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공부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키나 봅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에로스를 결핍과 갈망으로 정의합니다.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갈망하는 존재인 에로스는 지혜로운자와 무지한자 사이의 중간 존재입니다. 아예 무지한 사람은 지혜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무지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혜로운자는 더 이상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혜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갈망은 무지에 대한 앎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은 스스로의 무지함을 알아야 비로소 앎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앎은 더 큰 앎을 가리키고, 그렇게 앎은 끝없이 더 넓은 앎의 세계를 지시하며 앎에 대한 채워지지 않을 갈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가장 무지한자로 생각했던 것은 가장 많이 알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가능해지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을 공부하며 동양 지혜의 정수인 『논어』를 읽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의 『논어』를 매일 한장씩 읽기로 했습니다. 혼자서는 지켜지지 않을 듯하여 밴드를 만들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매일 한장씩 밴드에 올려야 하는데 한자를 거의 몰라서 처음에는 읽기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음을 알고 해석을 보충해가며 한장씩 읽은 것이 벌써 한달 반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한자 자체는 더 아는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 목표는 단지 『논어』라는 책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를 알고, 현재의 나에게도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느끼는 정도입니다.

 

오늘 밴드 회원들의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모여 그동안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정기 만남을 계획했습니다.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學而편과 爲政편에서 각자 마음에 든 장을 골라와서 설명을 더하고 그 문장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쓰는 것도 병행해 보려고 합니다. 본인이 선택한 문장만이라도 쓸 줄 안다면 몹시 뿌듯할 것 같아서 입니다. 다음 모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논어』는 출판된 책도 많고 책에 따라 해석도 다양합니다. 인터넷에도 자료는 충분히 많습니다. 우리는 좀 쉬운 이해를 위해 『식탁 위의 논어』 저자가 만든 인터넷 방송을 참고 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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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쉬는 날이 많아서 4월은 마지막주에도 철학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너무 오래 쉬면 감이 안잡힌다는 일부 회원의 의견에 따른 것인데요. 진도는 나가지 않고 따로 자료를 준비하여 모였습니다. 일곱 명이 함께하였습니다.

 

강유원의 『철학 고전 강의』 를 오늘의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물론 회원들은 이 책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간략히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철학사 공부가 끝나고 철학을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언젠가 같이 읽어볼까 하던 책입니다. 이 기회에 조금 소개해 드리면 관심을 가질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소망을 가졌는데,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시간>에 나오는 철학의 개념, 철학적 태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고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였습니다. 강유원이 강의에서 다룬  철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입니다.  철학사 공부에서 지난주까지 중세철학을 마쳤기 때문에 이들 중에서 우리가 이미 공부한 플라톤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강유원의 강의에서는 플라톤 텍스트로 『파이돈』과 『국가』를 읽고 있습니다.  『파이돈』을 가지고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인 이데아론을, 『국가』에서는 정치 공동체론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천학 텍스트인 『국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아래 『국가』의 발췌문은 『철학 고전 강의』 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515c~515e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러면 생각해보게. 만약에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식으로 사태가 자연스레 진행된다면, 이들이 결박에서 풀려나고 어리석음에서 치유되는 것이 어떤 것이겠는지 말일세.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걸세. 만약에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말하기를, 전에는 그가 엉터리를 보았지만, 이제는 진짜(실재 : ta on)에 좀은 더 가까이 와 있고 또한 한결 더한 실상을 향하여 있어서, 더욱 옳게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더군다나 지나가는 것들 각각을 그에게 가리켜 보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고서는 대답하도록 강요한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으로 자네는 생각하는가? 그는 당혹해 하며, 앞서 보게 된 것들을 방금 지적받은 것들보다도 더 진실된 것들로 믿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훨씬 더 진실된 것들로 믿을 겁니다.” 그가 말했네.

"또한 만약에 그로 하여금 그 불빛 자체를 보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눈이 아파서,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것들로 향해 달아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방금 지적받은 것들보다도 정말로 더 명확한 것들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그럴 것입니다.” 그가 대답했네.

