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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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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면 옷장 속에 박아두었던 내복을 꺼내든다. 두꺼운 점퍼를 걸쳐 입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었다 반복한다. 어느 날 필리핀, 라오스, 싱가포르 같이 어디든 따뜻한 나라에 잠깐 머무르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김남희 작가가 그랬듯. 여름이 오면 겨울이 그립고 겨울이 오면 여름이 그리운 것도 여름과 겨울이 있기에 가능한 그리움이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친구, 서로 프로필 사진으로만 얼굴을 본 사이지만 틈틈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녀는 한 번도 겨울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겨울이 있는 나라에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이니?” 라고 묻자 그녀는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눈을 만지고 싶어.” 라고 말했다.

 

그녀의 그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녀는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까?

 

 

 

 

 

 

우리를 가리켜 ‘풍운아’ 라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망각하고 살았다. 지금이야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클릭 몇 번으로 먼 타지에 있는 나라 호텔을 예약 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몇 개월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여행이라는 것이 젊은이라면 무조건 떠나봐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는 조금 위험하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가는 여행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여행을 ‘유행’ 으로 인식하여 잘 시간을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줄여가며 꼬박 모은 돈을 탕진 할 필요는 없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드물 테지만, 그 여행 한 번을 가기위해 누군가는 직장을 관두고 1년 모은 적금을 깨고 휴학을 하는 등의 큰 결심을 한다. 진심으로 그들의 여행이 순탄하기를 바란다.

 

 

 

 

 

겉으로 그들의 삶은 참으로 멋져 보이지만, 앞날을 예측 할 수 없는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나날들은 마냥 설렘으로 가득차진 않았을 것이다. 1년 내내 여행을 하면 행복할까? 여행을 가는 목적은 결국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에메랄드의 바다와 푸른 하늘과 여러 이색적인 풍경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금발머리의 여인들을 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행자라는 숙명이 행복으로 가득 차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배추를 가득 싣은 트럭을 모는 남자가 땀을 흘리며 배추를 옮기고 낡고 허름한 소매의 옷을 입은 여자는 환하게 웃고 아이들은 배추를 세며 즐거워하고 그런 모습을 본 저자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여행자인 자신은 가질 수도 앞으로 가질 수 없는 것, 가족.

 

 

 

 

오늘 하루도 수차례 해외에 거주하는 상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환경에 크게 기대 할 것 없는 내게 저녁 메뉴는 꽤나 소소한 설렘이다. 책상 앞에 마주 앉아 정돈되지 않는 책들을 하나씩 치워가며 또 다른 세계에 앉는다. 몇 번이나 알려줘도 엄마는 리모컨 조작을 잘 못한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TV도 못 보겠다.” 그래도 가서 상처를 받을지 치유를 받을지는 느끼고 싶다. 한 번 꽂힌 것들에 대해서는 꼭 해봐야 직성을 풀리는 내게 상상만으로는 목마름이 가시질 않는다. 올 해는 꼭 한 곳을 정해서 가봐야겠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여행.

 

 

 

 

 

 

 

 

 

하나 씨는 한 달 반 정도 우붓에 머물 예정이고 이미 두 달을 머문 수연 씨는 곧 돌아갈 예정이다. 첫 만남이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지독히 낯을 가리는 내가 여행지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바깥에서는 서로에게 느슨해진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슬쩍 열어버리는 순간, 삶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p69- <Bali>

 

 

 

 

 

여행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여행에서 친구를 사귀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여행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여행은 더 이상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 아니다. 클릭 몇 번으로 저렴한 항공권을 끊고, 숙소 예약을 마치고, 블로그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 얻은 후에 여행을 떠난다. 갈 곳도 정하고, 볼 것도 정하고, 먹을 것도 정해놓고 친구 혹은 연인과 모든 일정을 함께한다. 뜻밖의 만남이나 발견이 찾아올 여백 자체가 사라진 여행. 단 한 번의 사건이나 사고도 없이 안락하게 머물다 돌아오는 여행. 그런 여행이 대세가 된 시대지만 어쩌다 한 번쯤,
‘올드 패션’의 여행을 해본다면 어떨까. 항공권 한 장만 들고 혼자서 용감히 떠나 처음 만난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온갖 사건 사고를 겪으며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아침을 맞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해보고, 완전히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보기. 아드레날린 팡팡 솟구치는 날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코를 골며 뻗어보는, 그런 여행을 함께 할 누구, 없을까. -p211- <Sri Lanka>

