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읽던 고전을 잠시 중단하고 있었다. 모임 제한으로 카페에서 만나기도 힘든데다, 플라톤을 읽기로 한 터여서 과제만으로는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강유원 선생의 고전 강독을 발견했다. EBS 클래스e의 곁가지(?) 프로그램으로 고전 강독이 있고, 거기에 20강으로 된 <소크라테스의 변론> 강독이 올라와 있었다. 고전 읽기를 다시 시작하라는 계시구나 싶을 만큼 반가웠다. 안그래도 플라톤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을 읽기로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변론 : 강유원의 소크라테스 변론 강독 / 강유원 (ebs.co.kr)








일정을 짜서 강의를 들으며 정리하고, 줌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강의를 정리하면서 좀 더 생각해 볼 것들도 과제로 제출하기로 했다. 










1강.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는 까닭




저 멀리 발칸 반도의 한 귀퉁이에서 2500년 전에 있었던 재판 하나를, 그때 쓰여진 글을, 오늘 이 땅의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탐색해 보는 데서 강의는 시작된다. 







가장 보편적인 답은 플라톤주의가 서양 철학과 종교, 사상에 미친 거대한 영향 때문이다. 플라톤은 인문학이란 것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을 가져 보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관문이란 뜻이다.  


플라톤주의에 관한 간략한 정리는 작년에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기 위해 써 둔 글에 있다.  [알라딘서재]희랍 철학을 읽기 전에 (aladin.co.kr)




그렇다면 30여 편의 대화편들 중 유독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고민했던 당대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드러내는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그 문제가 바로 민주정, 민주주의라는 데에 이 대화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삶의 틀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고대 희랍의 아테네에 있고, 그 민주정의 전성기이자 그 민주정의 문제점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시공간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살았고, 사형을 선고 받았던 아테나이였으며, 이 갈등과 혼란을 장엄하게 보여주고 있는 텍스트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걷고 있는 탐욕과 무지, 선동과 분열은 아테나이의 민주정과 너무도 유사하다.  소크라테스는 목숨과 맞바꾸어서라도 아테나이인들에게 인간이 가야할 길을 역설하고자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히 철학자의 혹은 사상가의 에이도스(형상)로 남았다. 


강유원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강독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2강. 고전 텍스트를 읽는 방법 (1)



전체 20강의 강독 중 1강에서 6강까지는 서론에 해당하고, 7강부터 18강까지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는 본론이고, 19강과 20강은 결론이라 구분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2강은 고전 일반을 읽는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다.  강유원 선생의 말로 옮기면 1강은 '왜 읽는가'라면 2강과 3강은 '어떻게 읽는가' 이다. 


고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구조적 형식이다. 나는 여전히 형식보다는 내용을 본다. 사실 형식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설명을 들으면 그렇구나 하는 정도이지, 아! 진짜 멋진 형식미를 가졌구나 하는 식의 독해 능력은 없다. 


강유원 선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단테의 <신곡>을 예로 서사시의 형식을 설명한다.  <일리아스>의 원환 구조와 <신곡>의 경이로운 각운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강의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부분이다.  












작년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들은 강의를 토대로 정리도 했었다.  <오뒷세이아>의 구조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연구자들은 문학 최초의  flash back 기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 도표들에 대한 나름의 설명은 예전에 썼던 글들에 있다.  [알라딘서재]오뒷세이아 읽기 마지막 준비 (aladin.co.kr)  [알라딘서재]오뒷세이아 2 : 작품 구조 및 초반부 (aladin.co.kr) 











<어린왕자>를 가지고도 구조를 한번 따져 보았는데 ring composition을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고, 더불어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쓰이는 액자 소설의 형식도 나타났다.  여기에 관련된 글도 링크해 둔다.  [알라딘서재]원환 구조와 1장 (aladin.co.kr)








형식미가 경이로울 정도라는 <신곡>에 관해서는 아쉽게도 우리말 번역번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신곡>을 제대로 읽어 내기는 영영 글렀다.  그래서 그런지,  여태까지 읽은 고전들 중에서 가장 힘든 작품을 꼽으라면 내게는 단연 <신곡>임이 틀림없다.  나름 노력도 해보고 정리해서 글도 올려 놓았으나 여전히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강유원 선생이 하나 더 꼽은 텍스트는 <성경>이다.  <일리아스>와 <신곡>은 고전의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은 고전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사례로 삼고 있다.  처음 듣는 방법론이지만 '성서 읽기의 네 겹 방법론' 이라고 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읽는 방식이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적 사고와 충돌하는 것처럼 고전을 읽을 때도 우의적 의미와 도덕적 실천, 신적 지향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커피는 쓴맛과 단맛과 신맛과 말하기 힘든 오묘한 맛을 모두 감추고 있지만 똑같은 커피에서 어떤 맛을 느끼는가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달려있다. 





