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쓰는 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재밌있다. 사실 재밌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이런 책을 썼다는 것부터 저자가 유명작가라는 방증이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쓸 정도의 유명한 작가'들은 대개 좋은 문장가이기 때문이다. 고로 어떤 논지의 글이든 대체로 재밌고 유익하며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창작자란 근본적으로 깊이 없는 자기혐오와 근거 없는 자기애 사이에서 널을 뛸 수 밖에 없다는 설득과 마법의 묘약은 없다고 저자가 말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불을 키고 그 책 안의 마법의 묘약을 찾는 내 자신에 대한 저열함, 어쨌든 그들은 삼십 말의 구슬을 꿰고 꿰어 훌륭한 진주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내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가져봐야 삼성회장이나 나나 똑같은 갤럭시 폰을 쓴다는 것 정도의 위안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자괴감 말이다. 게다가 온갖 작법서를 뒤적여봐야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라, 첫 챕터를 잘 써라, 초고는 원래 10%밖에 남지 않는다 등등 모두가 알지만 아무나 흉내내기 힘든 맛집 같은 이야기를 하니 어째 좌절감만 심해지고 이렇다 할 도움은 되지 않는다.  


 

  먼저 두 종류의 스케치북이 필요하다큰 것작은 것큰 것은 댐 전체의 조감도마을지도도로와 주변 지형 등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하다큰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반복해서 그리면서 수정을 하고수정이 끝나면 그림 속 동네가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진료소를 생각하면그곳이 어디에 있는 어떤 건물인지 자동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작은 스케치북은 세밀화를 그리는 데 쓴다집 안 구조나방 구조장면이나 상황인물의 동선 등소설을 끝낼 때까지 그려야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예를 들어현수가 세령을 차로 친 후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을 쓴다고 하자주변 사물의 상태자동차의 깨진 유리창전조등의 각도 등을 하나하나 그려가며 세령과 현수의 동선을 순서대로 정리해둔다.


의도하건의도치 않건소설에는 작가의 일부가 녹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과거든현재든사고방식이든성격이든이는 독자가 알고 있고 독자가 안다는 걸 나도 안다때문에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허세를 떨고 싶은 때가 있다나를 무식쟁이로 볼까봐폭력적인 성격으로 단정할까봐비겁한 찌질이로 여길까봐그럴 때마다 생각한다작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성인이 아니라고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는 진지한 존재도 아니고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위선을 떨게 된다독자는 작가의 위선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위선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차라리 악당을 좋아할지언정누구나 그렇지만특히 작가에게는 솔직함이 중요한 미덕이다.


단어 선택과 문단 구성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동사는 수식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걸 고른다. ‘뛰다보다 속도나 모양새의 속성을 담은 내닫다’‘치닫다’‘쇄도하다같은 동사를 선호한다. 이런 동사를 쓰면, ‘빨리뛰었다, 라고 쓰지 않아도 된다. 형용사는 아껴 써야 한다. 남용하면, 독자에게 작가가 원하는 느낌을 받도록 강요하는 꼴이 된다. 패션도 포인트가 지나치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나. ‘아름다운 꽃이라고 쓰는 대신 꽃의 모양이나 색깔, 주변과의 조화를 묘사하는게 낫다. 아름다움은 독자가 알아서 느끼도록 남겨두시고.(중략) 부사는 항생제 같은 거다. 한두 번은 확실한 효과가 있지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긴다. 가령 너무라는 부사를 습관처럼 쓰면 정말로 너무한 일에 썼음에도 전혀 안 너무한 일처럼 느껴진다. 문장이 야단스러워지는 면도 있고.


