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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중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을 모은 것이다.
작가는 현재 미국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재 모두 중국에 대해서이다.
이 소설 한 권만 읽어도 요즘 중국의 실상이나 자본주의로의 변화모습 등을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솔직하게 중국인의 감정이나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주권 - 외국돼지에 밀려 씨돼지로서의 인기를 잃어버린 토종돼지.
이 두 돼지주인의 싸움에 상관없는 한 소년이 죽게 된다.
이제 중국에는 막 자본주의가 밀려들어오고 거기에 밀려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 보고서 - 행진곡의 슬픈 가사 때문에 씩씩한 행진을 못한다고 생각한 상관은 대원들에게 행진곡을 그만 부르게 한다. 하지만 대원들의 울음소리와 주변의 소음 때문에 명령은 전달되지 않고 상관은 이 노래가 공산당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음모를 지닌 노래라고 생각한다.(이런 대목이 정말 체홉스럽다.)결국 상관은 행진곡의 가사를 쓴 사람이 부르조아 근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상부에 올린다. 깊이 없는 신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사보타주 - 하진은 공산당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을 이 소설집에서 여러 번 꼬집어 내고 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의 내용이다. 신혼여행에 간 남자의 평범한 행동을 사보타주로 간주해버리는 경찰. 남자는 감옥에까지 가게 되고 출감한 뒤 진짜 사보타주를 저지르게 된다. 다리오 포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와 비슷한 맥락의 소설이다.무능한 공권력 자체가 사보타주의 근원지 아닐까.
* 한 사업가의 이야기 -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천민자본화의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난했던 때에는 딸과의 결혼을 반대한 장모가 사업으로 돈을 많에 벌게 되자 마치 하인처럼 행동을 한다. 사위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돈으로 깔아뭉게고 나중에는 아내와 장모를 한 침대에서 데리고 놀 생각까지 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복수의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명예나 권위 같은 것이 인정되지 않은 사회에서 복수의 수단 역시 돈 밖에 없는 걸까.
*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 파티 - 피아오 아저씨는 한국인이다. 그의 사랑방에서 점심을 먹게 된 대원들은 피아오 아저씨가 마침 자신의 생일이라며 같이 상을 들자고 한다. 그러나 대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거절한다. 이에 화가 난 피아오 아저씨는 역성을 내고 대원들의 대장이 나와 사과를 한다. 원칙이나 신념이 때때로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
* 백주 대낮에 - 창녀인 여자를 심판하는 홍위병. 마을 사람들 앞에서 몸을 판 남자들을 대라고 한다. 창녀는 모두 세 명의 남자와 잤다고 고백한다. 돈을 많이 주고 잔 남자, 돈을 조금 주고 잔 남자. 밤일은 제일 많이 해놓고 돈도 주지 않은 남자. 여자의 고백에 마을 사람들은 흥분하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세 번째 남자의 직업이 홍위병이었음을 알고 오히려 돈도 받지 못하고 고생한 여자를 측은하게 생각한다. 부패한 공권력의 자화상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 부활 -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처제와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자아비판을 하라는 당의 명령을 받게 된다. 남자는 자아비판을 하지만 당에서는 솔직하지 않다며 더 솔직한 자아비판을 요구한다.
결국 남자는 중이 되려 절에 가보지만 중 또한 당의 허락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지가 되보려고도 하지만 구걸 역시 당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남자는 아무리 자아비판을 해도 인정해주지 않는 당원들 앞에서 자신의 고환을 자른다. 그로 인해 그는 죄사함을 받고 오히려 사람들의 안쓰러움을 받게 된다. 후에는 모범일꾼으로도 뽑히고 당의 입당 권유도 받는다. 언제나 용서는 지은 죄만큼의 뉘우침보다 더 큰 뉘우침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에서 요구한 솔직한 자기반성의 표현인 자아비판은 성찰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라 극단의 표현을 동반한 감정적 행동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자아비판'이 무서워졌다.
* 신랑 - 동성애자를 병자라고 인식하는 사회. 급기야는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옥에 가두는 사회.
병이 아니므로 치료도 불가능한 동성애자. 불쌍하기 짝이 없다.
* 남자가 되려는 사람 - 결혼을 앞두로 마을 어른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와 자려던 남자가 성적 능력을 잃게 되는 이야기. 마을 어른은 자신의 아내가 바람둥이라고 생각해 남자와 남자를 비롯한 그의 친구 셋에게 자신의 아내와 자달라고 한다. 그래서 버릇을 고치고 싶다는 것이다. 모두 흔쾌히 부탁을 받고 실행에 옮기지만 남자는 무섭게 짖어대는 개 때문에 실패해고 그 이후로 성적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주 간단한 권선징악. 이미 스스로 잘못이라 생각한 일을 저지르는 것만큼 중죄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