3강 고전 텍스트를 읽는 방법 (2)




3강은 고전 텍스트들 중에서도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철학서이지만 그 형식은 희랍 문학에 가깝다. 몇몇 인물들이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특정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주인공은 주로 소크라테스이고 대화 상대의 이름이 그 대화편의 제목인 경우가 많다. 


이때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연적인 배경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 역시 당대 아테나이의 시대 상황에서 뚜렷한 상징성을 가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고대 희랍에 대한 자세한 배경 지식이 없이는 알아 내기 힘들다.  플라톤을 읽을 때 이끌어 주는 선생님이 절실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독서의 선생이 되어 줄 또 하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다.  소크라테스가 당대에 겪었던 참혹한 내전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이 책에 대해서도 앞에 링크한 글에 조금 정리해 두었다.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는 책이기도 했다.  내전 상황에서 주고 받는 연설들이 얼마나 멋지든지 깜빡 넘어갈 뻔 하기도 했다.  [알라딘서재]희랍 철학을 읽기 전에 (aladin.co.kr)  하지만 그 연설들 이면에서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은 부와 명성을 좇는 추악한 탐욕이 어떻게 공동체를 망가뜨리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3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은 이러저러한 배경 지식이라기 보다는 대화를 전달하는 형식, 액자 소설의 형식 그 자체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과 나눈 대화를 현재 시제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과거에 있었던 대화를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형식으로 서술한다.  이때 전달하는 사람은 단순한 캐리어가 아니다.  대화의 내용 그대로를 암기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기가 이해한 방식으로 그 중요성을 재평가하여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전해주기 마련이다. 즉 이 전달의 형식, 액자 소설의 형식은 그 자체가 철학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철학적 사유가 바로 이렇게 돌이켜 보고, 곱씹어 보고, 정리하는 반성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도 그렇다.  6년 전에 있었던 어린왕자와의 만남을 6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달하는 서술자는 그 만남을 6년 동안 돌이키고 곱씹고 그 의미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 낸 끝에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6년은 철학적 사유의 시간이다.  서술자를 만난 어린왕자도 그렇다.  자신의 작은 별을 떠나 이웃 별들을 여행하고, 지구에 도착해 1년 간 지구라는 세계를 겪고 난 이후에야 어린왕자는 사막에서 만난 서술자에게 자신의 별과 두고 온 꽃과 뱀과 여우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린왕자>는 이중의 액자 구조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 준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말할 준비가 되었다는, 철학적 반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힘이 있는 이야기일수록 사유의 속이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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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조영남 교수는 중국 엘리트 정치의 세 요소로 권력 운영, 권력 승계, 권력 공고화를 꼽고, 각각에 대해 순차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이 강좌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9강부터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이후에 등장한 집단 지도 체제를 구체적으로 공부하는데, 9강~12강은 권력 기구의 구성과 권력의 행사 즉 권력 운용에 관한 내용이고,  13강~16강은 나머지 두 요소인 권력 승계와 권력 공고화에 관한 내용이다.

 

 

 

 

 

 

13강. 권력 승계 ① : 규칙

 

 

 

권력 승계는 엘리트 정치 최대의 난제이다.  최고 지도자의 관점에서는 권력 이양 후 자신의 안전과,  자신의 노선과 정책의 지속 여부 등의 문제로 후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계자는 이른바 '후계자의 딜레마'에 봉착한다. 최고 지도자의 감시 아래 절대 충성을 보여야하며 동시에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야 한다. 세력 없이는 권력을 승계 받아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권력 승계를 제도화하였다. 장차관급 이하는 법으로 규칙을 제정하여 공식화하고, 국가급/부국가급은 합의를 통해 규범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원로 정치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규칙과 규범은 장쩌민 시대 이후 지금까지 평화롭고 안정된 권력 승계의 기반이 되고 있다.

 

개괄적인 내용은 앞에서 몇 번 반복되었기 때문에,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생생한 모습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연령제와 임기제가 도입되어,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일인자의 임의나 독단에 의한 권력 교체 없이 임기 만료시까지 안정적 통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젊은 통치 권력을 갖게 되었다.

 

 

 

 

 

 

 

 

권력 기구는 공정하게 구성된다. 예를 들어 정치국 상무위원은 인물 중심 발탁이 아니라 5대 권력 기구의 수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정치국도 마찬가지이다.

