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 첫 스타디했습니다.

열 세명이 참석했고요.

고대 철학을 마무리했습니다.

 

제목에 붙은 험난한 시대는 대략 기원전 33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 경까지의 약 500년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메케네스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이후 희랍의 문화는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은 분열되어 알렉산드로스를 따르던 세 장군이 각각 왕조를 만들었습니다.

안티고노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그것입니다.

 

<용선생 세계사>

 

알렉산드로스 제국부터 이 세왕조가 멸망한 기원전 30년경까지를 보통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릅니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 지중해 세계의 패권은 로마제국이 쥐었습니다. 

기원전 27년에 로마의 첫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 이후 약 200년간 로마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특히 5현제에 의해 구가된 시기를 팍스 로마나라고 부르는데, 5현제의 마지막이 스토아 철학자의 대표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입니다.

그는 기원후 180년에 살해되었습니다.

대략 이 시대까지 유행한 철학이 우리가 오늘 살펴본 '험난한 시대'의 철학입니다.

 

이 시기 철학은 '앎을 폐기하고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추구하였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한 처세술로서의 윤리학과 행복과 안락의 추구, 따라서 지적 조악함을 드러낸 통속성 등이 그 특징입니다.

 

희랍의 폴리스시대의 붕괴는 정치적 삶의 소멸이기도 합니다.

희랍 폴리스가 알렉산드로스 제국으로 병합되면서 시민이 사라지고 신민이 등장하였습니다.

폴리스의 시민은 폴리스를 떠나서 즉 정치적 삶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폴리스의 정치를 고민했던 시민이 사라지자 정치적 활력도 소멸되었습니다.

코스모폴리스의 신민은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개인 속으로 침잠하였습니다.

공적 영역이 붕괴되자 사적 영역으로 퇴각한 것입니다.

이 시대 철학의 목적은 안심입명, 평온하고 자족적인 삶에 관한 사색입니다.

 

대표적 철학으로는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회의주의가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아타락시아,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였습니다.

방법으로는 마음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아파테이아, 정념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흔히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스토아는 금욕을 주장했다고 하면서 두 학파를 대립시킵니다.

얼핏 보기에 두 학파가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법의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목적은 거의 유사합니다.

쾌락을 통하건 금욕을 통해서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평온과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 충족적인 삶입니다. 

이 시대 철학은 지적인 조악함이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  철학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이라는 면에서는 철학의 두 거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합니다. 

 

" 스토아 철학은 극단적인 철학이지만 어렵고 혼란한 시대에 많은 영혼에 봉사할 수 있는 철학이었다. 그리하여 로마와 로마제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대 철학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책이 있어 소개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은 제목에서도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적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에는 철학사 전반에 걸쳐 위안을 줄 수 있는 철학이 소개되어 있어 헬레니즘 시대 철학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어렵지 않게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2부 신과 철학자들 - 종교적인 중세 철학에 들어갑니다.

그 첫번 째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155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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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했구요.

카페에 손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중년의 남자분이 등을 돌리고 공부를 하는 것 같았는데요.

부끄러웠습니다.

3년 가까이 카페에서 스타디를 해왔지만,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을 그것도 아리스토텔레스를 하는데, 그분의 귀에 제 말이 들렸을 것을 생각하니 진짜 부끄럽더군요.

부디 그분이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

우리의 철학 공부는 이렇게 위태합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 그야말로 " 너 자신을 알라" 고 논박술을 펼쳐줄 소크라테스를 갈망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 다음주도 꿋꿋이 해야겠죠? ^^

 

 

아리스토텔레스는 '체계'의 철학자입니다.

세상 만물을 분류 탐색하여 우주의 원리를 '알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학문의 체계를 세웁니다.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이라는 큰 분류 아래 각각의 세부 학문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이론학에는 자연학, 형이상학, 수학이, 실천학에는 윤리학, 정치학, 경제학이, 제작학에는 수사학과 시학이 포함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학문의 도구로서의 논리학이 있습니다.

예전에 공부한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희랍 철학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철학 전반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인 것이다. 다른 어떤 사상가보다 더 훌륭한 수준으로 그는 자신의 시대 이후의 철학이 걸어갈 길을 규정했다. 그는 형이상학적 물음들의 깊은 지층을 발견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 정신이 사물들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가장 중요한 개념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또한 지금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한 한계들 안에서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그리고 철학사 전반에 걸쳐 아주 뛰어난 두세 명의 전력에 의해서만 수정되었던, 분과로서의 논리학을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너무 방대하므로, 그리고 지루하고 이루말할 수 없이 꼼꼼하다고 합니다, 철학사 차원에서 개략적으로 훑는다고 해도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스타디에서 우리가 다루었던 것은 논리학과 형이상학, 그리고 윤리학이었습니다.

