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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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의 같은 반 학생들끼리 친해지면서 옥주가 원했던 과거는 없고 미래는 가능한 관계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크리스마스타일] p.115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과거는 없고 미래는 가능한 관계들'에 대한 선망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내 과거가 있던 이 곳에 오면 '과거만 있고 미래는 불가능한 관계들'에 둘러싸일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나의 과거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길 바랐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름의 거리를 두고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함께 일 수 있는 관계들만 곁에 두고서 선택하면서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호수는 더이상 연마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세공된 금속처럼 빛나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되비출 수 있을 것처럼, 나무가 담기면 나무가 되살아나고 새가 담기면 새가 그래도 되살아나 가지를 옮겨 다니며 날갯짓할 수 있는, 물이 지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감이었다.

[크리스마스 타일] p.133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예술을 하기에는 너무 천진하고 내면이 단순했는데, 왜 그런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크리스마스타일 ] p.266

나는 예전부터 문예반에 들어 글을 끼적이는 것을 좋아했으나 글을 잘 썼던 적은 한번도 없다. 초등학교 4학년때 문예반 선생님이 하신 말 한마디가 나의 글쓰기 인생을 좌우했는지도 모른다. "니 글은 왜 이렇게 밋밋하니..."

아.. 나의 글은 밋밋하구나...

그 한마디 이후 나의 온 평생의 글을 밋밋한 글이었다.

위 문장속에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예술이나 문학을 하기에는 너무 천진하고 내면이 단순하다. 내가 예술가나 문학가가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것인가.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운 나이지만 내면이 단순하여 나는 이렇게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런 해원의 과정없이는 아무것도 잊힐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고, 친구된 도리로서 건,조,하,게라고만 적어 보냈다.

베란다에서 돌아가는 건조기 안의 빨래들처럼 건조하게, 너무 건조하다보니 티셔츠가 행주만 해지고 수건이 행주만 해지고 다시 행주는 아기 손수건만 해지고 그렇게 줄어들고 줄어들더라도 신기하게 어딘가에는 쓰임이 있는 세탁물들처럼 건조하게.

[크리스마스 타일] P.302

김금희 작가의 문장은 유려하면서도 건조하다. 어쩜 이런 표현을.. 어쩜 이런 은유를... 어쩜 이런 문학적 아름다움이 담긴 문장을 썼나 밑줄을 와장창 그으면서 읽지만 막상 인물의 생각을 자꾸 곱씹어야 이해가 된다. 아마도 그 인물들의 감정이 건조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인 듯 하다 문장들이 모두 건조하다고 느껴지나보다.

ENFP의 너무나 감정적 인간인 나에게 이렇게 건조한 문장은 너무 생소하기 때문인가보다. 감동이 밀려오고 기승전위기결이 폭발적으로 펼쳐지고 물빛 가득한 문장들이 넘쳐나야 내 마음에 와 닿는데 그게 아니기에 쉬이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고 내가 김금희 작가의 책을 읽는 이유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다 연말이 되면, 곧 소멸될 일년이라는 시간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 뚜렷해지듯 말이다. 인물들 저마다 각자의 어려움과 피로, 슬픔과 고독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긴긴 밤을 지나 걸어오면 12월이라는 기착지에 멈춰서게 되고, 그것을 축복하듯 내리는 하늘 높은 곳의 흰 눈을 만나면 비로소 이득해지기도 한다고. 그렇게 우리가 아득하게 삶을 관조해낼때 소란스러운 소동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을 만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크리스마스타일] 작가의 말 P.305

이제 곧 소멸될 일년이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일년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내고 12월이 되면 그 일년을 마칠 준비를 한다. 흰눈과 크리스마스가 그토록 반가운 것은 지난한 일년을 이제 마칠 수 있고 새로운 것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뒤섞여 있기 때문인가보다. 일년이 365일이고 우리엔게 사계절이 있어 그 끝과 시작이 있음을 만들어 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의 삶을 그저 세고 세고 또 세기만 하여 나의 날은 지금 만칠천백오십오일째라고 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괴로운 날들일 것인가. 이제 더이상 의미없어진 그저 케잌 하나로 그 날이 있음을 알게 되는 크리스마스마 올해는 왜인지 조금 더 특별해질 것 같다.



*창비에서 가제본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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