 

 

 

 

 

 

 

 

 

권력 기구는 세력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시대별 파벌의 강약은 있지만, 당의 총서기와 국무원의 총리는 다른 파벌에서 나와야 하고,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도 한 파벌이 독식해서는 안된다.

 

 

 

 

 

 

 

권력 승계의,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하고 독특한 방식이 '점진적 집단 승계'이다.  연령제와 임기제 도입의 결과 자연스럽게 권력은 세대별 즉 연령에 따른 집단으로 이양된다. 한 세대의 임기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가 한꺼번에 권력을 넘겨 받는 것이다.  중국만의 유일한 승계 방식으로 "설계에 의한 후계 양성과 설계에 의한 지도자 교체"이다.

 

 

 

 

 

 

 

 

 

물갈이처럼 한꺼번에 한 세대가 물러나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후계 양성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점진적 승계이다.  공산당 영도 간부의 핵심 구성원을 살펴보면 점진적 승계의 현황이 잘 드러난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거쳐서 정치국원으로 올라가고, 정치국원 중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급한다.

 

 

 

 

 

  

 

 

정치국을 거치지 않고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는 예외 사례는 두 가지가 있다. 차세대 최고 지도자와 파벌의 핵심 세력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은 사전 선임되어 5~10년간의 훈련 기간을 거치고 권력을 이양 받는다.  점진적인 승계를 통한 꾸준한 후계 양성 과정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는 훈련되지 않은 지도자가 등장할 수 없다.  자유 민주주의처럼 의사하던 사람이 어느날, 장사하던 사람이 어느날, 검찰이 어느날,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엎고 아무런 훈련도 검증도 기반도 없이 등장할 수는 없다.

 

집단 지도 체제 이후 국내외적 위기 상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계속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는 배경에는 점진적인 권력 승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자 선임의 규범이 깨어졌다. 2022년부터 공산당을 이끌어 갈 총서기 후보가 지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시진핑이 한 번 더 총서기를 하려는 것인지, 레임 덕을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중국의 설명처럼 유능한 인재가 배재될 위험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2022년의 20차 당대회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6세대 총서기가 탄생하면서 세대 교체의 규범이 지켜질지,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현실화 될지 세계가 주목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권력 승계의 문제점도 있다. 국가급 지도자의 권력 승계는 규범에 의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국가 주석은 임기 제한을 받지 않는다. 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규범이 애매하다. 퇴임한 원로들의 간섭 가능성이 있다. 즉 법으로 공식화된 것이 아니라 규범에 따르기 때문에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해 언제든지 권력 승계 방식이 바뀔 수 있는 불안정성이 상존한다.

 

 

 

 

 

 

 

 

 

 

이 강의를 듣다 보면 플라톤의 『국가』가 생각난다. 플라톤이 최고의 정체로 생각한 철학자 통치는 전형적인 엘리트 통치이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철학자 통치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있다. 예비 통치자들은 기초 교육부터 실무까지 수십 년 간의 교육과 훈련 끝에  5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올바른 통치 이념을 확립하여 안정적이고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14강. 권력 승계 ② : 사례

 

 

 

 

 

 

 

 

집단 지도 체제 하에서의 권력 승계의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첫째는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둘째는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장쩌민이 총서기가 된 것은 천안문 사건 수습 과정에서 지방의 당서기가 파격 발탁된 사례이므로 여기서 다루는 권력 승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일화들이 흥미진진하게 얽혀 있는 이 사례들은 직접 강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만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장쩌민은 오랜 통치 기간 동안 막강한 파벌과 권력을 구축한 상태에서 후진타오로 승계했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분권형의 약한 지도자였던 반면에,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처음부터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분리 승계와는 달리 당정의 3대 최고 직위인 공산당 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을 한꺼번에 넘겨 받는 완전 승계를 이루었다.

 

 

 

 

 

 

 

 

 

시진핑의 굳건한 권력 기반은 완전 승계 이외에도 7인제 상무위원회와 퇴임 원로의 정치 개입 금지, 군내 인맥 등이다.

 

 

두 차례 권력 승계 사례의 요점은 13강에서 살펴본 대로 법과 규범 등 제도에 따라 세대별로 평화롭게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다만,  2017년 19차 당대회 때 차기 지도자가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2년 20차 당대회에 6세대 지도자가 등장할 것인지,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이루어질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15강. 권력 공고화 ① : 전략

 

 

 

 

 

 

 

 

집단 지도 체제에서 새로 선임된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권력 공고화에 성공했는데,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셋 모두 그 방법과 과정이 비슷했다.  이에 따라 조영남 교수는 '권력 공고화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권력 공고화는 '신임 총서기가 권력원을 확보하여 직위에 상응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뜻한다.  권력원은 군 통수권, 이념적 권위, 관계망이다.

