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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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의 SF 소설집 『화성과 나』는 암울한 미래를 전제로 한다.

지구의 상황은 기후 위기로 말미암아 지구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진다.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는 지구, 현실에 대한 피난처로 꿈꾸는 화성.

하지만 화성에서의 생활은 역시 만만치 않다.

절망하기 쉬운 미래, 과연 화성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화성과 나』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바쁘다. 아니 바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시작해야 한다. 공간을 짓고 행성을 관리도 해야 하며 기록도 해야 한다. 새로운 도시도 만들어야 하며 화성에서 먹을 수 있는 곡식도 만들어야 한다.

화성은 새롭게 시작하는 반면 지구의 상황은 점점 어두워진다.

<행성 탈출 속도>에서의 부산의 날씨는 이미 45를 넘나들고 폐허가 된다. <김조안과 함께하려면>에서는 기상학자인 '나'는 점점 멸망해가는 지구의 상황을 지켜본다.

화성에서는 지구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지구에서는 화성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든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데 배명훈 저자는 다섯 편의 소설들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게 있다.

바로 '회복력'이다.

 

화성인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뭘까요?

모험심? 호기심? 아니면 고집?

아니요, 의외로 회복력이에요.

무슨 일을 겪어도 화성인은 반드시 회복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예요.

 

『화성과 나』의 모든 이야기를 '회복력'이 끌고 간다.

화성에서의 삶은 공기도 적고 불모지가 많기에 삶에 제약이 많다.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고 모래 폭풍이 불면 아지트에 들어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피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한다.

우리들은 화성인이다. 우리는 반드시 회복한다.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이어가며 회복해간다.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의 이지요는 우주선 동지를 잃었지만 친구의 일을 이어받아 임무를 완성해간다. <나의 사랑 레드벨트>는 화성에서의 삶을 사랑하기에 엄청난 이익과 자신의 직업의 혜택을 포기하며 화성에서의 모습을 택한다.

비록 헬멧을 쓰고 다녀야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점이 남는다.

지구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위기 속에서 지구의 삶은 종말만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그냥 가만히 마지막을 생각하며 슬퍼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김조안과 함께하려면>에서 말해준다.

헤어진 옛애인 김조안. 그녀는 홀로 화성으로 떠나고 기상학자인 '나'는 매일 화면에서 지구와 화성의 모습을 관찰한다. 빈번해지는 자연재해, 매일 들려오는 어두운 소식. 지구의 모습을 본다는 건 고통이다. 마침내 가장 적극적이던 기상학자마저 죽고 말고 정말 이게 끝이구나 하는 절망감이 팽배한 이 때 김조안이 지구에 돌아온다.

멸망해가는 지구와 함께 하기 위해. 아니 꺼져 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김조안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화성에서의 업적을 버리고 다시 돌아온다.


<행성 탈출 속도>에서도 누군가는 지구의 지긋지긋한 삶이 싫어 화성으로 도망치듯 오고 누군가는 화성에서 지구로 건너온다. 자신들만의 지옥에서 탈출한 그들, 함께 하고 싶지만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존재한다. 함께 할 수 없음에 절망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택한다.


모든 인물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고민한다. 화성은 모든 게 다르기에. 화성은 모든 게 쉽지 않기에.

하지만 이들은 '절망' 대신 '회복'을 선택한다. 화성에서 간장 게장이 안 될 걸 알지만 시도라도 해 고 자신의 약점이 들통나면 자신의 직업을 빼앗길 걸 감수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는 걸 택한다. 곧 헤어져야 할 것을 알기에 헤어지느니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왜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순간이라도 회복할 것을 주장하는가?

포기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이기고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희망을 말한다.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네 번째 소설 <행성봉쇄령>이다.

지구에서의 미사일 폭격 위험 앞에서도 사랑하기로 택한 나나와 정우연처럼

비록 화성과 지구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어도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로 하는 채라와 나처럼

멸망해가는 지구를 위해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온 김조안처럼 끝까지 모든 인물들은 삶을 선택한다.

좌절하지 않고 회복을 선택하며 삶을 이어간다.

 

무슨 일을 겪어도 화성인은 반드시 회복하거든요.

