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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가장 기다리는 영화는 <설국열차>, 호기심이라면 <미스터 고>, 그러나 설렜던 것은 <스타트렉 ; 다크니스> 였다. 트레키는 커녕 J.J 에이브람스의 리메이크 첫 시리즈인 <스타트렉 ; 더 비기닝>만 본 관객으로서 뭔 소리냐 싶겠다만. 실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때문이었다. 요즘 이 마성의 남자 때문에 베니라는 퐁듀에 빠진 빵조각이 된 심정이다. 누군가를 보면서 꺄아악, 소리나게 좋아한 적 반한 적이 없는데. 아무리 잘 봐줘도 잘생기지 않은 얼굴에 패션 감각이라곤 풉 소리 나올만한 이 분 때문에. 난생 처음 스크린 너머 누군가를 보고 호흡이 빨라지고 침이 고이고 숨을 쉬기 힘들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 중이다(또 한 명은 매즈 미켈슨. 그대가 덴마크에만 머무를 사람이 아닌 줄 내 알았지. 하아, 이런 섹시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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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못 봤다. 당황스럽고 화도 나는 일. 아이맥스 관이야 전국에 열 몇 관 있으니 가능성이 적을줄이야 알았고 안 되면 3D로 보자, 는 마음. 2주차에 교차상영, 아주 작은 상영관(수용인원 105명)에서만 남아있더라. 그나마도 2,3일 시간을 못 맞추고 겨우 보려고 하니 오전 시간에만 해주는 지경에 이른다. 맙소사. 에이브럼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국내에 꽤 팬이 있다고 믿은데다 스타트렉이고 헐리웃 블록버스터, 나름 기대작이자 대작이니 2주 차에 가도 중간 이상 사이즈의 관에서 볼 거라고 나름 꼼꼼히 예측했더랬다. 변수는 의외로 골수팬만 있었다는 것과 철가면과 꽃미남 북파 공작원, 드디어 팬티를 벗은 하늘을 나는 외계인의 공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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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논쟁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영화인들은 사수를 부르짖었지만 관객들은 냉담했다. 제 밥 그릇 챙기기라는 비난과 한국영화의 상업성과 위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오만. 21세기를 진입하며 용이해진 접근성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 변화, 영화의 질적 향상, 통신사 할인 등의 다양한 점들이 맞물려 영화라는 괴물이 거의 공룡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룡의 발톱 정도에는 스크린 쿼터제의 이점으로 이뤄지지 않았나 싶다. 한국영화의 자주성과 독립성, 상업성은 원인보단 결과에 가까웠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는 엄마의 양손 덕에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이다. 아이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해서 엄마의 손을 밀어내는 순간 아이는 넘어지고 깨지고 구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이가 혼자서 걸으려면 엄마는 손을 떼야 하지만 그건 적어도 아이가 혼자 걸음을 옮길 수 있을 때의 일이고, 혼자 일어나기도 힘든 아이에게 엄마가 손을 잡아주는 건 과도한 친절이 아니다. 이것이 당시의 (나의) 생각이었다(그러니 현재의 주장과는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고액 개런티와 그에 반해 개선되지 않은 영화 환경이나 복지, 급여 문제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가운데(심지어 지금도, 슬프게도 앞으로도) 그들의 주장은 확실히 제 밥그릇 사수,로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스크린 쿼터제의 논쟁은 영화관과 제작, 배급사 사이의 이윤 문제에서 현재 스크린 독점 상영의 문제까지 넘어왔다. 이상한 점은 쟁점이 바뀌어도 상황은 늘 똑같다는 것이다. 거대 기업의 독점(스크린 쿼터는 외국 특히 헐리웃 영화의 횡포, 멀티플렉스의 이윤 착취, 3대 배급사의 독과점), 영화인들의 비균등한 대우(주,조연과 스태프의 급여 비율은 확실히 과거보다 커졌을 것이다, 따지기가 무서울만큼), 제 밥그릇만 챙기기 급급한 영화인들에 대한 관객들의 비판과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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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점 상영의 문제가 한국만의 것은 아니고 이제야 불붙은 논쟁도 아니다. <괴물>때도 CJ의 물량공세에 일부감독이 각성의 목소리를 높였고 최근에는 김기덕 감독과 <도둑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민병훈 감독의 <터치>일도 있었다. 사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로 낙인찍는)를 보려면 개봉 전부터 미리 상영관, 상영 시간표를 살펴보는게 버릇이 되긴 했다. 그나마도 개봉하는게 감사할 때도 있었다. 치사하고 아니꼬워도 아쉬운 건 이쪽이니. 하지만 이 정도였던가. 대부분의 영화는 오전이나 새벽에 편성되고 하나, 두개의 영화가 황금시간대, 좋은 관을 모두 차지한다. 몇 분 차이로 영화를 놓친 '안타까운' 손님을 위해 15분에 한 번 상영을 계속 밀어넣는다. 이래놓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관객 일 억 명 돌파, 천 이백만이 선택한 영화, 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는 것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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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잘 팔릴 영화를 만들던가, 라고 말한다. 맞다, 잘 팔릴 영화 만들면 된다. 그런데 잘 팔릴 영화는 누가 정해주는가. 시나리오가 배우가 배급사가 만든다. 글빨 좋은 시나리오 작가 붙이고 티켓 파워 있는 배우 모셔오고 한달 전부터 무시무시하게 광고 때린다. 아무래도 확률이 높아진다.