 

 

 

 

 

 

 

 

 

공산당 내에서 권력을 공고화하는 전형적인/모범적인 사례를 보여 준 것은 마오쩌둥이다.

 

1921년 공산당 창당 당시 마오쩌둥은 베이징대 도서관 사서에 불과했다. 중국에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도입하여 중국 공산당을 창건한 것은 베이징대 교수 리다자오와 천두슈 등이다.  여기에 소련 유학생들이 가세하여 공산당 지도 세력을 형성했다.

 

 

 

 

 

 

 

 

 

1912년 청나라는 멸망했지만 위안스카이와 같은 군벌이 신해혁명의 성과를 배신하면서 중국은 군벌과 반군벌 세력으로 나뉘어 혼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반군벌 세력인 쑨원의 국민당과 천두슈의 공산당은 1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키고 군벌을 물리치는 북벌에 함께 나섰다. 그런데 쑨원이 죽고 국민당을 이어 받은 장제스는 군벌보다 공산당을 더 싫어하며 국공합작을 깨고 공산당 토벌에 앞장섰다.

 

 

 

 

 

 

 

 

 

1927년 장제스 군대에 상하이 공산당이 학살당하는 상하이 사변이 발생했다. 이때 마오쩌둥이 한 유명한 말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이다. 공산당 조직만으로는 혁명을 수행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1927년 8월 공산당 군대를 창건했다. 

 

가을에 추수 대폭동을 일으켜 장제스에 대항했으나 실패하고 산속 깊이 도망가는데 그곳 강서에서 소련을 본따 '강서 소비에트'를 만들었다.  1934년 장제스가 마을을 불태우며 소탕 작전에 나서자, 왕밍 등 소련 유학파와 저우언라이 등은 국민당 군과 전면 전투에 나섰다가 공산당을 궤멸 위기로 몰아 넣었다. 이때 전면전에 반대하며 지금은 도망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마오쩌둥이다.

 

 

 

 

 

 

 

 

 

 

국민당군에 쫓겨 1년 만에 연안 지역에 도착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대장정이다. 처음 10만에 가까웠던 공산당원 중 연안에 도착한 인원은 1만이 채 되지 않았다.

 

대장정 즉 쫓겨가는 중에도 '준의 회의'를 열고 저우언라이의 지원 아래 마오쩌둥이 군사권을 장악한다. 가장 중요한 권력원인 군사권을 획득했다.

 

 

 

 

 

 

 

 

 

연안에 도착한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세력을 불려 나가는데, 이때 소련파의 핵심인 왕밍이 복귀하여 왕밍 노선을 주장한다. 왕밍 노선이란 정통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말한다.  마오쩌둥은 중국 현실을 무시하고 교조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식하려는 왕밍에 맞서 정풍 운동을 시작했다. 

 

 

 

 

 

 

 

 

 

정풍운동은 사상 운동이다.  공산주의 사상과 다양한 노선을 학습 및 비판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 현실에 맞는 하나의 통일된 공산당 이념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연안 정풍 운동으로 왕밍을 비롯한 소련파를 청산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확립하여, 1945년 7차 공산당 당 대회 때 당헌에 이를 기입함으로써, 마오쩌둥은 공산당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마오쩌둥은 권력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를 강조하였는데, 총대와 붓대, 즉 군사력과 이념(선전의 힘)이다. 여기에 경제력까지 더해지면 거의 완전한 권력이 될 수 있다.

 

무명의 일개 당원에서 출발한 마오쩌둥이 군벌과 국민당 그리고 일제와 싸우며,  공산 혁명을 성공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현실에 맞는 이념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킬 군사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인문 고전 강의>

 

 

 

 

 

16세기 피렌체 공국의 마키아벨리는 군주 메디치에게 바친 『군주론』 에서 강력한 군주는 'Armed Prophet, 무장한 예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언가란 이념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여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상가라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총대와 붓대가 '무장한 예언가' 이다.

 

아무 생각 없는, 이념 없는 정치 지도자와 총대 즉 힘이 없는 통치권자는 국민을 피로하게 하고 국가를 아무 곳으로나 끌고 간다.  

 

 

 

 

 

 

 

 

 

 

마오쩌둥은 이렇게 권력 공고화의 선례를 만들었다. 이후 정풍 운동은  덩샤오핑 시대 3차례를 비롯 정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시대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어 났다.

