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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패러독스 -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잭슨 카츠 지음, 신동숙 옮김 / 갈마바람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대학 시절의 강간미수 사건의 피해자였다. 혼자 있었던 자취방에서 도둑이 침입해 왔었고 꽁꽁 묶여 있는 상태에서 성폭력 위협을 받았다가 간신히 살아나왔었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었고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내게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해자의 인상 착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내게 경찰은 자꾸 기억해내라고 나를 종용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무런 진척도 없이 그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고 인상 착의 하나 기억을 못 해내니 사건을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일 이후 부모님은 나에게 이 일에 대하여 함구할 것을 지시하셨다. 과년한 딸을 둔 부모님 입장에서는 딸이 이런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안 좋을 것을 우려하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사건을 묻고 있다가 다른 여성 친구들과 솔직하게 성 폭력을 당할 뻔한 경험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일이 단순히 나만 운 나쁘게 당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피해자이면서도 사회의 시선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우리의 가슴 속에 묻어버려야만 했다. 믿지 못하겠지만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말 못하고 묻혀지는 사건들이 너무 많이 있었다.
우리 주위에 성폭력이나 여성폭력을 예방하고 막기 위해 활동하는 여성 활동가는 많지만 남성 활동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책의 저자 잭슨 카츠는 그 흔치 않은 활동가 중 한 명이다.
한국은 원래 보수적이고 유교의 영향 때문에 여성폭력 같은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을 많이 띄지만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여성폭력에 관하여는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한국에서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 여자들이 먼저 짧은 치마나 야한 복장을 피해야 한다는 둥 또는 밤 늦게 돌아다니는 게 문제라는 둥 남자는 성욕을 제어하기가 힘든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여자가 조심할 수 밖에 없다는 둥 모든 변명들이 한국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도 슬펐다.
성범죄나 폭력에 대하여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지 남성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남성들을 교육 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밀양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한공주"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피해자 한공주는 오히려 성폭행을 가한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잘못했다고 사죄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합의를 하라고 피해자를 다그친다.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가해자의 부모들 때문에 한공주는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도망쳐야 한다.
전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성폭행을 당한 익명의 여성이 하얀 블라인드에 가려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샤워를 한 번 하면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자기 몸에 묻은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서... 왜 그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해야 하며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저자는 이 폭력은 문화적인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주요한 사회 문제라고 주시하였다.이것은 남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성욕을 주체 못해서 또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저지르는 실수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일어나는 범죄의 통계를 살펴 보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범죄는 극소수이며 실제로 계획된 범죄가 훨씬 많이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것은 남자들의 변명일 뿐 결코 합리화가 되어 주지 못한다. 여성폭력의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은 만큼 남성을 교육 시키지 않으면 결코 이 여성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앞에서 말한 성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했던 사회자가 한 멘트가 떠올랐다.
"부모들은 딸아이에 관해서는 단속을 시키지만 실상 아들을 둔 집안에서는 아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정말 신경을 써야 하고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은 딸이 아니라 아들들이다." 나는 이 말이 잭슨 카츠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사회에서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성교육이나 성폭력에 대한 위험성에 지겹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들이 피해자가 될 확률이 적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여성폭력을 대하는 데 남성들의 도움 없이는 결코 여성폭력을 줄일 수 없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떠돌아 다니고 가해자들이 당당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사법 체계가 갖춰지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정치나 법 분야에서 일하는 남성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더 이상 남성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연해 있는 여성 경시 문화에 대해서도 제어를 해 줄 수 있는 남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이 이 문제점에 대하여 개선을 요청하면 보통 여성들에게만 한정될 가능성이 많은 반면 남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면 여성보다 파급력이 커진다. 더 이상 여성폭력을 남자들은 그런 동물이라는 둥 감정적으로 그랬다는 둥의 변명으로 합리화 하는 것을 믿지 말자. 이것은 엄연한 사회 문제이다.
" 나는 이 책에서 한층 원대한 접근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성폭력 발생 비율을 찔끔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극적으로 감소시키려면 광범위한 문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탈의실, 당구장, 회의실, 심지어 경로당 휴게실에 이르기까지 온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한 성차별적 규범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마초 패러독스 -
한국이 아무리 여성들의 인권이 과거에 비해 많은 진전이 있고 발달했다 하더라도 예전부터 축적되어 있던 남성 중심의 문화 또는 규범들로 인해 여성폭력에 있어서 받아들이는 시각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바뀌지 않았다. 범죄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시각을 주기 위해 교육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냥 피하는 게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것들을 조금씩 바로잡는 것일 것이다.
결국 온 사회가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개개인부터 정치인, 법조인 등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바로잡아 나갈 때 아니 제대로 여성폭력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 첫걸음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