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밴드에 올리는 후기를 오늘 살짝 공개합니다. 조정래의 <정글만리>에 대한 3~40대 일반 주부들의 생각, 이렇게 팽팽합니다^^

 

 

 

 

여름 내내 읽었던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드디어 토론탁상에 올랐습니다. 추석 준비를 이유로 OO님이 두 주간이나 발제를 미루기도 했던 책이지요. 그런데 추석은 표면상의 이유인듯하고 그 동안 발제준비에 몰두하셨던 듯합니다. 아주 훌륭한 발제로 저절로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등장인물 중심으로 내용을 소개했구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비롯 몇 가지 논제를 던지셨습니다.

 

오늘 토론은 한마디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선악의 팽팽한 대립' 이라 할 수있는데요. <정글만리>에 긍정적 평가를 하신 분들은 착한 사람,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인간들은 나쁜 사람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졸지에 나쁜뇬에 등극하신 분들, 독서회의 필요악이라, 자위를 하자구요 흙. 결과는 긍정평가 4명, 부정평가 4명, 굳이 중도를 표방하신 2명, 무승부 되겠습니다.  70만부(맞나요?) 가 팔린 베스트셀러에, 지금도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시대를 논할 수 없다는 둥의 광고가 나가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저희 독서회의 평가는 이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몇몇 나쁜뇬들의 암약으로 ㅠ.ㅠ.

 

긍정평가의 가장 큰 이유로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이란 나라의 현실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아주셨습니다. 역사책이나 경제학책은 아무래도 읽기힘든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초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게다가 중국에 대한 흥미가 생기니 관련 책을 더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구요. 말하자면 동기 유발자적 입문서라는 것이지요. 독자들 중에는 실제로 중국, 한번 해볼만한 시장이야, 라는 자신감을 얻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부정평가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이 '쉬운 접근법' 에 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정반대의 관점이 극명하게 충돌한 , 저희 독서회에서는 보기드문 상황인데요. 조정래가 보여준 중국의 실상이 극히 편협하고 표면적이어서 오히려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님의 표현대로 100가지 얼굴 중에 한가지의 얼굴만 보여주므로써 한가지 얼굴을 중국 전체의 얼굴로 오인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문학 작품이라면 작가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작가의 답, 작가의 시선이 항상 옳은 것도, 항상 옳을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특히 조정래라는 '이름값' 자체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그 이름에 대한 독자들의 무한신뢰가 비판적 독해를 방해할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 아무래도 부정판단에 대해 더 말이 길어지는군요...짐작하다시피 저도 나쁜뇬에 지명된 처지라 ㅠ.ㅠ.... 기록자의 객관성을 상실하고 .... 댓글로 균형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여하튼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편이 모두 공감한 것은 문학작품으로서의 <정글만리>는 조금(혹은 엄청) 격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물도 사건도 갈등도 없고 저자의 아바타들만 난립하는 인상입니다. 그래서 여러 회원님들도 소설 보다는 르포에 가깝다는 말씀을 하셨구요. 반면 약간 모자란 문학성이 오히려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님의 부군은 평소 책을 머~얼리 하시는 분인데도, 이 책만은 휘리릭 단숨에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조정래 할아버지가 여성을 보는 조야하고 비하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대부분 의견 일치를 보였습니다. 한중 젊은이 한쌍의 연애 묘사도 너무 6~70년대 적이고요. 신성일, 엄앵란에 간드러진 성우 목소리를 입혀 만든 연애영화를 보는 듯한 오글거림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12시 반이 넘을 때까지 선악의 극한 대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역시 의견일치 보다는 굽힐줄 모르는 소신 주장이 활력있고 짜릿하고, 기타 등등 ... 좋았습니다. 양볼이 살짝 붉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부작용은 있지만, 아직 그 정도의 심박 상승은 버텨낼 수 있는 연배들이신지라 이런 종류의 토론은 적극 권장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참석 회원님들도 즐거워 하셨습니다.(아닌가요?)