그런 면에서 정유정 작가의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꽤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근거로 추정컨대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별다른 과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문학의 숭고함을 강요하지도 그것의 지난함을 과용하지도 않는다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도 않으면서도 은근한 웃음으로 영업비밀을 숨기는 맛집처럼 굴지도 않는다허황된 예를 늘어놓는 대신 본인의 작품 속 본인의 문장을 인용해서 말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경탄하거나 힐난할 필요도 없으며 막연한 예시가 아니라 사실적인 이해를 돕도록 한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어떤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시치미를 떼는 대신 스티븐 킹요시다 슈이치켄 키지레이먼드 챈들러 등 감흥을 받은 작가들을 가리지 않는다자신이 썼던 책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성했는지를 샅샅이 밝히고 그러면서도 인칭이나 묘사문장의 구조 등 모든 작법서에 등장하는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재를 얻는 방법, 소재를 얻은 후 플롯을 구성하는 방식,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등에 대해서 대부분의 작가 혹은 작법서에서 -고의이든 아니든- 빠뜨리는 부분을 꼼꼼히 기록한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과정을 따라 봐야 동등한 글을 반드시 쓸 수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냉담하고 예리한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위치는 좀 애매한 편이다. 작가 혼자 일방적으로 원고를 써낸 구조가 아니라 인터뷰 형식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지루하며 이야기의 논조를 바꾸긴 쉬운데 대신 진짜 이런 대화를 문어체로 주고받았나? 너무 작위적인 대화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 부분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선 내가 작가와 저자편집자가 아니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약간 불편한불안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디서 이렇게 자세하고 세밀하게 글쓰기의 과정에 대해 들을 수가 있을까. 태반의 강의와 작법서, 작가들의 글쓰기 노트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 이 책 안에 담겨져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되거나 혹은 글을 더 잘 다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이든 유효한 면이 있을테니 한 번쯤은 읽기를 권하는 바다. 


자, 하지만 이렇게 친절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친절하기에 더더욱- 우리는 위축되고 주눅이 든다. 플롯을 다루고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주어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와 목적어를 붙이는 방법을 알고 백 날 스티븐 킹의 글을 필사해봐야(심지어 그의 책들을 길다... 너무... 길다......) 작가는 커녕 의미있는 글조차 쓰지 못할거란 겁을 먹는다. 자기애나 자신감 대신 자기혐오와 자기비하에 시달리고 결국엔 쓰고 싶었던 내용조차, 주제나 문장은 커녕 소재의 끄트머리조차 붙잡기가 힘들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기나 할까? 읽히지 않을 글을 대체 무엇 때문에 쓰려고 하는가? 달음박질 친 영감을 따라잡긴커녕 제 자리에 서서도 밭은 숨을 쉬게 된다. 

 

 

  나는 당신이 글쓰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하고 싶다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창조적인 일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배운다글쓰기는 당신에게 유익함을 주고당신의 이해를 확장시킨다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설령 내 글이 앞으로 다시는 출판되지 않을 것이며그것으로 단돈 한 푼도 벌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나는 기꺼이 계속 글을 쓰겠다.


영감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영감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온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도한다고 해보자. 아마 첫날에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타자기나 종이 앞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두 시간쯤 아무 생각 없이 머리카락만 쓸어 넘길 것이다. 전혀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다만 당신은 줄곧 타자기 앞에 앉아있어야 하며 공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조만간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당신은 내일도 잠깐 틈을 낼 것이고, 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영원히 언제나 그렇게 앉아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모든 사람은 재능이 있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랫동안 뚫고 나오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내고 너무 자의식적이고 너무 자존심이 세며 너무 부끄러워한다. 그들을 구성, 줄거리, 통일성, 전체, 일관성 등에 관해 지나치게 많이 배운 것이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쓴 글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이다. 그건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까지를 볼 수 있는 시야를 당신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글을 쓰라고 다독이는 작가들은 대개 유명하고 성공했으며 대단한 문장가들이다. 마크 트웨인,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 조지 오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쓴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를 읽어봐야 한숨밖에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브렌다 유디트의 『글을 쓰고 싶다면』은 부담을 훨씬 덜어주는 책이다(그렇다고 저자가 덜 유명하거나 문장이 덜 훌륭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 말한 작가들이 쓴 글들이 대개 '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등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 마치 회고록처럼 접근하는 것과 다르게 이 책은 나와 너, 얘와 쟤가 가진 모든 불안에 대해 보편적으로 접근한다. 영감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 잘못된 괴로움의 어리석음이나 내 문장이 읽히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군가 비웃을 수도 있다는 망설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씩 내딛는 용기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부분은 실패자이며 앞으로도 실패자이니 그 실패가 모두 의미없는 것은 아니라는,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뻔한 말들을 믿게 하는 묘한 진솔한 힘이 이 책 안에 있다. 물론 허황된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실존인물과 주변인이 쓴 글과 본인의 글을 인용하는 등의 예시를 통해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뭐라도 쓰고 싶고 느끼고 싶고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그 소망을 충동질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꽤 소중하다.


물론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놀라운 문장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기적은 이 두 권 뿐 아니라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길 바라고 그 마음이 실현으로 옮겨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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