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적지 않게 읽었다. 대개는 작가의 아성에 홀려서였고 가끔은 그래,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하는 치기였으며 언젠가는 정말 이 책을 읽으면 글을 더 잘 쓰게 될까 싶은 의문과 더불어 얼마간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 몇은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글도 있었지만 대개는 체화하기 어려운 두루뭉술한 태도를 취하거나 자기 자랑이나 푸념을 하는데 그치는 식이었다.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유명 소설가나 평론가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배움과 가르침은 전혀 다른 행위이며 선수와 코치는 길이 다르니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책 자체에 실망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종국에는 더 이상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지 않는데에 도달했다. 아마도 이들과 나는 재능의 총량이 다른가보다 또는 프로가 아니니 이 선까지만 하자 내지는 그래봤자 '내글구려병'에 걸린 체념 섞인 결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글쓰기의 왕도는 없다는 걸. 설사 그런 비법이 존재한다 해도 그건 글을 쓰는 본인만이 알아낼 수 있다는 것도. 그러면서도 좋은 장비에 먼저 몸을 맡기고 시작하고 싶은 초심자마냥 이렇다 할 조언에 매달린다는 별 수 없는 변명도. 그러니 미리 말해야겠다. 여기 세 권의 글쓰기 책을 골라오긴 했지만 이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진 않음을(일단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가 여전히 중언부언 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들이 아주 적게나마 -의식적인 면이든 기술적인 면에서든- 인상적인 도움을 주었고 게다가 좋은 글쓰기 책을 만날 확률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그래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탓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글쓰기 책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글쓰기의 세계는 새로운 도전자가 생긴다 해도 경쟁이 아니라 동종업계의 사람으로서 측은함과 동질감에 응원하게 되는 곳이라고. 글쓰기의 링에 오르는 자를 미워하거나 견제하기보단 응원하게 된다고. 


관찰한 것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머릿속 하드웨어 용량은 매우 크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신나고 자극적인 새로운 정보에, 키워드 위주로 넣어두었던 아이디어들은 금세 밀려나기 십상이다. 기록은 말하자면 하나의 외장하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주관이란 객관의 반대말로 볼 수 있는데, 객관이 모두가 봐도 다 똑같은 사실이라면 주관은 나의 시점에서 보이는 사실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콜라 캔을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영어 스펠링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때로 그 주관을 통해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새롭지 않다고 무시했던 분석의 영역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중략) 롱테이크 스테디캠 신은 영화를 보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기술적인 면이지만 거기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비평적인 시선이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발견하면서 봄으로써 영화에 대한 글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 삶에 대한 태도까지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글 자체로 독립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시간의 순서, 즉 플롯의 마술을 통해 놀라운 철학적 성찰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3월 다음 4월, 4월 다음의 5월로 이어지는 선조적 이야기 흐름 즉 플롯에 대한 관객의 상식과 기대감을 꺾는데, 이게 단순한 잔재주가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삶, 의지에 대한 대단한 인문학적 발견을 담고 있다. 그 발견을 독특한 플롯 구성 안에 배치해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플롯의 왜곡은 단순히 사람들을 놀래는 데 멈추지 않고, 예견된 불행을 피하지 않는 의지가 바로 인간성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만약, 뒤섞인 서사적 트릭과 배치가 없었더라면 이 놀라움은 반감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렇듯 꼬여 있는 시간의 매듭을 푸는 것은 단순히 영화적 시간을 푸는 게 아니라 시간의 일직선상에 묶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론적 숙제를 푸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한편, 왜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이야기가 플롯에 집중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시간에 매달린 존재이기에 영화와 이야기에서만큼은 시간을 마음대로 다루고자 한다. 슬로우 모션, 플래시백, 교차 편집과 같은 서사적 표현 방식엔 모두 이런 욕망이 담겨 있다.


때론, 그 나이에만 쓸 수 있는 글도 있다. 이 말인즉 지금, 쓰고 싶은 글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남겨놔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도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나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글이 있다면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20대였을 땐, 돌이켜보면 경중의 우울증을 앓지 않았을까 싶게 매우 예민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 전부에 대해서 예민하다 보니 20대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부족했고, 늘 어딘가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플 때마다 그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고 무조건 남겼다. 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때로는 선배들의 서투른 농담에 상처받기도 하고, 때론 나약한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더러는 관계 속에서 기진맥진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을 기억하고 싶었고 기록을 남겼다. 지금은, 그런 글들은 써지지도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렇게 예민하지도 않다. 더 이상. 그러니, 오늘의 감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강유정, 영화 글쓰기 강의


이 책은 먼저 '영화 글쓰기'라는 걸 명시한다. 글쓰기는 결국 일기와 카드 쓰기로 시작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단계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알려준다. 간단한 메모와 수집, 그다음에는 밑그림, 그 위에 긴 글을 쓰기 위해 맞춤법, 비문, 문장 배열 등의 기술적 방법과 미장센, 연출, 배우 등 영화의 무엇을 쓸 건지 다루는 식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고 자신을 울린 영화가 있으며 잊을 수 없는 작품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을 테니. 모두가 정성일과 허문영처럼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물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영화에 대해서 한마디쯤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의견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동진, 김혜리, 강유정 등의 글을 읽고 이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뜻이었는데. 정말 일목요연하고 쉽게 잘 썼네. 생각한 적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강유정 평론가의 문장이야 원래도 워낙 훌륭하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쉽고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태도가 절로 느껴지는데다 책을 읽고 나면 뭐라도, 어떤 영화에 대해서라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강유정 평론가의 책이 '영화 글쓰기'에 국한한다면 장강명 작가의 글은 '책을 내자'에 더 가깝다. 다른 두 권에 비해 긴 책이지만 글이 술술 읽히는 데다 개인적인 경험을 제일 많이 다루는 책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제일 넓을 것 같다. 물론 그저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 대뜸 '등단한 작가가 되기보단 앞서 저자가 되길 목표하라' 는 말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반드시 책을 출간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일단은 글쓰기에 한정하거나 아닌면 삶의 어느 영역에 비추어도 유효한 대목이 많은 책이다. 글쓰기는 취미로서도 창작의 갈래에서도 하물며 스트레스 해소에도 매우 좋은 방법이라면서 글쓰기나 저자를 꿈꾸는 데에 나이나 경력에 문제는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뻔한 말이지만 소재를 찾는 법, 메모를 관리하는 방법이나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참고해야 할 책도 달라진다는 말에도 했다. 