 

맞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좌절하지 않는 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제 유엔에서 내년의 지구 온도가 3도 가까이 상승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지구는 이대로 끝인 건가라는 생각에 암울해지고 오염수로 우울한 이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화성과 나』 소설은 내게 분명히 말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고. 그래도 이대로 끝장이라고 좌절하지 말자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미래가 만들어질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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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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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마지막 거짓말』은 처음 접하는 작가 라일리 세이거의 작품이다.

유명한 작가라면 작품 이름이라도 알 텐데 처음 접하는 작가의 이름에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지만 작년 출간된 <락 에브리 도어> 이후에 두번째로 소개된 작가이다. 하지만 아마존 서점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이미 10편 가까이 추리소설을 써 온 유명한 작가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설레임과 궁금함을 품고 책을 읽어나간다.

먼저 제목 『마지막 거짓말』 을 생각해본다.

이 추리소설은 제목부터가 분명한 힌트를 준다. 주인공이 한 거짓말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그 거짓말이 밝혀지는지 그 과정을 캐내는 부분이 핵심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 과연 이 소설에서는 어떤 거짓말이 있는걸까 먼저 궁금증을 자아낸다.

책의 첫 도입부는 강렬하다.

 

시작은 이렇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 속, 숲을 에워싸는 미드나이트 호수,

그 숲 속에 자리잡은 나이팅게일 캠프는 대재벌 그룹 해리스 화이트 집안이 운영하는 캠프이다.

상쾌한 아침, 은은한 햇빛, 하지만 함께 생활하던 룸메이트 세 명이 사라졌다.

숲 속을 뒤졌지만 종적도 없이 사라진 세 명의 소녀들. 그녀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후, 15년이 지나고 화가가 된 에마 데이비스.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그녀의 작품에 사라진 세 명이 숨겨져 있다는 건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어느 날, 에마의 전시회에 나이팅게일 캠프 소유주였던 프래니로부터 나이팅게일 캠프 선생으로 와 달라는 청을 받게 된다. 함께 했던 룸메이트가 사라진 곳.

에마는 과연 15년이 지난 그 곳에서 룸메이트가 사라진 그 곳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마지막 거짓말』은 세 명의 룸메이트가 사라진 15년 전과 그 이후 15년 이후 성인이 된 현재를 번갈아가며 사건이 진행된다.

15년 전,

부유한 자녀들만이 방학동안에 가서 신청할 수 있는 캠프. 그 곳에 간다는 건 선택받은 집안 자녀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선택받지 못한 평민 자녀들에게는 '부자년'들이 즐겨 가는 캠프일 뿐인 선망과 질투의 장소. 그 곳에서 주인공 에마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질투의 장소인 '나이팅게일' 캠프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늦게 도착해서 언니들과 한 방을 사용해야 하는 에마의 룸메이트는 비비언, 내털리, 앨리슨 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센 척하는 에마. 그녀는 이 세 명 중 제일 기가 센 비비언을 따라하기에 바쁘다. 사랑하는 언니 캐서린을 잃고 난 이후그 사랑을 에마에게 보이는 비비언. 비비언은 에마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언니가 되어 줄게."



이 네 명이 즐겨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

세 가지의 이야기 중 어느 게 거짓인지 말하는 게임.

이 게임은 이들에게 시시하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눈 감고도 맞히는 게임.

그러면서 왜 비비언은 자꾸 이 게임을 하자고 하는 걸까?

『마지막 거짓말』 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반전은 두 가지이다.

나는 이 주인공 에마 데이비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

먼저 소설 초반부에 에마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말한 첫번째 거짓말을 고백한다.

한밤중에 홍두깨처럼 나이팅게일 캠프에 가게 되었지만 부자들이 가는 캠프에 가게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걸 숨기는 에마. 그녀는 이것이 바로 첫번째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 고백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아... 이 주인공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겠구나.

이 주인공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겠구나. 쉽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사건의 진실은 갈수록 선명하게 다가오기보다 더 미궁에 빠뜨린다.


 주인공 에마가 캐고 있는 사건의 진실이 맞는 걸까?

아니면 에마는 자신의 거짓말을 덮기 위한 진실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일까?

책 후반부에 이르러서까지 이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후반부까지 진실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두 번째. 바로 실종된 세 명의 소녀와 에마가 함께 한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이다.

서로 쉽다고 생각했던 게임들.

