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다독가에 가깝던 시절이 있었다. 다독가란 이런 사람이다 하는 정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며 내 자신이 그 기준안에 부합하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독가에 가깝다고 에측할 만한 시절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시절'일 뿐 절대 지금은 아니었다. 허무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책을 읽지 않아서 부끄럽다는 것이 아니라 책과 영화 정도는 평생을 걸쳐 좋아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진 탓이었다. 4월에 쓴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한 생을 걸쳐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는 삶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늘 그렇지만, 나는 늘 너무 내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면이 있었다. 기록을 뒤져보니 2015년 후반부터 시작되어 2016년과 작년은 진정 암흑기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단지 권수의 문제가 아니라 영향력과 기억력에서도 형편이 없던 시기였다. 다행히도 영화만큼은 꾸준히 보았으나 그건 위로라고 할 게 못되었다. (주관적인 기준으로는)영화는 책보다는 수동적인 매체이며 영화를 적게 보는 건 책을 적게 보는 것보다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 즉, 나는 책을 읽지 않음으로써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집중력과 인내심, 끈기가 사라졌다(아니, 사라졌다니? 내 안에 그것들이 있기는 했다는 게 우선 놀랍고 그 '있기는 했다는' 것들이 탈탈 털어 사라진 기분이 들어 암담하다). 친구의 생일을 잊어버리거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만졌으며 자고 일어나도 피곤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을 쓰는 행위가 번거롭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쓰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거지같았다. 단어가 생각이 안 나거나 표현력이 더 떨어졌으며 심지어 이전보다 더 관조적이고 회의적이었으며 그러면서도 무기력감이 심했다. (모두 다 이 영향은 아니겠지만서도)전형적인 디지털 중독이었다. 이 말을 입에 담는게, 인정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이건 그냥 순도 백퍼센트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나마, 정말 그나마 스마트폰을 들기 전에 읽어둔 책마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더 상황은 나빴을 거다. 

 

우리의 지능지수는 18세에서 25세 사이에 가장 높다뇌는 25세에 최대 크기가 되고이후에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여 무게가 줄고 빈 공간이 액체로 채워진다.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감동적이고고무적인 업적은 25세 사이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위안이 필요하다면 지식적인 면을 생각하자어휘력은 20세일 때보다 45세일 때 3배 풍성하다. 60세의 뇌는 20세 때보다 정보를 4배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 데이비드 쉴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우선 기억은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기억은 나이가 든다고 굳어지는 것이 아니다나이가 들어서도 경험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상기한다면 그 기억들은 강화된다이때 일기와 시간이 아주 유용하다노화되는 두뇌는 기억의 보조도구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나이 든 사람들은 단어를 잘 외우지 못한다그리고 어제 혹은 일주일 전의 일을 즉석에서 기억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낀다그에 반해 재인식을 하는 힘은 젊은 사람들만큼이나 뛰어나다어떤 단어를 기억에서 자유자재로 불러올 수는 없을지라도 단어를 본 뒤 그와 관련된 일은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대니얼 삭터는 체험한 것들을 메모해두거나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권한다원천기억을 상기시키는 그런 수단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되살리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는 것이다다른 한편 회색세포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두뇌가 얼마나 빨리 노화하는지는 두뇌를 얼마나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훈련은 뉴런의 기능을 개선해 나이가 들어서까지 높은 사유능력을 갖게 한다이는 최근의 방대한 연구들을 통해 입증한 사실이다가령 규칙적으로 강의를 듣는 노인은 별로 머리를 쓰지 않는 동년배의 노인보다 기억력이 월등히 좋다낱말퍼즐만 맞춰도 효과가 있다게다가 정신 활동은 알츠하이머병도 예방해준다자극은 두뇌의 노화를 늦춰어준다두뇌를 쓰지 않으면 40세부터 그 능력이 감퇴하기 시작한다반면 일생 동안 두뇌를 사용한 사람은 나이 들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질주한다는 느낌이 덜할 것이다그들에게는 중년의 세월이 더 느리게 간다  - 슈테판 클라인,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가뜩이나 완벽한 인도어indoor인간인데 이러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이미 내 뇌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가장 창조적인 시기마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갈지도. 두려움이 가까스로 게으름과 권태를 밀어내기 시작했기에 힘을 돋우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다시 시작한다. 어릴 적 추리소설로 글을 읽는 재미를 배운 것처럼, 일단은 가볍고 '재밌는' 글부터 읽고 있고 독서 자극하는데는 다독가들의 기록만한 게 없는지라 책에 대한 책도 읽고 있다. 닉 혼비의 글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읽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천천히, 다시, 책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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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0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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