 

논리학은 '올바른 사유의 형식과 방법에 관한 이론' 입니다.

사유는 개념에 의해서 전개됩니다.

개념 규정된 말, 의미있는 말을 logos라고 합니다.

logos는 사물들이 무엇인지 즉 본질을 말해줍니다.

'A는 B이다.' 의 형태로 개념이 규정되므로 우리는 이를 위해 필수적인 종과 유 그리고 종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간은 사기치는 포유류다."

인간은 종, 포유류는 유입니다.

포유류에는 인간 뿐 아니라 곰, 돼지, 소 등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포유류다.' 는 말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개념이 그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차가 부연되어야 합니다.

곰, 돼지, 소 등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다른 종들과 인간 종을 구별짓는 본질적인 차이, 그것이 종차입니다.

예시문에서 '사기치는' 은 인간 포유류에만 속하는 특징입니다.

물론 '사기치는'을 본질이라고 하면 너무 슬픕니다만, 재미있는 예시라고 생각하고 예로 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에서 사는 동물이다' 고 하였습니다.

희랍 폴리스 시대에 인간 즉 시민은 폴리스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의 본질 즉 종차는 폴리스입니다.

 

여하튼 개념 정의된 말 즉 로고스는 그 대상의 진리를 드러냅니다.

다시 위의 책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기에 진리의 도구다. 사물들의 진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자를 거쳐간다. 즉 인간은 사물들을 발견하고 사물들을 그것들의 진리의 자리에 놓는다. 그러므로 인간 영혼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물들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존재와 그 존재를 알고 표현하는 사람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토대는 앎, 소피아, 철학이다. 철학에서 존재는 자기의 진정한 실재를 진리의 빛 속에서 획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철학을 계승하였지만, 그의 형이상학은 플라톤의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이데아들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나뉘어 있습니다.

현상세계의 사물들은 이데아들의 모방물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플라톤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사물들이 아니라 이데아를 탐구했던 것은 이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형상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형상은 사물과 별개로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속에 있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것이 형상인데 어떻게 형상이 사물들 밖에 있을 수 있는가 반문한 것입니다.

플라톤의 형상론은 형상실재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은 형상내재론이라 불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앎이 사물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물안에 형상 즉 본질적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과 사물은 분리불가분의 하나입니다.

이를 우시아라고 하는데, 우시아는 '형상을 내재한 각각의 사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다섯 단계로 설명합니다.

감각 → 기억 → 경험 → 기술 → 학문적 인식(episteme) 까지는 사물에서 시작하여 이를 수 있는 앎입니다.

학문적 인식은 논증적 앎, 원리들에 대한 앎입니다.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감각에서 시작하여  많은 환자를 상대하며 얻은 경험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처방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의대에서 두통의 원리 등을 모두 공부하여 학적 인식까지 성취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의사도 환자도 왜 하필 그에게 유독 그런 질환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1원리는 학적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초월적인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뜻" 혹은 "업보" 로 받아들이는 것이 희랍철학의 제1원리, 근본원인과 비슷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원리를 파악하는 직관을 누스라고 했습니다.

누스를 통해 직관적인 앎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피스테메와 누스를 모두 획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지혜 즉 소피아에 이릅니다.

 

대상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은 근대 자연과학자들의 방법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근대 자연과학자들은 학문적 인식을 목표로 하지, 제1원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점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보다 자연과학자의 면모가 더 두드러진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를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자리매김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철학자 중의 철학자가 플라톤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고, 저는 당연히 누가 제 일의 철학자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스타디 교재로 사용하는 『세상의 모든 철학』의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 호칭을 부여하였습니다.

강유원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 강의에서  앎의 층위를 논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희랍철학은 초월적인 세계에 있는 것을 제1원리로 삼고 그것에 근거하여 학문적인 인식을 추구한다."

