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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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창간되어 '작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우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열다섯 명의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단편 소설 중 하나를 고르고 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의견을 부탁하여 엮은 책이 바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이다.


원제는 파리 리뷰 답게 <Object Lessons(실물 교육)>이라는데 한국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사람을 이끄는 흥미를 갖고 있달까. 사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첫번째 수록 작품인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아름다운 문장이었지만 실제 소설은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주인공 '나' 그리고 마약 중독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이 사람은 미친 것 같다, 란 묘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단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 수록된 열다섯편의 단편들은 묘한 울렁거림을 선사했다.


어딘지 모르게 몽롱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매우 현실적이며 그 끝을 짐작하게 하면서도 온점을 찍지는 않은 단편 소설들과 의미없이 떠돌던 단어들을 이어 붙이듯 설명하는 이 소설들을 고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가끔은 이 소설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 설명하는 것들을 읽을 때 꼭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의미를 곱씹어 나와 벽을 만드는 비평가들의 내용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짧막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아직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단편 소설을 고르고 이에 대한 설명을 쓴 열다섯명의 자각들도 잘 모르고 이 책에 수록된 열 다섯 편의 단편 소설 작가들의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들인지 잘 모른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꽤나 큰 충격과 인상을 준다. 왜 이 열다섯편의 단편 소설을 골랐는지 이해가 된달까. 물론 소설보다 그 소설을 선택한 작가의 리뷰가 더 와닿는다. 문장 하나 하나에 대한 이야기에, 내가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서 말했다시피 벽을 만드는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보는 느낌도 들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문장을 곱씹게 하고 실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의 리뷰라서 그런지 좀 더 문장의 매력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생각해보면 단편 소설은 그 이야기의 흐름보다 문장의 매력이 더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지 않은가.


다 마음에 들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에이미 헴펠이 고른 버나드 쿠퍼의 <늙은 새들>이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장례식 예약에 관해 물어보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건축가로 새장같은 노인들을 위한 집을 설계하고 있고,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는 아버지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하고, 초조함과 두려움,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나는 아버지의 위치를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와 나는 끊임없이 소리를 높여 대화-혹은 고함지르기 시합-을 하지만 아버지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전화가 끊긴다.


나이가 들면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들, 아니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중한 이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두려움, 그리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늙은 새들>에 담겨져 있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 많은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인지 혹은 실종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죽음보다 실종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아버지를 부를 것이다. 수많은 감정이 대화 속에 고였다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은 단편 소설을 잘 모르고 어색해하던 이들에게 단편 소설을 읽는 재미와 호기심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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