문예창작학과든 글쓰기 교실이든 등록할 때에는 주변 눈치를 무척이나 의식하게 된다. 뭔가를 창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현대사회는 나쁘게 본다기보다는 신기하게 본다. 남다른 예술혼과 번뜩이는 재능이 있어야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몰래 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 자체를 포기해버린다. 예비작가들이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문제다.

슬픈 일이다. 창작의 즐거움은 매우 독특하고 크기에 한계가 없는 듯하기에 더 그렇다. 음식은 대체로 비쌀수록 맛있지만 창작의 기쁨은 도구의 가격에 별로 좌우되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얻는 즐거움과 달리 창작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만족감을 준다. 스포츠와 달리 운동신경이 둔해도 괜찮고, 종교처럼 자아를 지우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온전하고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인간적인 영웅이 되는 길이다. 대단히 평화적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품고 있던 구상을 자기 손으로 정확히 현실에 구현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짜릿하고 통쾌했다. 기존 작업이나 주변 여건의 영향을 받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하지만 멋지게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것도 재미있다. 들인 시간이 길고 이뤄낸 바의 규모가 클수록 흥분의 강도가 커진다.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친 작업을 마칠 때에는 엄청난 환희와 감격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낚시가 취미인 사람에게 “낚시를 뭐하러 해요? 클릭 몇 번이면 싱싱한 생선을 산지 직송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데”라고 따지지 않는다. 골프가 취미인 사람에게 “골프를 뭐 하러 치세요? 프로가 되시기에는 이미 늦었잖아요”라고 묻지 않는다. “프로 골퍼라도 에계 랭킹 100위 밖이면 일반인은 알지도 못하는데요”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정작 낚시나 골프 애호가들은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당당하게 대답할 것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라고. 그 손맛, 그 희열을 느끼게 위해 하는 거라고.


다른 취미에 대해서도 그렇다. 틈틈이 바둑을 두는 사람, 기타를 치는 지인에게 우리는 그걸 왜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냥 바둑을 좋아하는구나, 기타를 좋아하는구나 여길 뿐이다. 직장 동료가 댄스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멋지다고 응원해주지, 언제 아이돌로 데뷔할 건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그거 써서 뭐 하려고?”하고 스스로 묻고 “내가 그런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며 자기검열에 빠지는 걸까.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이유로는 부족한걸까. 책 쓰기의 목적이 나 자신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중략) 퇴근하고 틈틈이 하루 한두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해서 전문 연주자가 됐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취미로 바둑을 두다가 어느 날 한국기원에 가서 입단 대회를 치르고 프로기사가 됐다는 사람은? 주민센터에서 방송댄스를 배우다가 연예기획사의 눈에 띄어 발탁될 가능성은 있나?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10년 가까이 피나게 노력해야 겨우 프로로 데뷔할 수 있는 분야들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렇지 않다. 별다른 교육훈련 없이도 밤에 한두 시간씩 혼자 쓰다가 작가가 되는 사람이 있다.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금 베스트셀러인 책들의 저자들 중에도 그런 작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거다. 그런 걸 보면 오히려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바이올린, 바둑, 방송 댄스야말로 아무나 하면 안된다. 각오가 된 사람만 해야 한다.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랬다.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 분노에 휩싸였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면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내용을 몰래 살폈다. 그 책에 신통한 데가 없으면 그때서야 겨우 안심했다. 결국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그냥 핑곗거리였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한 작가라는 거룩한 영예를, 다른 녀석이 제 값을 치르지 않고 길에서 주웠다고 여겨서 부린 트집잡기였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었다. 그 흉한 감정은 내 책이 나온 뒤에야 겨우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비슷한 시기심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쓰는 편이 낫다. 최악의 경우에도 전과 다른 차원의 독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의 방법론과 기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라흐마니노프가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것과 책을 아예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서는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졸작을 써도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다음 책’이라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세 권 중 기술적인 면에서 기억이 남는 책은 다음이다. 적잖은 작법서가 꾸짖듯 맞춤법과 비문, 번역 투의 오류 등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물론 비문과 맞춤법은 문장의 기본이고 고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쩔 땐 그 비문이나 그런 방식의 문장만이 말의 미묘함을 살릴 때도 있지 않은가. 예컨대 짜장면과 자장면은 어감이 다르고 '바람'이 표준어임을 알아도 '바램'이라고 표현할 때. 진부한 표현을 죄악시한다던가 긴 문장은 절대적으로 비문이나 나쁜 문장으로만 취급할 때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장문이 단문에 비해 많은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건 사실이나). 이미 너무 대중화 된 말조차 무조건 순우리말로 고치라거나 줄임말을 금하는 등의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반면에 이 책은 상황에 따라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좀 더 자유롭게 쓰기도 가능하다는 말로부터 시작한다. 비문도 상관없고 장문도 괜찮다, 그냥 외래어나 신조어를 쓰라는 게 아니라 그 말이 그래야만 하는 근거가 확실하다면 기존의 통념을 깨고서 써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러한 문장구조나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써야만 했던' 경우가 엄준하게 지켜져야 함은 당연한 전제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적’과 같은 표현은 일본이 서구 언어를 번역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쓰임새가 대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아주 편리한 표현 방식이다. 그걸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복일 때는 빼면 될 것이고. 다음의 예를 보자.


