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요나

 

 

 

'고래' 뱃속의 요나는 아니라고 한다. 히브리어 '닥 가돌' , 어떤 큰 물고기, a big fish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래를 떠올리게 했을 뿐이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대적했던 왕 역시 '파라오'이었을 뿐인데, 람세스2세로 자동 변환되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예언자의 소명, 혹은 종교인의 그리고 사람들의 소명에 관한 성찰이다.

 

 

 

 

 

요나는 하느님을 거슬러 도망을 갔다.

 

 

 

 

 

 

 

 

손오공의 부처님 손바닥처럼 요나도 하느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소명을 받는다. 한번 죽었다 살아나서 참된 깨달음과 실천에 나선 것이다.

 

 

 

 

 

 

 

요나가 처음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다. 종교인은 "믿습니까?" 라고 하지 않는다. 요나는 과묵하고 머뭇거리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 머뭇거림은 성찰이다.  신은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라 요나같이 의심하는 사람에게 온다.  확신은 신의 것이고, 머뭇거림은 인간의 것이다.

 

 

 

 

 

 

 

소명 (召命)은 '보카치오' 라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다. 영어로 vocation은 소명, 직업, 천직 등으로 쓰인다. 하느님이 불러 일을 맡기는 것, 혹은 그 일이다.

 

요나는 하느님의 소명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행위의 올바름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세상을 거슬러 힘들게 외쳐야 했다.

 

모든 직업에는 이런 차원이 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을 거슬러야 했던 것처럼 권력자에 맞서야 할 때가, 요나가 선원들에 들려 바다에 빠져야 했던 것처럼 평범한 이웃들과 대결해야 할 때가, 바다와 풍랑이 요나를 삼켰던 것처럼 자연적 재난에 휩쓸릴 때가, 큰 물고기 속에 요나가 갇혀야 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어떤 운명이 덮쳐 올 때가 있다. 직업이 소명이라면 세상에 거슬러 그 천직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교회는 "믿습니까?"에 "믿쑵니다."로 합창하는 곳이 아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막연히 한 줄기 빛 속에 무릎 꿇은 한 사람의 흔들리는 눈빛과 뜨거운 눈물이 떠오를 뿐이다.

 

 

 

 

 

 

 

 

13강 엘리야

 

 

 

엘리야는 유일신교의 토대를 닦은 예언가이다. 고대 근동 다신교의 시대에 엘리야는 오직 야훼 하느님에 대한 '유일 섬김'을 주창했다.

 

 

 

 

 

유일신교는 유대교가 처음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왕국 시기에 아텐(아톤?) 신을 숭배하는 유일신 개혁이 있었다.

 

 

같은 프로그램인 클래스e에 열 개의 강으로 구성된 <고대 이집트>라는 강의가 있다. 국내 유일의 '이집트 고고학자'라고 소개된 곽민수 소장의 강의이다.  주원준 강의에 잠깐씩 소개되는 이집트와 조금 다른 부분도 있는데, 아케나텐 개혁과 관련하여 인용하려 한다.

 

 

 

 

 

 

 

 

 

신왕국의 14세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시대인데,  유일신 개혁이 일어난 것이 이 시기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 아멘호테프 4세가 본격화 하였다.

 

 

 

 

 

 

 

 

 

태양신의 상징이던 태양 원반을 따로 떼어 내어 '아텐' 신으로 모셨다. 원반 아래로 태양 빛살이 퍼져 나가고 그 끝에는 손들이 그려져 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스스로를 아케나텐이라고 불렀다.

 

 

 

 

 

 

 

 

아텐신 이외의 모든 신들을 없애고, 신전을 폐쇄하였다. 아텐신에 대한 제사도 신관이 아니라 파라오와 왕족이 직접 모셨다. 신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이집트 경제는 마비되었고, 신관들을 중심으로 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무덤의 주인, 소년왕 투탕카멘 시대에 이미 아케나텐의 유일신 개혁에 대한 흔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긴 이집트의 역사에서 유일신 사상은 오직 아케나텐의 통치 약 20년간의 아주 짧은 시간에만 존재했을 뿐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적의가 묻어나는 아케나텐 없애기 작업은 다양한 유물에서 발견된다. 심지어는 아케나텐의 미이라에서도 그 얼굴과 이름이 지워져 있다.

 

 

 

 

 

 

 

 

유일신 개혁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오랜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파라오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추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은 이집트 신왕국을 내분으로 몰고 갔고, 이후 막강했던 신왕국의 국력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집트보다 300~400년 이후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유일신 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차이라면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에 대항하여 탄압을 받으면서 유일 섬김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아합은 야훼를 배척한 왕이 아니었다. 아합은 야훼도 믿고 바알도 믿은 것이다. 전쟁을 나갈 때는 야훼를, 풍요와 치유를 위해서는 바알을 섬겼다. 다신교는 고대 근동의 관습이었고, 이웃 국가들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다양한 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아합은 폭군이 아니라 유연하고 합리적인 통치자에 가깝다.

 

 

 

 

 

 

 

엘리야는 이에 반대하여, 유일 섬김만을 강조했다.  수많은 야훼 사제들이 모두 바알을 받아들였을 때도 끝까지 야훼만의 사제로 혼자 남았다. 유일 섬김으로 번역하는 Monolatria의 latria는 예배하다, 섬기다란 뜻이다.  엘리야의 시대에는 다른 신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만을 섬기라고 했던 것이다. 유일 섬김은 후대에 유일신론으로 발전한다.

 

엘리야는 반만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님을 설파했다. 세상 물정에 맞추어, 편리한 대로, 이익을 쫓기 시작하면, 원칙은 무너지고 만다. 아합은 야훼 신앙을 탄압했기 때문에 악인이 아니다.  적당히 믿자는 달콤한 유혹을 퍼뜨렸기 때문에 악인인 것이다. 이 신, 저 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면 야훼는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14강 예레미야

 

 

 

구약 성경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예언자들이다.  고대 근동의 대다수 예언자들이 통치 도구로서의 기능을 했다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은 왕들에게 저항하고 백성들의 잘못을 질책하였다.

 

 

 

 

 

 

고대 유물과 기록에 나타난 예언들을 보면, 재미있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예언가들이나 통치자들은 예언을 믿었을까? 안 믿었을까?

