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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심재훈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0년 10월
평점 :

나와 전혀 무관한 것 같은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호기심때문이다. 삼성과 애플 소송 기사에서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고 기업간의 법정 싸움이 왜 미국에서 일어나는지도 알고 싶었다. 애플과 삼성은 그렇다쳐도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에 가서 싸우지라는 의문에 답해 주는 책이 나왔다. 미국 변호사이자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인 저자 심재훈씨는 『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법원으로 가는가』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저자는 미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기업 소송에 대해 '원정소송'이라고 말한다. '원정출산'은 낯설지 않지만 '원정소송'은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먼저 저자는 왜 한국 기업들간의 소송인데 미국 법정에서 진행될까라는 답변에 시원하게 답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해배상의 범위와 액수가
우리나라 법원과 비교할 때 확연히 크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답변을 기대했지만 '원정소송'의 핵심은 바로 '돈'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승소해도 한국 법원에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의 액수가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에 기업들은 무리를 해가면서 원정소송을 진행해나간다.
저자는 이제까지 많은 한국기업이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미국 법원의 차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전자증거개시'다.
이 '전자증거개시'란 재판의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변론 전 소송과 관련된 자료와 증거를 전자증거개시 과정을 거쳐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한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특징답다. 그런데 이 '전자증거개시'를 무시할 수 없는 건 증거개시에 소홀히 한다고 느끼면 소송의 주요 패소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거 교환을 위한 조치에 미적된다는 표시가 있을 경우 불리한 증거를 제시하게 된다. 저자는 이 '전자증거개시'를 소홀히 해서 패소한 예를 삼성과 애플의 소송의 예로 들고 있다. 임직원들의 '이메일 자동 삭제 기능'을 즉각 정지하는 행위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아 애플에 빌미가 잡히는 결과가 되었다.
기업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주요 소송인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조물 책임제에 대한 대응은 필수이다. 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한국 법원에 비해 손해배상액도 한국보다 매우 높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미국법원에서의 패소는 기업의 파산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소비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흔하지 않다.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시간 소요,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소비자들은 주로 여론, 광장의 힘을 주로 이용한다. 반면 저자는 미국은 주요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와 법적 구속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문화로 집단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수출이 주요 수입을 차지하는 한국의 경우 큰 손인 미국 소비자의 문화를 제대로 주시해야 한다.

이제 소송을 통한 분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원정소송의 경우 번역과 자료 준비 등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비된다. 초기 한국 기업은 미국 법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전문가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원정소송이 갈수록 증가하는 이 추세에서 소송의 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 바로 '리갈테크'를 갖추어야만 한다.
'리갈테크'는 AI의 기술을 할용하여 판례와 법률 조사, 빅데이터 기반의 정보를 분석해주는 기술이다.

기업 소송의 경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리갈테크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이루어져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러가지 규제로 가로막혀 있어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이제 겨우 원정소송의 걸음마 단계인 한국 기업들이 승소하기 위해서 입법부의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기업은 자신의 책임을 다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였다. 그동안 한국 법원은 대기업에 관대했고 대기업은 법을 악용한 면이 크다. 저자는 기업에 엄격한 미국 법원에서 벌어지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 한국 기업의 법적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준법감시 관리 시스템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투명성을 확보해야한다. 하지만 과연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는 암유발 물질을 몰래 폐기한 업체를 대상으로 주민들이 집단 소송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그 영화에서 승소한 주민들이 받는 손해배상액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바로 미국 법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수출기업들이 이 책을 본다면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전에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리걸테크를 도입한다해도 무의미할 것이다. 투명성과 준법성, 그 바탕 안에 준비가 되어야만 국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