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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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옮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잘랄루딘 루미-

  

 이 시는 치열하게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재단한 10여 년 전 나에게로 보내고 싶고,

 

 

   <그 순간>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이

고된 일들과 긴 항해 끝에

자신의 나라, 자신의 섬, 수만 평의 땅, 수백 평의 집,

그리고 자신의 방 한 가운데 서서

마침내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왔나를 돌아보며

이것은 내 소유야, 하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 나무들은

당신을 감싸고 있던 부드러운 팔을 풀어 버리고

새들은 다정한 언어를 거두어들이고

절벽들은 갈라져 무너지고

공기는 파도처럼 당신에게서 물러나

당신은 숨조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야, 하고 그들은 속삭인다.

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어,

넌 방문객일 뿐이었어, 매번

언덕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자신의 것이라 선언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너의 소유였던 적이 없어,

넌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어,

언제나 우리가 너를 발견하고 소유했지.

 

-마거릿 애트우드-

 

 이 시는 능력주의에 경도된 20대의 나에게,

 

<혼돈을 사랑하라>

           ·

          (중략)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중에서-

 

 이 시는 남의 눈에 맞게 필사적으로 날 바꾸고자 했던 청소년 시절 나에게,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그것이 내가 날마다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나는 적지 않은 시를 썼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이 쓸 것이다.

내가 쓴 모든 시가 그 한 가지를 말하지만

각각의 시마다 다르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말하기에,

 

가끔 나는 돌 하나를 바라본다.

돌이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는 그것이 하나의 돌로 존재해서 기쁘다.

그것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좋다.

 

때로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페르난도 페소아,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 시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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