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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는 여자는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잔잔한 물에다 괜히 돌 던지는 모양새로 주변에서들 툭툭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무슨 참견면허증이라도 딴 것처럼 온갖 사람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 들어왔다. 처음 만난 취재원, 잘 모르는 동네 사람,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까지 결혼 여부나 계획에 대해 무슨 날씨나 남북관계 문제라도 되는 양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아직이라고 답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이유를 묻는 탐정파, 무슨 내 결격 사유를 덮어주는 양 “앞으로는 좋은 일 있겠지...”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덕담파, 혹은 멀쩡해 보이는 너도 별 수 없다는 듯이 깎아내리는 공격파. 언뜻 걱정이나 관심 같아서 속어넘어가기 쉽지만 이런 말들은 공감도 배려도 없는 행동이다. 그 문제가 진짜 문제라면 당사자가 가장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툭 건드리듯 지적한다고 당장 해결될 가능성이 없고, 무엇보다 남의 일인데 어째서 맡겨놓은 듯이 계획이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어리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종종 이런 주제 넘은 참견의 대상이 된다.
다행인 것은 결혼 적령기의 가장자리를 비켜나면서 달갑잖은 오지랖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몇 년 동안만 단단한 멘탈로, 혹은 달관한 무신경으로 버티다 보면 다 지나간다는 게 내 경험담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렇지 않아진다. 한동안은 ‘남자에게 인기가 없어서, 연애를 못 해서 내가 결혼을 못 한 게 아니라구요!’ 항변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답할 필요도 못 느끼게 된다. 인기가 없으면 어때?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거나 말거나 어쩔 건데?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자로 안 보인다는 데 전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게 내 가치를 높여주거나 기분을 낫게 해주지 않으니까.
한번은 지인들 몇이 모인 모임에서, 어떤 유부남의 ‘보석 이론’을 듣게 되었다. 세상에 괜찮은 여자가 싱글로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정말 값진 보석은 사막 한복판에 숨겨져 있어도 세상에 나오는 법이에요. 상인들이 어떻게든 찾아내서 값을 지불하고 손에 넣거든.” 여자가 상품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상하게 면전에서는 반박할 타이밍을 놓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혼자 대꾸할 말들이 떠오르곤 한다. 여자가 거래 대상인 물건인가요? 선택의 주체인 인간인데? 이 이야기에서 그 여자의 생각은 어디에 있죠?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지 는 못한 대신 아마 표정만 조금 일그러졌을 것이다. 그 얘기에 대해 정색하고 반박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그 어쭙잖은 보석 이론이 또 언제 어디에서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싱글 여성의 멘탈에, 불필요한 불쾌감을 유발할지 모르니 말이다. 또 어떤 인터뷰에서는 ‘계산적인 골드미스’론을 들었다. 인터뷰이였던 철학자는 요즘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조건만 따지느라 사랑을 안 하는 거라며, 나더러도 눈을 낮추라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은 참 쉽게도 했다.
결혼 안 한 나를 두고 무슨 결격 사유가 있다는 양 비아냥거리거나 내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둘 말고도 많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 쳐도 그런 얘기를 사람 앞에다 두고 할 수 있는 무례함이 놀랍고,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도 결혼을 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오지라퍼들이 아무리 깎아내린다 해도 나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도, 까탈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몇 번의 연애가 잘 되지 않은 시간이 있었고, 일이 너무 바쁘거나 재밌어서 새로운 사람 만날 시간이 없던 시기가 있었고, 결혼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소개팅을 나갔지만 번번이 상대와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와 이제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도 잘 살아가고 있음을, 나만이 아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그러니까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내 자존감이,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는 세상에 많은 결혼한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몇 달 전 일이다. 건너 건너 아는, 그래서 얼굴만 한두 번 본 간간이 소식만 들었던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상태였기 때문인지 이 시국을 이유로 유족은 조문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된 이야기인데 그 분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부모님도 두 분 다 돌아가셔서 결혼한 형만 한 명 있었다. 친구야 있었겠으나 아무리 친하다 한들 그들에겐 장례를 주도하거나 고인의 죽음에 관여할 자격이 없으므로 누구도 장례식은커녕 조문과 조의금조차 챙기지 못하고 그렇게 없는 일처럼 흘러가버렸다. 그저 알음알음 들은 소식이고 모르는 사람에 가깝지만 꽤 큰 충격이었다. 그 분의 경우는 좋지 않은 사정에 의해, 이 시국에 덮친 죽음으로 인해 더 극대화 된 경우겠으나. 만약 비혼인 채 죽는다면, 부모님보다 후에 죽는다면 어쩌면 형제자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서였다. 그 생각은 점점 구체적이고 장황하고 얼마쯤은 허무맹랑할 만큼 커지고 퍼졌다. 어쩌면 혼자인 삶에 대하여 내가 너무 근미래만을 바라보진 않았는지, 정말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비혼인 채로 마무리 하는 삶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계기가 되었다(기혼자라 하여 반드시 장례를 융숭하게 혹은 원하는 대로 치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권리나 의무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비혼자일수록 친구가 필요하다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대리할 수 있는 돈독한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번만큼 절실하거나 온전하진 않았다(그러나 그만큼 결속이 강한, 법적인 역할이 가능한 친구라면 한편으론 기혼자와 무슨 차이란 말인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혼이 나만의 선택이 아니라 형제자매와 그의 자녀들, 부모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복잡해졌다.
그럴 즈음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나 제목만 보고 시쳇말로 '힐링도서'라는 짐작에 다소 시큰둥했으나 온전히 살림을 합쳤으나 성애적 의미는 없는 동반 관계라니 흥미가 생겼다(아마 '그 소식' 전이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결론만 말하면 책은 무척 재밌었고 유쾌했다.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해도 됐다. 반드시 배우자가 아니라 해도 누군가와 같이 사는 일은 다툼을 요하는, 일종의 단체 생활이란 깨달음은 물론 그들의 안정된 직업과 오랜 경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과정과 결과지만 당연히 쉽지만은 않았을 거고 고민도 깊었을 거며 때때로 후회도 했다는 대목이 등장해서 더 인간적이었다.
어떤 이야기, 어떤 책들은 그저 세상에 나옴으로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혼 인구는 점점 많아지지만 나처럼 여전히 방황하고 불안한 사람들도 그만큼 많지 않을까. 여전히 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결혼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에서든- 파트너를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어떻게 무난하게 서로 발맞춰가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지 읽은 것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혼인도 여러 형태가 있듯 비혼도 여러 형태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과 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함께 한 시간이 반평생이 아니라 한들 함께 살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 나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하며 심지어 반려 동물도 공유하는 삶을 사는 이가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어깨가 한시름 덜어지는 기분이다. 비록 내 삶은 아니라한들 이렇게 좋은 실제 예가 있다는 사실과 적잖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더 문이 열린다면, 그것 만으로도 제 역할은 충분히 하지 않았나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