며 절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 갈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가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 중에 만난 책이 바로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였다. 엄마와 딸의 인도 여행기는 그래서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의 저자 홍승희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을 그려 경찰에 구속된 작가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홍승희씨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씨의 동생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 정인근씨는 이혼 후 여러 남자를 만나지만 데이트폭력 후 첫째 승은 씨의 집으로 오신다. 상처 받은 엄마를 보면서 승희씨는 말한다.

"엄마 나랑 인도 갈래?

여권 하나 없던 엄마에게 인도를 가자고 하는 승희씨. 왜 인도였을까. 홍승희씨는 5년 전 자살 대신 선택한 곳 인도, 남들 눈엔 비정상처럼 보여도 인도에선 모든 게 인정되는 듯한 그런 자유를 느꼈고 그 후로 승희씨는 상처 받은 엄마를 초대하고 싶었다. 인도의 자유를 느끼고 선물하고 싶어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자살 대신 선택한 곳이 인도였다.

인도에서 나는 다른 세상도 있음을 알았다. 이렇게 삐뚤삐뚤하고 흐물흐물하고 망나니 같은 나도 여기서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 공간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게 위로였다.

그런 위로를 엄마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준비하는 엄마 '아난다'는 '비애와 슬픔'의 인물이었다. 타로카드에서 뽑은 카드였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가부장적 가정에서 전형적인 여성 역할을 강요받던 시대의 아픔을 타로카드가 알아맞춘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정인근씨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혼자 자유로이 여행하던 승희 (칼리)씨는 이제 엄마와 함께 일정을 준비한다. 혼자라면 경비절약을 위해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했다면 엄마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엄마는 조그만 것에도 감격해하며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묻는다.

"알 유 해피?"

"해피!"

운전사가 대답했다.

"아임 해피 투."

엄마가 말했다. 영어를 못해서 걱정된다던 엄마였다.

택시 기사와 엄마의 대화가 연상되어 웃음이 나온다. 그 설렘이 느껴진다. 옆에서 지켜보는 저자 홍승희씨는 대화를 들으며 엄마가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엄마 아난다와 딸 칼리의 글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이 책에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모녀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엄마와 딸의 시각이 이 여행기를 풍요롭게 해 준다. 물론 둘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어디서든 엄마는 딸 걱정에 잔소리를 하기 마련이고 딸은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향기롭게 들릴 수 없다. 한바탕 싸우기도 하지만 "엄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감정을 풀어나간다.

함께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며 여행하는 두 사람의 여행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엄마는 딸이 왜 자꾸 인도로 훌쩍 떠나고자 하는지 알게 되고 딸은 엄마를 자세히 알아간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인도로 떠나는 딸을 조용히 배웅해준다. 소중한 순간을 공유한 후로 모녀의 친밀감은 더욱 깊어진다.

"코로나가 끝나면 당장 엄마 모시고 해외 나가자!"

동생과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이놈의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비행기표를 살 거라고. 더 이상 시간을 미루지 않을 거라고. 이 책을 읽으니 엄마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서로 이해하게 된 두 모녀처럼 나도 엄마와의 추억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 오늘 밤에 다짐만 했던 기도를 해야겠다. 코로나 치료제가 빨리 나오게 해 달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려령 작가의 인물들은 모두 심상치 않다. 불행한 아이같지만 유쾌한 완득이도 그렇고 <우아한 거짓말>에서 어린 나이에 자살한 동생이 있는 민지도 그렇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둠을 기대한다. 당연히 어두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상황을 인정하지만 따뜻하게 품어준다. 불행한 현실을 바꿀 수 없겠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어둠에 침몰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려령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은 김려령 작가가 3년 만에 펴 내는 신작동화다. 책의 앞부분을 발췌하여 만든 가제본으로 받아 읽어 볼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의 주인공 초등학생 현성과 장우 또한 심상치 않다. 아이의 눈으로 그려진 가난의 모습이 보이고 어른들의 행동에 상처받는 장우가 있다.

현성의 집은 영업이 종료된 도로상의 비닐하우스 꽃집이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도로 맞은 편에 몇 채의 비닐하우스 꽃집만 있는 도로를 볼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그 꽃집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누가 저런 곳에 꽃을 사지?' 이 책속에 현성이 그런 집에 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본 꽃집은 영업중이지만 현성이 살고 있는 꽃집은 이미 영업을 안 한다는 걸.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정책에 보상을 받고 이제 폐허가 된 곳이다.