 

이집트에는 '사후 예언'이라는 장르가 있다.  예언이 있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건에 맞추어 예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건을 합리화하거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언을 믿었던 것일까?  예언을 선전의 도구로 이용했으니, 피통치자들은 믿었다는 뜻일 것 같고,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던 통치자는 믿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아시리아 제국에는 담키라는 관행이 있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점을 쳤는데, 점괘가 나쁠 때는 대리 왕인 담키를 내세웠다. 담키를 즉위시킨 후 죽여 버림으로써 흉한 점괘가 실현된 것으로 간주하고 좋은 점괘가 나올 때 진짜 왕을 즉위시키는 방법이다.  이들은 예언을 믿은 것일까?  믿기는 했지만, 인간의 힘으로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가 바뀌면 토정비결부터 각종 동양 철학이 성행한다. 단순한 놀이라기에는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유명한 예언가들이 지옥의 깊은 고리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그렇게도 앞을 보고 싶어 했던 예언가들은 얼굴이 등쪽으로 돌아가 뒤만 보고 걷고 있다. 점집에 앉아 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사실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강의의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니다. 강사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은 예언을 믿었을까? 안 믿었을까? 질문해 볼 수도 있다.

 

고대 근동의 다른 예언들과의 차이점이 결정적이다. 문서로 남은 예언서들은 모두 저항하는 예언자들의 것이다. 통치의 도구로 동원된 예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지워지고, 왕과 백성을 질타하는 예언들만 기록되어 전해진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역설이다. 기록의 역전이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신아시리아에,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망했다.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기원전 6세기 무렵에 구약 성경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역사>

 

 

유배된 백성들과 나라 잃은 백성들은 철저한 반성을 통해 기록을 남겼다. 왕권을 지지하던 예언자들이 틀렸고, 왕에 저항하던 예언자들이 맞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히브리인들은 나라가 망했지만, 그들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망국의 원인을 성찰한 후 지배자들을 역사의 비주류로, 저항하며 탄압받던 예언자들을 역사의 주류로 뒤바꿈으로써 믿음을 고수했다. 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통치자와 백성들이 틀렸음을 공인했다.

 

망국의 유배 생활에서 이렇게 부활한 예언가가 예레미야다. 예레미야는 친이집트 파와 친바빌로니아 파가 나뉘어 다투던 혼란기에 파벌 싸움에 휘말려 희생된 비운의 예언가이다. 그러나 유배 생활 중 제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이스라엘 조상의 대표가 되었다.

 

 

 

 

 

 

15강 욥

 

 

* 1월 26일에 올라 온 15강 '욥'을 덧붙입니다.

 

 

 

<욥기>는 유명하여서, 나도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알쏭달쏭했다.  첫째는 세 친구들과 욥의 말 중 누가 옳은지 판단이 힘들었다. 욥이 잘못 한 것은 없는데, 세 친구가 또 딱히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둘째, 야훼는 왜 욥을 옳다고 하는가 였다.

 

욥과 친구들의 격론이 끝난 다음에 나타난 야훼는 떠들석하게 욥을 꾸짖는다. 한마디로 한갖 미물이 뭘 안다고 신의 일에 따따부따 말이 많냐는 것이다. 이때 야훼의 말은 조금 아이 같다. 나는 이런 이런 존재다라며 과시하는데, 땅과 바다와 어둠과 빛과 하늘과 동물, 이런 것 모두 내가 만들었고 내가 먹여 살린다. 무시무시한 브헤못, 레비아탄도 내가 만들었다. 그때 너는 뭐했느냐? 는 식이다. 일종의 동문서답이다.  올바르게 산 사람에게 신은 왜 고통을 주는가? 라는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렇게 욥을 야단친 다음에, 오히려 욥이 옳고 친구들이 틀렸다고 판결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욥기>는 발상 자체가 기이하다.  욥의 모든 고통은 하느님과 사탄의 내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욥을 시험하기 위해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을 넘긴다. 처음 읽는 순간, 하느님이 이래도 되는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것보다는 히브리인들이 감히 이런 불경한 생각을?,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욥기>는 기묘했다. 

 

 

 

 

 

<구약의 사람들>의 마지막 강의를 오래 (?) 기다렸다.  1월 23일에 업로드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1월 26일에야 되었다. <욥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마음을 급하게 했다.

 

 

 

 

 

<욥기>는 말하자면 원본이 있는 이야기다. <바빌론 신정기> 혹은 <바빌론 욥기>라고 불리는 텍스트가 바빌로니아에 있었다. 이야기 구조도 거의 유사하다. 내용도 심지어는 세부적 표현도 그렇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아마 바빌론 유수 때 읽고 들은 이야기를 야훼 신앙에 맞춰어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욥이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식이 아니다.

 

 

 

 

 

<욥기>는 세상의 부조리, 이유 없는 고통, 의인의 고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욥과 세 명의 친구들은 논쟁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제시한다.  욥은 억울함을 토로하고, 친구들은 위로하는 듯하지만 욥에게 신의 노여움을 살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 전제한다. 논쟁은 격화되어 서로 막말을 주고 받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위로를 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논리에는 정의로운 신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리가 없다는 인과응보의 관념이 내재되어 있다. 피해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욥은 아니라고 하지만, 네가 모르는 잘못이 분명히 있으니 찾아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를 찾게 만드는 무서운 논리가 친구의, 조언자의, 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 "은총의 톨게이트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신의 말을, 신의 뜻을 안다고 행세해서는 안된다.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까지 하면 된다. 나머지는 신이 직접 하신다.

 

세상은 권선징악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하느님은 까닭없이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욥은 사탄의 계략에 걸려든 것뿐이다.  이 부조리를 받아들일 때에만 일어설 힘이 생길 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카인은 말없이 아벨을 죽였다. 끝까지 죄 없음을 강변한 욥은 어쩌면 이런 세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든 하느님을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할 말을 했을 뿐이다.

 

 

 

 

 

 

<바빌론 욥기>와 구약의 <욥기>는 흡사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빌론 욥기>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로 끝이 난다. 이 대화에는 부조리한 세상과 이런 세상을 만든 신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있다. 바빌로니아는 이런 비판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명이었다.  <바빌론 욥기>는 인간들의 담론, 철저히 인간들의 철학이다.

 

구약의 <욥기>에는 야훼가 직접 등장한다. 구약 성경에서 야훼가 가장 길게 말하는 것도 <욥기>이다. 신은 성가신 인간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운 듯하다. 그런데 말씀하신다.

 

 

 

 

네가 받고 있는 고통이 이유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세상이 모두, 친구조차 인정하지 않더라도, 너의 의로움을 나는 알고 있다고, 신이 말씀 하신다.

 

<욥기>의 반전은 여기에 있다. <바빌론 욥기>와의 결정적 차이가 이것이다. 세상이 알아 주지도 않고, 오히려 고통만 당한다고 하더라도, 너의 올바름을 알아 주는 신은 있다. 그러니 불합리한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너의 잘못을 찾아 자책하지도 말고, 그냥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는 위로가 있다. 올바름을 잃지 않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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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곡

 

 

18곡은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말레볼제'로 시작한다. 말레볼제는 단테가 만들어 낸 이름으로, '사악한 구렁' 이라는 뜻이다.

