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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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1》은 『오베라는 남자』을 쓴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의 연작 시리즈이다.

 

먼저 《위너 1》을 알기 위해서는 이 시리즈의 앞의 두 작품을 읽어야 한다.

 

아이스하키로 똘똘뭉친 쇠락해가는 변두리 지방 베어타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베어타운』

『베어타운』에서는 마을을 살릴 영웅으로 여겨지던 아이스하키 선수 케빈이 하키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며 공동체가 분열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시리즈 『우리와 당신들』 에서는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베어타운 마을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함으로 서로 등지는 공동체의 또다른 위기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완결판인 《위너》가 총 2권으로 3년간의 침묵 끝에 출간되었다.

 

《위너 1》은 전작에서 그려진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에서처럼 공동체의 갈등을 그린다.

 

첫번째 이야기 『베어타운』 에서는 에이스 선수 케빈의 성폭행이 기점이었고

『우리와 당신들』에서는 벤의 성정체성이 드러나며 갈등이 조장되었다면

마지막 이야기 《위너 1》 에서는 마을을 휩쓴 폭풍이 도화선이 되며 마을의 갈등을 불려온다.

앞의 두 이야기가 주로 베어타운 한 마을의 갈등이 중심이었다면

《위너 1》 에서는 베어타운과 베어타운의 이웃마을이자 경쟁 마을이기도 한 '헤드' 마을 간의 묵은 원한이 배경이다.

 

그건 폭풍에서 시작됐지.

 

먼저 나는 묻고 싶다.

 

인간은 자연재해와 같은 불행 앞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불행 앞에 돕고 살아가는 걸 꿈꾸지만 과연 그럴까?

프레드릭 베크만은 《위너 1》 에서 분명히 말한다. 불행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않는다.

불행 앞에서 인간은 더 악해지고 미워하고 증오한다. 특히 그 분열이 한쪽이 훨씬 우월하다면?

그렇다면 더욱 미워하기 쉽다. 왜 저들은 잘 나가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왜 저들은 평화로운데 우리만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억울해진다.

불행 앞에 자신의 처지는 확대경으로 커지게 되는 반면 타인의 불행은 축소경으로 작게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떤 불행들이 보이는가.

 

 

가장 크게는 베어타운과 헤드 마을의 갈등이다.

늘어나는 후원자금과 하키팀의 승리 기세로 승승장구하는 베어타운. vs 자금이 딸리고 하키 링크의 지붕이 붕괴되어도 고칠 생각도 안 할 만큼 소외된 헤드의 아이스하키팀.

 

가난한 집에서 탈출하여 외국으로 갔지만 주검이 되어 돌아온 누나, 자신을 거들떠도 안 보는 상황에 대한 소년 마테오 vs 자신 빼고 모두 행복한 듯 보이는 마을 사람들.

 

그렇다면 우리는 또 질문해야 한다.

 

왜 이 사람들의 갈등은 1,2권에 이르기까지 봉합되지 않고 더 커지는가.

 


 

자신의 불행 앞에서 자책하며 타인을 미워하는 것 만큼 쉬운 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 자책하며 후회하는 것. 그건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래서 《위너 1》 에서는 원망하고 싶은 상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더욱 똘똘 뭉친다.

자선으로 포장하면서 타인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자신의 공동체를 위한답시고 자작극을 꾸미며 모함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위해서 타인을 공격하는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이건 우리 마을을 위해서야.

이건 저들이 먼저 시작했어.

이건 우리 때문이 아니야.

 

그래서 한 때 잘나가던 베어타운의 떠오르는 에이스 아맛 선수가 《위너 1》 에서 갑작스럽게 몰락되었던 계기 또한 동네 부량배 레브의 갈등을 부추기는 이간질 때문이었음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신경 쓰지 마.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은 부족하다고만 할 테니까.

이건 저들의 경기, 저들의 판이고

너는 절대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없어.

너나 나 같은 사람은 우리만의 판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너와 나,

우리와 저들,

이 갈등 앞에 한 명의 유망주가 무너지는 건 매우 빠르고 간단하다.

 

《위너 1》 에서는 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다음에 이어질 대망의 마무리 《위너 2》를 남겨놓은 채 .

갈등의 정점에 이른 마을 사람들. 이들의 분열은 과연 봉합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소설 속 가상마을 베어타운과 헤드 마을의 갈등을 보아야만 하는가?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봐야 한다.

 

왜? 이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니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더한 갈등을 달리고 있으니까.

 

보수와 진보,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반페미니즘 운동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들, 노키즈존, 노실버존, 장애인 차별철폐를 위해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향한 시선들...