 

 

 

 

새하얀 탑 주변으로 이 탑이 지붕이 있는 건물이었음을 말해주는 오래된 기둥이 서 있는 곳도 있다. 번쩍이며 빛나는 하얀 탑과 짙은 갈색들의 돌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 언젠가는 저 흰 탑도 햇빛에 바래고 바람에 닳아 무너질 것이다. 지상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선택한 이 정처 없는 삶이 가끔식 형벌처럼 느껴질 때, 정주할 수 있는 집 하나가 간절해질 때, 폐허는 내게 말없이 드러낸다. 모든 것의 유한함을 -p222- <Sri Lanka>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치앙마이에 올 때 내 짐 속에는 15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석 달간 내 일상을 채워줄 책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세워 놓고 아무 책이나 집어 든다. 햇살은 창밖의 세계에만 머물고 있어 집은 어둡고 서늘하다. 책 읽기에 좋은 오후다. -p254- <Chiang Mai>

 

 

 

 

 

한 도시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 생겨나고, 번성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나는 변해가는 어떤 장소의 짧은 순간을 함께할 뿐이다. 여행지가 보여주는 찰나의 얼굴. 그 얼굴이 때로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민낯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처럼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살아가는 이의 제일 큰 덕목은 모든 여행지를 사랑하는 마음일 테니까.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루앙프라방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남겨두고 이 도시를 떠난다.

-p394- <Laos>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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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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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2학년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기 전, 호주에 갈 수도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반복된 일상에 여행이 가고 싶었다. 흔한 여행이 아닌 그곳에 머무르며 일도하고 그곳의 문화와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함께 가자고 친구에게 먼저 제안을 해 놓고는 친구만 떠나버렸다. 그 무모함이 무식해보이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친구가 그곳에서 보내준 하늘은 똑같은 하늘임에도 푸른빛이 더 돋보였고 구름도 선명했다.

 

 

 

 

같은 시인이고 같은 곳에서 30일 동안 머물렀다.

시드니에서 두 남녀 시인의 사랑이야기 같지만, 크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도 일반 연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았을 뿐이다. 다투고, 화해하고, 웃고, 같이 걸으며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그래, 장소가 조금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성실히 바뀌는 한국의 경우는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겠지만 시드니는 그 성실함을 거꾸로 올라가 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 박연준은 한국에서의 익숙해진 계절 순환 때문인지 봄이 가을로 비추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글을 쓰고 방글방글 웃으며 찍은 스카이다이빙과 사막 썰매 그리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떠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는 떠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글과 그림으로 마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뮤지컬을 본 것처럼 말하고 비 내리는 호주의 어느 거리를 걸었다고 착각한다. 변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천천히, 조심히 걸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두 시인의 염원이 담긴 제목이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흘러가는 시간만큼 더욱 선명해지는 그림자 혹은 어둠에 흐릿해져가는 그림자. 그렇게 하루 종일 걷고 걸으며 사랑을 외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걷겠다.

 

 

 

 

 

 

 

 

 

나라는 존재. 나이, 성별, 피부색, 태어난 곳, 지문, 키와 체형, 분위기, 머리카락 색과 굵기, 나를 낳거나 키운 사람들, 일가친척들. 여기서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여러 번 고쳐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단 한 번’으로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외에도 사는 곳, 전공과 직업,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자주 가는 곳, 생활습관, 만나는 사람, 옷차림, 취향, 표정 등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걸까? 이것들은 관성이 붙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내가 열두 살이라거나, ‘말랑한 영혼을 가진 스무 살’이라면 모를까. 변한다는 것은 ‘인생이 변한다’는 것이다. 색깔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노란색이 초록색이 되거나 파란색이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얼마나 여러 가지와 몸 섞어야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본바탕은 이미 일곱 살 이전에 결정나는 것일 텐데. -p16 박연준-

 

 

 

 

바다를 건너려는 밤이다.

