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다. 넓고 길게 뻗은 해안가. 낯설지만 이상하게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아 마음이 편안하다. 모래는 부드럽고 파도는 강인했다. 평범한, 평화로운. 밤바다 특유의 서늘함과 침착함이 안개처럼 끼어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분명, 꿈이었다. 수평선 아래와 해변은 어딜 보나 까만 밤바다였지만 수평선 위는 해가 지는 완벽한 오후였다. 해가 오메가처럼 수평선에 걸친 채 나른하게 인사를 하는 시간. 석양이라고 부르는 광경. 하늘은 다홍 주홍 노랑으로 물들었다. 두 개의 시간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기이한 광경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겁이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초연한 아름다움, 고아한 우아함이 있었다.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결코 논리적이지 않을 '꿈'이었다. 자각해도 세계는 이지러지거나 변형되지 않아 다행스럽다. 꿈이지만, 꿈이었기에, 꿈이라도. 깨고 싶지 않은 꿈.

 

 

 

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Le 16 Septembre, 1956

 

 

목소리는 암갈색이었다. 나무의 옹이 색과 유사하고 흡사 흙색과 닮았지만 엄밀히 말해 둘 중 어떤 것도 같지 않은 색. 약간 허스키한 편이지만 듣기에 따라서 외려 청아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음색. 가만히 들어보면 명도가 다소 낮은, 그러나 무채색은 아닌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독특한 음색은 아니기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보다는 신중하면서도 영민한 어투에 더 주목하게 된다. 발음이 뭉개지지 않고 특유의 강세가 있어 문득, 헤링본 재킷에 행커치프를 꽂은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그 안에 기질적인 신랄함이 날렵한 고양이처럼 웅크린,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인 목소리라는 것을 감지하는 이는 매우 극소수 뿐이었다. 모든 인상은 단 한 구절, 한 마디라도 그가 뭔가를 읽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는다면 완벽히 뒤집힌다. 뭔가를 부르거나 읽을 때 그 목소리는 마음에 물감을 한 방울 떨어트려 점점 원을 키워져 당신에게 다가오듯 깊은 공명을 하기에 사람들은 대개 망연해했고 간극에 떨었다. 그 자체로 무망함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공허하다 : 허전함이 무언가를 잡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손이라면, 공허함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써보았던 손이다. 더 나아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후회' 같은 것이다. 휘둘렀던 무수한 손들이, 그 에너지들이, 공허함의 배후에 후광처럼 있다. 애쓴 흔적이 썰물처럼 쏴, 하고 빠져나가면서 무늬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애써 잡아보려고 마음을 크게 먹었던 모든 손아귀에는 공허함이 묻어 있다. 허탕이 되었든, 무언가 잡하긴 했으나 바라던 것은 아니었든, 원하던 걸 잡긴 잡았는데 꼭 쥔 손을 펴보았을 때에 그것이 초라해 보였든, 잡아챈 그것이 원하고 원하던 바로 그것이든, 그 모든 손 안에 공허함은 존재한다. 공허함은 휘둘러보았던 마음의 손, 그 손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매복해 있다. 그런 점 때문에 공허함은 허전함보다는 훨씬 절대적이며, 훨씬 철학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  

 

목소리 안쪽에는 아이가 있다. 열심히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무너지는 것을 보는 표정, 제가 쌓은 것이 성인줄 알았는데 실은 모래였다는 것을 깨닫는 뒷통수, 고작 몇 번의 밀물과 썰물로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미망함을 목격하는 눈동자, 이제 아무것도 없어진 자리를 쓸어보려 꿇은 무릎, 한참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어내는 손. 그런 연약함과 강인함, 허무함과 확고함, 공허감과 두려움. 

 

목소리 바깥에는 어른이 있다. 아이였을 때 모래성을 쌓아봤던, 그것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야 했던, 까무룩하게 오래 전 이미 바지에 붙은 모래를 털고 신발을 뒤집어서 흔들고 그곳에서 나왔던, 이제 해안가에 서서 또 다른 아이가 모래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보는, 여기 서서 차라리 미소 짓는 어른.

 

적막하다 : '외로움'의 농도가 가장 짙은 상태. 적막함은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다. '허전함'이 잡았던 것을 놓친 손이라면, '공허함'이 휘둘렀던 손의 무상함을 응시하는 마음이라면, '적막함'은 손을 잘라 뗴어낸 '몸'이다. 모든 순간, 모든 사물들이 감옥처럼 늘 에워싼다. 그것도 좁은 반경을 그리지 않고, 멀찌감치에서, 황량할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죽음처럼 싸늘한 온도를 지녔지만, '적막'은 온도를 순치하기 위하여 순간순간을 뜨개질한다. 걷는 걸음걸음으로써, 혹은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 같은 호흡으로써, 그럼으로써 영속된다. 찔레꽃 공주처럼 손을 찔리면서,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그렇지만 그 아픔과 고통은 인지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폐허를 뜨개질하는 숭고한 의식을 치르고 있기에.