 

게리온의 등을 타고 내려온 높고 험한 절벽과 웅덩이(아마도 아홉 번째 고리인 코기토스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이에 놓인 열 개의 깊은 구렁들이 말레볼제.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다.

 

 

 

 

 

 

 

앞서 11곡에 설명된 바에 따르면, 지옥의 맨 아래쪽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고리에는 배반자들이 있다.

 

우리는 양심을 찢어지게 하는 배반의 죄를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나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저지를 수 있지

                                               (11곡 53~54)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저지른 배반의 죄가 여덟 번째, 말레볼제에 떨어지는 죄이다.

 

 

 

 

 

 

이 배반의 죄는 정도에 따라 열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 진다. 그 첫 번째 구렁(24)에는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있다. 뿔난 마귀들의 채찍질을 받으며 벌거 벗은 채 두 줄을 지어 마주 보며 걷고 있다.

 

두 번째 구렁(103)에는 아첨꾼들이 똥물 속에 잠겨 있다. "혓 바닥이 지칠 줄 모르고 알랑거린 탓"이다.

 

 

 

 

 

19곡

 

 

 

 

 

 

그런데 구렁과 구렁 사이는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구렁의 양쪽에는 둔덕이 있고, 둔덕과 둔덕 사이에는 활꼴형 다리가 놓여 있다. 순례자는 둔덕을 따라 걷거나 다리 위에서 구렁 속의 죄인들을 살피고, 대화도 나눈다.  첫 번째 둔덕과 두 번째 둔덕 사이에 첫 번째 다리가 놓이고, 첫 번째 다리 아래로 첫 번째 구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에 그리기가 쉽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유수 (1309~1377)>

 

 

세 번째 구렁(5)에는 충격적인 죄인들이 있다. 추기경과 교황들이다. 중세의 지옥에 성직자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불경할 듯한데, 이 지옥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14세기 초반에 사람들은 부패한 교회의 실상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성물이나 성직을 매매한 자들이 바위 구멍마다 처박혀 발바닥이 불타오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

 

단테와 대화를 나누는 죄인은 교황 니콜라우스 3세이다. 1280년에 죽어서 20년 째 단죄를 받고 있는 그가 곧 자기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교황들에 대해 예언한다. 3년 뒤에는 보나파키우스 8세가, 뒤이어 클레멘스 5세가 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말이다.

 

교황들을 줄줄이 지옥에 처박을 만큼 14세기는 교황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이다. 세계사에 간략히 요약되는 내용만으로도 이 혼란상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은 두 개의 권력이 다투는 시기다.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 혹은 교황권과 황제권이, 두 개의 칼로 비유되며 맞섰다. 하지만 중세를 '기독교 공화국'이라고 할만큼 전성기의 중세는 교권이 강했다. 봉건제도 아래서 세속의 정치 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지만, 로마 교회라는 보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권은 강력한 위계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역사 고전 강의>

 

 

교황권의 성쇠는 1077년 카노사의 굴욕과 1309년~1377년의 아비뇽 유수가 집약하고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무릎 꿇린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권은 날로 성장하여, 십자군 전쟁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패배하며 쇠퇴하기 시작한 교황권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주도한 아비뇽 유수로 땅에 처박혔다.

 

 

 

 <필리프 4세>

 

 

 

단테가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나파키우스 8세는 교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들에게 교회에 과세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최초로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이에 대항하였고, 교황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우고 보나파키우스 8세를 체포하였다. 여론에 의해 석방은 되었으나, 심한 모욕을 당하였던 보나파키우스 8세는 한 달만에 분사하였다.  이때가 1303년이다.

 

1305년에 즉위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필리프 4세와 손잡았다. 1309년에 필리프 4세는 아비뇽에 교황청을 지었고, 이후 일곱 명의 교황이 1377년까지 아비뇽에 머물렀다.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아비뇽 유수라고 불렸다. 이 시기 교황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었다.

 

이 보나파키우스 8세와 클레멘스 5세를 단테는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에 처박으려고 하는 것이다.

 

 

 

 

 

 

 

 

 

137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로마로 복귀했지만, 다음해 이탈리아인 우르바누스 6세가 교황에 선출되자 프랑스 추기경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클레멘스 7세를 교황으로 새로 선출하면서 교회 대분열이 시작된다. 이후 40년간 교황이 두 명 혹은 세 명 존재하는 혼란이 연출된다.

 

 

 

 

 

 

 

 

교회 대분열의 시기에 후스, 위클리프 같은 개혁가들이 등장하여 성서 중심의 교회 개혁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화형을 선고 받는다. 교회는 1414년~ 1418년에 콘스탄츠 공의회를 개최하여 혼란을 수습하지만, 근본적 개혁에 눈을 감으면서 16세기의 '종교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20곡

 

 

 

 

<요한 울리히 크라우스, 제우스와 헤라와 함께 있는 테이레시아스>

 

 

 

 

네 번째 구렁(19곡133)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다. 암피아라오스, 아론타, 만토, 그리고 누구보다 테이레시아스가 있다. 이들은 고대 희랍-로마 신화의 예언가들이다.  20곡에서는 이들을 점쟁이(122)나 마술사(123)로 부른다.

 

등을 가슴으로 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봐라!

너무나 앞을 보고 싶었기에

뒤를 바라보며 거꾸로 가고 있구나. (37~9)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러 저승에 간 오뒷세우스>

 

 

성경에도 예언자들이 나오는데, 이들 신화 속의 예언가들은 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걸까? 테이레시아스는 희랍 신화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도 꼽힌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에도,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도 눈 먼 예언자로 나온다.

 

 

 

 

 

 

20곡의 백미는 콘트라파소다.  앞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예언가들에 상응하는 벌은 뒤만 보도록 하는 것이다.  얼굴과 몸통이 반대로 붙어서 뒤를 보며 거꾸로 걸어야 한다.

 

 

 

 

 

21곡

 

 

 

 

 

 

다섯 번째 구렁(4)은 탐관오리들(38/42)이 끓는 역청(10)과 말레브란케의 갈고랑쇠(38/57)에 살이 찍히는 벌을 받는 지옥이다.

 

말레브란케는 단테의 조어로 '사악한 앞발'이란 의미이며, 다섯 번째 구렁을 지키는 마귀들을 가리킨다.

 

말레브란케는 여섯 번째 구렁으로 연결된 여섯 번째 다리의 바닥이 무너졌다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하고, 길 안내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23곡에서 밝혀지는 바, 거짓말이었다.