 

희랍철학에서 앎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형이상학』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한다. "

강유원 선생님은 이 말을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로 꼽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 플라톤의 『향연』에서 인간을 앎으로 이끄는 에로스, 에로스의 사다리 윗층을 차지하는 앎의 아름다움 등 희랍철학에서 앎, 이성, 사유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 중의 최고의 앎은 테오리아, 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적 사유, 사유에 대한 사유에 이르렀을 때 인간은 불멸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최고의 행복은 테오리아,  관조적 삶이라고 합니다.

신적인 삶은 말그대로 신의 삶이니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꿈꾼 스승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니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라', 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살 수 있는 데까지 우리들이 불사불멸의 존재가 되도록, 또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살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최고의 것이 크기에서는 작다 할지라도, 그 능력과 영예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다."

 

 

다음주는 조금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양대 산맥을 넘었으니, 웬만한 길은 평탄하게 느껴지겠지요.

고대 철학의 마무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135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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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아이들 졸업식으로 결석한 분이 많았습니다.

 

조선 사회 영역을 끝내고, 조선 전기 문화를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조선 문화는 분량이 많아서 앞으로 2회를 더해야 끝날 것 같습니다.

다음회는 설 연휴 끝나고 다다음주에 진행하겠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79 ~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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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플라톤을 공부하였습니다.

희랍철학 뿐 아니라 서양철학을 통틀어서도 플라톤을 첫 손가락에 꼽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플라톤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광장을 떠돌며 설파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철학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플라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너의 영혼을 잘 돌보아라" 였습니다.

영혼은 신적이며 예지적인 것으로 육체를 떠나서도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불멸합니다.

잘 돌본 영혼은 풍성한 깃털로 날아올라 좋음의 이데아를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좋음은 존재의 참된 원인, itia입니다.

영혼을 잘 돌보는 방법은 보편적 인간의 아레테인 '앎'을 통해서입니다.

앎은 무지의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논박술을 통해 대화 상대자를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붙이는 이유는 스스로의 무지를 알게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지를 인정한 사람만이 기존 관념을 깨뜨리고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진리로 작용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물들의 본질들을 규정하고 발견하고 확고하게 정립하고자" 했습니다.

 

플라톤은 이를 바탕으로 유명한 이데아론(형상론)을 만듭니다.

세계는 이데아들의 세계와 사물들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두 세계 이론은 파르메니데스가 분명하게 정립해 둔 것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없었던) 두 세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사물들의 세계는 이데아들의 세계의 그림자입니다.

비록 사물들은 이데아들의 모방물에 지나지 않지만, 이데아들을 분유分有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그 대상이 사람의 이데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혀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인간도 아니군!" 이라는 말을 합니다.

허영만의 <식객>이라는 만화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전국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찾아 헤맸던 것이 이를테면 맛의 이데아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음식들은 거의 다 맛의 이데아와는 차이가 납니다.

어딘가 무언가가 모자란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맛의 이데아 즉 맛 그 자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요?

플라톤은 이것을 영혼 상기설로 설명합니다.

영혼이 떨어져 육신에 깃들기 전에 그 이데아를 보았던 것입니다.

레테의 강을 건너며 잊어버렸지만 꾸준한 앎을 통해 이데아를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레테léthé는 망각이고, 망각에서 벗어난  alétheia는 진리입니다.

이데아를 상기한다는 것은 곧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위계적입니다.

이데아들 사이에 차등이 있습니다.

최상위의 이데아는 좋음의 이데아입니다.

좋음의 이데아가 좋음 그 자체라면, 하위의 이데아들은 좋음을 얼마나 많이 분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계서가 정해질 것입니다.

모든 이데아들이 좋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데아들을 모방한 사물들 역시 좋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플라톤은 "좋음"을 가지고 전 우주를 질서지웠습니다.

좋음이 우주의 근본범주이며, 참된원인인 것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 삶의 최종 근거는 마땅히 좋음이어야 합니다.

 

플라톤은 개인의 영혼뿐 아니라 폴리스 역시 좋음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폴리스를 이끄는 통치자는 좋음의 이데아를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 알려진대로 플라톤의 『국가』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폴리스를 최선의 정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혹은 갈구하는 철학자야말로 앎에 가장 정통한 자이고 따라서 이데아를 가장 잘 상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국가』의 핵심은 좋음에 근거하여 폴리스를 통치할 수 있는 철학자를 어떻게 교육하는가에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국가』 7권의 '동굴의 비유' 도 단지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세계에 살던 죄수(인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철학자가 되는가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를 앎으로 이끄는 힘은 에로스입니다.