 

소복한 먼지의 두께, 책의 배열, 낡은 정도, 비죽 빠져나온 가름끈의 팔락임, 겉을 감싼 벨벳과 같은 귀한 책의 감촉(벨벳 특유의 약간의 바람먼지), 거슬리지 않은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의자와 매스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만년필, 패치워크의 쿠션과 늘 같은 자리에 앉는 바람에 살짝 더 가라앉은 소파의 왼쪽. 이 모든 것들을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텐데. 무의식이란 재미있지. 꿈이 놀라운건가. 미처 잡아내지 못했던 모든 미시적인 것들이 얼얼하게 재현되어 있다. 그리움에 수반되는 강렬한 통증. 주인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동그마니 앉아 얼음같은 회한을 핥는다.  

  

 

 

, L'Empire des Lumieres, 1954

 

 

다른 차원의 사랑을 그리는, 신랄하게 표현하면 중2병의 감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첫사랑의 신화에 갇힌 사람. 잃은 줄도 몰랐던, 잊었던 줄 기억도 못했던 텁텁하고 막막한 껍질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서사가 아니라 한 조각의 이미지로 기록된다. 흩날리는 벚꽃, 정직하게 흔들리는 철도의 움직임, 꾸준히 달리는 소상한 소음, 난로가 피워진 대기실, 폭설에 갇힌 실내의 고요함, 입김, 와-하고 운동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별이 떨어질 것 같은 하늘, 역풍에 대한 찡그림, 머리칼이 얼굴을 휘감기는 감촉. 한 장의 스냅사진, 한 컷의 필름으로 남겨진 마음.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의 구름처럼,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하늘만큼 <언어의 정원>의 비는, 입술을 깨물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그 비는 봄비의 다정함이 아니라 가을비의 새침함이나 겨울비의 추적함이 아닌, 여름비 그것도 장맛비. 지루하고 끈적한 시간이 시작되는 알림. 창틀로 떨어지는 빗소리, 새벽녘 내리는 비가 주는 특유의 울음, 테루테루보즈도 소용없을 무심함, 우산 위로 제 몸을 던지는 과감함, 눅눅한 옷과 미끄러운 계단과 옆 사람이 접은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쾌함. 모든 소리와 색깔과 부피가 낱낱이 표현된 비의 결정체.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나는 여기 머무를 겁니다         - 언어의 정원, 만엽집

 

 

아마도 그는 감정이 시작되는 이유는 거기 있었기 때문, 이라고 대답할 유형. 당신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라고 정의할. 분명히 그는 걷지 못했던 이를 걷게 하는 것, 세계 위를 딛을 구두를 만들어주는 것이 감정이라고 말할 사람.

 

영화의 끝, 시간을 건너 겨울의 입김을 보며 떠올린 것은 있었던 줄도 몰랐던 꿈과 생각날 줄조차 몰랐던 기억. 한 곡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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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6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6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9-2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는 정말 영상을 잘 만드는 듯..

Shining 2013-09-29 21:49   좋아요 0 | URL
<초속 5센티미터>에선 벚꽃 장면보다, 폭설이 내린 그 공기나 대합실의 풍경이 참 좋았는데 <언어의 정원>의 비는, 정말정말 끝내주더라구요(웃음).

아이리시스 2013-09-3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마그리트의 그림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두 작품은 흔한 생각과는 달리 참으로 서정적이네요. 달밤에 체조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겠죠. 막 이런 노래 부르고 싶어져요. 첫 번째 그림이 두 번째 그림보다 더 서정적이에요. :)

Shining 2013-09-30 23:17   좋아요 0 | URL
첫번째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에요, 저거랑 <대화의 기술>. 빛의 제국, 은 유명한 그림이기도 하고 제가 자주 꾸는 꿈과 비슷해서요. 한낮의 하늘 아래 밤바다, 밤하늘 아래 비취색 바다. 왜 그런 꿈만 꾸는지 모르겠어요(긁적). 달밤에 체조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겠지...만 달밤에 체조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기사를 읽은 적이..(쿨럭). 히히.

아이리시스 2013-10-01 01:35   좋아요 0 | URL
응, 그리고 저 그림 밑에는 이런 시를 써야 해요.


빛에게

-이성복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부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 거지,
아무도 그 목숨
거두어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그 눈물 마르면
빛은 돌아가겠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죽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빛이 있을까)


2013-10-0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