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른바 경험론에 속하는 로크와 버클리, 흄의 철학과 반계몽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루소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경험론자들은 앎의 근원이 경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크는 정신이란 tabula rasa, 빈 서판이며 일생 동안의 경험들이 그 위에 쓰인다고 합니다. 합리론자들은 인간은 상당히 많은 선천적인 관념들을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근대 철학의 두 대립적 사상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앎의 주체를 인간, 인간의 이성에 둔 계몽주의 철학입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싸움은 일종의 '가족의 싸움' 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공격의 대상은 비합리성이었습니다.

 

 

다음주는 칸트입니다. 길고 지루한 철학사에 지쳐 그만두고 싶어도 칸트와 헤겔을 하지 않고는 그만둘 수 없습니다. 칸트야말로 플라톤과 더불어 철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62 ~ 3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샌드위치 데이의 위력을 실감한 날입니다. 학교도 직장도 자체  휴무가 많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늘 우선이기 때문일까요? 화창한 날씨의 유혹이 커서일까요? 4년 스타디 이력에 가장 낮은 출석을 기록한 날입니다. 여섯 명이 참석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근대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스피노자와 뉴턴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중세가 끝나면 더 이상 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전지전능하신 신은 되풀이 호출되어 흔들리는 인간의 든든한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신을 부르는 철학자들마다 신에게 요청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하지만 중세와 달리 근대의 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완숙한 연기력을 뽐내는 조연같은 느낌을 줍니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자입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인(자연)은 신의 변형태들입니다. 자연이, 우주가, 곧 신입니다. 유한자가 바로 무한자인 것입니다. '무한자와 유한자의 통일로서의 동일 철학'은 독일 관념론으로 이어집니다. 17세기 일반 위기의 시대에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하나의 위안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연은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자연이 신이라면 자연의 법칙과 신의 법칙은 같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필연성을 따르는 것, 즉 신의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 자유인 동시에 행복입니다.  

 

스피노자의 대표 저서인 『에티카』는 신의 의지에 복종하여 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에티카』란 "책 제목이 기하하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입니다. 이 책의 기본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래로 서구 사상에 전승된 행복에 대해서입니다." 라고 강유원 선생님은 말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대에 가장 확실한 학문으로 인정받은 수학으로 이를 증명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증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피노자의 의도는 명백해 보입니다.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처럼 수학으로 입증된 법칙이 진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윤리학 역시 수학적으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자연과학처럼 참된 법칙이 될 수 있습니다.  수학이 진리의 도구입니다.  잘 훈련된 이성은 수학을 도구로 신적 앎에 이를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상태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필연성을 갖는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므로 (신의 의지와 필연성은 동일한 것이기에), 필연성에 대한 점증하는 인식과 긍정은 동시에 신에 대한 점증하는 사랑이자 신의 의지에 대한 복종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이런 지고한 상태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이라 부른다. 이는 동시에 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사랑, amor fati' 이기도 하다. <세계 철학사> p503"

 

운명애란 부정적으로는 체념을, 긍정적으로는 자유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악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악 역시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악의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의 문제라는 것 자체가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대중매체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악에 부딪힙니다.

 

 

다음주는 경험론을 중심으로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344 ~ 3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3주만에 다시 철학사로 돌아왔습니다. 

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근대철학의 출발점은 확실성에 대한 추구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중앙집권화가 시작되는 한편 종교개혁에 이은 종교전쟁이 불타올랐습니다. 확고했던 중세의 가톨릭주의(Katholikos)가 무너지자 천년을 지탱해온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었습니다. 자연과학에서 인문주의까지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여 경쟁하였습니다. 경쟁의 승자는 신을 대체할 확실한 토대를 제공한다고 믿어진 자연과학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대에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절실히 원했던 것은 확실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철학은 자연과학과 수학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만 합니다.

 

철학자 강유원에 따르면 근대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적 필연성과 자유 의지의 영역에 대한 탐구입니다. 데카르트-스피노자-로크-뉴턴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자연 영역에서 확실성을 탐구했습니다. 자연의 영역은 '인과법칙'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뉴턴은 지상에서 우주까지 만물을 아우르는 법칙을 만들어냄으로써 고전역학을 완성하였습니다. 뉴턴적인 세계는 '하나의 질서잡힌 닫힌 우주'로 정의됩니다.

 

그런데 이 완성된 세계에 균열을 낸 철학자가 있습니다. 흄입니다. 흄은 인과법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이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이 세계가 오로지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불가능합니다. 고전역학의 결정론이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단순화시켜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루소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적 필연성을 벗어나서 자유의지가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야말로 자유의지가 펼쳐지는 장입니다.