크리몬 포인트에 가기 위해 페리를 기다리는 동안 어두워졌다. 저녁이 밤으로 몸피를 바꾸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했다.

시골에서는 밤이 오는 모양을 상상 할 수 있다. 시골의 밤은 성큼성큼 걸어오거나 점층적으로 번진다. 반면 도시의 밤은 덮치듯이 온다. 도착을 알기 어렵다. 어둠을 훼방하는 인공조명들이 기괴하게 반짝이며 밤보다 앞서 도착한다. 밤의 표면이 빛으로 까진다. 첨탑과 마천루를 타고 흘러내리는 밤의 노란 피들. 도시의 밤은 힘겹게 깊어진다. 완전히 어두워지는 데 실패한다.

-p88 박연준-

 

 

 

 

알베르 카뮈는 산문집『여름』에서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후 바다를 잃어버리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쓴다. 잊을 수 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문장이다. 나는 가난의 모멸감을 이겨내려고 이 문장을 애써 기억에 담았다. 마흔 해가 흘렀는데도 이 문장은 내 기억에 선명하다. 부유하는 삶이 닻을 내리게 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준 것들이 있었다. 시와 음악, 그림과 철학이 그것이다. -p134 장석주-

 

 

 

 

시드니에 와서 나는 날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는데, 내가 걸으면 안에서 누군가는 멈춰 선다. 내가 멈춰 서면 안에서 누군가는 걷기 시작한다.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아마도 ‘나’라고 부르는 존재일 텐데, 나는 그 ‘나’를 다 알지 못한다. ‘나’를 구성하는 것이 살과 뼈만은 아닐 것이다. 몸은 분명 살과 뼈로 이루어지지만 오장육부 그 어딘가에 영혼이 있다. 영혼 안에는 한줌의 꿈, 한줌의 연민, 한줌의 외로움, 한줌의 욕망이 있다. 건각의 위용을 뽐내며 시드니 거리들을 걸을 때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인다. -p183 장석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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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의 작은도시 -톰 체셔-

프랑스에 가면 응당 에펠탑을 봐야하고 체코에 가면 프라하를 봐야하고 각 나라마다 있는 유명한 랜드 마크에 모두 열광할 때 작은 도시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흔하지 않은 여행. 유럽의 로망과 환상에 잡힌 사람들에겐 다소 이해가 안가는 말이겠지만, 나는 왠지 모를 이 생소한 여행이 끌린다.

 

 

 

2. 언니는 맥주를 마신다 -류강하-

나는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먹는 술 종류의 하나인 맥주. 싱가포르 어느 슈퍼마켓에서 병맥주 하나를 들고 빛나는 야경과 익숙지 않은 풍경을 보며 맥주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먹는 맥주. 글로 맥주의 맛을 본다는 것은 어떤 맛일까? 그 상상력을 한 번 이 책에 맡겨보려 한다.

 

 

 

3. 회의하는 회사원 -서대리-

사람과 기계의 차이점이 점점 좁혀가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똑같은 일에 상사에 꾸지람에 또 합당하지 않은 대우와 억울한 일들. 마음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았던 말들. 누군가 대표로 그 답답함의 체증을 사이다를 꿀꺽꿀꺽 마시고 타들어가는 목의 청량감으로 트름 한 방 시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랬으면 좋겠다.

 

 

 

4. 장진우식당 -장진우-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과 여덟 개의 의자.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바뀌는 메뉴들.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어느 맛 집 식당보다 정겹고 아늑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일 것만 같다.

일본 영화<심야식당>처럼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곳에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반겨줄 그곳. 단골이 될 것이다.