 

지금의 이 모습이야말로 갈등의 최고조가 아닌가?

 

그러므로 베어타운의 갈등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도 이 상황 앞에서 쉽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기 떄문이다.

 

갈등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리 없다고 쉽게 자신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 시리즈 모두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프레드릭 베크만의 많은 전작들은 읽지 않더라도, 이 시리즈는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정리되는 내 책장에서 끝끝내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다.

 

"신이시여,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싶을 만큼.

 

분열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꼭 생각해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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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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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의 SF 소설집 『화성과 나』는 암울한 미래를 전제로 한다.

지구의 상황은 기후 위기로 말미암아 지구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진다.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는 지구, 현실에 대한 피난처로 꿈꾸는 화성.

하지만 화성에서의 생활은 역시 만만치 않다.

절망하기 쉬운 미래, 과연 화성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화성과 나』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바쁘다. 아니 바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시작해야 한다. 공간을 짓고 행성을 관리도 해야 하며 기록도 해야 한다. 새로운 도시도 만들어야 하며 화성에서 먹을 수 있는 곡식도 만들어야 한다.

화성은 새롭게 시작하는 반면 지구의 상황은 점점 어두워진다.

<행성 탈출 속도>에서의 부산의 날씨는 이미 45를 넘나들고 폐허가 된다. <김조안과 함께하려면>에서는 기상학자인 '나'는 점점 멸망해가는 지구의 상황을 지켜본다.

화성에서는 지구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지구에서는 화성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든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데 배명훈 저자는 다섯 편의 소설들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게 있다.

바로 '회복력'이다.

 

화성인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뭘까요?

모험심? 호기심? 아니면 고집?

아니요, 의외로 회복력이에요.

무슨 일을 겪어도 화성인은 반드시 회복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예요.

 

『화성과 나』의 모든 이야기를 '회복력'이 끌고 간다.

화성에서의 삶은 공기도 적고 불모지가 많기에 삶에 제약이 많다.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고 모래 폭풍이 불면 아지트에 들어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피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한다.

우리들은 화성인이다. 우리는 반드시 회복한다.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이어가며 회복해간다.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의 이지요는 우주선 동지를 잃었지만 친구의 일을 이어받아 임무를 완성해간다. <나의 사랑 레드벨트>는 화성에서의 삶을 사랑하기에 엄청난 이익과 자신의 직업의 혜택을 포기하며 화성에서의 모습을 택한다.

비록 헬멧을 쓰고 다녀야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점이 남는다.

지구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위기 속에서 지구의 삶은 종말만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그냥 가만히 마지막을 생각하며 슬퍼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김조안과 함께하려면>에서 말해준다.

헤어진 옛애인 김조안. 그녀는 홀로 화성으로 떠나고 기상학자인 '나'는 매일 화면에서 지구와 화성의 모습을 관찰한다. 빈번해지는 자연재해, 매일 들려오는 어두운 소식. 지구의 모습을 본다는 건 고통이다. 마침내 가장 적극적이던 기상학자마저 죽고 말고 정말 이게 끝이구나 하는 절망감이 팽배한 이 때 김조안이 지구에 돌아온다.

멸망해가는 지구와 함께 하기 위해. 아니 꺼져 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김조안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화성에서의 업적을 버리고 다시 돌아온다.


<행성 탈출 속도>에서도 누군가는 지구의 지긋지긋한 삶이 싫어 화성으로 도망치듯 오고 누군가는 화성에서 지구로 건너온다. 자신들만의 지옥에서 탈출한 그들, 함께 하고 싶지만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존재한다. 함께 할 수 없음에 절망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택한다.


모든 인물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고민한다. 화성은 모든 게 다르기에. 화성은 모든 게 쉽지 않기에.

하지만 이들은 '절망' 대신 '회복'을 선택한다. 화성에서 간장 게장이 안 될 걸 알지만 시도라도 해 고 자신의 약점이 들통나면 자신의 직업을 빼앗길 걸 감수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는 걸 택한다. 곧 헤어져야 할 것을 알기에 헤어지느니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왜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순간이라도 회복할 것을 주장하는가?

포기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이기고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희망을 말한다.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네 번째 소설 <행성봉쇄령>이다.

지구에서의 미사일 폭격 위험 앞에서도 사랑하기로 택한 나나와 정우연처럼

비록 화성과 지구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어도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로 하는 채라와 나처럼

멸망해가는 지구를 위해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온 김조안처럼 끝까지 모든 인물들은 삶을 선택한다.

좌절하지 않고 회복을 선택하며 삶을 이어간다.