그 생각은 이상적이다.


이런 경우는 ‘-적’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상이라는 말은 개념만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적인 것’은 존재한다. ‘-적’이라는 말을 ‘-스럽다’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이상스럽다’로 바꾸자는 건데,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차별적인 대우, 압축적인 표현, 갈등적 관계


이런 경우라면 차별 대우, 압축 표현, 갈등 관계와 같이 ‘-적인’이나 ‘적’을 빼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그렇지만 ‘차별적인 대우’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의미의 강도가 살짝 약해져서 ‘차별에 가까운 대우’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진부한 표현의 장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다. 진부한 표현이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도 버리면 좋겠다. 진부해야 할 것은 진부해야 적시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의식의 흐름은 무척 중요하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가끔 참신함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참신함’을 넘어 ‘기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꼭 좋기만 할까. 그렇지만 이런 아포리즘을 만들어 내겠다고 너무 욕심부리지는 말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튀어나오지 않으면 그냥 편안하게 풀어 나가는 게 좋다. 아포리즘이 없어도 글의 전체 내용이 좋으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좋은 것’은 입소문으로도 퍼진다.          


어떤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자신은 어떻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지 어떤 자료를 뒤적이고 어디까지 찾아보고 고려하는지 직접 자세히 예를 들어 알려주기도 하고 본인의 글을 윤문하거나 인용하는 진솔함도 보여준다. 물론 메모의 중요성과 글쓰기의 의의를 언급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통의 작법서에서 다루지 않거나 금기시 하는 것들을 개인적인 주장과 근거를 설명했던 점이 신선했으며 글쓰기의 동기보단 테크니컬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혼자서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사라지는 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긴 시간 생각하다 보면 앞에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을 때도 많다. 메모라도 해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물론 메모로는 충분치 않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되살리는 실마리’만 될 뿐이니까. 그것만으로 당시 생각을 제대로 기억해 내기는 어렵다. 완전한 문장으로 써 두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중요하다. 글로 써 두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셨던가요?’ 물어보면 대개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쓴 것’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생각의 흔적이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글이 자기 생각이다.


나는 즐거운 글쓰기의 순서는 이래야 한다고 믿는다.

(1) - 가슴 속에 할 말 만들기(또는 질문하기)

(2) -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정리된 자료 섭렵하기

(3) - 섭렵하는 동안 떠오르는 대로 메모해 두기

(4) - 스토리 윤곽 잡기

(5) - 쓰기 시작하기

(6) - 자료를 확인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찾아가면서 쓰기

(7) - 다 쓴 글을 편집하기

(8) - 일단락되었으면 하루쯤 묵히기

(9) - 편집한 글 고치기(또는 다시 쓰기)

(10) - 교정,교열,윤문하기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윤곽 잡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이런 방식이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임을 알게 된다. 어떤 글을 쓰든 ‘자료 조사’ 과정이 축적되면서 미래의 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다 보면 자료 조사 시간이 빨라지고 스토리 윤곽도 쉽게 잡힌다. 이러한 과정을 오래 거친 사람이라면 짧은 글의 경우 2~3일이면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소모적인 글쓰기가 되기 쉽다. 이건 무척 중요한 문제다.


몰입해서 쓰다 보면 다 쓴 뒤에도 그 감정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이 말로 번역될 때 쓰인 말 하나하나에 감정이 붙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착각이다. 글은 차가운 기호일 뿐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말라 버리는 물기 같은 것이다. 몰입했을 때는 상당히 주곤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잘 훈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초고는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 어려운 주관적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주관의 물기가 마를 때쯤 다시 읽어 보면 고쳐야 할 것들이 보인다. 갓 쓴 뒤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적어도 다섯 번 정도 거치기를 권한다.                       - 강창래, 위반하는 글쓰기 


사실 세 권의 책 모두 글쓰기 초보를 위한 글은 아니다. 어느 정도 글을 써 본 사람, 비평이나 평론도 이미 시도해봤으며 어쩌면 창작을 해본 사람들. 평균보다 글 좀 쓴다는 소리는 들어봤으나 스스로에 확신이 부족한 이들. 운 좋게 좋은 글을 쓸 때도 있지만 그게 매번은 아니라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이 이상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주저하는 '링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글에 가깝다. 게다가 -당연한 말이지만- 여태껏 그래왔듯 저자의 글에 감탄해서 이 책을 읽는다한들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며 앞서 한 말을 반복하자면 작법서를 읽는다 하여 실제의 글쓰기 실력(실력이라 부를 수 있다면)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읽다보면 문득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늘 힘들구나 하는 치사한 안도감이기도 하고 나는 왜 여기서 글을 쓰려고 하는건가 괜한 자괴감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래, 뭐라도 써보자. 어떻게든 써보자. 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하얀 화면을 마주하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아마 이 페이퍼를 읽는 이들은, 위의 책들을 검색하는 사람들이라면 링에 오르려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어쩌면 이 책이 링으로 향하는 계단이 되어줄 지도 모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순서는 국내개봉일 기준입니다.

 

 


레이첼 바이즈, <더 페이버릿> 


<더 페이버릿>의 레이첼 바이스는 낮고 강하고 묵직하다. 언제나 잘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더 잘한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승마복을 입히고 말을 타게하며 안대까지 채운 의상팀에게 박수를.

 


올리비아 콜먼, <더 페이버릿>

 

언제나 잘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더 잘한 경우 2. 여리지만 변덕스럽고 나약하지만 못된 연기를 이렇게 잘할 수가.


 


엠마 스톤, <더 페이버릿>


개인적으로 엠마 스톤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버드맨>은 보고 있기 민망할 정도였고 <라라랜드>는 연기 지망생보다도 별로였다. 하지만 <더 페이버릿>에선 놀랄만큼 잘한다. 본인의 정형화된 표현이나 특유의 표정을 버리고 신랄하고 영악하고 교활해진, 완벽한 애비게일이었다.


