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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좀 더 섬세하게 느끼기 위해, 서 있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좀 더 잘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대답이야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이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은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다시 말해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고 회의하는 자세가 도움이 될까?
얼핏 생각해 보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 인간 내의 차별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하기만 하면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강화할수록 다른 종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종 차별주의는 인간내의 차별을 종간의 차별로 확장시킨 개념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소속된 개체를 다른 종에 소속된 개체보다 윤리적으로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강하고 우수하며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다른 종을 억압하고 차별한다면 그 논리는 인간 내에서 자행되는 차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생명의 존엄성으로 확대하는 것이 모든 차별에 대해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탁월하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표지부터(리커버 보다 오리지널 커버가 더 나은 듯^^;) 차별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다양한 의문에 대한 상세한 반론과, 무엇보다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듯 수십 장에 이르는 출처에 대한 표기와 참고문헌은 글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준다. 다만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을 끌어와 다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