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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전 사무장의 비행기록이다. 약 4년 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불합리한 명령으로 비행기에서 쫓겨나 새벽1시 뉴욕JFK공항에 홀로 남게 된 이 사건은 재벌가의 갑질 논란을 불러왔다. 연일 기사가 보도되며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를 은폐, 축소하기 위한 모양새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날카로운 눈빛의 조현아만이 뇌리에 강하게 남은 그 사건 - 어느덧 만 4년도 더 지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유야무야하게 잊혀질 것 같았던 그 일이 시작이 된 것일까? 땅콩회항에 이은 물컵 갑질, 신체적 언어적 폭행 등 회장 일가의 갑질 소식이 전해지며 그룹이 어떤 대응을 할 지 귀추가 주목되는 현재이다.
비행기를 되돌리는 회항을 의미하는 플라이백(Fly Back)은 강제로 내려야만 했던 그 날의 사건을 의미하는 동시에 어긋난 항로를 바로잡아 정상 궤도로 진입하고자 하는 그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각설하고 나는 이 책을 당신이 읽게 되길 바란다. '갑질'로 인해 몸과 마음의 생채기가 났다면 밴드 하나 붙여놓은 듯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 아닌,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상기시키게 하는 힘있는 글에 있다.
그 사건은 이전까지 '자발적 노예'로 회사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했던 나를 바꾸어놓았고 지금은 노동자로서, 한 개인으로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저 나쁜 짓 하지 않고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착하고 순진한 박창진은 사라졌고, 지금은 그 누구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인간 박창진이 있다. - 프롤로그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일에 맞서 싸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 일이 아니고서야 묵인하고 회피하면 그만인 것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목소리를 내게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부당한 일에 맞서 주저 앉아 울기도, 소리쳐 싸워 보기도 한 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다. 특히나 사건 자체와 이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던 나날들이었다. 고통의 크기를 비할 바 안되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출근하는 것은 고역이다. 무엇이, 왜 그를 그 곳에서 견뎌내게 만들고 지금의 그 자리(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장)에 있게 할 수 있었을까? 밟혀 부러지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했던 것들, 깨부수고 함께 가기 위한 결단력이 지금의 우리에게 요구된다. 많은 울림을 주는 글, 그 글을 이렇게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내가 개탄스럽다.
"저 사람들이 처음부터 죄다 잔인하고 악마였겠어요. 하다보니까 되니까 그런 거예요. 눈감아주고 침묵하니까 부정을 저지르는 거라고. 누구하나만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주면 바꿀 수 있어요" - 드라마 비밀의 숲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갑질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불평등과 차별의 합리화를 안주삼아 부의 세습과 도를 넘은 그들의 만행을 비판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 이는 독자이자, 노동자로서 잘못된 점을 묵과하지 말고 개선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는 시점에 와 있는 현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 목소리를 낼 자신이 부족하지만 그 어떤 민낯도 용기있게 드러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덧붙임: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하지만 그게 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할말 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