 


글렌 클로즈, <더 와이프>

 

언제나 잘했지만 특별히 더 잘한 케이스3.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늘 우아하고 품위있다.


 


사이먼 러셀 빌, <스탈린이 죽었다!>

 

모든 출연진이 다 잘하는 영화지만 그 중 가장 잘했던 건 사이먼 러셀 빌.
다채롭기에 매력적인('옳다'는 뜻은 아니다) 캐릭터를 한층 더 풍부하게 연기한다. 


 


태론 에저튼, <로켓맨>

 

뮤지션을 연기한다면, 뮤지컬 영화에 출연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아 싶을만큼 잘했다. 연기력도 다시 봤지만 무엇보다 쇼맨십과 모사연기, 노래 실력에 놀랐다.


 


아담 드라이버, <결혼 이야기>

 

아담 드라이버는 아트무비의 얼굴이 되어가는 한편으로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리즈의 악역으로 자기매김한다. 지금까지도 그랬으나 앞으로는 더욱 크게 될 배우임이 자명하다.


 


크리스찬 베일, <바이스> / <포드 V 페라리>

 

직접 편집한게 아니라 구글링만 해도 바로 이렇게 비교 사진이 뜬다. 한 해에 이뤄진 일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려하는 한편 그의 연기를 보면 그가 왜 저렇게까지 변화하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자신을 지우고 완벽히 캐릭터로만 남겠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의지와 그 의지를 뒷받침하는 연기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조나단 프라이스, <더 와이프> / <두 교황>


명불허전 앤서니 홉킨스도 대단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조나단 프라이스의 완벽한 억양, 온전히 사제처럼 보이던 분위기 전환에 감탄했다. 심지어 그가 같은 해에 <더 와이프>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비교하니 새삼 더 대단해 보인다.

 

  

 

한 해를 마치며 올해의 영화 10편을 꼽는 페이퍼를 쓰고 있으나 올해는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 기대작(퍼스트 리폼드, 콜드 워, 러브리스, 논픽션, 아이리시맨 등)을 많이 놓쳤기도 했거니와 관람했던 영화 중 기꺼이 10편을 뽑기가 마땅하지 않다는 충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새해를 흘려보내기도 조금 아쉬운 터, 대신 영화 속 인상적인 배우 혹은 연기를 곱씹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일부러 한국영화는 넣지 않았으며 적잖은 수상을 한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조커>는 개인적인 연유로 영화를 볼 계획이 없어서 마찬가지로 제외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20-01-1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영화 중에 올해 본 게 하나도 없어서 맥무룩
(이 정도면 정말 영화에 담 쌓은 수준인듯..어케 하나도 없을수가 ㅠㅠ)

만은 아니구요. 오늘...은 아니구 일주일 내로 <더 페이버릿>을 보겠슴다! 무려 3명이나 인상적인 연기로 뽑아주셨으니, 세 배우들의 연기합을 보는 것만도 즐거울 듯. 크리스찬 베일은 어떻게 저렇게 턱선이 바뀔수가...

Shining 2020-01-17 10:49   좋아요 0 | URL
하나도 겹치지 않다니, 그러면 맥거핀 님은 올해 어떤 영화를 보신건지 궁금합니다+_+ 올해 저는 텐트폴 영화중에 좋은 영화가 하나도 없었고요ㅠㅠ 화제작이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보지 않은 영화도 서너편 있고 예술영화는 상영관이 적어서 놓친 것도 많아서..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못 본 영화 보려고요ㅎㅎ

<더 페이버릿>은 사실 앙상블이 좋아서 셋 다 넣을 수 밖에 없었어요ㅋㅋ 레이첼 바이즈(아 레이첼 바이즈 정말 예쁘고 연기력, 필모 좋고요ㅠㅠ), 올리비아 콜먼이야 원래 잘하니 그렇다쳐도 엠마 스톤이 잘해서 의외였어요ㅎㅎ 과대평가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디렉팅이 좋은건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건지 잘 어울리더라고요. <더 페이버릿>은 워낙 좋은 평이 많은 영화니 맥거핀 님 마음에도 드실거에요(아마도요...?).

크리스찬 베일ㅎㅎㅎㅎㅎ 한 해 동안 본 얼굴이 저렇게 둘이었어요. 영화관에서 딕 체니 얼굴 나올 때 기겁을.... 체형을 바꾸는 연기는 더 이상 안 한다고 인터뷰에서 그러던데 진짜....대단하지만 걱정되니까 그만했으면 좋겠어요ㅠㅠ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예전엔 수첩을 썼고(지금도 손글씨로 쓰는 간단한 일기는 병행한다) 지금은 엑셀파일로 한 해 동안 본 영화나 책, 다녀온 전시회나 여행 일정 등을 정리한다. 사실, 모르진 않았다. 모를 수가 없다. 알라딘 페이퍼나 리뷰만 뒤져봐도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다'라는 염려와 민망함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머릿속을 잠시만 뒤져도 반성할 거리가 넘쳐나니. 헌데 이렇게 잘 정리한 표로 보면 더욱 참담하다.


그러던 와중 모종의 자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분에 작년보다는 조금 더 나은 독서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봤자 8월에 간신히 네 권을 읽었고 이 페이퍼는 기억을 돕기 위한 일종의 기록의 장치다. 



  완벽하게 잘 만든 걸작이 아님에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작품들이 있다. 박민정 작가의 『미스 플라이트』역시 그렇다(그렇다고 이 책이 형편없거나 별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엄청난 대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조심스러운 서사와 담백한 진심에서 굉장히 진한 울림을 느꼈다. 또한 이 책이 그 즈음, 시기적으로도 그 당시에 나왔어야 할 책이라고 평한 것도 이해가 간다.