 

정풍 운동은 반부패 운동과 함께 실시되어 공산당을 정화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한다.  일당 독재 아래 생겨나기 마련인 각종 부패와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척결과 처벌을 강력하게 시행함으로써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공산당 영도를 지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는다.  또한 최고 지도자에 반대하는 세력을 일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16강. 권력 공고화 ② : 사례

 

 

 

 

 

 

 

 

 

집단 지도 체제 아래의 권력 공고화도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다만 군사력은 여기에서 제외한다. 이유는 공산당 총서기는 보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기 때문이다. 물론 군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권력 공고화의 주요 요소로 넣을 필요는 없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 모두 권력 공고화의 3단계를 거쳐 권력을 장악했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혁명적 카리스마가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해 줄 자파 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장쩌민 시대에는 상하이방이, 후진타오 시대에는 공청단이, 시진핑 시대에는 시진핑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정풍 운동과 부패 척결 운동은 세 시대 모두 마오쩌둥이 확립한 방식에 따라 거의 그대로 일어났다. 장쩌민은 '삼강 교육 운동', 후진타오는 '선진성 교육 운동'. 시진핑은 '군중 노선 활동' 이라는 이름으로 정풍 운동을 실시하였다.

 

정풍 운동의 여세를 몰아 자신의 통치 이념을 공산당 지도 이념으로 명문화함으로써 권력 공고화는 완성된다.

 

 

 

 

 

 

 

시진핑은 현재 중국에서 인기가 아주 높다. 그 까닭은 그 어떤 시대보다 반부패 운동이 제도적으로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풍 운동시 자기 검토서를 작성하고 상호 비판과 자기 비판이 이루어지는데,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각 지역에 파견되어 직점 참관한다. 비판을 당하는 사람들이 '가슴이 뛰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철저하고 혹독하다.

 

중앙 순시조라는 것을 만들어서 당국가의 각 기관을 모두 관리 감독 및 감찰한다. 여기서 시진핑 시대의 무수히 많은 부패 당정간부들이 발각되어 처벌당했다.

 

 

 

 

 

 

 

1년에 평균 88명씩 5년 동안 처벌되었다.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받는 장쩌민 시대의 5배 가까이 증가할 만큼, 중국 현대사에 유래가 없는 부패 척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시진핑의 막강한 권력이 있기에 가능하고, 이 결과가 또한 시진핑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16강에 걸쳐 우리가 몰랐던 중국에 대해 상세하고 재미있는 강의를 해 주신 조영남 교수님께 감사 드린다.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는, 너무나 거대해서 위압감을 주는, 우리의 이웃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흥미가 있다면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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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내면서 <천국>편을 읽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자료를 조금 찾아 보았다. 최소한 각 곡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신곡』은 소설처럼 읽으면 순례자 단테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놓칠 때가 많다. 내용이나 표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승 세계의 구조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좋은 글 하나를 찾았다. <토요 클래식>이라는 사이트에 번역되어 있는 글이다.  참고로 여기는, 카페 회원제라 잘은 모르겠지만, 『신곡』을 토요일마다 한 곡씩 아주 상세하게 공부하면서 정리해 놓는 것 같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십 년 가까이 몇 차례에 걸쳐서 완독하는 것 같다. 『신곡』을 깊고 꼼꼼이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될 사이트다.  

 

https://cafe.daum.net/danteclub/JlGL/1?svc=cafeapi

 

 

피터 호킨스라는 분이 쓴 'Dante & the Bible' 이다.  이에 따르면 『신곡』에는 성서가 575회 인용되었다.

 

성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연옥>편이다. 연옥은 현실의 우리 세계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한정된 시간이 있고, 죄를 씻어서 천국에도 갈 수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천국과 지옥은 영원한 축복이나 영원한 고통이 있을 뿐 인간의 의지가 어찌 할 수 없는 곳이다. 

 

연옥은 성서의 장면이 비유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의 해안가에 영혼들이 도착하는 것은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장면과 같은데,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탈이집트'를 한 것이다. 연옥 11곡은 주기도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고, 연옥 27곡부터는 성서의 에덴 동산이 펼쳐진다.  

 

단테는 『신곡』을 마치 성서처럼 썼다.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영감으로 제3의 성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신의 시를 읽으려면 성서를 읽듯 네 겹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신곡』은 성서를 은유적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단테가 저승을 여행하는 순례 자체가 성서적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순례 중 곳곳에서, 본 모든 것을 잘 기억하여 세상으로 돌아가 전할 것을 다짐한다. 마치 예언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단테는 하느님의 빛을 응시하고 돌아와 『신곡』을 노래한다. 단테는 성서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재창조하여 문학으로 완성하였다. 