하지만 너무 자주 하는 만큼 거짓말 또한 늘어난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맞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읽어나가며 의문을 준다.

과연 서로가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있나?


에마의 거짓말,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 속의 거짓말,

이 거짓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거짓말..


이 거짓말들이 진실을 가로막는다.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끝까지 범인을 맞추기 힘들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거짓말』 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은 정말 정말 모두를 기함하게 하며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뛰어남을 알게 한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소설.

그러기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소설. 진실이 드러나면 또 누군가의 거짓말이 드러나기에 사건은 끝까지 미궁에 있는 소설이다.


진심으로 놀라운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자신이 거짓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 속에서는 엄두도 못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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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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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과 생존자들. 무엇이 그들을 1년 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나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행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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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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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소중한 청춘과 생명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희생자 159명 부상자 196명. 이 대형참사 앞에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야 해던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이다.

책 제목에 지금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생각한다.

아...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태원에 머물러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태원에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에 주목하며 책을 읽게 된다.

 

 

예전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봐야 해요.

일상적인 대화 소재를 끄집어내려고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

그게 굉장히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진우씨 이야기

 

이태원에서 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진우씨는 이제 일상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동생을 잃고 난 상황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주변의 조언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다.

예식장까지 잡아놓으며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던 동생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살아질 수 있겠는가. 30년 넘게 살아온 일상이 깊은 슬픔 앞에 압도되어 몽땅 사라져버렸다. 그냥 찾아지던 일상이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하는 노력이 되었다.

 

 

'평범한 삶'이 어려운 숙제가 된 건 이진우씨 뿐만이 아니다. 동생 송영주씨를 잃은 송지은씨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제대로 되지 않음을 호소한다. 생존자 김솔 씨의 꿈은 이태원 참사 이후 꿈이 단 한 가지로 바뀌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상을 빼앗고 유가족들의 소망을 '평범한 삶'으로 바꾸어버린다.

 

159번째 희생자. 16살 고등학생 이재현 군의 자살 소식 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이 필요에 따른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지원센터에 어려움을 충분히 제기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상도 버텨가기 힘든 상황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자신의 힘듬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되는가?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찾아가는 치료를 해야만했다. 얼마나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그에 응당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 허기지고 목이 말라 걸어갈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100미터 앞에 밥상을 차려져 있는데 먹으라고 하면 그걸로 역할이 끝인 것일까?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정치적인 프레임이다.

 

외국의 풍습 '할로윈데이'를 따라하려고 놀려가서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뭐하러 사람 많은 데 가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빨리 애도를 표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며 재빨리 선긋기를 하는 대통령과 정부.

그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묻는다.

 


 

 

무엇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1년이 지나도록 이태원에 머물게 했나.

14명의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깨달은 건 한 가지였다.

 

"그들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애도를 충분히 치뤄지지 못하게 너무 빨리 잊혀짐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다.

 

참사 이후 너무 뿔뿔이 흩어진 희생자들. 어떤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누군가는 동국대병원으로 사방으로 이송된 희생자들의 시신들로 유가족들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호소한 끝에 겨우 찾아 희생을 치루고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가족들은 같이 애도하고 슬픔을 나눌 언덕이 필요하다. 같은 사고로 같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함께 나눠도 힘든 애도의 순간을 홀로 감당하라며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만남을 차단한다. 그 정부의 차단 속에 유가족들은 더없이 외로워지고 힘들어한다. 민주사회를 찾는 변호사 모임 (민변)의 중재로 유가족들이 겨우 모여 그제서야 서로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갈 힘을 찾는다.

 

애도의 순간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가고 또 다른 누구는 평생 애도를 하며 생을 보내기도 한다. 그 순간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4.16 세월호 참사 때도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애도 기간 끝난 후 잊혀진 참사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함께 슬퍼해지더니 요술방망이가 나타나 뿅 마술을 부리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렸다.

그 잊혀짐 속에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태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이태원에 있는 유가족의 마음이 이태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희생자 이지현씨의 동생 이아현씨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언니를 잃어버린 동생 이아현씨의 가족 앞에 이지현씨의 친구들은 그저 함께 해 준다.

힘들면 힘든대로 그 순간을 지켜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시간을 정해 만나며 고인이 된 이지현씨의 이야기를 나눈다. 잊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며 같이 있어줄 뿐이다.