 

 

515e~516a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그를 이곳으로부터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 길을 통해 억지로 끌고 간다면, 그래서 그를 햇빛 속으로 끌어내올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또한 자신이 끌리어온 데 대해 짜증을 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가 빛에 이르게 되면, 그의 눈은 광휘로 가득 차서, 이제는 진짜들이라고 하는 것들 중의 어느 것 하나도 볼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내가 물었네.

”적어도 당장에는 볼 수는 없겠죠.“ 그가 대답했네.

 

 

516a~516b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처음에는 그림자들을 제일 쉽게 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물속에 비친 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것들의 상들을 보게 될 것이며, 실물들은 그런 뒤에야 보게 될 걸세. 또한 이것들에서 더 나아가,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밤에 별빛과 달빛을 봄으로써 더 쉽게 관찰하게 될 걸세. 낮에 해와 햇빛을 봄으로써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보다도 말일세.”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가 해를, 물속이나 다른 자리에 있는 해의 투영으로서가 아니라 제자리에 있는 해를 그 자체로서 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516c~517a

“어떤가? 이 사람이 최초의 거처와 그곳에 있어서의 지혜 그리고 그때의 동료 죄수들을 상기하고서는, 자신의 변화로 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여기되, 그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자넨 생각지 않는가?”

“그러고말고요.”

(.....)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러면 이 점 또한 생각해보게. 만약에 이런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가서 이전의 같은 자리에 앉는다면, 그가 갑작스레 햇빛에서 벗어나왔으므로, 그의 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가 대답했네.

“그렇지만, 만약에 그가 줄곧 그곳에서 죄수 상태로 있던 그들과 그 그림자들을 다시 판별해봄에 있어서 경합을 벌이도록 요구받는다면, 그것도 눈이 제 기능을 회복도 하기 전의 시력이 약한 때에 그런 요구를 받는다면, 어둠에 익숙해지는 이 시간이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는 비웃음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에 대해서,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올라가려고 애쓸 가치조자 없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기들을 풀어주고서는 위로 인도해 가려고 꾀하는 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붙잡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를 죽여버리려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려 할 것입니다.”

 

 

517a~517b

“그러면, 여보게나 글라우콘! 이 전체 비유를 앞서 언급된 것들에다 적용시켜야만 하네. 시각을 통해서 드러나는 곳을 감옥의 거처에다 비유하는 한편으로, 감옥 속의 불빛을 태양의 힘에다 비유함으로써 말일세. 그리고 위로 ‘오름’과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의 구경을 자네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한 혼의 등정으로 간주한다면, 자네는 내 기대에 적중한 셈이 될 걸세. 자네는 이걸 듣고 싶어하니 말일세. 그렇지만 그게 진실인지 어쩐지는 아마도 신이나 알 걸세.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이런 것 같으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고 끝에 보게 되는 것이 ‘좋음(善: to agathon)의 이데아’이네. 그러나 일단 이를 본 다음에는, 이것이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옳고 아름다운 것의 원인이라고, 또한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는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고,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에서도 스스로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또 장차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슬기롭게 행하고자 하는 자는 이 이데아를 보아야만(idein) 한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하네.” 내가 말했네.

“저로서 할 수 있는 한은 저 역시 생각을 같이합니다.” 그가 말했네.

“자 그러면 이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하여,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하게. 즉 이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인간사에 마음쓰고 싶어하지 않고, 이들의 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지내기를 열망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그건, 이 경우 앞서 말한 비유대로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세.” 내가 말했네.

