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 - 노동자이자 혁명가, 탐험가이자 소설가인 잭 런던의 세계일주
코자 지음, 마야 미앵두 채색, 김미정 옮김 / 생각비행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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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 그의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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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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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은 있음(기억)+상실이다.

상실의 대상은 여러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안아볼 수도,만질 수도 없는 실체이기도 하고 <입동>, <노찬성과 에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교회에서 수험생들에게 나눠주는 밥을 먹기 위해 같은 줄에 서 있었던 주인공들이 부엌과 거실의 공간으로 ‘건너편‘이 되게 만든 어떤 것이기도 하고 <건너편>, 전형적인 삶으로부터의 일탈에 대한 작은 기대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풍경의 쓸모>.

없음에 대해 우리가 또렷이 인식할수록 세계에 대한 나의 재구성에 균열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하고, ‘볼 안에서는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차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기억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없음을 인식하지 않기란 어려울 듯하다. 혹 깨달음을 얻는다면 모를까. 특히 있음에 대한 기억이 강렬할수록 그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설사 없음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해도,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겪지 않을 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자유의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컨택트>에서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형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과 끝을 동시에 아우르는 비선형적 삶의 방식을 획득하게 된다. 즉 삶에서 선택과 결과가 동시에 인식되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사랑스러운 딸의 존재를 있음으로 만들 수도, 아니면 불치병으로 죽게 되는 딸의 존재를 없음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만약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속 그녀의 선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그것이 인간,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If you could see your whole life from start to finish, would you change things?
- 영화 <컨택트> 대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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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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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쓰는 후려치기란 말은 적합한 단어는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요약하기, 간추리기 정도가 될 것이다. 원래 후려치기의 사전적 의미는 주먹이나 사물을 휘둘러 갈긴다든가, 아니면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깎는다든가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적합한 단어도 아니고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아랫글에서 이 표현을 사용할 것이고,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요약, 정리해서 핵심 알맹이만 남긴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겠다.

갑자기 후려치기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은 언젠가 이런 부류의 책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서다. 흔히 개론서나 입문서, 요약서 등을 비판하는 논지는 뚜렷하다. 질리도록 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후려치기와 수박 겉핥기는 좀 다른 것 같다. 후려치기는 사상이나 글의 요점을 잘 파악해서 곁가지를 쳐내고 요지만 남기는 행위라고 한다면, 수박 겉핥기는 말 그대로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겉만 핥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입문서와 개론서를 읽으면서 쉽고 재미있게 해당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나아가 원전까지 찾아 읽는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가? 내가 철학에 관심을 두고 나름 공부하는 척하는 것도 다 수많은 입문서 덕분이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얘기는 이것이다. 어떤 철학자나 사상가의 개념이나 논리는 우리가 세계를 필터링해서 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런 필터를 가진 안경은 복잡한 세상을 좀 더 단순하고 선명하게 보게 도와준다. 그런데 어떤 사상이든 깊게 들어가 보면 그 사상의 거대한 줄기에 달린 잔가지들, 즉 예외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까지 다 고려하면서 필터를 만든다면 그 필터는 고유의 색(관점)을 잃어버리고 거의 투명하게 변할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일컫는다. 공리주의를 깊게 들어가 보면 꼭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수는 없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얼마나 강력한 필터인가? 세계는 얼핏 보기에 복잡하다. 아니 사실 자세히 봐도 엄청나게 복잡하다. 이런 복잡함 속에서 우리의 인식을 간결하고 뚜렷하게끔 도와주는 안경은 후려치기밖에 없다...는 아니고-_-;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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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 여덟 가지 키워드로 고전을 읽다
김진영 지음 / 메멘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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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유명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수전 손택은 예술 작품을 형식과 내용으로 철저하게 이분하면서 의미를 찾고 해석하려는 행위를 반대하고 예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직관적, 총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문학작품의 관습화된 읽기를 비판하면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주관적 독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주관성을 출발로 삼지만 자의적 독서가 되지 않게 설득력과 객관성을 가지고 과거의 담론 체계나 일상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소설 독법의 유효성을 증빙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같이 권위 있는 존재(본인이 원한 건 아니겠지만)의 제안은 회로화 되어버린 독서를 비판하면서 또 하나의 회로를 추가하는 격이 될 수 있다. 권위는 능동적인 사유와 비판을 회피하고픈 나의 욕망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찍이 수전 손택이 지적한 지식인의 복수(해석)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타인의 해석을 나의 사유의 확장으로 귀결시키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좀 유치한 비유지만 ‘같은 소설을 읽은 친구를 만나 자기는 이렇게 읽었다고 얘기하는 걸 들어주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친구라는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공감과 비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동등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카프카의 <변신> 강의에서 여성의 목이 주는 상징에 대한 해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안 그럴싸했다. 때문에 이 챕터 전체의 설득력과 객관성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반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성에 대한 감각의 우위성, 우연의 은총, 기억의 저장 주체로서의 신체(이 부분은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에서도 반복, 변주된다.)에 대한 이야기들은 깊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처럼 타인의 해석이 나의 의식과 사유에 스며들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 물론 어떤 스며듦은 많은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기도 하다. 만약 잘 스며든다면 그 번짐을 관조하면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이 쌓이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유가 좀 더 확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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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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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위해 읽어라.
읽기 위해 감히 알려고 하라!
그것이 피투된 존재의 책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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