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Marjorie Prime, 마이클 알메레이다, 2017


그래도 넌 알아보네. 이모가 내게 던진 말에 할머니는 그럼, 예쁘잖아. 지금도 예쁘네. 라고 말하신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기억보다 강한 초기 치매환자에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엄마가 형제 중 첫째라 언니와 나는 할머니에게 제일 오래된 손주니까. 이야기를 나누다 맥락을 놓치고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다가 다시 또 언제 왔냐고 하고 또 어느 날엔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기억은 선행적이지도 않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난데없이 사라지거나 끊기고 다시 이어지길 반복한다. 연세를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정도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함께 하는 이에겐 자주 지치고 화를 만드는 병이다. 늙는다는 것, 쇠퇴해지고 몰락해가고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마조리(로이스 스미스)역시 치매 환자다. 본인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그녀의 기억도 나의 할머니와 비슷하다. 어떤 날은 놀랍도록 또렷하고 명료하지만 어느 순간엔 방금 하던 이야기도 맥락을 놓치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마조리는 그녀의 딸 테스(지나 데이비스)와 사위인 존(팀 로빈스)와 함꼐 산다. 그리고 최근엔 젊은 시절의 남편, 월터(존 햄)의 인공지능도. 월터는 시시때때 나타나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 오래전 이야기. 키우던 강아지나 프로포즈 날 함께 봤던 영화 같은. 월터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그의 대화의 바탕은 테스와 존, 대부분 존의 이야기에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이야기는 마조리와 월터로부터 (아마도)테스에게로, 다시 존에게로 몇 번을 걸쳐 넘어온데다 진위 여부를 확인해줄 사람은 월터와 마조리 뿐인데 한 사람은 고인인 되었고 한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으니. 월터는 보통의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는 학습하고 판단한다. 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조리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원하는 바람이나 상상에 따라 기억을 수정해주기도 한다. 프로포즈 떄 함께 본 영화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었지만 고전적인 극장에서 흑백으로 본 <카사블랑카>이면 좋았겠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그 다음번엔 프로포즈 때 <카사블랑카>를 봤다고 말한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든 기억에 대한 상기이든 아니면 그저 대화상대가 필요해서든 존은 월터의 존재가 마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지만 테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아빠의 모습을 한 월터가 불편하다. 그것도 하필이면 돌아가실 적, 자신의 마지막 기억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더 선명히 기억하는, 한참 젊은 시절의 모습이라는게 불만이다. 


William James had the idea, and it's been confirmed scientifically, that memory is not like a well that you dip into or a filing cabinet. When you remember something, you remember the memory. You remember the last time you remembered it, not the source. So it's always getting fuzzier, like a photocopy of a photocopy. It's never getting fresher or clearer. So even a very strong memory can be unreliable, because it's always in the process of dissolving.


인공지능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그러하나 시간이 흘러 마조리가 떠난 자리에 그녀 역시 엄마의 모습을 불러온다. 자신의 마지막 기억대로 노쇠한 어머니를. 다정하고 인내심 있는 마조리의 모습이 테스는 더욱 화가 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는 딸이 아니었다고 여긴다. 어머니의 마음엔 닫힌 문이 있었으며 마조리는 존을 반기지 않았고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해준 적이 없으니까. 어리석은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여기면서도 기어코 그녀를 소환해 곁에 두고서는 당사자에겐 할 수 없던,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어그러진 진실이 밝혀진다. 월터 말고도 마조리에게 구애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고 세계랭킹 8위까지 올라간 전적이 있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는 테니스 선수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하지만 존은 마조리와 월터에게 그렇게 말했고 어느새 마조리는 그것을 사실과 혼동해 자신의 기억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들이 키웠던 강아지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고 그들에겐 세상을 떠난, 자살한 아들이 있었다. 다음 장이 되면 비슷한 변주가 이어진다. 남겨진 건 존이고 그는 테스가 떠난 자리를 그리워한다.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의 마지막. 그 후의 삶. 기억과 기억은 중첩되고 중축된다. 그리고 마침내 추운 겨울이 되고 마지막 자리에 월터, 마조리, 테스가 모인 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진짜 기억에 대해 듣게 된다. 