 

자연과학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등장한 철학자가 칸트입니다.  칸트에게는 자연과학을 구원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런 법칙 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인다면 인간의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순수 이론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칸트에게는 또 다른 과제도 있었습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윤리 영역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전제입니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합니다. 윤리적 주체는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주체입니다. 칸트는 윤리의 절대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자연의 영역에서 배제했던 무한자를 다시 요청합니다. 근대철학에서 추방되어 가던 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근대철학의 두번째 영역은 독일 관념론입니다. 칸트 이후 다시 대두된 무한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탐구하였습니다.  피히테-셸링-헤겔의 계열입니다. 헤겔철학은 초월적 정신철학의 근대적 versi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플라톤과는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인간 정신이 무한자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세 번째 영역은 마르크스와 니체입니다. 둘 모두 근대철학의 주요 흐름인 자연과학의 법칙을 겨냥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연적 필연성보다 사회적 필연성이 인간의 삶을 구조짓는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니체는 모든 법칙, 필연성을 전복하려 하였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언명은 신으로 대변되는 모든 법칙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폴론적 질서를 부정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긍정의 힘을 찬미하였습니다.

 

 

오늘 스타디에서는 근대철학을 개관하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Cogito'를 공부하였습니다. 다음주에는 스피노자, 로크, 뉴턴, 흄, 루소 등 근대철학 Part Ⅰ의 나머지 철학자들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30 ~ 361

 

 

 

 

덧붙임 : 『인문고전강의』 중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편을 읽다가 생각해볼 인용문이 있어 재인용해 둡니다.(p 332 ~ 3) 오늘 스타디에서도 마지막에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시간이 없어서 논의를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앨런 블룸이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에 관한 현저한 사실은 그들의 취향과 상상력을 형성해주는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인생의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나 자신들의 삶의 목적에 관해 생각해보려 할 때 전혀 책을 찾지 않는다. 이는 덕이나 악에 관한 그들의 개념을 형성하는 문학적 모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자체 우리 시대의 특징인 제일원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 이에 대한 합의의 쇠퇴라는 더욱 심각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 오늘날 학생들은 기술적으로는 잘 무장되어 있으나 교양 없는 속물일 뿐이다. 희랍에서는 호메로스에 의해서, 이탈리아에서는 탄테에 의해서, 불란서에서는 라신느와 몰리에르에 의해서 그리고 독일에서는 괴테에 의해서 수행되던, 문명화 작용과 통합 작용이라는 책의 기능은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이 세계와 자신들의 이해를 시작할 토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대화의 핵심을 형성하는 아무런 공동의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 (...) 하나의 위대한 책이나 한 사람의 작가로의 끊임없는 복귀나 의존은 사라져 버렸으며, 그 결과는 삶의 품격의 통속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원자화이다. 문명인(교양인)이란 무엇이 덕스러운 것이고 악한 것인가, 무엇이 고결한 것이고 천한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 의해 결속되기 때문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공시생용 한국사 공부를 모두 마쳤습니다.

대부분은 공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만,

공시 준비하는 우리 막내 혜원님,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공부에는 일곱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통일 정책을 중심으로 재빨리 공부하고, 시골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30주간의 공부를 정리하였습니다.

아래에 올린 자료는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중 남북의 통일 노력의 성과들입니다. 

    

1. 박정희 정부

 

 

2. 노태우 정부

 

 

 

3. 김대정 정부 : 최초 남북정상회담 (2000)

 

 

 

4. 노무현 정부 : 2차 남북정상회담 (20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명이 모였습니다.

제1공화국부터 제5공화국까지 공부하였습니다.

 

해방후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소련이 주둔한 38도선 이북과 달리 이남에서는 친일파 청산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명분으로 친일파 청산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 기간 동안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도 많았습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한 이승만은 종신집권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개헌을 단행하였습니다.

 

 

 

1960년 4대 대통령 선거는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부정선거였습니다. 결국 이 3.15부정선거는 4.19혁명을 불러 일으킵니다.

 

 

 

 

4.19혁명 이후 출범한 장면내각은 5.16 군사 정변에 의해 채 1년도 못되어 무너집니다. 박정희는 혁명공약을 어기고 1963년 대선에 출마하여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972년에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체제를 수립합니다.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합니다. 인혁당 사건은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국가 폭력입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는 죽었지만 곧이어 신군부에 의한 12.12 사태가 발생합니다. 국민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신군부에 저항하였지만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습니다.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5.18 광주 민주화 투쟁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됩니다.  

 

 

다음주에 현대사를 마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 노트>

p 128 ~ 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