방산 비리, 군대 문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간질하게 만드는 직장내 문화, 성희롱, 사회적 타살, 갑질 문제 등등. 온갖 뜨거운 감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이 크고도 작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솥에 들어있는 감자를 집다보면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뜨거운게 아파서인지 눈물이 찔끔 난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들 하지만. 사는게 사는게 아닐 땐, 가버린 사람은 어떻게 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살아내야할까. 



  『팩트풀니스』역시 책 소개 페이지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13개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다소 놀라운 정답에 대한 결과로 천천히 이끈다. 이 책의 요지는 한 가지다. 긍정보다 부정이 인식체계에 더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언론과 통계는 공포를 조장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대부분이 짐작하는 것보다 세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서양의, 그것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스웨덴 사람이라는게 아이러니하거나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혜적인 태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흥미로운 결과가 많았다.


유행성 질병이나 테러, 자연재해보다 알코올과 교통사고,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높음에도 대중은 전자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공포를 가진다는 사실,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에서 탄소배출량이 높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사실 1인당 배출량을 계산했을 때 열강의 서구국가들이 훨씬 더 높은 수치를 가진다는 것과 현재 인구 분포도와 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패권은 100년 안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옮겨갈 거라는 예측, 생리대 회사들은 여성들의 임신하지 않을 자유를 위해 더 힘쓰는게 이익을 위해 낫다는 주장과(임신을 하면 약 2년간은 생리대 사용이 멈추기에 피임을 할수록 오히려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종교과 관계없이 소득이 자녀의 숫자를 결정한다 등 어떤 것은 '당연히' 그럴만하고 어느 것은 다소 놀랍거나 의외로 와닿는 수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세계의 80% 1세 이하 영아들이 하나 이상의 예방접종을 받으며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중간 소득 국가에 해당한다. 


이렇듯 세상이 내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는 차근차근한 주장은 분명 마음이 놓이는 말임에도 이상하게 읽고나선 다시 우울해졌다. 왜냐하면 한국은 고소득국가, 4단계 발달 단계에 해당하기 떄문에 우리는 대부분 가난하지 않음에도 가난하기에 나 역시 가난이 몸 담은 소속 자체가 다를 뿐 여전히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구매할 책이 있어 알라딘에 들어왔다 이 책의 광고를 읽었다. 자신의 독서량과 집중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일 뿐 스스로가 의지만 가지면 얼마든지 '전처럼'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저자는 생각했다. 이론을 점검하기 위해 실험을 했으나 이럴수가, 몇 페이지를 읽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폰을 힐끗대거나 메일을 확인하고는 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른바- 인생의 책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는 지지부진한 서사를 가진 책으로 느껴진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정확히 지금의 내 상황 아닌가. 이 책은 책을 읽는 뇌와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뇌는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고 대조하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만큼의 균형을 책으로 맞추지 않으면 뇌가 완전히 불균형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또한 책을 읽는 방법이 e-book인지 종이책인지에 따라 글을 습득하는 방식과 양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며 책읽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성인 또한 뇌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졌기에 영유아와 청소년들에겐 책을 읽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설명한다. 


책의 설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짐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책이긴 하나 대부분의 독자가 막연히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실을 수치로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가치가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줘야 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동화책에는 일반적이로 쓰지 않은 글귀들이 등장한다는 주장이었다. '옛날 옛적에', '소스라치게 놀라','환상적인' 이라던가 심지어 '마녀'나 '변신'이라는 단어조차 비일상성의 일상성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골자다. 즉 이야기의 메시지 말하자면 교훈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단어의 사용 또한 못지않은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는 요새 아이들은 책을 주면 터치를 한다는 점이나 자꾸 책을 확대하려고 검지와 엄지를 벌린다는 이야기, 글로 쓰여진 설명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면 알아듣는다는 보고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책을 읽는 내 자신의 집중력이었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가 했던 경험을 공감하며 읽으면서 정확히 같은 태도를 취했다. 책으로 풍덩 뛰어들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8월은 4권의 책으로 느리지만 천천히 물들었으므로 그것만은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팩트풀니스』에 그런 글귀가 있었다. 더딘 변화라 하여 불변은 아니다. 세상은 천천히, 분명 좋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고 내 독서생활도 다시 느리지만 분명하게 회복하고 있으니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들이 쓰는 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재밌있다. 사실 재밌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이런 책을 썼다는 것부터 저자가 유명작가라는 방증이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쓸 정도의 유명한 작가'들은 대개 좋은 문장가이기 때문이다. 고로 어떤 논지의 글이든 대체로 재밌고 유익하며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창작자란 근본적으로 깊이 없는 자기혐오와 근거 없는 자기애 사이에서 널을 뛸 수 밖에 없다는 설득과 마법의 묘약은 없다고 저자가 말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불을 키고 그 책 안의 마법의 묘약을 찾는 내 자신에 대한 저열함, 어쨌든 그들은 삼십 말의 구슬을 꿰고 꿰어 훌륭한 진주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내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가져봐야 삼성회장이나 나나 똑같은 갤럭시 폰을 쓴다는 것 정도의 위안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괴감 말이다. 게다가 온갖 작법서를 뒤적여봐야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라, 첫 챕터를 잘 써라, 초고는 원래 10%밖에 남지 않는다 등등 모두가 알지만 아무나 흉내내기 힘든 맛집 같은 이야기를 하니 어째 좌절감만 심해지고 이렇다 할 도움은 되지 않는다.  


