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서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들을 공부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서양 일신교의 선구적 형태입니다. 일신교를 대표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는 하나의 가족입니다. 세 종교 모두 예루살렘을 구심점으로 하고 있고, 아브라함을 공통된 선조로 주장합니다. 이 종교들의 신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신입니다. 유일하고도 사랑에 차 있는 동일한 창조주 신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내 하나의 교파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교적 그리스도교를 헬레니즘적 그리스도교로 전환시킨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유대 율법을 대신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고, 인간은 성자를 통해 성부를 믿습니다. 성령은 은총과 믿음, 신과 인간, 성부와 성자를 하나의 믿음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힘입니다. 성령은 사랑으로 표상됩니다. 즉 믿음과 구원의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삼위일체설과 사랑의 공동체를 기독교의 중심 개념으로 확립하였습니다.
"이 결정이 함축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교를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유대 율법을 대신하여 종교적 삶의 기초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바울로에 따르면, 새로운 신앙은 전통적 유대교의 계율적인 규정들에 의해 인도되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인도되어야 하는 신앙이었다. 이러한 점이 또한 개종을 촉진하였는데, 이는 유대교의 일부 교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명백한 분리주의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개종을 촉진하는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경향은 복음전도라고 불렸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 종교의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다." <세상의 모든 철학>
강유원 선생님은 철학강의를 통해 기독교의 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실천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급진적 실천 사상이다."
사랑의 실천은 인격적 절대자의 강력한 명령을 개개인이 받아들임으로 시작됩니다. 율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신의 명령을 내면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내면성은 바울에서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로 이어져서 종교 개혁 당시 "오직 은총, 오직 믿음, 오직 성서"라는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신의 명령은 공동체 즉 사회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실천의 핵심은 궁핍한 이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은 고귀하므로 궁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바울은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공동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사제의 임무는 마땅히 궁핍한 집단을 돌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집사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여 사제에게 알리는 임무를 띄었습니다. 궁핍한 사람을 돌보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2코린토서 9장 7절에는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세상에 전하는 에반게리움 (복음) 입니다. 궁핍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루카 4장 8절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똑같이 고귀합니다. 인것은 기독교가 평등의 종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형제 자매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를 통해 균형을 이룬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저는 기독교도가 아닙니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려면 필수적으로 기독교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직 성경도 한번 완독한 적이 없지만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기독교가 초기 기독교의 정신, 바울의 사상으로 돌아간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우리 회원들도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다음주는 필론과 신플라톤주의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207 ~ 211
p 223 ~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