 

 

 

 

22곡

 

 

말레브란케들의 안내를 받아 둔덕을 걸어가다가 역청 속에서 고개를 내민 치암폴로라는 죄인을 만난다.  꾀가 많은 치암폴로는 말레브란케들에게 내기를 걸어 도망쳐 버린다. 말레브란케 둘이 그 바람에 역청에 빠져 죽는데, 이 혼란을 틈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다섯 번째 구렁을 빠져 나온다.

 

 

 

 

 

23곡

 

 

 

 

 

화가 난 말레브란케들에게 쫓겨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어린애처럼 안고 둔덕을 뛰어 넘어 여섯 번째 구렁의 한쪽 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섯 번째 구렁을 벗어나면 힘을 쓸 수 없는 말레브란케들에게서 벗어나 여섯 번째 구렁(53)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여섯 번째 구렁의 슬픈 위선자들(91)은 화려한 금빛의 망토를 입고 느린 걸음으로 맴돌고 있다. 겉은 금빛이지만 무거운 납으로 된 망토(65)이다. 바닥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111)들도 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일곱 번째 구렁으로 넘어갈 돌다리가 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닥과 기슭에 쌓인 바위 조각들을 밟고 건너가야 한다. 말레브란케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베르길리우스는 노기를 띠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말레볼제의 일곱 번째 다리가 끊어진 지옥 구조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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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다가 도표까지! 거기에 공부하신 강유원박사님의 역사고전강의까지! 정말 대단하네요! 오늘도 신곡 공부 잘 했습니다!ㅎ 잘 엮어서 라벤나에 있는 단테 무덤에 헌정했으면 좋겠네요!ㅎ 즐건 주말되십시요!

말리 2021-01-24 17:18   좋아요 0 | URL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은 직접 그려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삼아 그려봅니다. 그래서 정확하지가 않을 거예요. 천 년이 넘게 연구된 작품이고, 이 한 작품만 강의하는 교수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는 정밀하고 정확하게 해석된 글들이 많이 있겠지만, 저같은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서, 조악하나마 그려봅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
 

12강은 구약 성경에 없는 우가릿의 일리말쿠 이야기다. 이를테면 번외 편인데, 우가릿은 이스라엘이 건국 되기 전에 번성했던 작은 도시국가이다. 길지 않은 강의에 3000여 년 전에 사라진 우가릿을 다루는 것은 이스라엘과 야훼 신앙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이자 역사이기도 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겪으며 나라를 일으키는 과정은 고대 근동의 역사와 맞물려 전개 될수 밖에 없었다.

 

 

 

 

 

  

강사 주원준은 고대 근동학 전공자로서 EBS <명강>에서 "고대 근동 3천 년과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으로 여덟 강에 걸친 흥미로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구약의 사람들> 11강은 이 강의를 참고하여 정리하려 한다.

 

 

 

 

 

 

1. 고대 근동

 

 

 

 

 

 

 

 

 

지도에 나타난 지역이 고대 근동의 공간적 배경이다. 근동이라는 명칭은 서구 중심적이라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고대 근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연구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 분야의 학술 용어로서는 사용되고 있다. 중등 세계사에서는 서아시아 역사로 다루는 지역이다.  

 

 

 

 

 

 

  

 

시간적으로는 청동기 문명이 발생한 기원전 3,500년 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한 기원전 300년 무렵까지이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삼천여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주로 강대국들이, 그 사이의 시리아-필리스티아는 약소 국가들이 명멸했다.

 

 

 

 

 

 

 

 

 

대략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북부에는 아시리아, 남부에는 바빌로니아, 그리고 나일강 유역에는 이집트가 강대국으로 자리잡았다.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과 발칸 반도, 페르시아만 유역은 문명의 변방 지대로 강대국들의 영향권 아래 여러 민족들과 작은 나라들이 다투었다.

 

 

 

 

  <세계의 역사>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1700년 직후와 기원전 1200년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유라시아 문명의 전역에 유목민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이 침략은 유럽에서 중국까지 대규모의 세력 교체와 문명의 교체를 가져왔다.  

 

 

 

 

 

 

 

 

 

첫 번째 침략으로 이집트는 힉소인의 지배를, 바빌로니아는 카슈트인의 지배를 받았다. 문명의 뿌리가 깊었던 이 지역들은 얼마 후 이민족의 지배를 물리쳤고, 이민족의 통치기에도 고유의 문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 침략자들이 오히려 발전된 이집트 문명과 바빌로니아 문명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간 것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힉소스인을 특정 민족이 아니고 시리아-필리스티아 혼종 민족으로 본다면 이 시기 많은 유랑민들이 이집트에 들어가 정착했을 것이다. 이집트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요셉에 대한 묘사도 힉소스인의 이집트화라는 역사적 사실과 잘 들어맞는다.

 

기원전 1500년 이후 고대 근동은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이집트의 신왕국,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미타니)가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힉소스인을 몰아낸 이집트는 적극적으로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에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이민족의 침략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이집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히타이트 역시 시리아-필리스티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원전 1274년, 이집트 신왕국과 히타이트는 카데쉬를 두고 최초의 세계 대전을 벌인다. 강대국들은 주로 작은 국가를 통해서 싸우거나, 소규모의 국지전 형태로 다투어 왔는데, 처음으로 두 강대국이 직접 총력전을 벌였기 때문에 세계 대전이라 부른다.  

 

카데쉬 전투는 공식적으로는 승패없이 평화 조약으로 끝났지만, 이후 히타이트는 급속히 쇠퇴하여 멸망했고, 이집트 신왕국도 점차 쇠퇴하면서 고대 근동의 세력 균형이 무너졌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도 이런 근동의 세력 변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원전 1200년 직후 농경사회는 또 한번 대대적인 유목민의 침략을 받았다. 새

로운 무기인 철기가 등장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Sea People'이 바다에서 몰려 왔다.  암흑기라 부를 만큼 철저한 파괴와 단절이 있은 후  새로운 국가들과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였다.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에 페니키아인, 아람인, 이스라엘인, 필리스티아인들이 새롭게 정착하였다.

 

 

 

 

 

 

 

 

역사 기록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표기가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르넵타의 비문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다. 국가가 아니고 민족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광야에서 막 들어왔거나, 판관 시대 정도로 추정된다. 

 

히브리인들은 기원전 11세기 무렵 처음으로 국가를 건설했다. 기원전 1000년 이후 고대 근동은 새로운 안정을 찾으며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패권은 신아시리아 제국  → 신바빌로니아 제국 →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졌다.  건국 직후 짧은 풍요를 누렸던 이스라엘은 새로운 시련을 맞았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 되었다가, 신아시리아 제국과 신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각각 멸망하였다.