 

그런데 왜 긍정평가자들이 좋은 사람이냐구요? ☆☆☆님이 말씀하시길, '우리 착한 사람들'은 어떤 책에서라도 좋은 내용을 찾아낼 수 있고, 배울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 하시는 바람에, 졸지에 부정평가자들은 '너희 나쁜 인간들' 이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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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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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수없이 봤지만 한번도 뽑아든 적이 없는 책이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사실 저자가 셀린저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나는 호손이나 뭐 그런 정도의 유명작가인 줄 알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 셀린저라는 이름은 엄청 낯설었다;; 심지어는 몇 주전에 <빨간책방>을 들었는데도, 처음 보는 이름 같았다. 대개 설겆이나 청소를 하면서 듣기 때문에 흘려버리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분명히 들었을텐데도 책 표지의 셀린저라는 이름은 아주 이상해 보였다.

 

내용도 그랬다. 오랫동안 제목이 준 인상은 <붉은 수수밭>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목화농장 같은 것이었다. 광활한 호밀밭을 지키는 외로운 파수꾼. 뉴욕 중산층 사춘기 소년의 일탈에 관한 이야기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일탈이라니, 사실 요즘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이걸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1950년대의 미국에서는 굉장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제임스 딘의 반항적 이미지에 맞먹는 홀든 콜필드의 강렬함. <빨간책방>의 두 남자가 뭐라고 신나게 떠든 얘기 속에는 존 레논 암살범이 이 책을 갖고 있었다는 둥의 비화들이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선구자라나.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현대의 산업사회를 부정하고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며 문학의 아카데미즘을 반대한, 방랑자적인 문학가 및 예술가 세대를 이르는 말

 

문학 뿐만 아니라 사회 분야에서도 "1950년대 미국의 풍요로운 물질 환경 속에서 보수적인 기성 질서에 반발해 저항적인 문화와 기행을 추구했던 일단의 젊은 세대 " 를 가르킨다.

 

그러니 책 내용은 '다음 어학사전'의 정의 속에 그대로 있는 셈이다. 풍요로운 물질환경, 홀든 콜필드의 아버지는 뉴욕에 사는 변호사다. 보수적인 기성 질서에 대한 반발. 가령 이런 것이다.  콜필드와 늙은 스펜서 선생이 나누는 대화다.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

「예, 선생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시합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주 전에 교장 선생님과 부모님이 상담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아주 훌륭하신 분들 같더구나」 

「예. 좋으신 분들입니다.」

 훌륭하다니. 난 정말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그건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예의바른 자세와 공손한 대답 뒤에서 콜필드는 분노와 구역을 쏟아낸다. 그런데 나는 콜필드 보다 스펜서 선생이 마음 아프다. 내가 쏟아낸 수많은 말들도 누군가에게 조롱 속에 짓밟히지 않았을까 슬며시 겁도 난다. 이제 풋내기 콜필드에게 감정이입하기에는 나도 늙었다.

 

콜필드의 기행은 줄담배, 친구에게 흠씻 두들겨 맞기, 클럽에서 성인 여성들과 춤추기, 호텔에서 매춘부와의 소동, 떡이 되게 술마시기 따위 들이다. 그런데 콜필드는 그렇게 막 나가는, 앞뒤가리지 않는 반항아처럼 보이지 않는다. 콜필드에게는 항상 브레이크가 있다. 매춘부를 그냥 돌려보내고, 좋아하는 선생님을 찾아가고, 결국 가출도 하지 못한다. 콜필드의 3일은 일종의 럼스프린가이다.

