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만에 다시 철학사로 돌아왔습니다.
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근대철학의 출발점은 확실성에 대한 추구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중앙집권화가 시작되는 한편 종교개혁에 이은 종교전쟁이 불타올랐습니다. 확고했던 중세의 가톨릭주의(Katholikos)가 무너지자 천년을 지탱해온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었습니다. 자연과학에서 인문주의까지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여 경쟁하였습니다. 경쟁의 승자는 신을 대체할 확실한 토대를 제공한다고 믿어진 자연과학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대에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절실히 원했던 것은 확실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철학은 자연과학과 수학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만 합니다.
철학자 강유원에 따르면 근대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적 필연성과 자유 의지의 영역에 대한 탐구입니다. 데카르트-스피노자-로크-뉴턴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자연 영역에서 확실성을 탐구했습니다. 자연의 영역은 '인과법칙'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뉴턴은 지상에서 우주까지 만물을 아우르는 법칙을 만들어냄으로써 고전역학을 완성하였습니다. 뉴턴적인 세계는 '하나의 질서잡힌 닫힌 우주'로 정의됩니다.
그런데 이 완성된 세계에 균열을 낸 철학자가 있습니다. 흄입니다. 흄은 인과법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이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이 세계가 오로지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인간의 자율성은 불가능합니다. 고전역학의 결정론이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단순화시켜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루소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적 필연성을 벗어나서 자유의지가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야말로 자유의지가 펼쳐지는 장입니다.
자연과학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등장한 철학자가 칸트입니다. 칸트에게는 자연과학을 구원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런 법칙 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인다면 인간의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순수 이론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칸트에게는 또 다른 과제도 있었습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윤리 영역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전제입니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합니다. 윤리적 주체는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주체입니다. 칸트는 윤리의 절대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자연의 영역에서 배제했던 무한자를 다시 요청합니다. 근대철학에서 추방되어 가던 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근대철학의 두번째 영역은 독일 관념론입니다. 칸트 이후 다시 대두된 무한자의 문제를 정면으로 탐구하였습니다. 피히테-셸링-헤겔의 계열입니다. 헤겔철학은 초월적 정신철학의 근대적 versi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플라톤과는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인간 정신이 무한자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세 번째 영역은 마르크스와 니체입니다. 둘 모두 근대철학의 주요 흐름인 자연과학의 법칙을 겨냥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연적 필연성보다 사회적 필연성이 인간의 삶을 구조짓는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니체는 모든 법칙, 필연성을 전복하려 하였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언명은 신으로 대변되는 모든 법칙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폴론적 질서를 부정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긍정의 힘을 찬미하였습니다.
오늘 스타디에서는 근대철학을 개관하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Cogito'를 공부하였습니다. 다음주에는 스피노자, 로크, 뉴턴, 흄, 루소 등 근대철학 Part Ⅰ의 나머지 철학자들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30 ~ 361
덧붙임 : 『인문고전강의』 중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편을 읽다가 생각해볼 인용문이 있어 재인용해 둡니다.(p 332 ~ 3) 오늘 스타디에서도 마지막에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시간이 없어서 논의를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앨런 블룸이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에 관한 현저한 사실은 그들의 취향과 상상력을 형성해주는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인생의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나 자신들의 삶의 목적에 관해 생각해보려 할 때 전혀 책을 찾지 않는다. 이는 덕이나 악에 관한 그들의 개념을 형성하는 문학적 모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자체 우리 시대의 특징인 제일원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 이에 대한 합의의 쇠퇴라는 더욱 심각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 오늘날 학생들은 기술적으로는 잘 무장되어 있으나 교양 없는 속물일 뿐이다. 희랍에서는 호메로스에 의해서, 이탈리아에서는 탄테에 의해서, 불란서에서는 라신느와 몰리에르에 의해서 그리고 독일에서는 괴테에 의해서 수행되던, 문명화 작용과 통합 작용이라는 책의 기능은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이 세계와 자신들의 이해를 시작할 토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대화의 핵심을 형성하는 아무런 공동의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 (...) 하나의 위대한 책이나 한 사람의 작가로의 끊임없는 복귀나 의존은 사라져 버렸으며, 그 결과는 삶의 품격의 통속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원자화이다. 문명인(교양인)이란 무엇이 덕스러운 것이고 악한 것인가, 무엇이 고결한 것이고 천한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 의해 결속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