 

 

 

 

 

 

 

2. 우가릿과 바알 신앙

 

 

우가릿은 기원전 12세기 이전에 시리아-필리스티아 지방에 번성했던 도시 국가이다.  풍요로운 항구 도시로 군사력은 약했으나, 발달된 문화를 꽃피웠다. 기원전 1200년 직후의 '파괴와 단절' 로 이 지역의 다른 많은 도시국가들과 함께 소멸했다.

 

 

 

 

 

 

 

1928년 시리아에서 삼천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던 우가릿의 지하 무덤이 발굴되었다. 쏟아져 나온 토판에서 우가릿의 독자적 문자와 풍부한 전승이 발견되었다. 우가릿어는 살짝 변형된 아카드어인데, 문법이 히브리어와 매우 유사해서 요즘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우가릿어를 배워야 할 정도라고 한다.  문학적 완성도가 놀라운 신화들이 여럿 발견 되었는데, 구약 성경에는 죄악시 되고 있는 바알 신의 이야기가 풍부하고, 구약과 표현법이 비슷한 내용들이 매우 많다.

 

흡사한 문법과 비슷한 이야기 등 구약에 스며든 우가릿 문화의 흔적을 연구해 보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군사력은 약하나 경제와 문화가 발전했던 우가릿 같은 국가를 이스라엘이 국가 건설의 모델로 삼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다.

 

 

 

 

 

 

 

우가릿 토판들 중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바알 신화>, <아크하루 서사시>, <키르타 이야기>는 모두 일리말쿠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그의 긴 직함을 보면, 왕의 고위 관리이자, 대사제이며, 서기관이다.

 

 

 

 

 

 

 

 

<바알 신화>를 보면 우가릿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종합적임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종교, 정치와 외교를 통합하여 보려했던 태도가 이스라엘의 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 성경도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뚜렷이 드러난다.

 

 

 

 

 

 

 

바알은 풍우신이다.  고대 근동의 건조 지대에서 비와 바람은 풍요의 상징이다. 하다두, 테슈브, 타르훈자, 토르 등 민족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히브리인들도 시리아-필리스티아 지방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게 되자 바알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야훼만을 섬겨야 하는 히브리인의 신앙과 바알신 숭배는 공존하기 힘들다.

 

 

 

 

 

 

 

 

야훼 신앙을 보통 유일신교라고 하는데, 강사 주원준은 'monotheism' 즉 '다른 신은 없다'라기 보다는 'monolatry', 한 분만 섬기라는 '유일 섬김'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유랑하는 민족이 아니라 정착하여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의 왕들은 다른 신을 받아들이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가 종종 신들의 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농경과 외교 등에 있어서 유일 섬김 보다는 다신 숭배가 유리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구약 성경 곧곧에 드러난다.

 

므나쎄, 아합과 이제벨, 엘리야의 카르멜산 전투는 이 갈등을 잘 보여준다. <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허브 선장의 모델인 아합은 바알 숭배로 엄청난 비난을 받아 왔지만, 아합의 주장은 야훼 대신 바알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야훼도 믿고 바알도 믿자는 것이다.

 

 

 

 

 

 

 

이슬라엘이 우가릿을 본보기로 삼았고 구약 성경도 우가릿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우가릿이 많은 신들을 숭배했던 반면 이스라엘은 끝까지 야훼 유일섬김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유일 섬김 사상은 이후 하느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신에서 세계의 유일신으로 확장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스라엘과 우가릿의 또 하나 큰 차이점은 바알 신화에는 역사적 배경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야훼는 역사에 임하여 직접 개입하는 신이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면밀히 읽으면 역사적 사실과 일치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우가릿의 신화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양한 신을 통해 다양한 소망을 기원했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오직 야훼만을 섬겼던 독특한 히브리인의 역사와 그런 자기 백성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는 독특한 야훼신의 이야기는 남은 네 개의 강의에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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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곡

 

 

 

 

 

 

11곡은 단테가 지옥의 전체 구조를 직접 설명해 주고 있다. 지난번 스타디 과제 때에 대부분이 '디스'를 조금 혼동하는 것 같아서, 이번 스타디 때는 마침 11곡의 내용도 그렇고 해서, 직접 지옥의 구조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는 마거릿 버트하임의 구조도를 조금 변경해 그렸다.

 

지옥은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9가지 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리의 입구마다 지키는 괴물(괴수)들이 있긴 하지만, 죄의 종류가 질적으로 변할 때는 그보다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은 지옥문이다. 단테의 순례 길에는 이미 지옥문이 열려 있었는데, 이 문은 예수님이 림보의 맑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와 저항하는 악마들을 물리칠 때 쳐부순 이후 열려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아케론강이다. 죄 많은 영혼들은 사공 카론의 배로 이 강을 건너 지옥 안으로 들어간다.

 

아홉 개의 지옥 고리는 죄의 질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욕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지은 부절제의 죄는 위쪽 고리들 즉 상옥에, 사악한 의도에 따라 저지른 이성적 죄는 아래쪽 고리들 즉 하옥에 갇힌다. 상옥과 하옥 사이에는 디스라는 도시의 성벽이 있다. 

 

성벽을 기준으로 보면 상옥은 성 밖이고, 하옥은 성 안이다. 디스는 1곡부터 16곡까지 몇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달라서 혼동을 주기 쉽다. 디스는 무엇일까?

 

 

 

 

 

 

 

디스는 8곡 67행에서 69행 사이에 처음 나온다.

 

선한 선생님이 말했다. "아들아!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과 악마들이 사는

디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옮긴이 주를 보면 디스는 루키페르 그 자체나 그가 자리 잡고 있는  지옥의 맨 밑바닥이다. 69행에 보면 디스는 도시이니, 이 도시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

 

8곡 76행에서 81행까지는 디스 도시에 대한 묘사다.

 

우리는 마침내 이 불행한 도시를 둘러싼

깊은 해자에 도착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쇠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우리가 탄배는 한동안 주위를 돌았다. 그러다

한곳에 이르자 뱃사공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내리시오! 여기가 디스의 입구요!"

 

여기가 디스의 맨 바깥 성벽이다. 추방된 수천의 천사들이 성문을 막아섰고,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 추방된 천사들을 물리친 다음에야 순례자는 성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11곡 64행에서 66행까지를 보면 디스는 '지구의 중심부' 이다.

 

그래서 지옥 맨 밑바닥의 가장 좁은 고리,

즉 지구의 중심부 디스 주변에 모든 배신자들이

몰려 있고, 그들의 고통은 잠들지 않는 거야.

