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명이 함께 개항기를 끝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강점기입니다.

복잡한 내용에 비슷한 이름의 많은 단체들이 나올텐데요.

강점기를 마음에 새기면 불평없이 공부하게 되겠지요. 

 

<전한길의 합격생 필기 노트>

p 103 ~ 106

 

 

아래 사진은 근대 대표 건출물들입니다.

출처는 <전한길의 한국사 2.0 all in on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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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덞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개항기 정치 부분을 끝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무슨 근거로 독도에 대한 야심을 부리기 시작한 걸까요? 독도를 울릉도와 구분하여 표기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라고 합니다. 중종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5세기~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도총도라는 지도가 실려있습니다. 팔도총도는 울릉도와 독도가 표기된 최초의 지도입니다. 17세기말 숙종 때는 민간인 안용복이 직접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일본은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가지 못하도록 도해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900년 10월 중앙 관보에 게재된 대한 제국 칙령 제 41호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독도를 관할하게 한다고 명기하였습니다. 칙령 제 41호에 의해 국제법 체계에서도 독도가 대한 제국 영토임이 확인되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일본도 오래전부터 여러 문헌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영토임을 확인해왔습니다. 1785년에 일본이 편찬한 삼국접양지도에 분명히 독도를 조선땅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870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조선 정세를 몰래 살펴보고 돌아가 작성한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정밀 지도와 지적도를 작성하기 위해 자국 관리들에게 내려보낸 지령문(1877년 태정관 지령)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조선 영토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남아 있는 많은 사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05년 2월 러·일전쟁 중에  시네마 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일방 편입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1년 뒤 시네마 현의 사무관이 독도 조사를 마치고 울릉도 군수에게 통고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항의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 최고 사령관은 각서에서 일본의 영토가 4개 섬과 인근 작은 섬들로 제한 될 것이며, 독도 (리앙쿠르 락)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됨을 명시하였습니다.  1951년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연합군 사령부의 지령이 유효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강화조약에 우리나라 모든 섬을 열거할 수 없으며, 일본이 강화 조약 직후 독도가 일본의 관할 구역에서 제외되었음을 확인하였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다음주는 개항기 경제, 사회, 문화를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95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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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초기 기독교를 공부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적 기독교에서 헬레니즘적 기독교로 이행되는 과정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대민족의 종교로 시작된 기독교가 헬레니즘 세계로, 이후에는 로마제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파란 단순한 지리적 확장이 아닙니다. 신과 유대 민족 간의 계율을 핵심으로하는 교리는 다른민족들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습니다. 기독교가 헬레니즘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유대민족의 특수성을 극복하여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이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사랑의 공동체로 확립함으로써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나 기독교도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은 희랍어와 희랍어에 내재된 희랍사상을 기독교와 융합시킴으로써 기독교를 보편화한 철학자들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공용어는 희랍어입니다. 기독교를 헬레니즘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로 쓰인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형식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에는 고유의 사상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면 사유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어에 내재된 사유 체계를 희랍어 사유 체계로 옮기는 과정은 두 사유 쳬계의 융합인 동시에 충돌입니다. 히브리의 사유는 신앙을 우선으로 합니다. 희랍의 사유는 이성 중심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을 이성으로 정당화해야 할 기독교의 역사적 과제가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신앙은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반대로  희랍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은 이성의 설명 없이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필론과 플로티노스는 이 두 사유체계를 융합시키려 한 대표적 철학자들입니다.

 

 

'그리스의 유대인_알렉산드리아의 필론(BC20경 ~ AD40)'은 성서 해석에 그리스 사상을 도입한 최초의 유대 사상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필론은 유대 사상을 희랍 용어로 체계화하고 이성적인 논증과 조화시키려 하였습니다.

 

플로티노스(204 ~ 270)는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적 철학자로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을 융합하려 하였습니다. 그의 이론을 유출설이라고 합니다.

 

"그는 플라톤의 선의 형상을 일종의 인격으로 해석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선을 그리스도교적인 신으로 해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선이란 최고의 정신으로서 이 세계를 창조한 분할 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이 최고정신은 지성으로서 스스로를 관조하며, 창조는 그의 사유로부터 넘쳐 흘러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창조란 신의 사유로부터 유출되는 것이거나 유래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실재계와 현상계라는 두 세계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현상계를 실재계의 그림자, 모방 등등으로 설명했지만 두 세계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부족합니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두 세계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유출설로 설명하였습니다. 플로티노스는 실재계를 일자(최고정신)와 정신으로 나누고 정신과 물질의 중간에 '영혼'을 도입하였습니다. 일자(최고정신) → 정신 →영혼 → 물질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것을 '존재의 대연쇄'라고 합니다.