 

럼스프린가는 '주위를 뛰어 돌아다닌다' 는 뜻의 독일어에서 온 말이다. 미국의 아만파 공동체는 17세가 되면 아이들을 공동체 밖으로 내 보내, '뛰어 돌아다니게' 한다. 공동체 안은 엄격한 규칙을 갖고 있는데,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해도 아니 어떤 일을하도록 부추겨진다. 차와 팝음악, 텔레비젼은 기본이고 음주와 마약 난교를 경험한다. 그리고 몇년 후 아이들은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된다. 아만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미국 시민이 될 것인가? 결과는 90%의 아이들이 공동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왜?  여기에는 속임수가 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진정한 선택의 기회가 아니다. 아이들은 17세가 될때까지 엄격한 규율 속에서 바깥 세상에 대한 환상을 키워왔다. 그런데  자연스런 삶속에서의 한계나 규제 없이 갑작스레 주어진 음주와 마약과 섹스는 그들의 환상을 박살내며 참을 수없는 불안을 야기한다. 아이들은 평화와 안정을 찾아 아만파 공동체의 규율 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17세가 될때까지 일반적인 미국 가정에서 살다가 강제로 아만파 공동체에서 몇 년을 살게 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몇년 후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럼스프린가는 일종의 '불맛'을 체험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아무것이나 덥석덥석 집으려는 아이에게 뜨거운 남비뚜껑을 만지게 해서 아이가 스스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훈육같은 것 말이다. 

 

 콜필드의 3일은 막막하고 외롭고 불안하다. 콜필드는 한번도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주위를 뛰어 돌아다니다,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돌아온다. 이 책이 미국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린 책 (빨간책방에서 들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도 엄청 많이 팔렸고 지금도 많이 팔린단다) 인 이유는 아마도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비슷한 효과 때문이지 않을까?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을 거부하지만,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찾아 결혼에 성공한다. 영국 엄마들이 딸들에게 이 책을 첫번째로 권유하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결혼이다. 사랑은 악세러리고 결혼이 실체이다. 사랑이라는 장식물로 결혼이라는 영악한 실체를 가린 이 성공담이야말로 보기 좋아 맛도 더 좋은 떡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도 파멸하지 않고 안전한 세계로 돌아온다. 저자 셀린저는 막대한 인세로 은둔형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적어도 홀든 콜필드는 3일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적당히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 같다.  한때는 좀 놀아봤다는 그 추억이 그를 삶에 한층 더 단단히 고정시켜 주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콜필드는 파수꾼, catcher가 되고 싶다고 한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붙잡아 주는 파수꾼. 그런데 벼랑 위는 여전히  '기존의 질서와 도덕' 의 세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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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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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저자 : 조 사코

  1) 지중해 작은 섬국가 몰타에서 태어난 미국인

  2) 역사, 특히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지은이의 국적은 그의 세계관과 함께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됨. 극한 대립의 땅에 대한 중립적 시선은 불가능하기 때문.

  3) 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가급적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평

 

2. 시기

  1) 1991년 12월과 1992년 2월, 두 달간의 취재 후 집필 

  2) 1차 인티파다(1987년 12월 ~ 1994년 5월)가 사그라들 무렵

  3) 출간 배경 : 9개의 시리즈물을  약 10년이 지난 2001년 한 권의 책으로 엮음  

 

3. 주요 방문 지역

  1) 입국 경로 : 카이로 → 시나이 반도 → 팔레스타인 입국

  2) 예루살렘 → 요르단강 서안지구 (웨스트뱅크) → 가자지구 → 텔아비브

 

4. 주요 내용

  1) 1967년 불법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의 실태 : 실업, 시위, 탄압, 통금, 투옥, 빈곤

  2) 19948년 추방과 학살에 관한 증언

      이스라엘 건국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인 추방 및 학살, 재산 몰수 

      귀환권은 한 번도 협상 대상이 된 적이 없음 :  팔레스타인 민중이 협상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

  3)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과 정착민의 만행

      웨스트뱅크의 2/3 점령, 강제 퇴거, 가옥 파괴

  4) 안사르 감옥과 고문에 관한 증언

  5) 인티파다

      가자지구 난민촌에서 발발

      투옥을 자랑스러워하는 소년들

      여성 인권의 문제와 히잡

  6) 팔레스타인 경제 파괴

      팔레스타인인의 토마토 경작 방해 : 과다한 세금, 물부족, 운송 지연

      올리브 나무 절단 :인티파다 동안 12만그루 절단

      이스라엘의 최하층 프롤레타리아

  7) 운르와 UNRWA : UN팔레스타인난민기구

      난민촌, 학교, 병원 등 지원 턱없이 부족

  8) 텔아비브(이스라엘 수도)의 이스라엘인들의 시각

 

5. 말, 말  

  1) 시온주의자들의 구호 : "다음해에는 예루살렘에서!"