 

가장 좁은 '고리'라면 아홉 번째 고리다.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맨 밑바닥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디스는 아홉 번째 고리 전체를 말하는 것일까? 루키페르가 있는 네 번째 구역 주데카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11곡의 전체 구조 설명에 의하면 코기토스라고 불린다.

 

11곡 74행에는 "불로 활활 타는 이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는 지옥편 마지막인 34곡의 20행과 21행에 있다. 궁금해서 살짝 넘겨보다가 찾았다.

 

여기에 디스가 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거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루키페르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여기서 디스는 루키페르이다.

 

디스(Dis Pater)에 대한 묘사를 종합해 보면, 디스는 성벽을 지나서도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서 맨 밑바닥 지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성읍 안으로 들어와서 논밭도 지나고 농가도 지나고 중심부에 이르러서야 관아가 나오듯이, 디스라는 도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성벽 안은 넓은 의미의 디스라는 도시이지만, 디스라는 성은 맨 밑바닥의 중심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성안에서도 일곱 번째 고리에서 여덟 번째 고리로, 여덟 번째 고리에서 아홉 번째 고리로 내려갈 때 큰 장벽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지는 읽지 않았으므로 대략 전체 지옥의 구조는 위와 같이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12곡부터 16곡까지는 일곱 번째 고리인 폭력의 고리를 순례한다. 폭력은 그 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되어, 일곱 번째 고리는 세 개의 구렁으로 나뉜다. 타인에 대한 폭력,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이다.

 

 

 

 

 

 

 

 

 

 

 

12곡

 

 

 

 

 

일곱 번째 고리의 첫 구렁(1~2)은 끓는 피의 강물(47), 플레게톤이다. 입구에는 '크레타의 치욕' 미노타우로스가 가로막고 있다. 폭력으로 남을 해친 자들(48) 피의 강물에서 삶기는 고통을 당한다. 이 강물을 벗어나려 하는 영혼은 절벽 발치에서 맴돌고 있는 켄타우로스의 화살을 맞는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 아래 미로에 갇혀 있던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이고,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반인반수이다. 두 반인반수의 괴물은 폭력이 인간의 야수성에서 비롯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준다.

 

이 구렁의 대표라면 알렉산드로스다. 단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폭군 중의 폭군으로 꼽았다. 대제국의 영광 뒤에서 사라진 엄청난 생명에 주목한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여기에 있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13곡

 

 

 

 

 

일곱 번째 고리의 두 번째 구렁(19)은 거칠고 칙칙한 숲(2)이다. 지하의 판관 미노스는 육신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온 영혼을 이 구렁으로 보낸다. 자살한 영혼들이다. 육신을 잃은 이 영혼들(94~6)은 숲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된다. 숲에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괴상한 새, 하르피아(100~2)가 이 나무들의 잎을 뜯어 먹으면서 고통을 준다.

 

피 흘리는 나무의 이미지가 여기에 있다. 가지 꺾인 나무가 진액을 흘리듯 피를 흘린다.

 

다른 고리의 영혼들은 모두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살한 영혼들만 나무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가 보다.

 

 

 

 

 

 

14곡

 

 

 

 

 

일곱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4)은 불타는 모래밭(73)이다. 하늘에서는 불비가 내린다. 하느님을 경멸하고 무시한(70) 영혼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구렁에서 고통 받는 영혼은 14곡에서 17곡에 걸쳐 묘사된다. 14곡에는 올림푸스의 최고 신, 제우스에 불경을 저질러 번개에 맞아 죽은 희랍 신화 속의 영웅이 나온다. 오이디푸스왕의 아들들이 벌이는 테바이 전쟁에 참여한 카파에우스다.

 

 

 

 

 

14곡에서 단테는 인간의 역사를 크레타의 이다산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노인에 비유한다. 옮긴이 주에 의하면 이다산은 옛날에는 샘과 푸른 숲이 울창했던 에덴과 같은 곳이었지만, 원죄 이후의 인간처럼 더렵혀져 지금은 버려진 곳이 되었다. 이다산에 같힌 노인은 에덴 동산의 원죄 이래로 파멸해 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이 노인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다니엘기(2:32~35)에서 빌렸지만, 단테는 성경과 달리 이 노인을 구성하는 황금-은-청동-무쇠를 인간의 타락 과정으로 설명한다.

 

 

 

 

 

희랍 신화에도 황금의 종족 이후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그리고 영웅 시대를 거쳐 철의 종족으로 타락하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단테가 서양 문명의 발상지를 크레타로 본 것이나 이 노인의 모습이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결합된  서양 정신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천국으로의 순례에 비록 연옥까지만이라고 해도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내세운 것부터가 그런 것 아닐까. 지옥을 흐르는 강들도 모두 희랍 신화의 다섯 개의 저승의 강을 그대로 사용했다.

 

 

 

 

 

15곡

 

 

 

 

단테는 불타는 모래밭을 둘러싼 강둑을 걸으며 존경했던 스승 브루네토를 만난다. 여기에 있는 무리들은 모두 '똑 같은 죄(108)'를 지었는데, 성직자와 위대한 문인들이 있다. 죄명은 명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죄 많은 육신(114)'이라 말하는데, 동성애자들을 의미한다.

 

 

 

 

 

 

 

16곡

 

 

 

 

 

일곱 번째 고리를 빠져 나가기 위해 강둑을 계속 걷던 단테는 피렌체의 유명 인물 세 명을 만난다. 단테가 속해 있던 궬피당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죄도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15곡의 브루네토의 말을 미루어 볼 때 동성애인 것 같다.

 

그런데 단테는 이 구렁에서 만난 모든 인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중세의 관점에서 보는 동성애와 현대의 관점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을 일곱 번째 고리의 세 번째 구렁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존경어린 태도는 매우 특이해 보인다. 고대 희랍에서는 남성 동성애가 유행했을 뿐아니라 권장되기까지 했다. 희랍 전통에 정통했던 단테이기 때문일까?

 

 

 

 

 

이제 일곱 번째 고리의 순례는 끝나고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려 한다. 그런데 '말레볼제'라 불리는 여덟 번째 고리로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한 것 같다. 베르길리우스는 시뻘건 물이 폭포수로 떨어져 내리는 절벽의 끝에서 단테의 허리 끈을 아래로 던져 무엇인가를 불러낸다.

 

 

 

 

 『신곡』의 첫 출판 당시 제목은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 이다. 줄여서 Comedia라고 하는데, 이 제목이 처음으로 16곡에 등장한다.

 

 

 

 

 

 

17곡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기 직전 불타는 모래밭의 불비 속에서 단테가 본 죄인들은 목에 주머니를 걸고(55) 있다. 고리대금업자들이다.  왜 이들이 하느님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죄인들의 구렁에 있는 걸까?