네 명의 배우로 이뤄진 영화는 고요하고 정적이다. 처음엔 정적이고 고요하고 시간이 지나도 도통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다가오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비단 치매 환자가 아니라도 기억은 누구에게든 완벽하거나 완전할 수 없음을.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아주 선명하게, 사진처럼 남지만 어떤 기억은 바람처럼 흩어지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쩌면 중요한 건 완전한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그 순간에 느꼈던 그 강렬한 감정의 상흔이나 기억을 해줄 상대를 갖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관계의 역사가 기억의 의미일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월터와 마조리, 마조리와 테스, 테스와 존으로 이어지는 관계도 속에서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사실이 아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멋대로 추억을 쓴 사람이 또 있다. 얼마 전 읽은 책의 작가, 줄리언 반스의 가장 유명한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다. 토니의 반에 전학 온 친구, 에이드리언을 만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내 그에 대한 매료로 바뀌며 동시에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이야기가 발전한다. 그녀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게 된 토니는 그녀의 집안과 자신 사이의 계층적 괴리감과 가족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과 불안, 베로니카 엄마의 이상한 말과 스킨십의 여부 등의 여건이 맞지 않아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러다 얼마 후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에 대한 축하를 전하지만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에이드리언의 자살이었다. 그리고 40여 년이 흘러 재회하게 된 베로니카에게서 자신의 기억의 이면을 듣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론 굉장히 불쾌한 소설이었다. 커가는 딸을 질투하고 경계해 노골적으로 딸의 남자친구를 꼬여내려 하는 베로니카의 엄마(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생각도 않는다, 책임의식도 없고)도 온갖 고고한 척은 다 했지만 결국 이기적이고 즉홍적이며 제 행동에 책임 하나 지지 못하는 에이드리언도, 좋을대로 기억을 왜곡해놓고 자신이 상처 준 상대와 재회하며 내심 로맨스를 기대하는 주인공 토니 또한. 좋은 것만을 쓰고 그리는 것만이 문학이고 예술은 아니라고 하지만 읽고 나서 이렇게까지 불쾌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짜증을 유발했던 글이었다(물론 이 불쾌감 역시 작가의 문학적 트릭이겠지만).


"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입니다." 내 대답은 좀 빠르다 싶게 튀어나왔다.

"그래, 안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심슨?"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불쾌함과는 별개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반된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어떻게 이만큼의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뜨악함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어느 정도든- 수긍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곡해하고 해석하며 살아가는 면이 있으니까. 덜 사랑하거나 많이 사랑받는 사람,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덜 받고 잃을 게 많은 사람에 비해 고집스럽고 오만하다. 일방적인 상처를 단순히 추억으로 승화하기도 하고 나에게만 좋았던 시절을 상대 역시 그랬으리라 자위하기도 한다. 처음엔 합리화였고 자기기만이었으나 이내는 자기주문을 자기 기억으로 바꾸는 식이다. 토니처럼 사실과 기억의 간극이 어마어마하지 않을 뿐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된 기억을 안고 산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잘못된 기억과 증언은 테니스 선수에게만 있지 않았다. 월터가 마조리에게 프로포즈 한 날 본 영화가 <카사블랑카>가 아니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란 것은 관객들도 알지만 사실은, 영화관도 아닌 모텔 방에서 방영된 TV속 영화였다는 것은 마지막에서야 알게 된다. 마조리는 프로포즈의 순간이 벌거벗은, 정사의 후의 모텔 방이라는 것이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소를 영화관으로 바꿨지만 어느새 본인조차 진심으로 믿게 되었으며 치매를 앓는 노년이 되어서는 영화조차 바꾸고 싶었다. 두 사람이 데미안을 잃은 후 벤치에 앉아 퍼레이드를 지켜봤다고 했지만 사실 그 일은 실외조차 실내에서, TV의 자료화면을 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흩날리는 사프란 색은 맞았다. 


하긴 기억이란 원래 그런 면이 있다. 어떤 것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허무하게 흩어지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별 것 아님에도 평생동안 기억하게 된다(예컨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업시간의 일부를 지금도 기억한다. 맛은 좋지만 금세 변해버려서 에이 이 신숙주 같은! 이라고 부르다보니 숙주나물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억양과 초록 칠판을(숙주나물의 어원이 진짜 이런지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기억하고 싶어서), '금세'란 '금시에'란 말이 줄어들어 된 말이라는 고등학교 2학년 국어선생님의 글씨체를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사람의 생일을 지금도 기억하지만 그 사람의 생김새는 이제 흐릿해졌고 내겐 그렇게나 행복했던 시간이 누군가에겐 지옥의 동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곡으로 뽑는 이소라의 <바람의 분다>에도 이런 가사가 나오지 않는가. 

 

사랑은 비극이어라그대는 내가 아니다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오래 전부터 한 생각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쓴 편지를 받은 모든 사람을 찾아가 그것을 회수해오고 싶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아니다, 얼마쯤은 그렇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 날 것 그래도의 열정이 지금에 와선 뜨겁고 과하다고 생각해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생각이 나 이불 속을 파고들 때가 있다. 그래서였나. 없애달라고 부탁했던 책이 출간된 카프카를 동정한 적이 있고 때론 (그럴리도 없지만)유명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 그러면 편지, 일기, 낙서 등이 모두 공개가 될테니. 점점 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지향하게 된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해진 것도 없고, 불멸도 없는 삶이라면 지나고 나면 타버릴 감정들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게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고 찬란하지만 그 기억이 확실하지도, 진실되지도 않는다면 또한 참담하고 비참하리라는 생각에. 비극은 사랑 뿐만이 아니다. 기억이 다르게 적힌다는 것. 그게 기억을 잃는 것만큼 큰 비극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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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1-04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일이 있기도 하겠지요 누군가는 별로였는데 그걸 아주 좋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다 자신한테 좋게 기억하는 건지... 누군가와 기억을 맞춰본 적이 별로 없어서 다른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저는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게 더 많은 듯해요 좋은 일도 있었을 테지만, 안 좋은 것들이 그런 걸 다 덮어버린 건 아닐지... 자신이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게 달라서 기억에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자신한테만 좋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저는 그렇게 했는지, 그러지 못했을지도...

좋은 기억을 만들려고 하는 건 어떨지, 그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