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는 자각하는 순간 무지가 아닐수도 있고 편견이 편견임을 아는 건 편견과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만. 때때로 편견은 이름도 없이 내려앉는 먼지처럼 여겨진다. 예를 들어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금발 머리라는 인식이 디즈니의 영향이나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난 후 모차르트의 죽음과 살리에르의 개입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니체의 사인을 매독으로 기억하는 것.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후 승인하거나 미화하거나 각색하며 믿었나 곰곰 생각해본다.

 

사례들을 믿기 위해선 또 다시 의심의 의심을 단계를 거쳐야겠지만, 이러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것, 이만큼이나 수상한데도 용케 책임 소지를 피했구나. 황당한 웃음도 난다. 그나저나, 인간의 몸이란 때론 믿을 수 없게 약한만큼 강하기도 하구나. 수많은 약물, 치료, 고통 속에서도 명을 다한다는 것(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유명인들의 일례들은 특히 더 그러하다, 최근에 본 영화 <마스터>에서 와킨 피닉스가 연기한 프레디 퀠도 그랬지). 죽음의 그림자는 고무줄처럼 제멋대로다.

 

 

  

  몇 십 년이 지난 책, 특히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인내를 제법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재라면 전화 한 번, 메일 한 통, 구글링, 지도앱으로 금세 가능할 일들이 몇 시간, 때로는 몇날 며칠에 걸쳐 이뤄진다. 전보를 부치고 기차를 타고 현장에 가서 관계자를 만나고 사건 현장을 답사하고, 하는 모든 동작에 -당연히- 페이지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 조바심이 나기 쉽다.

 

범죄 상식 또한 과거보다 높아져 -루미놀 반응이니 하는 용어나 청산가리 독극물은 아몬드 냄새가 난다는 것 등은 <명탐정 코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많이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까지- 독자가 복선을 짚는 속도나 정확도가 빠르고 정확해졌기에 범인, 동기, 범행 수법을 화자보다 먼저 눈치 챌 가능성도 높다.

 

상황이 이럴지니 아무래도 레이먼드 챈들러, 대실 해밋, 존 딕슨 카, 심지어 제임스 엘로이조차 스티븐 킹,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데니스 루헤인, 요 네스뵈 보다는 훨씬 구닥다리로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이 '읽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 역시. 『푸른 묘점』은 명백한 20세기형 추리소설이다. 기묘한 곳에 위치한 -알리바이 트릭을 깨기엔 난공불락처럼 느껴질- 사건의 장소, 자살로 위장한 타살, 몇 가지 힌트와 인물의 실종, 탐정 역할을 하는 두 사람. 무엇보다 엄청나게 긴 과정과 수사기간, 걷고 뛰고 찾아가는 방식의 연속.

 

바보야, 거기 힌트가 있잖아, 라면서 답답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비췄더니, 역시 마쓰모토 세이초. 내가 인물들에게 귀띔한 힌트는 쓸데없는 것이거나 맥거핀이었다. 오호, 21세기 독자를 속이는 20세기 작가라니. 한 가지의 사건을 가진 뻔한 사건은 갈래로 나뉘고 복선과 맥거핀이 난립하고 추리를 해변의 모래성처럼 쌓고 허물고를 반복한다. 이 모든 과정이 그럴만하고 재미있다. 고자세를 취하듯 부감샷이었던 앵글이 어느새 핸드 헬드가 된 기분.

 

 

 

  아주 어릴 때는 문방구(정답고 촌스러운 단어, 문방구)집 아이가 부럽고 더 크면 슈퍼집 아이가 부럽기 마련이라지만. 다 커서야 새삼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일이라 해도 업이 되면 그리 비장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을거라 알게 된 순간부터 서점은 현실이 아닌 이상이 되었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상. 내가 걸어가지도 내게 걸어오지도 않을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현실을 마치 스콘에 바르는 버터처럼 아주 잘 조합해서 살고 있다면. 어릴 적 무척 동경했던 친구를 어른이 된 후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여전히 멋지다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그런 류의 패배감과 안도감이 느껴진다.

 

웬디와 잭은 멋진 사람들이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 또한 멋진 일이지만, 그들의 일은 내 일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게 있더라. 부럽긴 하지만 될 수 없는 것들. 능력의 한계나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 등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적이고 구조적인 사항.

 

책, 사람,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 모두를 좋아하지만 웬디와 잭처럼 살면 무거울 것 같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려질 수 밖에 없는' 것,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누구 때문에 괜찮은지를 공동체의 구성원 개인개인이 알고 있다는 건. 주관적인 가게에 들어가고 싶은 날도 있지만 객관적인 가게에 앉아야만 참을 수 있는 날이 있다. 개인적인 공간에 들어가 남의 삶을 우연찮게 보게 된 만큼 내 삶도 털어놔야 한다는 사실이 어렵다. 너무 가까운 건, 때론 견딜 수가 없다.

