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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의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로, 벌써 4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전태일 분신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는지 논하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긴 시간이 흐른 것이다. 역사는 전태일 사건을 이렇게 평가한다. ‘전태일 분신 사건은 한국 노동사의 분수령과 같은 것이었다.’ 이 말이 단적으로 드러내듯이, 전태일 분신 사건은 이전에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센세이션을 일으켜 노동자들의 투쟁에 탄력을 가한 ‘작은 불씨’와도 같았다. 이에서 각종 노동 운동들이 막힌 강이 흐르듯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상한’ 역사적 상식은 잠깐 접어두고 싶다. 내가 전태일 평전을 그렇게나 감명깊게 읽었던 이유는 그 책이 전태일 사건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지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책이 ‘인간’ 전태일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삶을 증언하는 바탕은 당시 불의에 항거하던 사람들의 저항 정신이다. 대표적으로 이 책을 쓴 조영래 변호사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평전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인간들’, 특히 ‘인간’ 전태일에 대한 기록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철조망, 그것은 법이다.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법과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고독하게 추방되는 과정, 양심과 인륜을 박탈당한 비인간으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으로 회복되는 과정, 어떤 법률, 질서, 도덕, 훈계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다.
 

    언뜻 보면 모순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글귀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글은 전태일의 삶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참상을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철조망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제도, 법의 억압을 뛰어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지만 오히려 사회의 기득권층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겨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는 등 ‘인간’의 삶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비참한 비인간적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그였기에 그는 ‘참된 인간’이라고 불린다. 그러한 극한의 삶 속에서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한(限)을 그 시대의 피억압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시궁창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는 게 더 나을 정도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그를 벌레만도 못한 인간으로 보았다고 해도 우리는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인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불태운 지 41년이 지나도 그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노동 운동의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강력한 생(生)의 의지’가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노동 운동의 영웅’이였다면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대중의 뇌리에 잊혀져야만 했다. 그는 영웅이라기보다 ‘인간’이라,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는 분열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끝에는 생의 불꽃을 활활 태우는 것으로 그 분열을 끝낸다. 그렇게 그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인간’ 전태일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조영래 변호사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해 본다.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폐되어 껍데기를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한 인간이 그의 인간성을 풍부하게 하는 과정은 그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데기를 깨고,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을 뜻한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던, 전태일이 일기장에 썼다는 문구를 하나 더 인용해 본다.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領域)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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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마지막에는 진짜 펑펑 울었던 책입니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한번 쯤 읽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이건 노동 운동이고 뭐고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감동을 줄 수 밖에 없는 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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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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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estrellashin/60129597083 

5월에 썼던 것이지만 이번 서평단 모집에 맞춰 알라딘 블로그로 옮겨와봅니다  

항상 이렇게 길게 쓰지는 않습니다....^^; 참고해주세요 ㅋㅋ; 

 

