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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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쓰는 후려치기란 말은 적합한 단어는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요약하기, 간추리기 정도가 될 것이다. 원래 후려치기의 사전적 의미는 주먹이나 사물을 휘둘러 갈긴다든가, 아니면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깎는다든가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적합한 단어도 아니고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아랫글에서 이 표현을 사용할 것이고,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요약, 정리해서 핵심 알맹이만 남긴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겠다.

갑자기 후려치기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은 언젠가 이런 부류의 책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서다. 흔히 개론서나 입문서, 요약서 등을 비판하는 논지는 뚜렷하다. 질리도록 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후려치기와 수박 겉핥기는 좀 다른 것 같다. 후려치기는 사상이나 글의 요점을 잘 파악해서 곁가지를 쳐내고 요지만 남기는 행위라고 한다면, 수박 겉핥기는 말 그대로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겉만 핥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입문서와 개론서를 읽으면서 쉽고 재미있게 해당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나아가 원전까지 찾아 읽는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가? 내가 철학에 관심을 두고 나름 공부하는 척하는 것도 다 수많은 입문서 덕분이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얘기는 이것이다. 어떤 철학자나 사상가의 개념이나 논리는 우리가 세계를 필터링해서 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런 필터를 가진 안경은 복잡한 세상을 좀 더 단순하고 선명하게 보게 도와준다. 그런데 어떤 사상이든 깊게 들어가 보면 그 사상의 거대한 줄기에 달린 잔가지들, 즉 예외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까지 다 고려하면서 필터를 만든다면 그 필터는 고유의 색(관점)을 잃어버리고 거의 투명하게 변할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일컫는다. 공리주의를 깊게 들어가 보면 꼭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수는 없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얼마나 강력한 필터인가? 세계는 얼핏 보기에 복잡하다. 아니 사실 자세히 봐도 엄청나게 복잡하다. 이런 복잡함 속에서 우리의 인식을 간결하고 뚜렷하게끔 도와주는 안경은 후려치기밖에 없다...는 아니고-_-;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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