아프로디테의 탄신일에 포로스(방책)와 페니아(곤궁) 사이에서 잉태된 에로스는 미의 추종자인 동시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질을 반반씩 물려받은  metaxý 중간자입니다.

에로스를 찬양하는 심포지움에서의 대화들로 이루어진 플라톤의 『향연』은 메탁시로서의 철학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사랑 혹은 갈망은 결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알지만 그것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아름다움을 갈망합니다.

철학자 역시 앎의 가치를 알지만 앎이 모자라기 때문에 앎을 추구합니다.

에로스는 갈망으로 철학자를 이끄는 힘인 동시에 철학자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는 본래 불사적이지도 가사적이지도 않습니다. 단 하루 사이에 전성기를 누리면서 사는 때가 있고 (방도를 잘 갖추고 있을 때가 그렇지요.) 또 죽어가는 때가 있고, 그러다가 아버지의 본성 덕택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그가 갖추고 있는 방도는 늘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아예 방도가 없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고, 또 지혜와 무지의 사이에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태거든요. 신들 가운데 아무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렇기 때문이지요. 또한 다른 어느 누구라도 지혜로운 자라면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지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기 되기를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어려운 건 바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거든요. 즉 아름답고 훌륭한 자도 분별 있는 자도 아니면서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것 말입니다. 자기가 뭔가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 그럼 그 지혜 사랑하는 자들이란 누굽니까? 지혜로운 자도 무지한 자도 아니라면 말입니다.’ 내가 말했네.

‘이쯤 되면 적어도 이것 정도는 어린애한테조차도 분명할 겁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자들이고, 또 그 가운데 에로스도 속한다는 것 말입니다. 지혜는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 속하는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사랑(에로스)이지요. 그래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기에 지혜로운 것과 무지한 것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기원이 바로 이것들에게도 원인 노릇을 합니다. 아버지는 지혜롭고 방도를 잘 갖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지혜롭지 못하고 방도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게 그 신령의 본성입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하지만 에로스가 누구인가에 대해 당신이 말한 것들로부터 추정컨대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것이 에로스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당신에게는 에로스가 아주 아름답게 보인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받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하며 완벽하고 복 받았다 여겨지는 것이지요. 반면에 사랑하는 것은 다른 모습을, 즉 내가 죽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라는 여인에게 에로스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디오티마는 에로스의 본성에 관해 말한 후 '에로스의 사다리'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 앎에 이르는 사다리입니다.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끄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는 충분하며, 이자를 사랑하고 신경 써 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자로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들을 산출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몸에 관련된 아름다움이 사소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끄는 자는 그를 행실들 다음으로 앎들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이번에는 앎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이제는 아름다움 여럿을 쳐다보고 있기에, 더 이상 어리디 어린 소년이나 특정 인간이나 하나의 행실의 아름다움에 흡족하여 종처럼 하나에게 있는 아름다움에 노예 노릇 하면서 보잘것없고 하찮은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정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앞서의 모든 노고들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그는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모든 아름다운 몸들로, 그리고 아름다운 몸들에서부터 아름다운 행실들로, 그리고 행실들에서부터 아름다운 배움들로, 그리고 그 배움들에서부터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되는 거죠.

 

플라톤 철학에서 오늘 우리가 공부한 것은 형이상학으로서의 이데아론과 실천학으로서의 철인 통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향연』에서는 철학자가 앎을 갈구하고 앎에 이르는 방법을,  『국가』에서는 그런 철학자를 길러내는 통치학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주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 세상의 모든 철학> p 116 ~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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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조선 경제와 사회를 살펴보았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ii in One>

 

조선의 신분제는 법적으로는 양천제입니다.

양인과 천인이 있을 뿐이며 모든 양인은 국가에 대한 의무도 권리도 동등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양반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인 계층이 과거에 응시하는 것까지 제한하였습니다.

상민은 어차피 과거에 응시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민보다 향리나 서얼에 대한 규제가 심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ii in One>

 

 

 경국대전에 서얼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고, 한품서용제를 두어 서얼과 향리의 관직도 제한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ii in One>

 

 

과거에 응시할 때도 일종의 스펙이 필요하였습니다.

가문을 입증할 수 있는 사조단자나 보단자를 제출하여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양인은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공공기관 채용비리도 결국은 사조단자나 보단자와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2018년 현재에도 전근대적 신분차별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조선 사회와 문화 일부를 공부하겠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 노트>

   p 75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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