 

플로티노스에서 특징적인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은 정신과 물질을 이어주는 양성적인 것, 제3의 것입니다. 영혼은 정신의 속성과 물질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세계를 연결 할 수 있습니다. 일자(최고정신)에서 넘쳐 흐른 정신이 영혼의 매개로 물질에 이릅니다. 영혼의 궁극적 목적은 일자와 합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ecstasy, 무아의 경지, 황홀경 입니다. 백과 사전적 의미의 ecstasy는 "신비주의의 최고 목표를 가리키는 용어. (그리스어로 '자기 바깥에 서 있음' 또는 '자기를 초월함'이라는 뜻의 ekstasis에서 유래)" 라고 되어 있습니다.  괴테의 유언인 "좀 더 빛을..."은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빛의 원천인 태양은 신을 상징합니다. 괴테는 신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유출설은 희랍정신이 유대-기독교 사상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희랍정신은 無를 사유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은 無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無를 사유하지 못하는 희랍정신이 無없이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 유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자(최고정신)는 기독교의 신과 등치될 수 있고, 일자가 유출된 것으로서의 물질은 신이 창조한 세계와 같습니다. 유출설에 의하면 창조는 無가 아니라 일자 즉 신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렇게 플로티노스는 희랍 사유 체계에 기독교의 창조론을 도입하였습니다.

 

  

 

다음주는 쉽니다.

다다음주 4월 첫째 주에는 중세 기독교의 핵심을 공부합니다.

 

< 세상의 모든 철학 >

  p 225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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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 복잡하게 전개된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을미 개혁,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894년 1월 고부민란으로 촉발된 동학 농민 운동은 6월 발발한 청·일 전쟁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고종은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군을 끌어들입니다. 10년 전 체결된 텐진조약을 명분으로 일본군도 제물포에 상륙합니다. 전주의 동학 농민군과 정부군은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급히 전주화약을 체결하지만 청과 전쟁 할 꼬투리만 찾고 있던 일본군은 경복군을 점령하고 청을 선제 공격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청·일 전쟁과 동시에 일본은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개혁은 갑오년과 을미년을 거치며 3차까지 진행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동학 농민군이 우금치에서 진압된 후 1차 갑오 개혁을 주도했던 군국기무처는 해산되고 친일 성향이 강화된 2차 갑오 개혁이 실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 조약 후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위세가 약해지자 명성왕후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견제합니다. 위기를 느낀 일본이 명성왕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합니다. 명성왕후를 살해하고 고종을 감금한 상태에서 일본은 다시 친일 내각을 구성하여 3차 을미개혁을 실시합니다. 1896년 고종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관파천을 단행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고종의 초청으로 입국한 서재필 (필립 제이슨)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어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합니다. 초기 독립협회는 관민공동 단체였으나 독립협회가 민중을 조직하여 정치 운동을 전개하자 고종은 독립협회를 탄압합니다. 고종은 독립협회가 활발히 활동하던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갖습니다. 대한제국과 독립협회가 손을 잡고 외세에 대항하여 자주적 근대적 개혁을 실시했다면 역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요? 고종은 1898년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한 이후 1899년 대한국국제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광무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민중에게 등을 돌린 대한제국은 얼마 못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다음주에는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 등을 공부하겠습니다.

 

<전한길의 한국사 합격생 노트>

  p 95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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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서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들을 공부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서양 일신교의 선구적 형태입니다. 일신교를 대표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는 하나의 가족입니다. 세 종교 모두 예루살렘을 구심점으로 하고 있고, 아브라함을 공통된 선조로 주장합니다. 이 종교들의 신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신입니다.  유일하고도 사랑에 차 있는 동일한 창조주 신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내 하나의 교파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교적 그리스도교를 헬레니즘적 그리스도교로 전환시킨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유대 율법을 대신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고, 인간은 성자를 통해 성부를 믿습니다. 성령은 은총과 믿음, 신과 인간, 성부와 성자를 하나의 믿음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힘입니다. 성령은 사랑으로 표상됩니다. 즉 믿음과 구원의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삼위일체설과 사랑의 공동체를 기독교의 중심 개념으로 확립하였습니다.

 

"이 결정이 함축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교를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유대 율법을 대신하여 종교적 삶의 기초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바울로에 따르면, 새로운 신앙은 전통적 유대교의 계율적인 규정들에 의해 인도되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인도되어야 하는 신앙이었다. 이러한 점이 또한 개종을 촉진하였는데, 이는 유대교의 일부 교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명백한 분리주의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개종을 촉진하는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경향은 복음전도라고 불렸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 종교의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다." <세상의 모든 철학>

 

강유원 선생님은 철학강의를 통해 기독교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실천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급진적 실천 사상이다."

 

사랑의 실천은 인격적 절대자의 강력한 명령을 개개인이 받아들임으로 시작됩니다.  율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신의 명령을 내면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내면성은 바울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로 이어져서 종교 개혁 당시 "오직 은총, 오직 믿음, 오직 성서"라는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신의 명령은 공동체 즉 사회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실천의 핵심은 궁핍한 이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은 고귀하므로 궁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바울은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공동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사제의 임무는 마땅히 궁핍한 집단을 돌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집사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여 사제에게 알리는 임무를 띄었습니다. 궁핍한 사람을 돌보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2코린토서 9장 7절에는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세상에 전하는 에반게리움 (복음) 입니다. 궁핍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루카 4장 8절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똑같이 고귀합니다. 인것은 기독교가 평등의 종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형제 자매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를 통해 균형을 이룬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저는 기독교도가 아닙니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려면 필수적으로 기독교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직 성경도 한번 완독한 적이 없지만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기독교가 초기 기독교의 정신, 바울의 사상으로 돌아간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우리 회원들도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다음주는 필론과 신플라톤주의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207 ~ 211

 p 223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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