 

 

 

5.우사기의 아침시간-우사기-

파워블로거 우사기의 소소한 아침 일상을 담은 책. 작은 습관들이 큰 성공을 부르듯 그의 작은 행동들이 어떤 효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책. 아침 한 끼 먹기 힘든 직장인들에게 과연 그 소소한 아침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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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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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과 죽음이, 인간과 자연이, 과거의 현재가 하나 되는 곳.”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여행. 하지만 그녀의 그리움은 페루에서의 또 다른 그리움을 만들었다. 여행의 일정을 연장하여 또 다시 간 쿠스코에서 그레고리와의 만남과 절친인 이야와 그녀의 가족들과의 만남. 드넓게 펼쳐진 연초록색 잔디와 잉카인들의 지혜와 삶을 엿 볼 수 있었던 마추픽추. 변덕스러운 날씨와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산소가 부족해 코카 잎을 비벼 들이마시고 잘게 다진 기니피그를 먹은 기억.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큰 무지개를 만들어 냈고 고산병으로 고생하던 그녀들에게 호텔 직원은 상상이상의 산소통과 마스크를 부둥켜안고 초인종을 누른 추억담까지.

 

 

 

 

 

 

 

내가 얼마 전에 쓴 글이 하나 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과의 갈등에서 떠올린 생각이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흐릿해지는 의식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요동치고, 떨리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혹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잔뜩 움츠린 팔. 좋은 것 하나를 얻기 위해서 싫은 것 몇 개를 내어주어야 할 만큼 그것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에 스며들어 하늘로 동화되는 것처럼 잊힌다면 좋다고 말했다.

 

 

페루에서의 힘들었던 일들을 다시 겪어야 할지라도 다시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그녀는 말 대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방을 쌀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그녀는 아버지가 가보고 싶었던 페루의 여행을 결심한다. 특히 그 일정 중 콘도르 보기가 그녀의 계획 중 가장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그곳을 보았던 가이드마저 그토록 큰 콘도르는 보기도 힘들 정도라고 했으니까. 그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그녀가 콘도르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콘도르가 하늘을 선회하는 그 모습은  “나는 잘 있단다.” 라고 보내는 아버지의 우주 메시지였을까.

 

 

 

 

 

 

 

그녀가 결정적으로 이 책의 제목을 내 영혼에 바람이 불었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책 중간쯤에 달했을 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크아이와만에 있었던 그녀가 연초록 잔디밭에 누워 바람을 맞으며 들었던 생각들. 바람, 무수히 많은 페루의 영혼들이 한 줌 바람이 되어 그녀의 온 몸을 스칠 때 그녀 역시 페루의 바람이 되었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이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되는 곳.

 

“아무리 뜨거운 인생도 결국은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게 된다는 진리가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고……. 그러한 인간 삶의 유한함을 약간은 더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p153-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오늘을 사는 이유는 어쩌면 바람 한 줌에 있을지도 모른다.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만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 아주머니는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서둘러 훔쳐내고 다정하게 포옹하며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진정한 기쁨으로 가득했지만, 분명 삶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도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아주머니, 행복하세요?”

“젊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 -p92-

 

 

 

 

 

“저게 대체 뭐죠? 동성애를 상징하는 깃발 아닌가요? 혹시 여기도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동성애자들의 천국……?”

내 질문에 곱슬머리 인디오 남자가 폭소를 터뜨리며 답했다.

 

“아, 저건 쿠스코 깃발이에요. 쿠스코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건 알고 계시죠? 잉카인들은 비, 천둥, 땅,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을 신으로 섬겼는데, 그중 최고는 태양신이었어요. 무지개는 번식의 힘을 대변하는 신이었는데, 무지개 양 끝을 뱀 두 마리가 받치고 서 있는 문양이 잉카인들의 상징이었죠. 쿠스코의 깃발은 그로부터 유래한 것 같아요.” -p100-

 

 

 

페루 여행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한없이 낮아지던 경험. 때로는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깨달음. 인간 능력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교만함을 버릴수록 영혼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소중한 진리. 이것이 바로 페루여행에서 얻은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p115-

 

 

 