 

10월 29일 멈춘 이태원에서의 159명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태원을 떠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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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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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의 미스테리 소설집 『선녀를 위한 변론』에서는 총 다섯 편의 추리 소설이 소개된다.


그 중 표제작이기도 한 『선녀를 위한 변론』은 위의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를 현대 법률적인 시각으로 비틀어 사건을 그려낸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것이다는 식의 전래동화.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 어찌되었든 행복하게 살면 되는 <선녀와 나무꾼>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법정. 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선한 동기를 부정한다.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법정, 오직 증거로만 가지고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곳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모든 전래동화에 숨겨진 그들의 동기를 속속들이 밝혀낸다.


"옛날 옛날에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꾼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사모한 나머지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선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후 나무꾼과 선녀는 재회를 하였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전래동화의 눈으로 바라본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모든 동기가 선하다.

선녀옷을 훔친 나무꾼 이쇠돌의 행위는 잘못되었으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행위가 미화된다.

그리고 선녀에게 옷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그는 순박한 사람이다. 그 과정이 어떻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전래동화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집인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선녀의 옷을 훔치고 자신의 아내로 삼은 나무꾼의 행동은 절도이자 인신매매 행위이다.

선녀 또한 자신을 납치한 나무꾼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간혹 납치범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지만 그건 사연 있고 잘 생긴 납치범과의 이야기지 가난하고 늙으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쇠돌이 이뻐 보이겠는가? 자신을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전리품처럼 여기는 나무꾼에게 콩깎지가 씌울 수 있을까?


옛날에는 용서될 수 있었던 행위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며 그 행위들은 범죄로 변한다.범죄로 변한 이야기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욕심과 질투 미움이 팽배한다.

선녀에게는 나무꾼을 향한 증오가, 나무꾼에게는 선녀를 향한 기만이, 이웃집 김삼둥은 이웃집 아낙네인 선녀를 향한 호감과 이쇠돌에 대한 질투심이 활활 타오른다. 해피엔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 숨은 동기를 철저히 파헤쳐내어 아름다운 전래 동화에서 살인 법정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인어공주>를 변주한 소설 「인어의 소송」 또한 마찬가지다.

인어가 살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 해피엔딩을 기대하게 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 조건이 주는 사랑의 이점을 설명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옛 광고의 카피처럼 영원한 사랑이 아닌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이 일으킨 살인사건. 전래동화는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을 띠지만 현대에서는 꼭 선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새롭게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는 임기숙과 반려견 타미의 이야기이다.

뜬금없는 말을 잘 하지만 임기응변이 강하고 사건 판단력이 빠른 임기숙의 재치가 빛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래동화를 비튼 앞의 두 단편 「인어의 소송」 과 「선녀를 위한 변론」보다 주는 흥미는 다소 덜하다. 전래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두 편의 이야기가 주는 강렬함이 너무 커서인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뜬금없는 말을 하는 임기숙의 성격도, 그리고 <모서리의 메리>에서 나오는 임기숙이 사건의 개요를 알게 되는 과정이 친절하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은 앞의 두 편의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


가상의 세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에서도 저지르는 살인사건.

텔레그램, 트위터 등 SNS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역할극. 그들만의 게임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계정만 삭제하면 모든 범죄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외국회사의 SNS 세계. 평범한 경찰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가상세계에 다가가기까지 끊임없는 반전이 펼쳐지는 게 이 마지막 소설의 백미이다. 그 반전앞에 소름이 돋고 소설 속의 이야기라기엔 현실 가능한 이야기라서 소름 돋게 한다.

 

마지막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에서 범인은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거 알아요 형사님?

아무리 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정말 별짓을 다해도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 돼요.

 

이 다섯 편의 소설 이야기 속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를 나는 이 한 마디에 모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너도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불행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살인을 저지른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 나만 불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결국 살인을 일으킨다.


이 소설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래동화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얼마나 많은 죄명이 생길까?

<춘향전>의 이몽룡은 혼인빙자죄이고 <홍길동전> 또한 일급 도둑일 뿐이다.

다음에 송시우 작가가 차기작에 이런 이야기들을 연이어 써 준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래동화부터 SNS까지 종횡무진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소설이다.

두 편의 이야기는 다소 아쉽지만 세 편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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