 

 

518b~518d

“그런데 만일에 이게 진실이라면,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야만 하네. 즉 교육이란 어떤 사람들이 공언하여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일세. 그들은 주장하길, 혼 안에 지식(인식:epistέmέ) 이 있지 않을 때, 마치 보지 못하는 눈에 시각을 넣어주듯, 자신들이 지식을 넣어준다고 하네.” 내가 말했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들 주장합니다.” 그가 말했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논의는 각자의 혼 안에 있는 이‘ 힘’과 각자가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용하는 기관(수단:organon)을, 이를테면 눈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향하는 것은 몸 전체와 함께 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듯, 마찬가지로 혼 전체와 함께 생성계에서 전환해야만 된다는 걸 시사하고 있네. 또한 이는 ‘실재(to on)’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밝은 것을 관상하면서도 견디어낼 수 있게 될 때까지 해야만 된다는 걸 말일세. 한데, 이것을 우리가 ‘좋음’이라 말하겠지?” 내가 말했네.

“네”

“그러니까 바로 이것의 전환(periagόgέ)에는 방책이 있음직하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하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환을 하게 될 것인지와 관련된 방책 말일세. 이는 그것에다 보는 능력을 생기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능력을 지니고는 있되, 바르게 방향이 잡히지도 않았지만, 보아야 할 곳을 보지도 않는 자에게 그러도록 해주게 될 방책일세.” 내가 말했네.

 

 

519a~519d

“(...) 그건 변변찮은 시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를 ‘나쁨’에 봉사토록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그것이 더 날카롭게 볼수록 그만큼 더 나쁜 일들을 하게 되기 때문이란 걸 말일세.”

(...)

“그러니까 나라의 수립자들인 우리의 할 일은 가장 훌륭한 성향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앞서 우리가 가장 큰 것이라고 말한 배움에 이르도록, 그래서 ‘좋음’을 보게끔 그 오르막을 오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되, 이들이 일단 이 길을 올라, 그것을 충분히 보게 되면, 이제 이들이 허용받고 있는 걸 이들에게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일세.” 내가 말했네.

“그게 어떤 것인데요?”

“바로 거기에 머물러 있으려 할 뿐, 저들 죄수들 곁으로 다시 내려가서 저들과 함께 노고와 명예를, 이게 다소 하찮은 것이건 대단한 것이건 간에,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일세.”내가 말했네.

 

 

 

519d~520a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들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게 되며, 이들로서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도 우리가 이들로 하여금 더 못한 삶을 살도록 만들게 될 텐데요?” 그가 말했네.

“여보게, 자네 또 잊었네. 법(nomos)은 이런 것에, 즉 나라에 있어서 어느 한 부류가 각별하게 잘 지내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게 아니라, 온 나라 안에 이것이 실현되도록 강구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걸 말일세. 법은 시민들을 설득과 강제에 의해서 화합하게 하고, 각자가 공동체에 이롭도록 해줄 수 있는 이익을 서로들 나누어줄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런다네. 또한 법은 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생기도록 하는데, 이는 각자가 내키는 대로 향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 자체가 나라의 단합을 위해 이 사람들을 십분 이용하기 위해서일세.” 내가 말했네.

 

 

 

519d~520a

"그러면 이제는 이 문제를, 즉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에 어떤 방식으로 생기게 되며, 또한 어떻게 이들을 광명으로 인도하게 될 것인지를 우리가 생각해보기를 자네는 원하는가? 마치 어떤 이들이 지하 세계로부터 신들에게로 올라갔다고 전하듯 말일세.“

“왜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반문했네.

“이건 물론 ‘조가비(도편) 돌려 던지기’가 아니라, 밤과도 같은 낮에서 진짜 낮으로 향하는 ‘혼의 전환(psychέs periagόgέ)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지혜의 사랑)이라고 우리가 말하게 될 실재(to on)로 향한 등정(오름)일 것 같으이.”

 

 

592b

“그렇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걸 보고 싶어하는 자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 자신을 거기에 정착시키고 싶어하는 자를 위해서 하늘에 본(paradeigma)으로서 바쳐져 있다네. 그러나 그게 어디에 있건 또는 어디에 있게 되건 다를 게 아무것도 없으이. 그는 이 나라만의 통치를 하지, 다른 어떤 나라의 정치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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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명이 모였고요. 한분이 참관하셨습니다.