 

 

 

 

 

고리대금업은 고대와 중세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돈이 돈을 낳는 것, 즉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다. 중세에 자연의 질서는 신의 섭리이므로 고리대금은 신성에 대한 폭력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 된다. 금융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돈은 새끼에 새끼를 치며 사람을 휘두른다. 주식을 사며, 채권을 사며, 불비 내리는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이 그리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단테는 고리 대금업자들에 대해 특별히 그 죄악을 강조하는 듯하다. 앞서 지옥의 전체 구조를 설명한 11곡에서 이미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빌려 고리대금업자의 죄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성덕에 반하는 범죄(11곡 95)"인데 그 이유는 인간의 기술이 자연 즉 하느님의 자손을 따라야 함에도 고리 대금업자는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자연 자체와 그 부속물을 멸시하고 다른 것에 희망을 걸지 않더냐(11곡 109~111)"라고 일갈한다.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하느님의 자손 즉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범죄임을 단테도 역설하고 있다.

 

 

 

 

 

 

<귀스타브 도레>

 

 

 

피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험준한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게리온을 불러 올린다. 단테의 허리끈에 유인된 무시무시한 괴물은 게리온(97)이다.

 

게리온은 희랍 신화의 三頭三身 괴물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게리온의 황소떼'가 있는데, 게리온은 황소떼를 뺏으러 온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화살에 맞아 죽는다.

 

단테는 게리온을 사기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얼굴은 틀림없이 사람이고, 겉은 말짱하게 사람의 살가죽을 뒤집어 썼는데, 몸통은 뱀이다. 사기 지옥의 수문장 게리온은 베르길리우스의 속임수에 걸려 역설적이게도 순례자를 위한 길잡이가 된다.  속이는 자가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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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부터 10강까지는 구약의 '큰 인물', '영웅', '스타', '여장부'가 펼치는 한판승의 이야기다.  떠돌이 작은 민족이 만든 통쾌한 전복의 서사가 오늘도 고달픈 삶에 위안과 용기가 되면 좋겠다.

 

 

 

 

 

 

 

7강 모세

 

 

 

모세는 구약의 가장 '큰 인물' 이다. 구약 성경의 첫 다섯 권을 《모세오경》이라 한다. <창세기>를 제외한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의 이야기다. 

 

 

 

 

 

 

모세가 등장하면서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로 모인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규합하여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고 파라오와 대적한다. 문제를 덮고 견디며 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모세는 엑소더스를 결행한다. 이집트를 버리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 노예로나마 안주하던 삶을 버리고 미지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해결책이 밖에 있다면 벽을 넘어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세와 히브리인들을 이끄는 것은 그들의 작은 신이다. 이 신은 작은 백성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하잘 것 없는 백성들을 위해 직접 싸우는 신이다. 고대 근동을 호령하던 신 중의 신, 파라오에 대적하여 그의 백성에게 길을 열어 준다. 작은 신이 큰 신을 이기고, 작은 백성들이 이집트의 사슬을 끊고 넘어 나아가는 탈출기는 구약 성경 최고의 뒤집기 한판승이다.

 

 

 

 

 

갖은 고난을 겪고 드디어 약속의 땅 앞에 섰을 때 모세는 백스무 살이었다. 모세는 요르단 강을 건너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평생을 바쳐 들어가고자 한 땅이 눈 앞에 있다.

 

 

 

 

 

 

신은 단호히 금지한다. 누구보다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몫이 큰, 자격이 있는 모세에게 너의 시대는 끝났고,  강 너머의 시대는 다음 세대의 것이라 말한다.

 

 

 

 

 

 

모세의 마지막 사명은 여호수아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다. 백스무 살의 노인은 다음 세대의 밑거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임 베네딕토16세 교황은 모세의 마지막에 서려 있는 이 '우수'에 대해 말했다.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서 건널 수 없는 약속의 땅을 눈에 담았다. 모세는 항변하지 않았다. 요르단 강을 건너는 히브리인들의 앞에 모세는 없을 것이다. 그가 용기와 힘을 준 여호수아가 서 있을 것이다.

 

 

 

 

 

 

 

느보산을 찾는 사람들은 모세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숙명과 그 한계,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 줄 나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모세오경》의 대미에 깊은 울림을 준다.

 

다음 세대의 몫을 빼앗아서라도 움켜쥐려는 욕망이 건강 백세, 백 이십세로 포장되고, 다음 세대는 결혼과 출산의 포기로 맞대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의 공동체라면 늙지 않는 영약을 찾기 보다 느보산에 올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8강 삼손

 

 

 

 

 

참 유명한 영화인데, 이 영화를 아는 마지막 세대는 몇 살쯤일까? 모세가 구약의 '큰 인물'이라면 삼손은 '영웅'이다. 삼손의 영웅성은 태어날 때부터 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삼손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된다. 삼손의 힘의 원천은 잉태받을 때 하느님과 약속한 머리털에 있다. 들릴라에게 이 비밀을 말한 순간 삼손은 머리털을 깎여서 힘을 잃고 사로잡히게 된다.

 

 

 

 

 

 

왜 머리털일까?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국가들에 전해지는 영웅들은 머리를 모두 여섯 가닥으로 땋았다. 라흐무도 길가메쉬도 정확히 여섯 가닥이다. 그런데 이 작은 백성의 영웅은 머리를 일곱 가닥으로 땋았다. 고대 근동의 신화를 많이 수용한 구약의 이야기에서 작은 백성의 영웅이 큰 제국의 영웅보다 한 가닥 많은 머리털을 갖고 있다. 살짝 하나 더 얹었을 이 한 가닥의 머리털이 작은 백성의 간절한 바람을 엿보이게 한다.

 

 

 

 

 

 

 

 

삼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러 40년 동안 필리스티아인들의 통치를 받던 시대에 태어났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하기 전 두 명의 필리스티아 여인을 더 얻었다. 삼손은 히브리인들의 관습애 구애받지 않고 필리스티아 여인들을 만나려 했다. 첫 번째 필리스티아 여인과의 결혼이 파탄에 이른 후 삼손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죽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이 히브리인들을 압박하자 동족 삼천 명이 올라와 삼손을 묶어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넘긴다. 이민족의 압제 아래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에게 필리스티아에 대항하고 나선 삼손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재앙이다. 동족의 손에 잡혀 넘겨진 삼손은 그야말로 작은 민족의 비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뛰어난 동족 하나 보호해 주지 못하는 지질한 민족의 아픔이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간도에서 숱하게 겪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들려 간 삼손은 신의 도움과 괴력으로 필리스티아인 천 명을 가뿐히 쳐부수고 돌아왔다.