 

3가지 다 갖춘 영화 별로 없다, 라고 말한다. 3가지 다 있어도 반드시 흥행하진 않는다. 맞다, 3가지는 커녕 그 중 한 가지도 없어도 흥행하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개 개봉한 주 주말을 지나면 -특별한 슬리퍼 무비가 아닌 한- 최종 스코어가 대충 그려지니 첫 주에 살아남아야 하는데 홍보 없이는 첫 주는 커녕 개봉에서도 생존하기 어렵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보는게 아니라 많이 본 영화를 많이 본다. 잘 팔리는 영화가 잘 팔린다. 많이 본 영화이기 때문에 다시 많이 보고, 일단 많이 보게 되면 다른 홍보나 평가는 중요치 않다. CJ, 롯데, 쇼박스의 흥행 영화가 많은건 그들이 심미안이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많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회사가 돈을 많이 벌고 또 그 돈으로 돈을 버는 건(비단 영화계 뿐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똥파리>, <파수꾼>, <워낭소리>처럼 독립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있다, 그런 경우. 당신이 왜 이 영화들의 이름을 경우를 알고 있는지 아는가. 그런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된 영화들이 대서특필된다. 그러면 당신은 착각한다. 봐라, 독립영화도 클 수 있다, 라고. 잡초 속에서 꽃이 한 송이 폈다고 여기가 꽃밭이라고 감탄하면 안 된다.

 

아, 결국 관객이 판단하는 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 잘 팔리니까 그 결과가 반영되어 상영관 늘리는게 무슨 잘못이냐고. 잘못 아니다. 다만 싸움이라면 같은 시작에서 하는 게 맞다. 거리의 파이터도 과학으로 만들어낸 근육질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링에 올라가서 싸우게는 해야하지 않을까. 링 위에서 지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지만 첫 라운드 정도는 공평하게 싸우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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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표지에 홀려 지하철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 씨네21. 김혜리 씨의 글을 읽는데 그래 내가 말하려는게 이건데, 싶어서 발췌. 김혜리 씨는 언제 읽어도 참 글을 잘 쓰는 사람 중 하나다.

 

버즈 루어만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 장면과 대사를 고스란히 시나리오로 옮겨왔다. 보태면 모를까 줄이는 데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런데 얄궃게도, 몇 안되는 생략과 "이쯤이야" 싶은 가필이 거슬리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개츠비와 보낸 시간이 닉을 폐인으로 만들만큼 큰 충격을 남겼다는 추가 설정은 위대한 개츠비 전체의 이야기를 아주 예외적인 기담으로 보이게 한다. 진귀한 구경거리일 뿐 보편적인 삶과 연관지을 고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데이지의 남편이 개츠비를 죽은 여자의 불륜 상대였다고 모함하는, 원작에 없던 추가 누명도 개츠비라는 남자의 별나게 기구한 팔자를 강조한다. 이와 같은 각색은 위대한 개츠비라는 스토리의 핵심이 기념비적으로 위대한 사랑에 있다고 보는 관점의 산물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핵심이 기념비적 사랑이 아니라 범용한 사랑을 하면서도 그 범용함을 필사적으로 부인했던 남자의 실패에 있다고 보는 독자라면 이 각색은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닉 캐러웨이 캐릭터의 쓰임도 마찬가지다. 액자 구조로 인해 닉의 러닝타임 비중은 커져쓰나 조던 베이커와 닉의 관계가 삭제됨으로써 닉의 역할은 철저히 목격자로 한정된다. 개츠비의 이야기는 닉을 포함한 '우리'의 세계 바깥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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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이야기를 하니 -뻔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을 읽는데 문득, 그가 왜 피츠제럴드를 좋아하는지 아는 척 하고 싶어졌다. (한 마디로 뭉퉁그려) 닮았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목구비는 다른데 어쩐지 닮았다고 느껴지는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기분.