  2) "땅없는 사람에게 백성없는 땅을"

  3)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

  4)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평화와 토지를 바꿀 마음이 없다"

 

6. 덧붙인 글 : <팔레스타인 역사와 분쟁> 최진영 

  1) 성서에 근거한 이슬라엘의 소유권 주장 (BC 2000년 경?)

      팔레스타인 = 필리스틴인이 살던 땅 = 가나안 (이스라엘, 가자, 서안지구 및 폭넓게는 골란고원, 레바논, 시나이반도, 홍해지역까지) 

     창세기: 하느님이 가나안을 영구 소유지로 약속 , 이른바 약속의 땅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했다 유대국 멸망 이후 디아스포라(BC 586년)  

  2)  로마지배 (1세기) → 아랍 이슬람 지배 (7세기 경) → 셀주크 및 오스만 투르크 지배 (10세기~19세기)   → 영국 위임 통치 (1917년)

  3) 7세기 이후 1400년 간 아랍 무슬림의 나라

  4) 1948년 이스라엘 건국비화 : 영국의 이중 약속

      아랍인 : 대 오스만 투쟁을 대가로 아랍 독립국 약속

      시온주의자 : 벨푸어 선언으로 유대국가 약속

      분쟁은 민족간의 대립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로 부터 비롯

  

7.  한겨레 21의 현 팔레스타인 정세 분석

   3차 인티파다의 징후들 : <제국주의의 균열 이스라엘의 발악>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77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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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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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케이블 TV를 달았을 때, 플레이보이 같은 채널이 연결되어 있었다.  무심코 돌리다 야한 장면에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리모콘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화면에 붙들리곤 했다. 그런데 매번 딱 2~3분 이었다. 스토리는 없고 행위만 반복되는 장면은 감각적이지도 않고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메스꺼움, 인간의 살덩어리에 대한 오심惡心.  계속 보아야만 한다면 고문이 될 것 같은 그런 벌건 화면들. 그런데 고맙게도 그런 채널들은 곧 별도의 요금을 받는 유료채널이 되었고, 무심코 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조금 아쉬웠나? ^^;;

 

예롄커라는 중국작가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가 딱 그랬다. '중국 당대 최고의 소설가' 라는데, 설마 뭔가 있겠지라는 기대는 그냥 기대였다. 포르노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이런 책을 왜 번역했을까 싶어 역자후기를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중국 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란한 수사와 시적인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몹시 긴장하면서 퇴고를 거듭해야 했다." 현란은 고사하고 수사자체가 없고, 시적인 이미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구호 외에는 시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혹시 중국어의 번역 때문이었을까? 현대 중국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한문을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문 번역은 너무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이나 영어, 일어처럼 문법구조가 꽉 짜여져 있지도 않고, 더우기 조사가 없어서 더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번역의 과정에서 '수사'와 '시'가  몽땅 날아간 걸까? 기억나는 표현이라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밖에 없는데 말이다. 설마 실오라기가 현란한 수사는 아니겠지?

 