강점기를 끝내고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의 혼란한 시기를 공부하였습니다. 오늘이 역사상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있는 날이라 공부하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이 비극적인 남북 분단과 길고긴 대치가 바로 이 해방 공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남북대치 혹은 이념대립 속에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추종했던 친일파가 청산되기는 커녕 오히려 애국자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기막힌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친일파 재산 환수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은 일제로부터의 작위 수여는 친일 행위가 아니라 왕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요. 나라를 빼앗긴 왕족이 빠앗은 나라로부터 작위를 받은 것이 그렇게 당당한 일인가 봅니다.  친일 후손의 권리를 떳떳이 주장하는 이해승의 손자가 그랜드 힐튼 호텔 이우영 회장이랍니다.  http://www.insight.co.kr/news/152278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940년대 초부터 국내외서 독립운동단체들이 건국을 준비해 왔습니다. 1940년에 중국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 한국광복군, 주석체제 등을 확립한 후  1941년 건국강령을 선포하고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1942년 중국 옌안에 자리잡은 조선독립동맹 또한 예하에 조선의용군을 두고 건국을 준비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1944년 8월 여운형이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여 비밀리에 건국작업을 추진하다가 해방이 되는 그날 좌우합작으로 조선 건국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건준위는 치안대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물러간 한반도 내의 비상 시기에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여운형은 38도선 이남에 미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9월 6일 서둘러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틀 뒤인 9월 8일에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곧바로 점령군임을 명시하고 군정을 선포합니다. 우리민족이 만든 국내외의 어떤 정부나 행정조직도 인정하지 않고, 대부분의 남한 민중들의 의사에 반하여 일제 강점기의 통치조직을 존속시키고 그뿐 아니라 통치의 수족 노릇을 했던 친일파들이 해방이전에 했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해나가도록 합니다.  일본 총독부가 미군정으로 이름만 바뀐 기막힌 현실은 해방 이후 남한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으며 오늘날까지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이후 꼭 3년만에 UN 소총회의 의결에 따라 남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됩니다.  그 첫 출발이 5.10 총선입니다. 5.10 총선을  반대하는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끝까지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실패하고 남한과 북한은 각각 연이어 단독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하며 단정을 반대하고 평양에 올라가 남북협상을 주도했던 김구는 정부 출범 후 1년이 채 못되어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안두희는 미군정보 요원이었다고 합니다. http://v.media.daum.net/v/20010904124632890?f=o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5.10 총선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 제주도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과정에 수많은 양민이 학살되어, 당시 제주 인구의 1/4이 희생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4.3 사건은 금기시되었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진상규명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권력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였습니다.

 

 

 

 

다음주는 이승만 정부부터 노태우 정부까지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122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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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에 나타난 사상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 시대가 무너지고, 아직 새로운 시대는 자리잡지 못한 혼란과 혼돈의 시기에  다양한 사상들이 다투어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어떤 사상은 고대로, 어떤 사상은 미래로, 또 어떤 사상은 내면을, 또 다른 사상은 자연과학을, 그리고 여전히 초월적인 것을 꿈꾸는 사상도 있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래 100년이 넘도록 유럽 곳곳에서는 종교 전쟁과 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된 학살이 이어졌습니다. 철저하게 파괴된 삶 속에 사람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신을 대신할 새로운 진리, 눈에 보이는 확실성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흔히 '인문학의 부활'로 대표되지만, 근대를 예비한 것은 고대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토대를 놓은 것은 초월적인 것을 本으로 삼고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했던 고대의 윤리적 정치체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한 철저하 세속적인 국가였습니다. via antiqua와  via moderna의 대결은 moderna의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신에 예속되었던 중세를 벗어나 인간을 중심에 놓게 된 것에는 고대 인문학의 영향이 지대하였습니다.