 

그들에게는 2,30대 언저리에 느껴지는 독특한 절망과 회한, 열망 같은 것들이 유사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들의 화자는 언제나 젊고 매력적이다. 다른 점은 피츠제럴드는 여전히 젊다는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꾸준히 나이를 먹고 있다는 점. 피츠제럴드가 빨리 나이든걸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전히 젊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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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대해 집중하는 작가가 있고 감정의 밑바닥까지 긁어모으는 작가도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생활 면을 무심하면서도 친절하게 묘사하는 작가는 드물다.  

 

다자키 쓰쿠루는 여전히 여기저기 역을 돌아다니며 구내를 스케이하고 대학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들었다. 아침에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식사 후에는 반드시 이를 닦았다. 매일 아침 침대를 정돈하고 직접 셔츠를 다렸다. 가능한 한 남는 시간이 생기지 않게 애썼다. 밤에는 두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대부분 역사서 아니면 전기였다. 그런 습관은 옛날과 변함이 없었다. 습관이 그의 생활을 앞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묘사들. 주인공이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순서로 다림질을 하고 어떤 음식을 요리하는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낸다. 파스텔톤을 좋아하는 사람과 비비드 컬러를 좋아하는 사람, 쓰리피스 수트를 입는 사람과 체크무늬 린넨셔츠를 입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리는 없다. 소나기 예보가 있는 날 접이우산을 들고 나가는 사람과 장우산을 쓰는 사람은 단연 다르다(우산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자는 즉홍적이나 실용적인 성격, 후자는 꼼꼼하게 옷을 소중히 여기는 성격, 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전자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사람, 후자는 운전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입은 옷은 당신의 집은 당신이 먹은 요리를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라는 건 현실에서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파스타를 만들 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이 떠오르고(아마도「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었을 것이다. 스파게티 면을 삶다 전화를 받는 남자의 이야기가) 어느 모델 하우스의 주방을 보고 '이건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의 집이군'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인위적인 픽션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붕 솟아오른다. 단순히 작가의 성격일수도 있지만, 작가로선 평범하게 좋은 자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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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7-0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독점 현상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샀다. 신드롬, 선인세, 에 대해선 이렇다할 주장이 없고 다만 읽고 싶어서 샀다.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읽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건 독자로선 행복함 가까운 설렘을 준다. 그게 일본작가라고 스타작가라고 선인세 문제로 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싶다. 그냥, 내가 읽고 싶어서 산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사인본이나 사은품에 무감한 편이고 작가를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아 사인회나 낭독회도 무감하다(수도권 외 살기도 하고). 암튼 무슨 티켓 같은 걸 함께 받았는데 서점을 순례하라는데 (어쩌면 당연하지만) 모두 수도권이다. 순례 할 생각도 없지만 하려면 돈이 더 들겠수. 독자의 제안이 있으면 지방에 각 지점에서도 도장을 찍어주겠다는데. 거참 뭔가 기분이 좋진 않다. 차별당한 기분도, 그게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각도. 좋은 책 잘 만들어서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 소책자 같은 걸 싣어줬음 더 좋았을텐데. 그건 사은품에 무감한 나같은 사람의 생각인가.

2013-07-08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9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9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2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3-07-1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하도 이상한 말들이 많아서 왠만하면 그러려니 하지만, 아직도 화나는 말이 있어요. '이래서' 독립영화 안본다, 혹은 안된다,라고 말하는 그 '이래서'에 담겨진 수많은 것들. 아..뭐 암튼 영화계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정부라도 나서야죠. 저는 기본적인 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게 물론 여러 파생적인 문제를 낳기도 하겠지만요, 자본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을 찾아야죠.

참 이상하지요. 예를 들어 서점에 한 책만 80% 넘게 깔려있으면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잖아요. 근데 영화관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죠. 아니..어쩌면 서점에서도 곧 그런 시대가 오려나요...

Shining 2013-07-12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전 아직 젊은지(?) 아직도 화나는 말이 많은데ㅎㅎ 영화 잘 안보고 불법다운로드 하는 사람들이 한국 영화는.. 으로 시작해서 비아냥대는 거 정말 짜증나요(웃음). 그러게요, 자의로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의도가 전혀 없어보이니 이젠 나서줘야하죠. 진짜 요즘은 정말 도가 지나쳐요.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책으로 비유하니 정말 이상하네요-_- 하루키 열풍을 보면 비슷한 광풍이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요. 퍼시픽 림을 별로 주목하지 않았는데 평이 좋아서 궁금해요. 영화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이 가장 주목할 영화로 꼽는다는 것과 길예르모 델 토로라는 것도 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