 

무슨 일을 겪어도 화성인은 반드시 회복하거든요.

 

맞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좌절하지 않는 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제 유엔에서 내년의 지구 온도가 3도 가까이 상승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지구는 이대로 끝인 건가라는 생각에 암울해지고 오염수로 우울한 이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화성과 나』 소설은 내게 분명히 말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고. 그래도 이대로 끝장이라고 좌절하지 말자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미래가 만들어질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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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짓말
라일리 세이거 지음, 남명성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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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마지막 거짓말』은 처음 접하는 작가 라일리 세이거의 작품이다.

유명한 작가라면 작품 이름이라도 알 텐데 처음 접하는 작가의 이름에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지만 작년 출간된 <락 에브리 도어> 이후에 두번째로 소개된 작가이다. 하지만 아마존 서점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이미 10편 가까이 추리소설을 써 온 유명한 작가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설레임과 궁금함을 품고 책을 읽어나간다.

먼저 제목 『마지막 거짓말』 을 생각해본다.

이 추리소설은 제목부터가 분명한 힌트를 준다. 주인공이 한 거짓말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그 거짓말이 밝혀지는지 그 과정을 캐내는 부분이 핵심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 과연 이 소설에서는 어떤 거짓말이 있는걸까 먼저 궁금증을 자아낸다.

책의 첫 도입부는 강렬하다.

 

시작은 이렇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 속, 숲을 에워싸는 미드나이트 호수,

그 숲 속에 자리잡은 나이팅게일 캠프는 대재벌 그룹 해리스 화이트 집안이 운영하는 캠프이다.

상쾌한 아침, 은은한 햇빛, 하지만 함께 생활하던 룸메이트 세 명이 사라졌다.

숲 속을 뒤졌지만 종적도 없이 사라진 세 명의 소녀들. 그녀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후, 15년이 지나고 화가가 된 에마 데이비스.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그녀의 작품에 사라진 세 명이 숨겨져 있다는 건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어느 날, 에마의 전시회에 나이팅게일 캠프 소유주였던 프래니로부터 나이팅게일 캠프 선생으로 와 달라는 청을 받게 된다. 함께 했던 룸메이트가 사라진 곳.

에마는 과연 15년이 지난 그 곳에서 룸메이트가 사라진 그 곳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마지막 거짓말』은 세 명의 룸메이트가 사라진 15년 전과 그 이후 15년 이후 성인이 된 현재를 번갈아가며 사건이 진행된다.

15년 전,

부유한 자녀들만이 방학동안에 가서 신청할 수 있는 캠프. 그 곳에 간다는 건 선택받은 집안 자녀들에게 가능한 일이다. 선택받지 못한 평민 자녀들에게는 '부자년'들이 즐겨 가는 캠프일 뿐인 선망과 질투의 장소. 그 곳에서 주인공 에마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질투의 장소인 '나이팅게일' 캠프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늦게 도착해서 언니들과 한 방을 사용해야 하는 에마의 룸메이트는 비비언, 내털리, 앨리슨 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센 척하는 에마. 그녀는 이 세 명 중 제일 기가 센 비비언을 따라하기에 바쁘다. 사랑하는 언니 캐서린을 잃고 난 이후그 사랑을 에마에게 보이는 비비언. 비비언은 에마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언니가 되어 줄게."



이 네 명이 즐겨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

세 가지의 이야기 중 어느 게 거짓인지 말하는 게임.

이 게임은 이들에게 시시하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눈 감고도 맞히는 게임.

그러면서 왜 비비언은 자꾸 이 게임을 하자고 하는 걸까?

『마지막 거짓말』 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반전은 두 가지이다.

나는 이 주인공 에마 데이비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

먼저 소설 초반부에 에마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말한 첫번째 거짓말을 고백한다.

한밤중에 홍두깨처럼 나이팅게일 캠프에 가게 되었지만 부자들이 가는 캠프에 가게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걸 숨기는 에마. 그녀는 이것이 바로 첫번째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 고백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아... 이 주인공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겠구나.

이 주인공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겠구나. 쉽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사건의 진실은 갈수록 선명하게 다가오기보다 더 미궁에 빠뜨린다.


 주인공 에마가 캐고 있는 사건의 진실이 맞는 걸까?

아니면 에마는 자신의 거짓말을 덮기 위한 진실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일까?

책 후반부에 이르러서까지 이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후반부까지 진실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두 번째. 바로 실종된 세 명의 소녀와 에마가 함께 한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이다.

서로 쉽다고 생각했던 게임들.

하지만 너무 자주 하는 만큼 거짓말 또한 늘어난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맞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읽어나가며 의문을 준다.