비록 단 하루뿐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과 흐뭇함을 내 가슴속에 심어준 만남이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오만과 질투, 불만과 짜증으로 얼룩져 불평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토록 완벽하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 때가 언제였던가. 하얀 물거품을 만들어내며 세차게 달리는 뱃머리에 앉아 아주머니에게 산 봉제 인형을 손에 쥐고 멀어지는 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금 스트레스를 받아 휴가 타령을 하고, 친구와 나의 삶을 비교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일들을 뒤로 하는 동안에도 저 섬에는 어제와 같은 평화와 단순하기에 명확한 행복, 자연과 인생에 대한 겸허함이 가득할 테지. -p182-

 

 

 

“재미있네요, 그러니까 저게 오늘 하루만 벌이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늘 행해지는 축제의 형식이란 거죠?”

 

“물론이죠. 그냥 이 사람들의 일상이에요. 여기선 배고프지 않을 만큼의 양식만 있으면 싸울 일도, 욕심을 부릴 일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도둑질을 할 일도 없어요. 그저 산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인간의 숙명대로 주어진 현실을 살아낼 뿐이죠. 태양이 뜨고 비가 내리는 것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요.”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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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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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말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우물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세상을 그 우물만큼만 안다는 것이다.

우물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이 의미와는 다르다.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는 모르지만, 우물이란 우리가 발을 내딛는 땅보다는 깊은 곳임에는 확실하다. 그 깊은 곳에서 가늠도 안 되는 하늘의 거리를 짐작 해 본다는 것.

 

 

 

비록 그 크기는 얼마 되지 않지만, 깊은 곳에서 깊은 곳을 바라보는 세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의 세계다.

산문의 세계가 있고 운문의 세계가 있듯이, 서로 쓰는 말도 조금씩은 다르다. 시

라는 것은 간결하면서도 그 글자 속에 함축적인 말들이 꾹꾹 눌려 담겨 있다.

 

 

 

 

 

 

 

 

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곳곳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시는 잃어버린 것을 마음에 묻어두고 다시 얻어야 할 것을 생각해낸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시를 해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함을 의미한다. 의미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시를 잘 파악한다는 말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는 그 자체로서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에 있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는 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눈을 감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너무 밝혀내려 하지 말고 염불처럼 흘려보내리라.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을 듣기만 해도 좋은 것처럼 말이다. 시를 보며 피아노 연주곡을 듣고 있으니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 아닌

정합[整合] 이 되는 것 같다.

 

 

 

 

 

 

 

 

예술가의, 특히 시인의 공들인 작업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의 사치는 저 세상에서 살게 될 삶의 맛보기다. 그 괴팍하고 처절한 작업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이 분주한 달음박질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이다. -p31-

 

 

 

 

미학적 재능은 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이다. 다시 저 영화<베티 블루>로 돌아가면, 주인공 조르그는 제 삶을 불태워 파괴하고, 다른 삶을 열망하던 제 애인마저 죽이고, 더 정확하게 말해 이 삶에서는 행복과 제 열망마저 죽이고, 한 인간의 삶에서 작가의 삶으로 건너갔다. 한 사람이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는 의미인 것이다. -p41-

 

 

 

 

집시들은 처음부터 나라가 없기에 늘 없는 나라로 간다. 제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을 뿐더러 가난과 몰이해와 고독의 한계에까지 밀렸던 이중섭에게는 “따뜻한 남쪽나라” 밖에 다른 나라가 없었다. ‘길 떠나는 집시’의 가장과 ‘길 떠나는 가족’의 가장은 눈과 손으로 하늘을 더듬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거기 없다. -p150-

 

 

 

 

문학과 시가 헛된 것이 아니니, 약속은 아마 지켜질 것이다. 낡은 시간이 가고 맑고도 풍요로운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시인들이 기대했던 모습으로 찾아올까? 혹시 그 맑고 풍요로움이 이 누추한 삶의 시간에 감쪽같이 스며들어, 그들이 알아볼 수도 없는 형식으로 찾아오는 것 아닐까? -p258-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p262-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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