 

 

 

 

 

 

 

삼손 이야기는 세 번째 필리스티아 여인 들릴라에서 절정을 맞는다. 들릴라는 삼손을 날마다 들볶고 졸라서 기어이 머리털의 비밀을 알아낸다. 머리가 깍인 채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붙잡힌 삼손은 눈까지 후벼 파내진 채 청동 사슬에 묶여 감옥에서 연자매를 돌리게 된다.

 

삼손은 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신은 삼손에게 응답한다. 삼손은 필리스타아인들 삼천 명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에 불려 나가는데, 그 집의 기둥을 뽑아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깔려 죽으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신의 구원과 함께 죽은 비극적 영웅, 삼손은 모세나 다윗, 엘리야 등과 더불어 구약 곳곳에 등장하는 한판 뒤집기 승의 대표적 영웅이다. 적의 여인을 거듭 사랑하며 신과의 맹세를 깨고 나락으로 떨어진 영웅이지만 끝내 회개하고 신의 용서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원한 영웅으로 솟아났다. 작은 민족의 초라한 식탁에서 되풀이 되어 왔을 삼손의 이야기는 고된 삶의 끈질긴 희망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종교는 세상의 질서를 상대화 시키는 힘이 있다. 세계의 질서는 절대적이고, 영구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넘어 뜨리는 전복의 서사가 종교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세계를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체계, 실천의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9강 다윗

 

 

 

<다비드상, 미켈란젤로, 1504>

 

 

 

다윗은 구약 최고의 '스타'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라는 관용어는 종교와 무관하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다윗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수많은 곡절 속에는 영웅적인 면모뿐 아니라 치졸하고 비열한 악인의 모습까지 다면적 얼굴이 들어 있다. 영웅 중의 영웅이라는 전통적 시각에 반하여 최근에는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비판이 적지 않다.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소년 다윗은 사자나 곰을 쳐 죽이고 그 아가리에서 새끼 양을 빼낼 만큼 힘센 장사요, 전사다. 다윗은 필리스티아 사람 골리앗을 무릿매(돌팔매?)로 제압하고 목을 베어서 단숨에 이스라엘의 스타로 부상한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다윗에 환호하며 노래를 부르고,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한다. 헬레니즘 문학의 '아킬레우스-아가멤논 문제'의 헤브라이즘 판본이다. 스승과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 상사와 상사보다 뛰어난 부하 사이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비극의 원천이 되고 있다. 청출어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그다지 쉽지 않다.

 

사울왕에게 쫓기며 다윗은 망명과 유랑을 일삼지만, 사울왕이 죽고 결국 유다의 임금이 된다.

 

 

 

 

 

 

 

 

왕이 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밧 세바라는 여인을 그녀의 남편에게 빼앗으면서 신의 징벌을 받게 된다. 다윗은 비열한 술수로 밧 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만, 신은 그 아이를 병들어 죽게 한다.

 

 

 

 

 

 

 

다윗은 이레 동안 단식하고 기도하였으나, 아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멀쩡히 일어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목욕하고 음식을 먹는다. 다 끝난 일에는 미련 없이 툭툭 털고, 또 다른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다윗의 스타일이다. 일을 벌이고, 잘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고, 하나의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을 또 벌이고, 또 실수를 저지르고, 또 벌 받고, 또 툭툭 털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수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과오들 때문에  오히려 다윗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표상이 될만하다는 점을 깨우친다.

 

훌륭한 인간도 수많은 과오와 실패를 저지른다. 다윗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지르고 실패해도 다시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끝내 성취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꿈이 독이 되는 세상, 꿈꾸지 않을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세상에 젊은이는 없다. 건물주가 꿈이라는 초등학생들의 미래에 젊음은 없을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릿매질 한번에 제압하여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느 시대에나 골리앗이 있는 것처럼 어느 시대에나 다윗이 있다. 우리 시대 다윗은 젊은이다. 다윗임을 모르고 있는 젊은이다.

 

 

 

 

 

 

 

 

10강 유딧

 

 

 

10강까지 <구약의 사람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작고 약한 것이 큰 것을 이긴다는 전복의 서사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 중의 약자는 힘없는 아이와 여성이다.  과부 유딧은 이 주제의 정점이 아닐까?

 

 

 

 

 

 

솔직히 <구약의 사람들> 1강에서 10강까지 중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유딧이다. 남자의 목을 치는 여자나 남자의 목을 들고 있는 여자를 그림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유딧기의 배경은 실제 역사와 전혀 다르다. 기원전 1000년 간 고대 근동 세계를 지배했던 아시리아 제국 → 신바빌로니아 제국 → 페르시아 제국 → 마케도니아 제국 중 앞의 세 제국이 뒤섞여 있는 형태이다.

 

 

 

 

 

 

이런 혼란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침략을 받아온 이스라엘의 역사 속 여러 전쟁이 유딧 이야기에 녹아들었기 때문으로 본다.

 

어떤 제국이 되었건 대제국이 유다 땅을 침략한다. 남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느님께 울부짖고 차라리 항복을 원한다. 이때 유딧이 나선다.

 

유딧은 먼저 남자들을 안심시키고 용기를 준다. 그리고 경건히 기도하고, 공동체를 위해 홀로 결단을 내린다. 한껏 치장하고 음식을 만들어 시녀와 단둘이 적진으로 들어간다.

 

 

 

 

 

 

 

적군을 홀리는 데 성공하고, 치밀한 계략 끝에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쳐서 자루에 담아 유유히 적지를 빠져 나온다. 적장을 잃은 제국의 군대는 달아나고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유딧기는 여성이 공동체를 구한 이야기의 전형이다. 작은 민족 이스라엘 중에서도 작은 여성 그 중에서도 더 작은 과부가 혼자서 대제국을 물리치고 공동체를 구해낸 전복의 서사야말로 그 통쾌함과 놀라움의 절정이다.

 

 

 

 

 

 

 

클림트의 그림을 가끔 흘낏흘낏 보았지만 저 가슴을 드러낸 여자가 유딧인 것은 오늘 알았다. 유딧은 일종의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그러나 적장의 죽음은 유딧의 성적 유혹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욕망 때문이라고 강사는 설명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유딧이 덫을 놓은 것은 사실처럼 보이고 그 덫에 걸어 들어간 것은 홀로페르네스 자신이다. 사기가 탐욕스런 사람들의 덫이듯 유딧 또한 욕정을 다스리지 못한 자의 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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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1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6강까지 봤습니다!ㅎ 다음 강의 예습 잘 했습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려요!

말리 2021-01-16 23:32   좋아요 0 | URL
저는 매일 아침 한 편씩 듣습니다. 아마 다음주가 되어야 11강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클래스e에는 좋은 강의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평온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