과연 서로가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있나?


에마의 거짓말,

두 진실 한 거짓말 게임 속의 거짓말,

이 거짓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거짓말..


이 거짓말들이 진실을 가로막는다.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끝까지 범인을 맞추기 힘들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거짓말』 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은 정말 정말 모두를 기함하게 하며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뛰어남을 알게 한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소설.

그러기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소설. 진실이 드러나면 또 누군가의 거짓말이 드러나기에 사건은 끝까지 미궁에 있는 소설이다.


진심으로 놀라운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자신이 거짓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 속에서는 엄두도 못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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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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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과 생존자들. 무엇이 그들을 1년 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나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행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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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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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소중한 청춘과 생명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이태원 참사 1주기이다.

 

희생자 159명 부상자 196명. 이 대형참사 앞에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야 해던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유가족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이다.

책 제목에 지금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생각한다.

아...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태원에 머물러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태원에 떠나지 못하게 하는가에 주목하며 책을 읽게 된다.

 

 

예전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봐야 해요.

일상적인 대화 소재를 끄집어내려고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

그게 굉장히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진우씨 이야기

 

이태원에서 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진우씨는 이제 일상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순간에 동생을 잃고 난 상황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주변의 조언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다.

예식장까지 잡아놓으며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던 동생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살아질 수 있겠는가. 30년 넘게 살아온 일상이 깊은 슬픔 앞에 압도되어 몽땅 사라져버렸다. 그냥 찾아지던 일상이 이제는 애써 찾아야만 하는 노력이 되었다.

 

 

'평범한 삶'이 어려운 숙제가 된 건 이진우씨 뿐만이 아니다. 동생 송영주씨를 잃은 송지은씨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제대로 되지 않음을 호소한다. 생존자 김솔 씨의 꿈은 이태원 참사 이후 꿈이 단 한 가지로 바뀌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상을 빼앗고 유가족들의 소망을 '평범한 삶'으로 바꾸어버린다.

 

159번째 희생자. 16살 고등학생 이재현 군의 자살 소식 후 한덕수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이 필요에 따른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지원센터에 어려움을 충분히 제기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일상도 버텨가기 힘든 상황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자신의 힘듬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인 상황이 되는가?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찾아가는 치료를 해야만했다. 얼마나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그에 응당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 허기지고 목이 말라 걸어갈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100미터 앞에 밥상을 차려져 있는데 먹으라고 하면 그걸로 역할이 끝인 것일까?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정치적인 프레임이다.

 

외국의 풍습 '할로윈데이'를 따라하려고 놀려가서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뭐하러 사람 많은 데 가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빨리 애도를 표했으니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며 재빨리 선긋기를 하는 대통령과 정부.

그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묻는다.

 


 

 

무엇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1년이 지나도록 이태원에 머물게 했나.

14명의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깨달은 건 한 가지였다.

 

"그들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애도를 충분히 치뤄지지 못하게 너무 빨리 잊혀짐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다.

 

참사 이후 너무 뿔뿔이 흩어진 희생자들. 어떤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으로 또 다른 사람은 순천향대학교병원에, 누군가는 동국대병원으로 사방으로 이송된 희생자들의 시신들로 유가족들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호소한 끝에 겨우 찾아 희생을 치루고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가족들은 같이 애도하고 슬픔을 나눌 언덕이 필요하다. 같은 사고로 같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함께 나눠도 힘든 애도의 순간을 홀로 감당하라며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만남을 차단한다. 그 정부의 차단 속에 유가족들은 더없이 외로워지고 힘들어한다. 민주사회를 찾는 변호사 모임 (민변)의 중재로 유가족들이 겨우 모여 그제서야 서로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갈 힘을 찾는다.

 

애도의 순간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가고 또 다른 누구는 평생 애도를 하며 생을 보내기도 한다. 그 순간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4.16 세월호 참사 때도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애도 기간 끝난 후 잊혀진 참사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함께 슬퍼해지더니 요술방망이가 나타나 뿅 마술을 부리더니 순식간에 잊혀져버렸다.

그 잊혀짐 속에 유가족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태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이태원에 있는 유가족의 마음이 이태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희생자 이지현씨의 동생 이아현씨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언니를 잃어버린 동생 이아현씨의 가족 앞에 이지현씨의 친구들은 그저 함께 해 준다.

힘들면 힘든대로 그 순간을 지켜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시간을 정해 만나며 고인이 된 이지현씨의 이야기를 나눈다. 잊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며 같이 있어줄 뿐이다.

 

10월 29일 멈춘 이태원에서의 159명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태원을 떠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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