 

 

 

 

 

 

 

 

<천국> 편에는 여러 군데 시인 단테를 직접 드러내는 표현이 나온다.  하느님의 예언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만 같다.  5곡 16행에 "나의 베아트리체가 이 곡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었다." , 5곡 139행에 "노래를 부르듯 다음 곡에서 내게 대답했다.", 10곡 7행에 "그러니, 독자여!"라는  식이다.  2곡은 앞 부분 전체가 그렇다.

 

 

내 얘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여러분은 조각배를 타고

노래하며 항해하는 내 배를 뒤따라왔구려.

 

깊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해안을 볼 수 있는 지금 돌아가시오.

나를 잃고 길도 잃을 수 있으니.

 

나는 아무도 지나친 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려 하니,

미네르바가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아폴론이 이끌어 주며

아홉 뮤즈가 큰곰자리를 가르쳐 준다오.

                                                    (2곡 1~9)

 

 

 

 

하느님의 사도, 예언가로 제3의 성서를 들려주는 단테를 따라 가기는 정말 어렵다. 단테가 탄 조각배보다 백 배는 부실한 뗏목을 타고 저 깊은 바다로 들어서는 것은 차라리 무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마지막 하느님의 빛을 보아야 하지는 않겠는가, 비록 망막에 빛이 부서지는 잔상만 남긴다고 하더라도.

 

 

 

 

 

 <28곡 주9) >

 

 

 

 

단테에게는 세 명의 길잡이가 있다.  지옥과 연옥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 꼭대기의 지상 낙원부터 천국의 원동천까지는 베아트리체가,  하느님이 계신 최고천(정화천/ 엠페리오)에서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빛을 응시할 때까지는 베르나르두스가 단테를 인도한다.  '훌륭한 말'로 단테를 이끈 베르길리우스와 '거룩한 말'로 단테를 고양시킨 베르나르두스도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아서 단테의 인도자가 되었다.

 

베아트리체가 임무를 마치고 정화천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후 단테는 그녀를 이렇게 찬미한다.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나의 구원을 위해 지옥의 문턱에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를 한 나의 여인이여!

 

당신의 힘을 통해, 당신의 미덕을 통해,

그동안 내 눈으로 본, 그 많고도 많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가능한 모든 길들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하여

당신은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을 지녔습니다.

 

당신의 큰 사랑을 내 안에 간직하여

당신이  치료해 준 나의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날 때

당신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

                                              (31곡 79~90)

 

 

 

이렇게 베아트리체는 '구원의 여성상'이 되었는가 보다.  여성을 생물학적 성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구원의 여성'이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많은 여자들이 '구원의 여성'이 되기 위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면서,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로,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는가. 여성 페미니스트가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사실 놀랍지는 않다. 데이트 폭력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데이트 폭력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두운 숲에서 이 위험한 남자를 구해낼 구원의 여인으로서 말이다.

 

 

 

 

<귀스타브 도레>

 

 

 

 

단테는 베르나르두스의 기도와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마침내 하느님, 그 영원한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영원한 빛을 응시하도록 허락하신

풍요의 은총이시여! 저의 눈은 그 빛 속에서

저 가능성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33곡 82~84)

 

 

 

 

 

 

 

 

내 소망과 의지는 이미, 일정하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었다.

                                                  (33곡 143~145)

 

 

 

단테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다. 神化, Deificaton 되었다. 불멸을 열망하는 인간은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인문 고전 강의>

 

 

 

 

필멸의 인간이 불멸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식을 낳는다?  유전자는 영원히 이어지니 불멸하는 것일까? 우리가 모두 아담의 자손이고, 아담이라는 큰 나무의 하나의 잎이라면 그럴 것 같다. 잎이 지고 다시 피는 한 나무는 죽지 않는다. 

 

명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영원한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처럼. 나는 이 방법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관조.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다.  우주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이고, 존재들은 왜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무엇일까?  朝聞道夕死可矣.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반복하면서 늙어 가다 보니, 내 존재의 목적이 궁금하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物化이고, 신적 진리를 일별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神化일 것 같다.  

 

단테는 지혜와 함께 은총으로, 훌륭한 말과 함께 거룩한 말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신적 진리를 보았다.  사랑은 무엇인가?

