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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경쾌한 듯하지만 사실은 외롭고 쓸쓸한 소설.
스물다섯 살의 주인공은 어느 날 죽기를 결심한다. 결심이라기보다는 꿈꾼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발을 쓰고 회사에 출근한다. 그것도 이상한 가발을 쓰고서. 엘레베이터 안에서는 사람들과 이상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면서.(나는 택시를 탈 때와 엘레베이터를 탈 때 비슷한 불편함을 느낀다.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부득이한 친밀감.)
죽음을 결심했던 그는 자신의 몸속에 길이 5.2미터의 백상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어떻게 자기 몸보다 더 큰 백상어를 뱃속에 숨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것을 작가의 상상력이라도 해둔다면-이것은 역으로 백상어에게 잡아먹힌 주인공을 가리키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죽기만을 꿈꾼' 이 남자는 죽음을 선택하고, 백상어는 비로서 그의 몸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에는 일말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남자는 죽었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백상어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작가가 스물다섯 살에 느꼈던 일상의 공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소설이다. 그는 실제로 책도 내지 못하고 직업도 없는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소설 같으면서 에세이 같기도 했다. 잘 짜여진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백상어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문학청년의 상상을 헤집는 느낌도 들었다. 화장실이 클린턴의 집무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이 그랬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시절에 스물다섯의 누군가가 읽는다면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것이 클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게 되겠지. 도대체 완벽한 하루는 어떤 거야?
더 이상 없는 하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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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픈 의사는 마치 자신이 만든 요리르르 직접 먹는 요리사를 보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p35
암이라니,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얼마 전, 회사 동료 한 사람이 폐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터였다. 게다가 사내에 경쟁이 물불을 안 가릴 만큼 치열한 시점이었기에 사람들은 분명히 내가 그 친구를 따라 암에 걸렸을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p37
내 가족은 완벽하다. 집사람은 완벽한 현대 여성상에 꼭 들어맞는 이상형이다. 아이들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새하얀 치아와 해맑은 미소,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누구라도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로, 그 어떤 파시즘 체제하에서도 광고 모델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귀엽고 깜찍하다.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