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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산
낸 셰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_스코틀랜드의 빛에는 내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특별함이 있다. 이곳의 빛은 환하지만 눈부시지 않으며, 강렬하고도 은은하게 엄청난 거리를 관통한다._p16
_..산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사람, 딱히 어딜 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친구를 찾아가듯이 산속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가장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곤 한다._p34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과 트러블에 심신이 어지럽다가도, 대자연을 맞닥뜨리게 되면 스르르 몸에 힘이 풀린다. 이 현상은 책이나 영상, 혹은 어떤 이의 묘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일어난다. 최근에는, 바로 이 책, #살아있는산 을 통해서 그 벅참을 맛보았다.
영국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있는 케언곰 산맥을 즐겨 찾았던 낸 셰퍼드 작가가 산에 대한 애정과 이곳의 매력을 표현해놓은 내용이였다. 저자는 1893년생으로 1981년에 사망한 인물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의 케언곰 산맥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산과 생명체, 자연의 섭리 등이 개성 있는 감성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고, 날 것 그대로의 산은 인정사정 없어보이기도 하는 생명 그 자체 였다. 고원, 계곡, 산봉우리들, 물, 서리와 눈, 공기와 빛, 생명체, 잠, 감각, 존재 등 하나하나 분해해서 알려주는 이 곳은, 인간이 산을 오르며 겪는 많은 경우의 수부터 거기에 속해있는 동식물들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나와 함께 그곳을 걷는 동료들 까지, 참 다채로웠다.
_어두운 황무지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면 온 세상이 사방으로 펼쳐져 나가는 것 같다. 세상 끝에 이르러 막 바깥으로 걸어나가려는 기분이다. 저 멀리 낮은 지평선 위로 케언곰 산맥의 높은 산들이 두 벌판 사이의 마른 돌 제방처럼 조그맣게 보인다._p79
_사냥터지기가 가르쳐준 대로 발을 들이 않고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듯 조심스럽게 내디뎌보지만, 물줄기 한복판에 도달하기도 전에 덜컥 겁이 난다. 나는 후퇴한다.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이다._p52
단순히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산이 아니여서 좋았고,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쓴 작가의 사랑과 생각, 필력이 느껴져서 감동이였다. 글을 읽다보면 머릿속으로 그 풍경과 느낌이 고스란히 떠올려진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좋지 않은가! 볼 때 마다 옮겨 적고 싶었던 문장들이 참 많은 책이였다. 심신이 어지러워질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책이다.
_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부터 산에 오르지 않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산을 향한 갈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커지며, 술이나 열정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영광의 절정까지 몰고 간다._p21
_낮은 산비탈에서 자라는 또 다른 나무인 자작나무는 비가 와야 향기를 내뿜는다. 묵직하고 오래된 브랜디처럼 감미로워서 습하고 무더운 날이면 흠씬 취해버릴 것 같은 냄새다._p87
_산에서의 낮잠이 깊은 무감각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면, 밤하늘 아래에서는 잠결이 얕을수록 감미롭다. 밤의 산에서는 의식이 깨어나려 하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얕디얕은 잠이 좋다. 머릿속 생각들에 시달리지 않고 단순명료한 감각 속에 머물며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_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