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예전엔 수첩을 썼고(지금도 손글씨로 쓰는 간단한 일기는 병행한다) 지금은 엑셀파일로 한 해 동안 본 영화나 책, 다녀온 전시회나 여행 일정 등을 정리한다. 사실, 모르진 않았다. 모를 수가 없다. 알라딘 페이퍼나 리뷰만 뒤져봐도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다'라는 염려와 민망함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머릿속을 잠시만 뒤져도 반성할 거리가 넘쳐나니. 헌데 이렇게 잘 정리한 표로 보면 더욱 참담하다.


그러던 와중 모종의 자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분에 작년보다는 조금 더 나은 독서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봤자 8월에 간신히 네 권을 읽었고 이 페이퍼는 기억을 돕기 위한 일종의 기록의 장치다. 



  완벽하게 잘 만든 걸작이 아님에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작품들이 있다. 박민정 작가의 『미스 플라이트』역시 그렇다(그렇다고 이 책이 형편없거나 별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엄청난 대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조심스러운 서사와 담백한 진심에서 굉장히 진한 울림을 느꼈다. 또한 이 책이 그 즈음, 시기적으로도 그 당시에 나왔어야 할 책이라고 평한 것도 이해가 간다.


방산 비리, 군대 문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간질하게 만드는 직장내 문화, 성희롱, 사회적 타살, 갑질 문제 등등. 온갖 뜨거운 감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이 크고도 작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솥에 들어있는 감자를 집다보면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뜨거운게 아파서인지 눈물이 찔끔 난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들 하지만. 사는게 사는게 아닐 땐, 가버린 사람은 어떻게 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살아내야할까. 



  『팩트풀니스』역시 책 소개 페이지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13개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다소 놀라운 정답에 대한 결과로 천천히 이끈다. 이 책의 요지는 한 가지다. 긍정보다 부정이 인식체계에 더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언론과 통계는 공포를 조장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대부분이 짐작하는 것보다 세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서양의, 그것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스웨덴 사람이라는게 아이러니하거나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혜적인 태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흥미로운 결과가 많았다.


유행성 질병이나 테러, 자연재해보다 알코올과 교통사고,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높음에도 대중은 전자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공포를 가진다는 사실,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에서 탄소배출량이 높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사실 1인당 배출량을 계산했을 때 열강의 서구국가들이 훨씬 더 높은 수치를 가진다는 것과 현재 인구 분포도와 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패권은 100년 안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옮겨갈 거라는 예측, 생리대 회사들은 여성들의 임신하지 않을 자유를 위해 더 힘쓰는게 이익을 위해 낫다는 주장과(임신을 하면 약 2년간은 생리대 사용이 멈추기에 피임을 할수록 오히려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종교과 관계없이 소득이 자녀의 숫자를 결정한다 등 어떤 것은 '당연히' 그럴만하고 어느 것은 다소 놀랍거나 의외로 와닿는 수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세계의 80% 1세 이하 영아들이 하나 이상의 예방접종을 받으며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중간 소득 국가에 해당한다. 


이렇듯 세상이 내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는 차근차근한 주장은 분명 마음이 놓이는 말임에도 이상하게 읽고나선 다시 우울해졌다. 왜냐하면 한국은 고소득국가, 4단계 발달 단계에 해당하기 떄문에 우리는 대부분 가난하지 않음에도 가난하기에 나 역시 가난이 몸 담은 소속 자체가 다를 뿐 여전히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구매할 책이 있어 알라딘에 들어왔다 이 책의 광고를 읽었다. 자신의 독서량과 집중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일 뿐 스스로가 의지만 가지면 얼마든지 '전처럼'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저자는 생각했다. 이론을 점검하기 위해 실험을 했으나 이럴수가, 몇 페이지를 읽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폰을 힐끗대거나 메일을 확인하고는 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른바- 인생의 책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유희』는 지지부진한 서사를 가진 책으로 느껴진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정확히 지금의 내 상황 아닌가. 이 책은 책을 읽는 뇌와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뇌는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고 대조하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만큼의 균형을 책으로 맞추지 않으면 뇌가 완전히 불균형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또한 책을 읽는 방법이 e-book인지 종이책인지에 따라 글을 습득하는 방식과 양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며 책읽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성인 또한 뇌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졌기에 영유아와 청소년들에겐 책을 읽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설명한다. 


책의 설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짐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책이긴 하나 대부분의 독자가 막연히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실을 수치로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가치가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줘야 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동화책에는 일반적이로 쓰지 않은 글귀들이 등장한다는 주장이었다. '옛날 옛적에', '소스라치게 놀라','환상적인' 이라던가 심지어 '마녀'나 '변신'이라는 단어조차 비일상성의 일상성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골자다. 즉 이야기의 메시지 말하자면 교훈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단어의 사용 또한 못지않은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는 요새 아이들은 책을 주면 터치를 한다는 점이나 자꾸 책을 확대하려고 검지와 엄지를 벌린다는 이야기, 글로 쓰여진 설명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면 알아듣는다는 보고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책을 읽는 내 자신의 집중력이었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가 했던 경험을 공감하며 읽으면서 정확히 같은 태도를 취했다. 책으로 풍덩 뛰어들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8월은 4권의 책으로 느리지만 천천히 물들었으므로 그것만은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팩트풀니스』에 그런 글귀가 있었다. 더딘 변화라 하여 불변은 아니다. 세상은 천천히, 분명 좋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고 내 독서생활도 다시 느리지만 분명하게 회복하고 있으니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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