현성의 아버지는 삼촌말만 믿었다. 사정이 있어 정부 보상금을 자신의 명의로 못 받지만 통장 주인이 받는 즉시 주기로 했다며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과 도장을 흔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 겨울만 지나면 보상금을 받고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불행은 파도를 타고 온다고 한다. 가난도 그렇다. 돈이 돈을 번다고 하듯 가난 또한 가난을 몰고 온다. 부족은 또 다른 부족함을 불러일으킨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에서는 한 가족의 빈곤이 점차 번져나가는 걸 보여준다. 집, 교육, 화목한 가정, 전기 등등 잃어가는 빈곤의 모습을 현성의 눈으로 보여지니 더욱 서글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는 그런 분위기에서도 웃음을 잊지 않는다. 현성에게 또 다른 친구 조장우를 소개해주니까. 엄마 심부름에서 '강력분'과 '박력분'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에서부터 현성의 빈곤을 편견없이 바라봐주는 장우, 그 안에서 그들은 제목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를 한다.

가제본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책 속에서 현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빈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직은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게 "엄마는 돈 없잖아."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아이들. (장난감을 사 주지 않을 핑계로 자주 돈 없다는 말을 남용한다) 내 아이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가난이지만 이 동화 속 현성은 생활 속 가난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당연하다시피 빈곤을 심어주었다. 하나씩 잃어가는 그 빈곤은 마음의 빈곤 또한 일으키지만 다행히 작가는 현성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동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과연 이 두 소년들에게 어떤 일이 다가올지 알 지 모르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일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제 정식 출간된 김려령 작가의 신작동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코로나로 양극화와 고립화가 최고조를 달리는 이 때 우리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는 따뜻한 동화책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심재훈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전혀 무관한 것 같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호기심때문이다. 삼성과 애플 소송 기사에서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고 기업간의 법정 싸움이 왜 미국에서 일어나는지도 알고 싶었다. 애플과 삼성은 그렇다쳐도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에 가서 싸우지라는 의문에 답해 주는 책이 나왔다. 미국 변호사이자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인 저자 심재훈씨는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저자는 미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기업 소송에 대해 '원정소송'이라고 말한다. '원정출산'은 낯설지 않지만 '원정소송'은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먼저 저자는 왜 한국 기업들간의 소송인데 미국 법정에서 진행될까라는 답변에 시원하게 답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해배상의 범위와 액수가

우리나라 법원과 비교할 때 확연히 크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답변을 기대했지만 '원정소송'의 핵심은 바로 '돈'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승소해도 한국 법원에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의 액수가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에 기업들은 무리를 해가면서 원정소송을 진행해나간다.

저자는 이제까지 많은 한국기업이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미국 법원의 차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전자증거개시'다.

이 '전자증거개시'란 재판의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변론 전 소송과 관련된 자료와 증거를 전자증거개시 과정을 거쳐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한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특징답다. 그런데 이 '전자증거개시'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증거개시에 소홀히 한다고 느끼면 소송의 주요 패소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거 교환을 위한 조치에 미적된다는 표시가 있을 경우 불리한 증거를 제시하게 된다. 저자는 이 '전자증거개시'를 소홀히 해서 패소한 예를 삼성과 애플의 소송의 예로 들고 있다. 임직원들의 '이메일 자동 삭제 기능'을 즉각 정지하는 행위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아 애플에 빌미가 잡히는 결과가 되었다.

기업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주요 소송인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조물 책임제에 대한 대응은 필수이다. 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한국 법원에 비해 손해배상액도 한국보다 매우 높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미국법원에서의 패소는 기업의 파산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소비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흔하지 않다.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시간 소요,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소비자들은 주로 여론, 광장의 힘을 주로 이용한다. 반면 저자는 미국은 주요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와 법적 구속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문화로 집단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수출이 주요 수입을 차지하는 한국의 경우 큰 손인 미국 소비자의 문화를 제대로 주시해야 한다.



이제 소송을 통한 분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원정소송의 경우 번역과 자료 준비 등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비된다. 초기 한국 기업은 미국 법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전문가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원정소송이 갈수록 증가하는 이 추세에서 소송의 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 바로 '리갈테크'를 갖추어야만 한다.

'리갈테크'는 AI의 기술을 할용하여 판례와 법률 조사, 빅데이터 기반의 정보를 분석해주는 기술이다.


기업 소송의 경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리갈테크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이루어져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러가지 규제로 가로막혀 있어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이제 겨우 원정소송의 걸음마 단계인 한국 기업들이 승소하기 위해서 입법부의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기업은 자신의 책임을 다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였다. 그동안 한국 법원은 대기업에 관대했고 대기업은 법을 악용한 면이 크다. 저자는 기업에 엄격한 미국 법원에서 벌어지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 한국 기업의 법적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준법감시 관리 시스템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투명성을 확보해야한다. 하지만 과연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는 암유발 물질을 몰래 폐기한 업체를 대상으로 주민들이 집단 소송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그 영화에서 승소한 주민들이 받는 손해배상액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바로 미국 법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수출기업들이 이 책을 본다면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전에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리걸테크를 도입한다해도 무의미할 것이다. 투명성과 준법성, 그 바탕 안에 준비가 되어야만 국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