 

  먼저 두 종류의 스케치북이 필요하다큰 것작은 것큰 것은 댐 전체의 조감도마을지도도로와 주변 지형 등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하다큰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반복해서 그리면서 수정을 하고수정이 끝나면 그림 속 동네가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진료소를 생각하면그곳이 어디에 있는 어떤 건물인지 자동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작은 스케치북은 세밀화를 그리는 데 쓴다집 안 구조나방 구조장면이나 상황인물의 동선 등소설을 끝낼 때까지 그려야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예를 들어현수가 세령을 차로 친 후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을 쓴다고 하자주변 사물의 상태자동차의 깨진 유리창전조등의 각도 등을 하나하나 그려가며 세령과 현수의 동선을 순서대로 정리해둔다.


의도하건의도치 않건소설에는 작가의 일부가 녹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과거든현재든사고방식이든성격이든이는 독자가 알고 있고 독자가 안다는 걸 나도 안다때문에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허세를 떨고 싶은 때가 있다나를 무식쟁이로 볼까봐폭력적인 성격으로 단정할까봐비겁한 찌질이로 여길까봐그럴 때마다 생각한다작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성인이 아니라고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는 진지한 존재도 아니고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위선을 떨게 된다독자는 작가의 위선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위선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차라리 악당을 좋아할지언정누구나 그렇지만특히 작가에게는 솔직함이 중요한 미덕이다.


단어 선택과 문단 구성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동사는 수식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걸 고른다. ‘뛰다보다 속도나 모양새의 속성을 담은 내닫다’‘치닫다’‘쇄도하다같은 동사를 선호한다. 이런 동사를 쓰면, ‘빨리뛰었다, 라고 쓰지 않아도 된다. 형용사는 아껴 써야 한다. 남용하면, 독자에게 작가가 원하는 느낌을 받도록 강요하는 꼴이 된다. 패션도 포인트가 지나치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나. ‘아름다운 꽃이라고 쓰는 대신 꽃의 모양이나 색깔, 주변과의 조화를 묘사하는게 낫다. 아름다움은 독자가 알아서 느끼도록 남겨두시고.(중략) 부사는 항생제 같은 거다. 한두 번은 확실한 효과가 있지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긴다. 가령 너무라는 부사를 습관처럼 쓰면 정말로 너무한 일에 썼음에도 전혀 안 너무한 일처럼 느껴진다. 문장이 야단스러워지는 면도 있고.


그런 면에서 정유정 작가의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꽤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근거로 추정컨대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별다른 과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문학의 숭고함을 강요하지도 그것의 지난함을 과용하지도 않는다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도 않으면서도 은근한 웃음으로 영업비밀을 숨기는 맛집처럼 굴지도 않는다허황된 예를 늘어놓는 대신 본인의 작품 속 본인의 문장을 인용해서 말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경탄하거나 힐난할 필요도 없으며 막연한 예시가 아니라 사실적인 이해를 돕도록 한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어떤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시치미를 떼는 대신 스티븐 킹요시다 슈이치켄 키지레이먼드 챈들러 등 감흥을 받은 작가들을 가리지 않는다자신이 썼던 책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성했는지를 샅샅이 밝히고 그러면서도 인칭이나 묘사문장의 구조 등 모든 작법서에 등장하는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재를 얻는 방법, 소재를 얻은 후 플롯을 구성하는 방식,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등에 대해서 대부분의 작가 혹은 작법서에서 -고의이든 아니든- 빠뜨리는 부분을 꼼꼼히 기록한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과정을 따라 봐야 동등한 글을 반드시 쓸 수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냉담하고 예리한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위치는 좀 애매한 편이다. 작가 혼자 일방적으로 원고를 써낸 구조가 아니라 인터뷰 형식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지루하며 이야기의 논조를 바꾸긴 쉬운데 대신 진짜 이런 대화를 문어체로 주고받았나? 너무 작위적인 대화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 부분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선 내가 작가와 저자편집자가 아니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약간 불편한불안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디서 이렇게 자세하고 세밀하게 글쓰기의 과정에 대해 들을 수가 있을까. 태반의 강의와 작법서, 작가들의 글쓰기 노트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 이 책 안에 담겨져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되거나 혹은 글을 더 잘 다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이든 유효한 면이 있을테니 한 번쯤은 읽기를 권하는 바다. 


자, 하지만 이렇게 친절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친절하기에 더더욱- 우리는 위축되고 주눅이 든다. 플롯을 다루고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주어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와 목적어를 붙이는 방법을 알고 백 날 스티븐 킹의 글을 필사해봐야(심지어 그의 책들을 길다... 너무... 길다......) 작가는 커녕 의미있는 글조차 쓰지 못할거란 겁을 먹는다. 자기애나 자신감 대신 자기혐오와 자기비하에 시달리고 결국엔 쓰고 싶었던 내용조차, 주제나 문장은 커녕 소재의 끄트머리조차 붙잡기가 힘들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기나 할까? 읽히지 않을 글을 대체 무엇 때문에 쓰려고 하는가? 달음박질 친 영감을 따라잡긴커녕 제 자리에 서서도 밭은 숨을 쉬게 된다. 

 

 

  나는 당신이 글쓰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하고 싶다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창조적인 일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배운다글쓰기는 당신에게 유익함을 주고당신의 이해를 확장시킨다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설령 내 글이 앞으로 다시는 출판되지 않을 것이며그것으로 단돈 한 푼도 벌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나는 기꺼이 계속 글을 쓰겠다.