 

 

 

무수한 물음들에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지며 100곡의 『신곡』 읽기를 마친다.  공자는 未知生. 焉知死. 삶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했다. 사람의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의 진리를 알리오, 라고 말장난이라도 치고 싶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모든 글은 결국 사람이 한 것이다. 천국을 말하든 지옥을 말하든 사람이 한 말이니, 그 신적 진리 역시 사람의 길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다만 아둔한 머리와 침침한 눈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 그 하늘에 별 하나가 빛난다면 참으로 좋겠다.

 

 

 

쉽게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지한지요!

증거도 증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어떤 약속이든 쉽게 하고 쉽게 매진하지요.

 

 

                                            (29곡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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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함께 읽는 분들 중 두 분과 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천국쯤 오니 지겹다는 의견이 공통이었다.  <천국> 편은 우리 같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정말 그런 것 같다.  <지옥>편과 <연옥>편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서양의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 피렌체의 정쟁, 단테의 정적 등은 새로울 것이 없고,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을 빌려와 갖가지 표현법을 구사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훌륭한 작품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어서 좀 쉬었다가 <천국>편을 읽을까 싶었지만,  손을 놓으면 또 언제 읽을까 싶기도 하고, 이것 저것 새로운 일들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끝내려고 꾸역꾸역 읽는 중이다.

 

물론 가슴을 쿵하게, 무릎을 탁하게 만드는 깊은 통찰과 아름다운 표현은 여전하다. 다만 스콜라 철학과 신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대학이 중세에 탄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1세기 말에 볼로냐 대학을 시작으로 12세기 옥스포드 대학, 13세기 파리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등이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학문의 방법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강의에 더하여 토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스승을 논박하고 눈부신 명성을 획득하는 학생도 있었다.

 

 

 

 

 

 

 

 

중세 최고의 스캔들을 일으킨 아벨라르두스가 그 중 한 사람이다.  학문의 도시 파리에서 무림의 고수처럼 이름난 스승들을 찾아 다니며, 한 사람도 남김 없이 토론으로 물리쳤던 최고의 스콜라 철학자였으나, 제자 엘로이즈와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비운의 천재였다.

 

 

 

 

 

 

 

 

그리고 스콜라 철학의 완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스승 알베르투스가 있다. 중세 최고의 학문은 신학이었지만, 신학을 공부하는 도구는 믿음만이 아니라 이성이 함께였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이성을 사용하여 깊이를 알기 힘든 신의 사랑과 의지에 최대한 가까이 닿으려고 하는 것은 의무이기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최고에 이르른 중세 학문의 결정체이다. ....라고 한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신학 대전 >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 알지 못함 때문에 『신곡』읽기가 아주 힘들어서이다.  『신곡』을 토미즘(신학 대전)의 완벽한 문학화라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지옥>편을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연옥>편부터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더니, <천국>편에서는 아, 이것이 중세 철학이구나, 아, 아퀴나스가 이렇게 논증했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게 만드는 내용들이 줄줄이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생각을 굳히네 어쩌고 하는 말이 우습지만 그래도 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니까, 그렇지 싶은 것이다.

 

 

 

 

 

 

 

 

 

 

 

 

여덟 번째 하늘인 항성천에서 단테는 차례대로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요한에게 신앙을 검증 받는다.  성 베드로는 믿음에 대해, 성 야고보는 소망에 대해, 성 요한은 사랑에 대해 질의한다. 단테는 세 개의 주제로 교리에 대한 지식과 신앙을 검증 받은 후에야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의와 응답의 방식이 중세 대학의 학문 방법인 토론을 금방 떠오르게 한다.

 

 

스승이 결론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질 때까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신 무장을 하는 학생처럼,

 

나 역시 그녀가 말하는 동안

마음을 모아 내 논점을 정리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을 주기 위해 준비했다.

 

"말하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여! 무엇이

믿음인가?"

                                                   (24곡46~5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것을 저는 믿음의 본질로 생각합니다.

                                                  (24곡 64~66)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논리적 증거는

이런 믿음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논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24곡 76~78)

 

 

그런 기적들이 있었음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너는 증명될 필요가 있는 것을

증거로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세상이 기적들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기적보다도 훨씬 더 큰 기적일 것입니다.

                                                   (24곡 103~108)

 

 

 

베드로는 단테의 답에 아주 만족하였지만 나는 모르겠다.  믿음은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의 증거이고, 그 성경에 적힌 기적이 실제 있었다는 것의 증거라고 한다.

 

여기서 내가 놀란 것은 문답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베드로는 내가 이성적으로 말이되나?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서 똑 같이 질문을 던진다.  기적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 라고. 

 

성경이 믿음의 근거라는 단테의 말에는 베드로가 성경의 내용은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지 증거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나도 그렇게 묻고 싶다.