 

근대로의 길을 제시한 인물들은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 홉스 등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의 katholikos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적 권력의 세속적 기원을 정초하였습니다. 그의 세속국가는 철저하게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베이컨은 이천 년 가까이 학문의 도구로 기능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organon)을 자신의 『신기관』(novum organum) 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베이컨의 새로운 도구는 관찰과 실험입니다. 베이컨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을 발전시켜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꿈꾸었습니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시민상태로의 이행을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홉스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이 일어나는 자연상태가  사회계약을 통해 평화로운 상태로 이행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적 폭력을 공적 폭력으로 전환하고 폭력을 독점한 절대군주가 강력한 힘으로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 홉스에서 비롯된 철학은 근대 사회를 정초하고, 지금까지도 우리 삶의 근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다음 16회부터는 근대 철학에 들어갑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13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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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복잡한 무장 독립 전쟁사를 마쳤습니다.

 

 

 1910년대 국내에서는 비밀결사가 조직되고, 국외에서는 독립운동 기지 건설이 진행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일본의 이른바 문화통치 국면에서 국내에서는 다양한 사회 운동이 일어났고, 국외에서는 무장 독립 투쟁이 활발해졌습니다.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침체기에 빠진 한편 의열단을 중심으로 한 의열 투쟁이 활발하였습니다.  의열 투쟁이란 비밀 결사를 통해 요인 암살· 테러, 관청 파괴 등을 전개하는 독립운동을 말합니다.  1919년 노인 동맹단 소속의 강우규가 사이토 총독의 부임길에 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져 1920년대 의열 투쟁을 촉발하였습니다.

 

 

 

김원봉 등을 중심으로 1919년 만주 길림성에서 조직된 의열단은 총독부, 경찰서,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결행하였습니다. 의열단은 1923년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강령으로 채택하여  민중 직접 혁명을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개별적 의열활동에 한계를 느낀 의열단은 1925년 중국 황포군관학교 입교를 시작으로 노선을 전환하여 조직적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부 분열과 자금난, 일제 탄압 등으로 침체를 계속하다가 1931년 산하에 의열조직인 한인 애국단을 결성하였습니다.  1932년 1월 이봉창의 도쿄 히로히토 천황 투탄과 4월 윤봉길의 상하이 홍코우 공원 의거로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뤄양 군관학교에 한국인 특별반을 편성하였으며, 이것이 1940년 한국 광복군 창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이광수 등은 총독부에 회유되어 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민족개조, 자치론 등을 설파합니다. 이광수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를 받는 것은 '열등감과 성격의 결함' 때문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우리 민족의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족운동 진영은 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로 분열됩니다. 독립을 포기하고 일제의 승인하에 자치할 것을 주장했던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30년대 후반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노골적인 반민족 친일행위의 길을 걷습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20년대에 크게 성장한 사회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민족유일당 운동의 최대 성과인 신간회를 결성합니다. 1927년 창립된 신간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1929년 우발적인 충돌로 발생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신간회는 이후 이 운동을 민중대회로 확산하려다 지도부가 대거 검거되는 탄압을 받습니다. 새로 뽑힌 신간회 집행부는 최린 등 개량적 자치론자와 연결을 모색하며 신간회를 자치 운동에 동원하려다 지방 지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이에 더하여 코민테른의 노선 변화 등 국제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신간회는 1931년 자진 해소하였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며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끈질기게 전개되었습니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 선전포고문을 발표하고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1940년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부대로 창설된 한국 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하였습니다. 1945년에는 미국과 연합하여 국내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국내 침투를 눈앞에 두고 일본의 항복선언이 발표됩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일본의 항복을 반길 수 없었던 안타까운 심정을 표출하였습니다. 그 안타까운 우려가 현실이 됨으로써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왜곡된 역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다음주는 강점기를 끝내고 해방 직후 혼란기까지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116 ~ 121

 

* 첨부된 모든 자료는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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