영감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영감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온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도한다고 해보자. 아마 첫날에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타자기나 종이 앞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두 시간쯤 아무 생각 없이 머리카락만 쓸어 넘길 것이다. 전혀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다만 당신은 줄곧 타자기 앞에 앉아있어야 하며 공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조만간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당신은 내일도 잠깐 틈을 낼 것이고, 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영원히 언제나 그렇게 앉아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모든 사람은 재능이 있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랫동안 뚫고 나오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내고 너무 자의식적이고 너무 자존심이 세며 너무 부끄러워한다. 그들을 구성, 줄거리, 통일성, 전체, 일관성 등에 관해 지나치게 많이 배운 것이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쓴 글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이다. 그건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까지를 볼 수 있는 시야를 당신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글을 쓰라고 다독이는 작가들은 대개 유명하고 성공했으며 대단한 문장가들이다. 마크 트웨인,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 조지 오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쓴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를 읽어봐야 한숨밖에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브렌다 유디트의 『글을 쓰고 싶다면』은 부담을 훨씬 덜어주는 책이다(그렇다고 저자가 덜 유명하거나 문장이 덜 훌륭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 말한 작가들이 쓴 글들이 대개 '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등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 마치 회고록처럼 접근하는 것과 다르게 이 책은 나와 너, 얘와 쟤가 가진 모든 불안에 대해 보편적으로 접근한다. 영감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잘못된 괴로움의 어리석음이나 내 문장이 읽히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군가 비웃을 수도 있다는 망설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씩 내딛는 용기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부분은 실패자이며 앞으로도 실패자이니 그 실패가 모두 의미없는 것은 아니라는,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말들을 믿게 하는 묘한 진솔한 힘이 이 책 안에 있다. 물론 허황된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실존인물과 주변인이 쓴 글과 본인의 글을 인용하는 등의 예시를 통해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뭐라도 쓰고 싶고 느끼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그 소망을 충동질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꽤 소중하다.


물론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놀라운 문장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기적은 이 두 권 뿐 아니라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길 바라고 그 마음이 실현으로 옮겨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Marjorie Prime, 마이클 알메레이다, 2017


그래도 넌 알아보네. 이모가 내게 던진 말에 할머니는 그럼, 예쁘잖아. 지금도 예쁘네. 라고 말하신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기억보다 강한 초기 치매환자에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엄마가 형제 중 첫째라 언니와 나는 할머니에게 제일 오래된 손주니까. 이야기를 나누다 맥락을 놓치고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다가 다시 또 언제 왔냐고 하고 또 어느 날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기억은 선행적이지도 않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난데없이 사라지거나 끊기고 다시 이어지길 반복한다. 연세를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정도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함께 하는 이에겐 자주 지치고 화를 만드는 병이다. 늙는다는 것, 쇠퇴해지고 몰락해가고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마조리(로이스 스미스)역시 치매 환자다. 본인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그녀의 기억도 나의 할머니와 비슷하다. 어떤 날은 놀랍도록 또렷하고 명료하지만 어느 순간엔 방금 하던 이야기도 맥락을 놓치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마조리는 그녀의 딸 테스(지나 데이비스)와 사위인 존(팀 로빈스)와 함꼐 산다. 그리고 최근엔 젊은 시절의 남편, 월터(존 햄)의 인공지능도. 월터는 시시때때 나타나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 오래전 이야기. 키우던 강아지나 프로포즈 날 함께 봤던 영화 같은. 월터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그의 대화의 바탕은 테스와 존, 대부분 존의 이야기에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이야기는 마조리와 월터로부터 (아마도)테스에게로, 다시 존에게로 몇 번을 걸쳐 넘어온데다 진위 여부를 확인해줄 사람은 월터와 마조리 뿐인데 한 사람은 고인인 되었고 한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으니. 월터는 보통의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는 학습하고 판단한다. 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조리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원하는 바람이나 상상에 따라 기억을 수정해주기도 한다. 프로포즈 떄 함께 본 영화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었지만 고전적인 극장에서 흑백으로 본 <카사블랑카>이면 좋았겠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그 다음번엔 프로포즈 때 <카사블랑카>를 봤다고 말한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든 기억에 대한 상기이든 아니면 그저 대화상대가 필요해서든 존은 월터의 존재가 마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지만 테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아빠의 모습을 한 월터가 불편하다. 그것도 하필이면 돌아가실 적, 자신의 마지막 기억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더 선명히 기억하는, 한참 젊은 시절의 모습이라는게 불만이다. 


William James had the idea, and it's been confirmed scientifically, that memory is not like a well that you dip into or a filing cabinet. When you remember something, you remember the memory. You remember the last time you remembered it, not the source. So it's always getting fuzzier, like a photocopy of a photocopy. It's never getting fresher or clearer. So even a very strong memory can be unreliable, because it's always in the process of dissolving.


인공지능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그러하나 시간이 흘러 마조리가 떠난 자리에 그녀 역시 엄마의 모습을 불러온다. 자신의 마지막 기억대로 노쇠한 어머니를. 다정하고 인내심 있는 마조리의 모습이 테스는 더욱 화가 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는 딸이 아니었다고 여긴다. 어머니의 마음엔 닫힌 문이 있었으며 마조리는 존을 반기지 않았고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해준 적이 없으니까. 어리석은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여기면서도 기어코 그녀를 소환해 곁에 두고서는 당사자에겐 할 수 없던,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어그러진 진실이 밝혀진다. 월터 말고도 마조리에게 구애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고 세계랭킹 8위까지 올라간 전적이 있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는 테니스 선수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하지만 존은 마조리와 월터에게 그렇게 말했고 어느새 마조리는 그것을 사실과 혼동해 자신의 기억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들이 키웠던 강아지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고 그들에겐 세상을 떠난, 자살한 아들이 있었다. 다음 장이 되면 비슷한 변주가 이어진다. 남겨진 건 존이고 그는 테스가 떠난 자리를 그리워한다.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의 마지막. 그 후의 삶. 기억과 기억은 중첩되고 중축된다. 그리고 마침내 추운 겨울이 되고 마지막 자리에 월터, 마조리, 테스가 모인 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진짜 기억에 대해 듣게 된다. 