 

웬디와 잭과 마을 사람들, 그들의 친구들, 그들이 만난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직 세상은 아름답구나."를 시전시키지만, 내겐 무겁다. 『프라이탁; 가방을 넘어서』역시 나는 될 수 없겠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에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석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고작 서른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種)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진다.

 

  예리하고 때론 자학적이고 현학적인 고종석의 글, 은 좋지만 방법론적인 면에서 이 소설을 지지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몇몇 부분은 굉장히 잘 읽히는데 1장 한민형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작가는 작품과 별개로 기억되어야 함이 마땅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연기력이 믿을만한 배우가 가십에 휘말리면 배우를 평가하는 건 연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때론 별로라고 생각했던 연예인이 의외의 모습으로 호감을 갖게 하면 커리어와 관계없이 인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버린다. 작가가 두 번 결혼하든 사실혼 관계에 있든 글이 좋으면 다 이해가 될 것 같지만 좋지 않은 작품을 평가할 때는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알려진- 인간성을 평가하며 절하한다. 음악가의 예술과 정치색은 분명 다른 그릇에 담긴 음식인데. 작품과 인간은 다른 영역이고 작품성과 인간성,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는 분명 다르게 평가받아야 하거늘.

 

반면에 매우 냉정한 면도 있다. 사인회 낭독회 등에 관심이 없다는 것. 어쨌든 작가는 작품에 의해 평가 받아야 한다. 앞에서 연예인 누가 지나가도 오, 잘 생겼군 얼굴이 정말 작아, 할 뿐 지나치는 것. 레드카펫에도 내한에도 오, 누구누구가 왔군, 우주스타 톰은 매너가 참 좋다고 소문났다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마는 것. 그래서 낭독회를 GV를 특정 가수의 콘서트를 불편해하곤 한다. "당신이 좋아요."라는 분위기를 내뿜는 사람들 사이에 우글우글 끼어있는게 쑥스러워서,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걸, 단지 거기 참가했다는 것만으로 증명되기에.

 

그 사람의 피조물이 -혹시라도- 미친듯이 좋다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경계할 것. 그 간명한 사실이 가끔 아슬아슬하다.

 

배우 누구 때문에 영화를 고르지만 그건 -대부분은- 그가 배우로서 갖는 이점 때문인데 반해 작가 누구의 글에 반해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되는 것. 최근에는 영화감독들의 괴상한 일화들을 모은 책을 발견, 몇 챕터 읽다 조용히 덮었다. 이걸 다 읽다가는 좋아할 수 있는 -이상한 말이다- 감독이 한 명도 안 남을 것 같다(와 함께 역시 예술인들이란, 무심코 생각하는 편견이 무의식이라는 개찰구를 통과한다)며. 그런데도 그 와중에 타란티노의 발 페테시즘은 스탠리 큐브릭의 괴팍함은 각자 영화의 감수성과 조응한다고 느끼는 반면, 잉마르 베리만의 일화는 그의 영화와 간극 때문에 잠시 당황했다. 인간의 이중성은 끝도 없지. 그나저나 『해피 패밀리』이야기는 어디로 갔지. 무의식만큼 의식의 흐름이란 것도 믿을 게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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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8-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 서재 배경을 바꾸면서 그리고 얼마 전 몇개의 페이퍼를 삭제하거나 고쳤다. 이번 달 동안 몇몇을 더 삭제하거나 고칠지도 모르겠다, 까지 생각하다가. 댓글을 달아준 분들께 한마디 알림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은 아마 기억을 못하실 것 같고 기억 한다해도 상관 없다 하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만 따로 손대는 일은 없지만, 페이퍼의 삭제 과정에서 혹 불쾌하거나 서운해하실지 모르니 지금이라도(생각이 짧아서 이제야;;) 말씀드립니다(꾸벅).

그나저나, 얼마가 됐든 -심지어 한 달 전 일이라 해도- 예전 글을 읽는 건 왜 이렇게 민망할까. 가끔은 감정이, 대부분 감정보단 감정의 발화정도나 표현 방식이.

맥거핀 2013-08-0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중성 재밌어요. 작가는 작품으로(혹은 배우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 복잡하게 얽혀있죠. 작품이 좋아서 작가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 작가를 (여타 다른 이유로)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을 읽게 되는 경우들이 있지요. 말씀하셨지만, 사생활의 측면에서 결코 찬성할 수 없는 감독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의 영화를 볼 때에 무의식 중에 안좋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설국열차> 보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관람을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너무 인기가 좋은 영화는 관람을 미적거리게 되요. 나름 적극적 영화관람층인데, 돌이켜보면 1000만 관객 영화 중에 극장에서 본게 많지가 않아요. <친구>,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최근 <7번방의 선물> 극장에서 본 게 없네요. 아..심지어는 <괴물>도요.