 

믿음이 없는 나는 단테의 답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질문도 답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중세의 신학자들도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신약은 희랍어로 쓰여진 경전이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라 보편 종교로 확장된 것은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가 결합하면서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날개를 단 것이지만, 사상적으로는 희랍 철학과의 결합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희랍식의 이성적 사유와 논증을 요구 받았던 것이다. 스콜라 철학이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천 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대립되는 듯 보이는 이성과 믿음을 일치시키려 꾸준히 노력해 왔던 결과인 것이다. 

 

 

 

 

 

 

 

 

 

 

물론 믿음과 이성의 조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믿기 위해 이해한다."와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사이에서 끝없이 충돌했다. 서양 정신의 역사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불가능한 조화를 향한 불가능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 불가능성이 지칠 줄 모르는 열망과 탐구의 원동력으로 서양 정신을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문 고전 강의>

 

 

<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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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국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옥과 연옥을 거쳐 오느라 꽤 피곤했나 보다. 천국인데도 열망이 솟구치지 않았다.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 급히 하면서 짧게 정리한다.

 

 

 

 

 

 

 

 

 

 

 

 

단테의 천국에는 문이 없다.  지옥에도 문이 있고, 연옥에도 있는데, 천국은 없다. 천국의 하늘들은 그 경계가 잘 감각 되지도 않는다. 단테는 언제 어떻게 올랐는지도 모르고  천국의 하늘들을 한 단계씩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에 배워 어렴풋하지만,  불연속적 양자 도약처럼 말이다.  

 

 

천국은 열 개의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 2곡 112행부터 123행까지 개략적인 구조가 설명되어 있다.

 

 

 

하느님의 평화가 깃든 높은 하늘은

계속 돌아가는 몸체 하나를 품고 있는데, 그 힘은

자체를 포함한 하늘의 모든 진수들을 감싸고 있어요.

 

수많은 별들을 거느린 그 다음의 하늘은,

그 하늘과는 다르지만 또한 그 하늘에 포함된

많은 본질들을 통해 그 힘을 퍼지게 합니다.

 

그렇게 또 다른 하늘들은 가지가지 색다른

모양을 지니면서도 가장 높은 하늘의

원래의 특성을 줄곧 유지합니다.

 

이렇게 우주의 조직은 그대가 보듯,

단계별로 진행하지요. 즉

위에서 힘을 받아 밑에서 작동합니다.

 

 

 

 

 

 

 

 

 

제1천인 달의 하늘은 2곡~4곡까지, 제2천인 수성의 하늘은 5곡~7곡, 제3천인 금성의 하늘은 8곡과 9곡, 제4천인 태양의 하늘은 10곡부터 13곡까지(이후로는 읽지 않았음)에 걸쳐 노래되고 있다.  

 

 

 

 

 

 

 

 

 

천국은 기독교 신자, 그중에서도 교리를 잘 알고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비신자들에게는 제일 어려울 것 같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한 구원, 자유 의지와 신의 섭리 등 복잡한 교리들이 논의되는데, 순례자 단테는 한번의 설명으로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단테의 의심과 질문을 베아트리체가 격려하며, 그 자신 혹은 영혼들이 단테에게 답을 하는데, 이성으로 논박하고 실험과 증명을 설득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인간의 성급한 판단과 오만을 엄중히 경계한다. 11곡과 13곡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단테와 대화를 나누는데, 중세 최고의 철학자 아퀴나스는 이렇게 조언한다.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다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쉬우니 하는 말이에요.

 

급하게 내놓은 의견들은 때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서, 인간의 교만이

지성을 묶어 놓게 되거든요.

 

재주가 없이 진리를 낚으러 해안으로

떠나는 것은 불필요를 넘어서 나쁜 일입니다.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로 돌아올 거예요.

(13곡 115~123)

 

 

 

진리 탐구가 아니라도 그렇다. 『신곡』을 읽었다고 이렇고 저렇고 떠들다가는 '나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제4천인 태양의 하늘에는 철학자들이 많다. 토마스 아퀴나스뿐 아니라 로마의 철학자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아퀴나스는 11곡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을, 보나벤투라는 12곡에서 도미니쿠스 성인을 각각 칭송하고 있다.

 

 

5곡의 자유 의지와 창조주의 의지, 7곡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한 인간의 구원 등과 같은 문제는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깊이 알고 싶지만 잘 이해되지 않고, 심오한 듯하지만 꼬리를 무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서사시로 압축된 이 책을 통해서는 사실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힘들어서 아쉽다. 언젠가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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