이전 저자의 『헌법의 풍경』이나 『불멸의 신성 가족』 등의 책들이 법조계의 카르텔(cartel)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우리나라의 사법 개혁에 대해 역설했다면, 2010년에 그가 새로 출간한 ‘불편해도 괜찮아’는 인권의 여러 이슈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인권 감수성의 핵심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며 저자는 우리들의 ‘현실’과 여러 영화의 ‘가짜 현실’을 적절히 혼합해가며 마치 입담 좋은 바텐더처럼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렇게 ‘인권’은 우리들에게 아홉 빛깔, 아홉 맛의 칵테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인권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마치 인간의 삶과 같이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까닭이다. 이 아홉 가지의 맛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들을 뽑아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장을 각각 발췌하여 짧게나마 ‘맛보기’로 소개하고 이 책을 전체적으로 곱씹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무지개는 청소년 인권이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迷妄)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라고 쓰고 있다. 청소년 인권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공부 문제인데, 저자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공부와 스펙에 매달려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갈 기회를 박탈당한 청소년들의 세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아니지만 여전히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어른인 대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저자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질 법하다. 이 부분은 『전태일 평전』에서 읽었던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우리 청소년들 혹은 청년들은 충분히 희망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들이 희망하는 것이 개성을 가질 권리, ‘공부를 좀 덜할’ 권리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무지개는 성소수자 인권이다. 저자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바로 그 친구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습니다.’로 글을 맺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바로 성소수자를 뭔가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억지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도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큰 인기를 얻은 네이버 웹툰 『305호에 어서오세요!』를 볼 때에도 작가가 비슷한 메시지를 담아내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실제로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친구를 알고 있었고, 그 친구에게 상처까지 준 적이 있어 저자의 이러한 메시지는 더더욱 ‘불편’하지만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본인이 성소수자인 경우에도 비슷하게 느끼리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무지개는 장애인 인권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철저한 남성우월주의, 우생학으로 무장한 영화 ‘300’을 비꼬며 이렇게 말한다. ‘한 부모의 감상적인 선택이 장애인을 살아남게 만들었고, 그 작은 구멍이 패배를 가져옵니다.’ 불행하게도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던진 작가의 신랄한 비판은 사실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빠르게’라는 슬로건이 마치 성공의 지침처럼 추앙받는다. 그 빠름을 위해서 장애인이 희생당하는 것은 보통이다. 그렇게 멋대로 희생을 강요해놓고, ‘역시’ 장애인들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멋대로 뇌리에 새겨 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기회와 차별 없는 시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그 외 일곱 번째 무지개인 검열과 표현에 대한 이야기, 여덟 번째 무지개인 인종 차별 문제 등에 관해서도 저자는 뛰어난 고찰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마지막 무지개인 집단 학살, 제노사이드(genocide)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후투 족과 투치 족의 제노사이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르완다 제노사이드에 대해 흔히 90만 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하지만, 제노사이드는 사람 한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90만 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월드 뉴스에서 수많은 전쟁 및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심지어는 그 하나의 사건조차 인식하지 않고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저자의 맥락대로라면 우리들도 결과적으로는 그 불의에 말없이 동의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곧 5·18 광주 항쟁 31주기가 된다. 물론 이를 제노사이드라고 하기엔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총칼로 희생당했다는 점에서 본질은 제노사이드와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18일을 기념하여 학살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 눈에 세상이 평안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 바깥으로 눈을 한번쯤 돌려서 이 ‘말없는 동의’에 당당히 반대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할듯 싶다. 그것이 학살에 희생당한 한명 한명의 생명의 무게를 지고 갈 수 있는 대안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내용적 측면에서도 인상 깊었지만, 더 좋았던 것은 저자가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뭔가 어둡고 무겁기만 한 자조라기보다는, 이런 글을 쓰는 자신조차도 사실은 평범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다. 인권은 뭔가 이상을 추구하는 대단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엘리트적 전유물이 아니다. 인권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의 생(生)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토대로 저자는 인권과 관련된 자신의 실수, 자기 주위의 일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매우 개방적인 사람인데, 그런 점이 내가 계속 그의 책을 읽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저자의 치밀한 고찰도 돋보였다. 저자는 법을 오래 공부한 사람답게 모든 인권적 사안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민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논의를 전개할 때에도 항상 ‘나도 모르게 인권을 침해하는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한 부분 뒤에는 마치 독자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득력 높은 재반박이 나와 있다. 책이 다름 아닌 ‘인권’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저자가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서 감수를 받고 옥의 티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의 말 한 마디마디가 더 빛이 난다.

이 책이 지니는 가장 큰 성과는 영화나 소설 등 우리에게 친근한 소재로 쉽게 다가와 ‘불편함을 느껴라’라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주제들조차도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적 콘텐츠에 풍부하게 섞여 들어가 맛있는 칵테일이 된다. 어쩌면 이것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권 교육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 책에서 ‘인권’이 드러나는 형식은 다른 인권에 대한 책과 사뭇 다른 것이 사실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맛은 여전히 ‘불편함’, ‘인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불편함을 맛보는 것은 아프다. 반대로 외면하면 하나도 안 아프고 오히려 너무나도 편해진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인권의 황금률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당당하게 그 아픔을 지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 자기가 약자들의 처지에 서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두식 씨의 책 제목도 '불편해도 괜찮아'다. 이런 인권을 생각하는 것은 아프고 불편한 일지만, 그 불편함을 처음 느끼는 게 인권 감수성의 핵심이라고 그는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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