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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협력의 진화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그것은 전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만큼 중대했다."
1914년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 있었던 축구경기에 대한 한 장교의 회고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양국 군인이 전쟁을 잠시
멈추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휴전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휴전했던 양측 군인들은 선물을 교환하고 축구 경기를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는 몇 치의 영토를 놓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잠시 전투가 중단된 동안은 물론 전투를
하는 동안에도 프랑스와 벨기에 영토의 800킬로미터에 걸친 여러 전선에서는 적군끼리 서로 상당히 자제를 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들 참호를 둘러본
한 영국군 참모 장교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독일 병사들이 그들 방어선 안의 아군 소총 사정거리 내에서 태연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군 병사들도 그것을 보고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현재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양측 모두 "공존 공영" 정책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당시 서부전선의 상황은 극한의 적대 관계에 있음에도 협력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상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팃포탯'을 소개하고 어떻게 협력관계가
형성되어지고 또 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 팃포탯 전략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즉 맞대응
전략이다. 우선 협력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대응방식에 따라 맞대응하는 단순한 전략)
특히
팃포탯이 상대방을 패배시킴으로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함께 공존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축구나 체스 등
경쟁사회의 제로섬 게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협력'이라는 삶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팃포탯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충분한 관계의 지속성과 작은 조직이라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협력이 형성되어지고 지속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즉, 비록 신자유주의 체제 속의 극도의 성과주의 조직 속에서도 1~2명의 극소수의 협력자만 있어도 공존공영의 협력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팃포탯은
호혜주의에 입각한 전략이다.
(* 호혜주의 : 당사국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혜택을 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주의)
결코
먼저 배반하지 않고 신사적이다. 하지만, 배반에 대해서는 단호히 응징하는 반면 또 용서할 줄도 안다. 그리고 단순한 패턴으로 인해 누구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정보가 곧 힘이 되었다. 조직마다 개인마다 자신의 숨겨진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경쟁 속에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허를 찌를 수 있는 비수가 되고 자신에게는 큰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팃포탯은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공개해서 협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2명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꿈의 직장이라는
공직사회에도 성과주의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투신자살한 그들 옆에 함께 협력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사전에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빛이 크고 넓게 펴지는 만큼 그림자도 크고 넓게 펴진다. 현대사회가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만큼 이면에는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들이 늘어만 간다.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함께 나눌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어제
독서모임 중 "조직에서 우리와 같은 모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직장내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마음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런 모임을 더욱 활성화해야 합니다." 라는 의견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이 조금씩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이대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냥 끝나는 것인지?, 결국 시한부일 수 밖에
없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 의미있는 삶이라 무엇인지?, 겨울이 왔음에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나무열매를 보면서 옆에 서있는
아들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늦지 않는다. ...
이전에는 잡념이라고
생각했던 온갖 생각의 파편들이 이제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냥
달리다 보면 너무 삭막한 세대이다. 인간성은 소멸되고 조직이 준 목표, 사회가 강요하는 목표를 향해 달고 달은 인생이다.
차를
몰고 한강변에 나갔다. 항상 앞만보고 속도를 냈다. 하지만 그 날따라 차가 너무 막혔다.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았다. 문득 여기 강변도로가
아닌가? 길을 잘못들었나? 하고 잠깐이지만 놀랐다. 몇년을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그때까지 도로에 가로수가 있는지...
한강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한번도 생각하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직장
속에서 언제나 경쟁자였던 동료들을 새롭게 본다. 밟고 오르지 않으면 뒤처질것만 같았는데... 옆자리 동기의 머리에 흰머리도 보이고, 눈에 주름도
보인다. 그도 어느덧 불혹을 넘어버렸다. 항상 소리치던 팀장님의 얼굴에 삶에 지친 그림자가 보인다. 강인해 보이던 모습 속에 위로받고 싶은
모습이 함께 보인다. 이제 함께 밀어주고 끌어주면 어떨까? 조직이 원하는 것은 결국 성과이다. 개인별 경쟁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서 성과를
내더라도 좋다.
협력과
공존공영은 200만명의 사상자를 낸 그 참혹한 1차대전 서부전선 참호에서도 싹 텄다.
현 사회는 영화 '메트릭스'를 연상케 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거대한 기계는 없지만 사상과 이념 등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통제받으며 하나의 큰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구조물 구석구석에서
작은 부품으로 소모되어지고 있는 우리들이 있다. 언젠가 마모되어서 더이상 사용할 수 없으며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어질 것이다. 소진되어 교체된
부품으로서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차대전
서부전선의 군인들...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는 이념과 사상이 중요한 이슈이겠지만 참호에서 죽어가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고 200만명의 죽음과 바꿀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었고 때문에 함께 살아야만 했다. 그 곳에서 공존공영의
발생한 것이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조직이 준 목표를 행해 달려가는 우리들... 바로 눈 앞에 있는 승리의 보상만 보면 서로를 밟고 있지만 우리의 결국은 동일하다.
그냥 함께 가자.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우리다. 조금 빨리 가든, 조금 뒤에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