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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평점 :
<인생극장>은 사회학자 노명우 박사가 대한민국의 일제시대부터 현대사까지 부모님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자 떠나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부곡이다.
2015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2016년 폐암으로 인해 어머니와 이별해야만 했던 저자는 한국의 박정희나 이승만같은 인물들이 아닌 아버지 노병욱과 어머니 김완숙의 자서전을 써 나간다.
우리는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당시대의 인물들의 행적은 집에서 인터넷으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인생을 사셨던 우리 부모님들, 먹고 사는데에 바쁘셨던 부모님들의 일생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로만 짐작을 할 뿐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저자는 부모님의 일생을 더 세밀하게 알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 고전영화 속에서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을 추리해간다.
<인생극장>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코 영웅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아버지는 독립군도 아니었고 친일파도 아니었다. 보통학교를 나와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만주로 건너가 사진을 배운 기술로 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는 어떤 영웅적인 모습도 없다.
우리가 현재 먹고 살기에 바빠 생각할 시간도 없었던 것처럼 그 시절의 아버지에게도 독립이라는 거대한 꿈 보다는 당장 살 궁리를 하기에도 바빴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일제 시대의 역사를 지녔다면 어머니는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분이다.
여자의 몸으로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 방 구석에서 몰래 숨어서 지내야만 했던 어머니 또한 집에 숟가락 하나라도 덜기 위해 10살 이상 차이 나는 아버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인생극장>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사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공부도 잘 하지 못했고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는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온 순간 순간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제 시대를 겪어낸 아버지의 일상이 쌓이고 쌓여 한국의 과거사가 되었고 어머니의 6.25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아픈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듣게 된다.
저자는 분명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부모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6.25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 홀로 살아가신 나의 아빠와 7남매의 셋째이자 장녀로 태어나 학업은 꿈도 꾸지 못했던 나의 엄마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웅의 눈으로 바라 본 한국의 역사가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이 모인 한국의 역사는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일제 시대 학교에서 매일 호야덴에 90도 절을 하며 충성을 맹세해야만 했던 아버지, 보수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눌린 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인생극장>은 노명우 박사의 부모님의 자서전이지만 부모님 이외에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생계를 위해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미군의 양공주나 다방 레지가 되어야만 했던 애자와 영자 등 우리 시대의 아픈 주인공들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는 결국 한 두명의 영웅이 아닌 수많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지만 저자의 부모님 또한 그 시대의 인생 극장에 당당한 주인공이며 우리의 부모님 또한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의 주인공임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의 부모님의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졌다.
부모님이 살아 온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터넷에 나오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부모님 모두는 이 시대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