날씨가 덥네요. 에어컨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입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최근에 에어컨에 대해 다룬 책을 조금 봤더니 그런 말을 입에 담는게 뻔뻔스러워 보이는군요.

Shining 2013-08-13 14: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저는 작가들은 별로 안 그런데(작가 자신이 좋아서, 도 에세이든 인터뷰든 책이든 어떤 말이나 글로 호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하긴 작가는 사적인 부분을 알기가 힘든 것도 있겠죠?) 배우들에겐 이중적 잣대를 적지않게 들이대곤 해요_- 특정 제스처, 표정, 어투, 말, 이런 것에서 호감을 갖는 배우들이 분명 있거든요(연기력과는 무관하게). 저 책, 보다 학을 뗐어요; 이건 뭐 기행 정도가 아니라 미친 사람들.... 로만 폴란스키, 가 저는 특히 그래요. 워낙 유명한(!) 일들이라 모를수가 없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에피소드들... 맞아요, 그래서 영화도 덩달아 동의할 수 없게 되는 부분이....

전 영화 취향이 완전 편협해서 십만이든 천만이든 안 볼 영화는 안 볼 영화, 볼 건 볼 영화,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엄청 강해요; 아, 그 영화 의외로 괜찮다던데? 해도 결국 안 보게 되더라는...(네, 퍼시픽 림도 안 봤어요ㅠ 더 테러 라이브도 관심은 있는데 이러다 안 갈 것 같은...) 언어의 정원이 극소수관에서만 개봉해서 엄청 슬퍼요.

하하. 에어컨을 틀어서 밖은 더 덥고 더 더워서 에어컨을 틀게 되는... 악순환의 가장 적절한 예_- 최고의 발명품이자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큭큭.

아이리시스 2013-08-0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그날 프라이탁 찾아봤었는데 그게 저거였구나, 저는 천만관객은 꼬박꼬박 보러가요. 히히히. 도둑들, 광해, 그리고 맥거핀님이 쓰신 영화 저는 다 극장에서... 그 이중성은 어쩔 수 없는 것도 같아요. Shining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이유로 한효주가 별로인거거든요. 찬란한유산, 동이때까지, 그 이전 초기영화들까진 좋았는데. 너무 주류로 가는 길을 또각또각 걷는 게, 예전에 몸값계약에 아버지가 따라간다는 소식에 실망했던 게, 그런게 오래도록 남아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듯 해요. 사실은 문채원도 그렇고 박민영도 그래요. 그 또래 배우들이 다 그렇게 보여요.

더워요. 세이초 월드 몇 권 더 읽고싶다.............^^

Shining 2013-08-13 14:43   좋아요 0 | URL
전 라인업 나오면 대충 다음해 볼 영화들이 정해지는 편이에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그 외의 영화들을 보지도 않고(그러니까 막 흥행하거나 평이 좋아도) 정한 영화들을 엄청나게 혹평하진 않는한(음, 코스모폴리스가 그랬어요. 크로넨버그여서 궁금했는데 돈 드릴로 원작이라길래 흔들리고 북미평 보니까 맘 접었다는_-) 아이님은 전에 그랬잖아요? 약속 잘 지킨다고. 아마 이래서 그럴거에요(뭐래... 다 알아들었죠?ㅎㅎ) 지금은, 엘리시움을 기다려요+_+ 잡스, 는 평 보고 볼까 싶고(에쉬튼 커쳐를 안 좋아해요) 내 사랑 베니(뭐야ㅋㅋㅋ)가 연기한 줄리언 어산지 보러 가야죠! 이렇게 묻지도 않았는데 9월 볼 영화 말하기..

그렇구나, 근데 실은 전 드라마를 안 봐서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잘 몰라요(뭐 영화도 다 보는 건 아니지만ㅋㅋ). 20대 여배우 기근이라고 하더니 아이님 말씀하시는 거 보니 그렇지도 않은가봐요(하지만 30대 여배우들이 더 후덜덜 하긴 하죠...쿡쿡).

아이리시스 2013-08-17 15:55   좋아요 0 | URL
응, 오케이, 알아들었음 ㅎㅎ

그..그런데 그때는(20대초중반) 극장에서 살다시피해서 저는 개봉첫주에만 봤는데도 웬만해선 다봐지고, 내가 따라본 게 아니라 천만명이 나를 따라본 건데(응?), 그러고보니 왜 맨날 나를 따라보는지 모르겠어 @.@ (휴...)

음, 그렇구나. 그럼 Shining님은 영화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계획적인 편이에요? 아님 영화만? 영화는 극장이 더 가까우면 슬슬 걸어가서 혼자 보면 더 많이 볼 것 같은데 저는. Shining님은 어쩐지 책, 담번에 이거 읽어야지 찍어놓으면 꼭 사거나 빌려오고 그렇게 하는 의지가 있을 것 같아요 ^^

그나저나 저는 극장이 저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