네 명의 배우로 이뤄진 영화는 고요하고 정적이다. 처음엔 정적이고 고요하고 시간이 지나도 도통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다가오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비단 치매 환자가 아니라도 기억은 누구에게든 완벽하거나 완전할 수 없음을.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아주 선명하게, 사진처럼 남지만 어떤 기억은 바람처럼 흩어지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쩌면 중요한 건 완전한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그 순간에 느꼈던 그 강렬한 감정의 상흔이나 기억을 해줄 상대를 갖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관계의 역사가 기억의 의미일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월터와 마조리, 마조리와 테스, 테스와 존으로 이어지는 관계도 속에서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사실이 아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멋대로 추억을 쓴 사람이 또 있다. 얼마 전 읽은 책의 작가, 줄리언 반스의 가장 유명한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다. 토니의 반에 전학 온 친구, 에이드리언을 만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내 그에 대한 매료로 바뀌며 동시에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이야기가 발전한다. 그녀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게 된 토니는 그녀의 집안과 자신 사이의 계층적 괴리감과 가족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과 불안, 베로니카 엄마의 이상한 말과 스킨십의 여부 등의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러다 얼마 후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에 대한 축하를 전하지만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에이드리언의 자살이었다. 그리고 40여 년이 흘러 재회하게 된 베로니카에게서 자신의 기억의 이면을 듣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론 굉장히 불쾌한 소설이었다. 커가는 딸을 질투하고 경계해 노골적으로 딸의 남자친구를 꼬여내려 하는 베로니카의 엄마(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생각도 않는다, 책임의식도 없고)도 온갖 고고한 척은 다 했지만 결국 이기적이고 즉홍적이며 제 행동에 책임 하나 지지 못하는 에이드리언도, 좋을대로 기억을 왜곡해놓고 자신이 상처 준 상대와 재회하며 내심 로맨스를 기대하는 주인공 토니 또한. 좋은 것만을 쓰고 그리는 것만이 문학이고 예술은 아니라고 하지만 읽고 나서 이렇게까지 불쾌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짜증을 유발했던 글이었다(물론 이 불쾌감 역시 작가의 문학적 트릭이겠지만).


"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불쾌함과는 별개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반된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어떻게 이만큼의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뜨악함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어느 정도든- 수긍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곡해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는 면이 있으니까. 덜 사랑하거나 많이 사랑받는 사람,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덜 받고 잃을 게 많은 사람에 비해 고집스럽고 오만하다. 일방적인 상처를 단순히 추억으로 승화하기도 하고 나에게만 좋았던 시절을 상대 역시 그랬으리라 자위하기도 한다. 처음엔 합리화였고 자기기만이었으나 이내는 자기주문을 자기 기억으로 바꾸는 식이다. 토니처럼 사실과 기억의 간극이 어마어마하지 않을 뿐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된 기억을 안고 산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잘못된 기억과 증언은 테니스 선수에게만 있지 않았다. 월터가 마조리에게 프로포즈 한 날 본 영화가 <카사블랑카>가 아니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란 것은 관객들도 알지만 사실은, 영화관도 아닌 모텔 방에서 방영된 TV속 영화였다는 것은 마지막에서야 알게 된다. 마조리는 프로포즈의 순간이 벌거벗은, 정사의 후의 모텔 방이라는 것이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소를 영화관으로 바꿨지만 어느새 본인조차 진심으로 믿게 되었으며 치매를 앓는 노년이 되어서는 영화조차 바꾸고 싶었다. 두 사람이 데미안을 잃은 후 벤치에 앉아 퍼레이드를 지켜봤다고 했지만 사실 그 일은 실외조차 실내에서, TV의 자료화면을 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흩날리는 사프란 색은 맞았다. 


하긴 기억이란 원래 그런 면이 있다. 어떤 것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허무하게 흩어지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별 것 아님에도 평생동안 기억하게 된다(예컨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업시간의 일부를 지금도 기억한다. 맛은 좋지만 금세 변해버려서 에이 이 신숙주 같은! 이라고 부르다보니 숙주나물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억양과 초록 칠판을(숙주나물의 어원이 진짜 이런지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기억하고 싶어서), '금세'란 '금시에'란 말이 줄어들어 된 말이라는 고등학교 2학년 국어선생님의 글씨체를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사람의 생일을 지금도 기억하지만 그 사람의 생김새는 이제 흐릿해졌고 내겐 그렇게나 행복했던 시간이 누군가에겐 지옥의 동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곡으로 뽑는 이소라의 <바람의 분다>에도 이런 가사가 나오지 않는가. 

 

사랑은 비극이어라그대는 내가 아니다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오래 전부터 한 생각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쓴 편지를 받은 모든 사람을 찾아가 그것을 회수해오고 싶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아니다, 얼마쯤은 그렇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 날 것 그래도의 열정이 지금에 와선 뜨겁고 과하다고 생각해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생각이 나 이불 속을 파고들 때가 있다. 그래서였나. 없애달라고 부탁했던 책이 출간된 카프카를 동정한 적이 있고 때론 (그럴리도 없지만)유명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 그러면 편지, 일기, 낙서 등이 모두 공개가 될테니. 점점 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지향하게 된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해진 것도 없고, 불멸도 없는 삶이라면 지나고 나면 타버릴 감정들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게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고 찬란하지만 그 기억이 확실하지도, 진실되지도 않는다면 또한 참담하고 비참하리라는 생각에. 비극은 사랑 뿐만이 아니다. 기억이 다르게 적힌다는 것. 그게 기억을 잃는 것만큼 큰 비극일수도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8-11-04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일이 있기도 하겠지요 누군가는 별로였는데 그걸 아주 좋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다 자신한테 좋게 기억하는 건지... 누군가와 기억을 맞춰본 적이 별로 없어서 다른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저는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게 더 많은 듯해요 좋은 일도 있었을 테지만, 안 좋은 것들이 그런 걸 다 덮어버린 건 아닐지... 자신이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게 달라서 기억에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자신한테만 좋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저는 그렇게 했는지, 그러지 못했을지도...

좋은 기억을 만들려고 하는 건 어떨지, 그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