이 책은 중국에서 출판되자마자 금서가 되었다. '마오쩌뚱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 다. 어쩌면 중국 인민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70년대 박정희를 대놓고 깐 소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우리국민들에게도 그런 책은 화제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오쩌뚱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하는 방식이다. 밤낮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주인공은 모두 마오주석의 책들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는 투철한 친체제주의자들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애정이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오주석의 얼굴이나 어록이 들어간 갖가지 물건들을 경쟁적으로 파손한다. 그리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 강령을 성적 자극의 페티시로 이용한다. 강령이 적힌 팻말은 침실로 올라오라는 신호가 된다.  마오쩌뚱의 사상과 위상이 모욕되는 방식은 딱 이것뿐이다.  마오쩌뚱의 사상과 위상이 그 내용에 있어서 왜 모욕되어야 하는지, 인민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위에 관해서는 진짜 실오라기 하나의 언급도 없다. 물론 중국인민들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사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오쩌뚱이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중국인민을 해방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의 마오쩌뚱에 대한 애증은 소설 속에 전혀 형상화되지 않고 있다. 실제 두 주인공이 마오쩌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마오쩌뚱의 중국혁명이 이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변환시켰는지 같은 배경도 전혀 없다. 그냥 모든 것이 마오쩌뚱마저도 포르노같은 애정 행각의 소도구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상징적으로 보아, 내용없는 형식상의 비판이 최고의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성스러운 강령을 성적 환타지의 패티시로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시적 은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보아주기에는 너무 조악하다.

 

이 작품같지 않은 작품,『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역설적이게도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정의는 평론가 김현의 것이다. 문학이란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젝의 책 중 『The Ticklish Subject』, 『까다로운 주체』가 있다. 사실 ticklish에는 간지럼을 타는, 불안정한이란 뜻도 있다. 동사는 tickle로 간지러움을 태우다란 뜻의 타동사이다. 간지러움을 태우는 주어는 주체가 아니라 object, 대상이다.  강아지풀 같은 대상이 주체의 콧구멍을 살살 간질러서 자극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대상이 주체를 슬슬 긁어 자극을 주면, 주체는 뭔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김현의 문학은 작품이라는 대상이 독자라는 주체를 건질거리게 긁고 자극하여 주체를 불편한 상태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독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책을 덮는 순간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주위를 살펴보고, 이 세계를 비딱하게 보게 될 때, 그 책은 좋은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고전에 희극보다 비극이 압도적인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불편한 책이다. 그런데 불편함의 종류가 다르다. 이 대상은 내 사유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내 허벅지를 살짝 건드리는 것 같다가 곧바로 나의 구토중추를 자극한다.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는 아주 멋진 말이다. 모든 인민이 혹은 모든 당원들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강령대로 산다면 중국은 이 땅의 유토피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중국은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일당독재의 국가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국가에서 눈부신 꽃을 피운 이 아니러니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여하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마오주석의 성스러운 강령이 혁명을 통해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  실체는 변질되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혁명강령이 중국 인민의 삶을 어떻게 왜곡해 왔는지를, 생생하게 형상화된 인물들 속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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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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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카버 작, 김연수 번역, 문학동네 출판은 맞는데 '리뷰상품'의 『대성당』은 2014년 출간본만 선택이 된다. 빌려온 『대성당』은 2007년 초판본이다. 미국에서는 1983년에 출간되었고, 그때 레이먼 카버 나이 45세, 5년 뒤 암으로 죽었다. 얼마전 알라딘 메인화면에서 신작으로 본 기억이 어슴푸레한데(아닌가? 제목이 인상에 남았는데..), 여하튼 30여 년 전의 작품이다. 30여년 전 미국 사회의 단면,단면들이 무덤덤하게 그려져 있다. 주로 하층민들의 이혼, 실업, 알콜 중독 등을 소재로 하는데, 엄청난 절망도 낙천적 희망도 없고 ,그저 삶의 물결을 따라 어둠 속으로 혹은 희미한 빛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밝지 않은 이 단편집이 그리 어둡지도 않은 것은 때로, 남루하지만 가만가만 귀기울여주는 이웃들의 뭉근한 온기 때문이다.

 

레이먼 카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을 읽으며, 4월에 이 단편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세월호 사건 직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4월 마지막 주에 이 단편을 낭독하는 것으로 본방을 대체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와 빵집 주인의 이야기다. 이들 부부는 『대성당』의 인물들 중 가장 부유한, 중산층이다. 가장 우연적이고 가장 슬픈 사건이지만, 또한 가장 따뜻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고르고 고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이동진이 이 단편을 낭독했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괴한 현실이 세월호를 둘러싸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왜 위로도 공감도 하지 못하고 잊으라고만 할까. 그들의 애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이 비현실적인 현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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