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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우울하다. 책을 읽고 이런 우울함을 느낀 건 또 처음이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책에 대한 평판때문이다.
영화 <명량>을 둘러싼 설전을 힐끗힐끗 보았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뭐라고 껴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중적 취향이라 천만 넘는 영화는 나름대로 볼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볼거리가 되었든, 웃기기 때문이든 혹은 싸구려 신파라 할지라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에는 분명히 우리를 움직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을 찾는 작업이 평론가의 일일텐데, 간혹 어떤 비평들은 대중의 싸구려 취향을 비웃거나 훈계함으로써 SNS의 시비를 불러일으킨다. 명량에 대한 집단 열광은 병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관객의 발걸음은 치료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 비록 관객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지독한 증상이다. 증상을 두고 그걸로 치료가 되겠냐고 묻는 것은 분석가의 태도가 아니다. 증상에서 적절한 병명을 찾아내는 것, 그가 먼저 해야할 일은 그것일 테니까. 그러나 다행히 나는 평자도 분석가도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두 개의 대하소설이 있다. 토지와 태백산맥이다. 그때 토지는 완간되지도 않았고, 태백산맥도 막 출판이 되기 시작할 때였다. 서울에 갓 올라와 사투리는 부끄럽고, 서울말은 낯간지럽던 시절이었는데, 토지와 태백산맥은 사투리에 대한 나의 열등감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내가 쓰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정감 넘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영 낯설던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게 찰방지고 멋드러진다는 것을,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그런데 토지는 지금도 '나의 가장 소중한 책' 중 하나로 책꽂이에 남아있지만, 태백산맥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내가 좋아한 태백산맥은 딱 6권까지이다. 한권 한권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는데, 7권부터의 태백산맥은 나의 기대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똑 같은 작가의 손에서 나온 책일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7권부터는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구호와 선전만 남은 느낌이었다. 내 사춘기 시절을 달구었던 김영숙의 순정만화와 비슷했다고 해야 할까. 뒤늦게 알았지만 김영숙의 만화들은 일본 만화를 베낀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정성들여 베껴내어 우리를 꼼짝없이 사로잡았지만, 권수가 늘어날수록 그림이 엉망이 되어갔다. 첫 권과 마지막 권을 비교하면 도저히 같은 인물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태백산맥의, 토벌을 피해 지리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에 대한 묘사가 딱 그랬다. 살아있는 캐릭터는 하나도 없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인형들만이 남았다. 그래도 아리랑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두어권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이후로는 조정래의 책은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조정래의 명성은 하늘 높이높이 올라, 한국 문학계의 큰별이 되었다. 내 하늘에는 뜨지 않았지만.
독서회를 하며『정글만리』에 관한 말을 간간이 들었다. TV 광고에서도 들었다. 오빠집에도 있었다. 군에 있는 중국어 전공의 조카에게 1권을 보내고 2,3권이 남아 있었다. 오빠의 일을 이어받아 무역업을 하기를 바라는 새언니가 발빠르게 사보냈다. 담배보다 끊긴 힘든 저 어찌할 수 없는 사교육열이라니, 나는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그렇게 소문만 듣던 『정글만리』를 이번 주에 읽었다. 9월 독서회 책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읽었다니까 우리도 서둘러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자본주의'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진 결과이다. 사실 내가 읽자고 추천했다. 중국식 자본주의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학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망했다. 이런 책을 3권씩이나 읽어야 하는 우리 회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솔직히 문학작품으로 치기에는 민망하다. 캐릭터도 문장도 조악하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너무 천박해 보인다. 작가가 보여주는 중국은 돈과 꽌시와 얼라이 외에는 없다. "타인의 결점은 단지 우리 자신의 관점의 왜곡을 객관화한 것" 이라는 지젝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그대로 작가의 인식을 드러낸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선회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들과 그것을 중국 인민들이 어떻게 내면화하면서 어떤 충돌들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인물들 속에 훌륭히 형상화되면 말할 수 없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사실의 차원에서 깊이있게 탐구되고, 사유되었기를 바랬다. 현실적으로도, 돈밖에 모르는 중국놈들이라는 관념이 중국시장 개척에 나서는 한국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퇴직하는 전부장을 통해 작가가 마지막에 쏟아내는 사변들이 뒤늦게 무언가를 채우려는 듯해 보이지만, 소설은 이미 끝이 났고, 이 소설에 대해 남은 인상은 그저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가 되어버린 중국과 그럼에도 2~30년은 뜯어 먹을 것이 어마어마한 시장이라는 것뿐이다.
한 소설이, 명성 높은 작가의 한 소설이 내 기대를 배반했다고, 우울할 이유는 없다. 실망은 우울과 같지 않다. 그런데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적 반응이다. 리뷰를 쓰려고 '리뷰상품' 검색을 했더니, '알라딘 2013년 올해의 책' 파란 딱지가 눈에 뜨인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낸 것일까? 혼자서만 답을 찾지 못한 것인가? 이것은 나의 증상인가?, 대중의 증상인가? 나는 늘 대중적 감성의 편에 있었는데, 왜 이 책에 유독 별 한개를 주면서, 이렇게 우울해지고 있는 것일까? 내가 평자거나 분석가라면..., 그러나 나는 그냥 독자이고, 다만 우울해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